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요.
끝까지 으쌰으쌰, 화이팅!
오늘은 뭐랄까. 색다른 브금을 사용하고 싶네요.
Red Ocean - L
살아 오면서 사랑을 받았던 기억은 없었다. 나의 권력과 돈을 사랑한 사람은 많았어도, ' 이재환 ' 을 사랑하지는 않았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라도, ' 이재환 ' 같은 사람을 사랑하지는 않을 테니까. 이제는 잘 기억조차 나지 않는 희뿌연 환영이 눈 앞에서 쏟아졌다. 어린 이재환은 눈물이 참 많았다. 집 앞의 분수대에 앉아 숨이 넘어갈 듯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엄마, 엄마. 그녀에게는 들리지 않을 애처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그렇게 말이다. 가지고 싶은 것은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모든 것이 있었으니까. 시간이 흐르고, 어린 재환은 조금 더 성장했다. 외로워도 울지 않고,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을 수 있도록.
천천히 눈을 떴다. 익숙하지 않은, 눅눅한 느낌의 낮은 천장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숨이 턱, 막혔다. 끊겨버린 환영이 아직도 어른거리는 듯 눈 앞이 희뿌옇다. 눈을 두어 번 깜빡인 후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 순간 눈가로 주르륵 흐르는 눈물에 재환의 동공이 커다래졌다. 꿈결에 울었나, 어쩐지 눈가가 시큰거린다 싶더니. 이 나이에 철 없이 울기나 하고-. 실소를 터뜨린 후 상체를 일으켰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뭐야, 차학연한테 옮기라도 한 건가, 꼴 사납게.
재환의 다리맡에 하얀 이불이 있었다. 분명 학연이 덮고 있었던 그 이불이었다. 고개를 조금 더 옆으로 틀자, 그 곳에서 학연이 몸을 웅크려 불편한 잠을 자고 있었다. 아프면서, 자기가 불편하면서까지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차학연이 밉지 않았다. 오히려 가만 보고 있으니 가슴 속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뭉근히 지펴 올랐다. 제 자신이 그 토록 부정했었던, 그럴 리가 없다고 단정 했었던.
춥잖아.
이불을 끌어 학연의 몸을 덮어 주었다. 바닥 위에 흐트러진 갈색의 머리카락이 재환의 손등에 스쳤다. 깊은 재환의 눈동자가 학연의 얼굴에 머물렀다.
내려간 눈꺼풀에.
오밀 조밀하게 달라 붙은 귀여운 콧망울에.
다물려진 조그마한 입술에.
벅차 올랐다. 가슴이 벅차 올라 더 이상 부정 할 수 없을 만큼 넘쳤다. 재환의 입에서 한 숨이 터져 나왔다. 그대로 도망 치듯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챙겨 들었다. 그 얼굴을 계속 보고 있기가 힘이 들었다.
녹슨 대문이 추위에 꽁꽁 얼어 있었다. 그 위에 손을 올려 놓으니 금세 발갛게 터 올랐다. 고개를 돌려 현관문을 바라 보았다. 저 안 어딘가에 학연이 홀로 잠들어 있겠지. 겉 옷의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꺼내었다. 사람은 참 간사한 동물인 듯 싶다. 조금의 휴식을 취하니, 끝 없는 편안함을 추구했다. 몸이 녹진녹진 녹아 내리는 기분이었다.
지금은 그저 쉬고 싶었다. 그 동안 많이 버텨 왔으니까, 오늘 하루만.
- 사장님..! 대체 왜 연락이!
" 오늘 하루만 더 쉴게. "
- ... ...
" 지쳐서. "
그냥 많이 지치네. 전화 너머 재환의 목소리에 할 말을 잃은 김 비서가 입술을 들썩였다.
그 동안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재환은, 누군가에게 힘듦을 호소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놓아 버린 듯하다. 그래서 불안해졌다.
- ..사장님.
" 그냥 오늘 하루만 더. 그래도 되죠? "
- ..알겠습니다.
한 숨, 푹 자고 싶었다. 모든 것을 잊고서 편하게.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여전히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물에 젖은 머리를 채 말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베게에 얼굴을 묻었다. 무거워진 몸이 땅 속으로 꺼질 것만 같았다. 하아-. 앓듯 신음을 내뱉은 재환이 풀린 눈으로 천장을 바라 보았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낮았는데, 다시 높아져 있었다. 손을 들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향해 뻗었다. 베이지색의 천장에 무언가가 희미하게 떠올랐다.
웃으면 입가가 네모지게 되는 학연의 귀여운 얼굴이 희미하다 곧 선명해졌다.
사람이 아프면 쓸쓸해진다 했던가.
그 옛날의 어린 재환으로 변해 버린 듯이, 왠지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입술을 앙 다문 재환이 이내 조용히 눈꺼풀을 닫았다. 머릿 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두통이 많이 완화되었다. 손에 들린 약 상자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학연이 고개를 들어 방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잠에서 깬 학연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처음부터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 처럼, 차갑고 시렸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마음이 아픈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말 없이 자리를 뜬 재환 때문인지, 그저 감기 때문인 건지. 다른 의미로 머리가 아팠다. 약을 입에 털어 넣은 학연이 또 다시 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나 가루 약 싫어하는데, 이왕이면 시럽으로 사 오지.
재환은 가끔 환한 미소를 지을 때가 있었다. 빈정 대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즐거워서 웃는 듯한 그런 표정. 학연은 그런 재환의 미소를 좋아했다. 마치 아이 같았다. 그 순간 만큼은, 복잡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치지도 않았고, 힘들지도 않았다. 자신을 보며 소리를 내어 웃는 재환을 보며 학연도 슬쩍 따라 웃곤 했다.
어쩌면 나는, 그 때 부터, 너를..
가슴이 뛰었다. 방금 전 까지 자신의 곁에 있었던 재환이 사라졌다는 것에 불안해졌다. 감히 제가 재환에게 그런 감정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럴 자격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고 있으면서도 자꾸만 피어나는 감정을 주체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나쁜 이재환이라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차라리 평생 이재환의 곁에 있게 된다면 어떨까. 빚을 다 갚지 못하면, 매일을 이재환의 곁에서 살아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더 이상 부정의 여지는 없었다. 감정은 확고했다.
학연의 손이 급히 휴대 전화를 찾아 들었다. 손가락이 타자를 잘 치지 못해 허우적댔다. 가까스로 통화 버튼을 누른 학연의 휴대 전화에서 조금은 긴 통화음이 새어 나왔다. 초조한 듯 입술을 깨물고 있던 학연의 귀에 꽤 낯 익은 음성이 꽂혔다.
- 감기는 다 나았어?
" ..어, 응! 저기. 혹시! 뭐 하나 물어 봐도 될까? "
- 무슨?
" 재환이.. 집 주소, 알고 있어? "
택운의 음성이 잠시 끊겼다. 3초 간의 정적 후, 택운이 한 숨을 쉬듯 말했다. -이재환 집 주소?
" 응. 사실.. 집을 알긴 아는데 주소를 잘 몰라서. "
- 뭐 때문에?
" 그냥, 할 말이 있는데. 전화로 하기가 좀 그래서.. "
이재환의 집 주소를 달라니, 전화 너머로 흘러 오는 학연의 목소리에 택운이 슬핏 웃었다. 뭔가 답답하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고. 이런 거 익숙하지 않은데.
- 문자로 보내줄게. "
" 고, 고마워! "
아아. 옛날부터 내 직감은 쓸데 없이 잘 맞았다. 이번에도 그 쓸데 없는 직감이 맞아 떨어질까.
만약 그렇다면, 조금은 슬플 것 같다. 단 몇 일 안에 이렇게 큰 감정을 가지게 되다니. 끊긴 전화기를 한참 동안 귀에 대고 있다 스르르 내렸다.
이재환은 병신이 맞았다. 아마 자기 자신은 모를 것이다. 자기가 차학연을 바라 볼 때 어떤 눈빛인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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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오션이 끝 나면, 단편들을 써 볼 예정이에요. 감사합니다. 아마 다음 편이나 다다음 편 끝을 내리지 않을까 생각이 되네요. 레드 오션 좋아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