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스캔들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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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또 펑크 냈어요. 혹시 일 다 끝나셨으면…….”
“어, 가 볼게요.”
“죄송해요, 일 바쁘실 텐데 이래서.”
“됐어. 일도 다 끝나서 상관없어요. 수고했어요. 그만 일 봐요.”
한숨을 쉬었다. 습관대로 조수석에 던질 뻔한 휴대 전화를 검은색 클러치백에다가 곱게 넣고는 목적지가 회사로 찍혀져 있는 네비게이션을 껐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짜증에 입술을 꼭 물었다가 놓았다. 입술에 예쁘게 발린 립스틱을 망가뜨리는 것도 싫고, 그 립스틱을 섭취하기도 싫다. 박지민이 있을 곳을 유추하기란 너무나도 쉬웠다. 그가 스케줄을 제 맘대로 펑크 내는 일이야 한두 번도 아니니. 참 웃기게도 박지민은 잡으러 가는 사람 재미도 없게 언제나 늘 같은 장소에서, 같은 짓을 하며 나를 반겼다. 내가 그의 집안으로 들어갔을 때에도 반응은 언제나 같았다. 어, 왔어?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묻는 것부터, 입꼬리를 매끄럽게 올리는 것까지. 그의 반응에 질릴 대로 질려 버린 나는 그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왔어. 나 또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하고, 파르르 떨릴 것 같은 입꼬리를 애써 올린다. 내 반응이 덤덤해지자, 그의 흥밋거리가 줄어든 것 같기도 하다. 내가 화를 내면 좋아하는 아이 같은 면모가 있었으니까. 분노에 떨리는 손을 핸들을 더욱 꽉 그러쥐고 참아 내었다. 이럴 때는 어머니를 원망하고 싶었다. 이렇게 어떠한 일에 대해 바로 열이 오르는 것은 어머니와 꼭 닮았기 때문이었다. 후우. 숨을 크게 내쉬고 차를 조심조심 몰았다. 사고만 내지 말자. 괜찮다.
박지민은 내가 봐도 꽤 괜찮은 빌라를 소유하고 있었다. 연예뉴스에 날 만큼 괜찮은 빌라임에도 불구하고, 이 빌라에 대해 알려진 건 전혀 없었다. 그 이유는 차차 깨닫게 될 것이다. 한 가지 힌트를 주자면, 박지민은 오는 여자를 막지 않는 고약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로 가지 않는 여자는 없다. 이건 확신이다. 아, 있기야 하겠지. 그를 모르는 여성분이거나, 아니면 성소수자인 여성분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나처럼 그에게 엄청난 불만을 가지고 있거나.
빨리 나올 생각에 거리에다가 주차를 하고 내렸다. 운전석에 앉아 올라간 치마를 대충 손으로 정리하며, 나는 그의 빌라에 발을 들여 놓았다.
이 빌라가 그의 공식 거주지는 아니었다. 웃기게도 공식 주거지는 강남쪽에 있는 아파트였지만 시간을 자주 보내는 곳은 이 빌라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빌라는 경비 같은 게 없으니까. 거기다가 알려진 게 없어서 잘만 가리고 다니면 박지민인지 누구인지도 가늠이 잘 되지 않는다. 아무리 요즘이 다리만 보고 연예인 누구인지를 알아차린다지만, 사람들이 그를 보아도 ‘설마 박지민이겠어?’ 하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그의 입장에서는 실제 거주지보다 이 빌라가 훨씬 편한 게 사실이다.
박지민과 나의 사이에 배려라는 단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프라이버시 같은 건 이미 증발해 공기 어딘가에 섞여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늘 그렇듯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가장 친숙한 숫자이면서도 누를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내 생일. 손가락을 타고 올라오는 미묘한 느낌을 애써 무시하고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크림색의 대리석을 지나, 고풍스러운 목재를 쓴 신발장을 지나서 보이는 건 여자 구두 한 켤레, 박지민 신발 한 켤레였다. 뭐가 그리 성급했던 건지 신발도 어지러히 놓여져 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 신발 두 켤레 옆에 내 구두를 두자니 속이 거북해 나는 구두를 벗지 않고 그대로 복도로 진입했다.
“으…….”
썩 유쾌하지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구겨지는 얼굴을 간신히 펴고, 걸음을 한 발자국 내딛었다. 이럴 때마다 괜히 기분이 미묘해진다. 남의 성생활을 억지로 옅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딱히 궁금하지도 않은데 말이야.
그러고 보니 박지민의 향수 냄새와 여자 향수 냄새가 조금 섞인 것 같기도 하다. 그 와중에 여자 향수 냄새는 박지민이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향이었다. 참 대단도 하셔라. 속이 뒤틀어졌다. 그래도 심기가 불편하다는 티는 내면 안 되었다. 박지민과의 기 싸움에서 지는 건 죽어도 싫었다. 나는 정돈이 안 되어 있는 옷가지들을 피해 소리의 근원지인 방문을 똑똑 두들겼다.
“뭐, 뭐예요?”
“아. 잠깐만.”
당황한 여자의 목소리와 별것 아니라는 듯한 뉘앙스의 박지민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문 옆에 있는 벽에 기대 나오는 박지민을 맞았다. 왔어? 역시나 멘트는 다르지 않다. 며칠 전 머리를 빨갛게 물들인 그는 한 층 더 섹시해졌다. 물론 내 생각은 아니고, 대중들의 견해였다. 샤워가운만 걸친 그가 천연덕스럽게 땀에 젖은 머리를 쓸어넘겼다.
“오늘은 뻔한 소리 좀 하자.”
“어떤?”
“내가 말했지. 네 성생활은 존중하지만, 스케줄을 펑크 내고서까지 중요한 건 아니라고.”
“나도 말했잖아. 너 없으면 나 스케줄 안 하겠다고.”
“내가 언제까지 네 뒤를 따라다녀야 하는데?”
“내가 언제 너를 뒤에 세웠댔어. 너 나보다 앞에 있는 애야. 내가 너 따라다니는 거였는데. 아니야?”
얼굴을 구겼다. 더이상 표정관리를 하는 것도 벅찼다. 사실 하고 싶지 않다는 게 더 컸지만. 이게 무슨 말장난이야. 박지민이 내 미간을 눌러 주러 한 발짝 다가왔지만 난 두 발짝 뒤로 갔다. 입안 여린 살을 꽉 깨물었다. 그는 그 짙은 눈가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혈압이 올랐다. 화로 인해 입안이 질척해졌다.
“누구세요?”
아. 공기의 흐름이 잠시 끊겼다. 다름 아닌 방안에만 있던 여자였다. 나는 박지민 뒤로 나온 여자를 티 나지 않게 흝었다. 집안에 어지러이 떠다니는 여자 향수의 주인은 이 사람일 것이 분명했다. 그는 다시 한 번 머리를 쓸어넘겼다. 그의 버릇이었다. 여자는 내가 있다는 것 자체가 조금 불편한 상황인 듯 인상을 찡그리곤 다시 누구냐 물었다. 나는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생각했다. 분명히 본 적이 있는 얼굴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본 적이 있는 얼굴일 뿐 기억에 남는 얼굴도 아니다. 나는 가식적인 웃음을 짓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여자는 떨떠름하게 같이 고개를 숙였다. 예의라고는 모르시는 아가씨인가 보네. 나는 얼굴에 남아 있는 웃음끼를 거두어 내지 않고 그를 다시 마주봤다.
“섹스 스캔들을 터뜨리고 싶은 거라면 여자 보는 눈 좀 키워야겠어, 박지민. 섹스 스캔들이라도 이왕이면 좀 괜찮은 여성분이랑 터지는 게 낫잖아.”
“……뭐라고요?”
내 말에 여자는 나에게 성큼 다가왔다. 자신을 긁어내리는 말 뜻이라는 걸 알아챈 여자의 표정이 제법 사나웠다. 자신을 욕하는 건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시는군. 유쾌하지 않은 분위기 속에, 박지민은 그저 어깨를 으쓱. 입꼬리가 매력적이게 올라갔다.
“지민 씨, 이 여자 누구예요?”
“어……. 네가 함부로 입에 담으면 안 될 만한 여자라고 해 두자.”
"네?"
말간 얼굴이 가증스러움을 뒤집어썼다. 저런 거에 좋다고 매달리는 여자도 영 아니지만. 그가 충분히 매력적인 건 알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대중들이 보는 시선이었다. 나를 앙칼지게 쏘아보는 여자가 거슬려 그를 재촉했다. 대표님 봐야 해. 빨리 나와. 그는 느긋히 대답했다. 상황 정리는 하고 가야지 않겠어? 나는 앞니로 혓바닥을 잘근 씹었다. 박지민의 느릿함은 성미가 급한 나와는 맞지 않았다. 짜증은 여전히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러다가 하늘을 찔러 펑 터져 버릴지도 몰랐다.
“기다려. 금방 씻고 나올게.”
“저기, 지민 씨!”
“아, 욕실 하나 더 있으니까 거기 써도 상관없어. 찾는 건 알아서.”
“지민, 지민 씨!”
애절한 여자의 부름에도 그는 욕실로 들어갔다. 자칫하면 입밖으로 욕설이 새어나갈 뻔했지만, 나는 간신히 참아 내었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 내 이미지를 버릴 수는 없다. 이미 이 여자에게 나는 이미지가 안 좋을 대로 안 좋겠지만. 거실에 남은, 초면인 여자 둘의 분위기란 썩 좋지 않았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여자의 눈빛 또한 그렇게 썩 좋지 않았고.
"지민 씨 여자 친구세요?"
자칫 웃음이 나올 뻔했다. 진심이었다. 내 입가가 호선을 그리는 걸 캐치해 낸 여자가 다시 한 번 질문했다. 지민 씨 여자 친구이시냐고요.
“지금 상황에서 박지민과 제 관계가 중요하게 작용하나요?”
“……하.”
“전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손목에 걸린 시계를 손톱으로 톡톡 치다가 흘러가는 이 시간이 아깝다는 걸 깨달았다. 시간을 낭비했어. 빌라에 들어선 이후로 흘러간 시간이 아까워 입맛을 다셨다. 박지민이 또다른 욕실이 있다고까지 말해 주었지만, 여자는 블라우스의 단추를 채우기 시작했다. 아마 내가 준 무안이 수치스러워 죽을 것 같아서였을 것이다.
나는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내 차에 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또각거리는 굽소리와 함께 현관을 나섰다. 아, 그 전에.
“출구는 이쪽으로.”
"……."
“설마, 저보다 늦게 나갈 생각은 아니셨죠?”
나는 현관에 있는 벽에 기대 고개를 옆으로 까딱였다. 여자는 눈에 띄게 움찔하더니 인상을 팍 쓰고 재빨리 복도를 가로질렀다. 이런, 숙녀분의 정곡을 찔렀나 보네. 여자는 벽을 짚고 강렬한 레드 계열의 구두를 신기 시작했다. 여자의 키가 순식간에 쑥 올라갔다. 상대방을 올려다보는 느낌은 별로인데. 그것도 같은 여자를 올려다보기란 기분이 참 묘하다. 여자는 휴대 전화를 들었다. 아마 매니저에게 연락하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굳이 말리지 않았다. 연예인 체면에, 그것도 사람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거주지까지 걸어가거나 혹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건 자존심이 몹시 상하는 일 중 하나였기에. 이 빌라가 박지민 거라고, 빌라 안에서 박지민과 무엇을 했다고 말하는 것만 아니면 빌라 앞에 어떤 사람이 와도 상관이 없다. 그대신, 입막음은 똑똑히 해야 한다.
“합의할 게 있으면 이쪽으로 연락 주세요.”
"……."
“참고로 저희 회사는 신사적인 걸 좋아해서. 좋게좋게 넘어가는 거 좋아해요.”
횡포 같은 거 부리고 싶지 않거든.
마지막 말은 그냥 삼켜 버렸다. 여자는 내 명함을 휙 낚아채듯 빼앗아 손에 말아쥐었다. ……아, 내 명함. 나는 구겨지는 명함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다가, 굽소리를 내면서 멀어지는 여자의 뒷통수에 시선을 박아넣었다. 저 여자에게 인사 따위 같은 건 머릿속에 없나 본데. 딱히 인사를 받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예의라는 게 있잖아? 좋은 인상은 아니다, 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거리에 주차되어 있던 차에 올라탔다.
차에서는 인위적인 방향제 향이 났다. 그래도 나는 방향제를 빼서 버리지는 못했다. 저기, 태평한 꼴로 나오는 박지민이라는 자가 사다 놓은 게 바로 이 방향제였으니까. 골이 울리는 느낌이었다. 자신의 손길이 닿은 물건이 하나라도 없어지면 하루 종일 나를 괴롭히는 게 문제였다. 그러지만 않았다면 진작 버리고 남았지.
“조수석에 안 타고 왜.”
“내가 운전해.”
“이건 내 차야.”
“그래, 나랑 같이 본 차잖아.”
“박지민.”
“나 더이상 말하기 싫어. 너 운전 안 시켜. 내가 운전해.”
의미 없는 말싸움이었다. 나는 그냥 조수석으로 넘어가 앉았다. 박지민은 그제서야 만족한다는 얼굴로 핸들을 잡았다. 차가 부드럽게 앞으로 나갔다. 어디로 가냐는 물음도 없이 회사로 향하는 그가 나에게 물었다. 저 여자 어떻게 만났는지 안 궁금해? 이 대낮에. 나는 지루하단 표정으로 답했다. 별로 안 궁금해.
“그래? 저 여자 대표님 전 애인분인 건 알아?”
“거짓말 마.”
“진짠데. 대표님이 그러셨잖아. 이제 평범한 사람은 안 만날 거라고. 그게 저 여자 때문이었어.”
“……진심이야?”
놀란 내가 박지민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당연히 농담. 대체 날 얼마나 쓰레기로 보는 거야? 어쨌든 계속 그렇게 나 보고 있어.”
아. 당했다. 그는 내 눈을 맞추며 야실스럽게 웃었다. 나는 다시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 나 계속 보고 있으라니까? 그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위아래로 흔들리는 고갯짓은 긍정을 그려 냈지만 그 안에 내포된 뜻은 완벽한 부정이었다.
박지민이라는 사람이 하나에 문제라면, 나는 그 문제를 당장이라도 던져 내 눈 앞에서 사라지게 만들 것이다, 라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어차피 답이 나오지 않을 문제일 것이 뻔할 테니, 고생을 사서 하기란 싫다는 거였다. 그럴 시간도, 그럴 힘도 없는 것도 한몫했다. 그러니까, 그를 대할 때는 휘둘리는 대로 휘둘리는 것이 상책이었다. 괜히 내 고집을 끝까지 물어늘어지면 나만 피곤해지니까. 이런 나를 꿰뚫고 있는 그는 그 사실을 제일 마음에 안 들어 했지만. 아까도 언급했듯 그는 내가 화난 모습을 좋아했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그는 내가 자신의 일에 진심으로 반응하고, 관심을 가져 주고, 자신만을 바라봐 주길 원했다.
“내 말 안 듣고 눈 감고 있으면 키스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는 건가?”
“잊고 있나 본데, 네가 몰고 있는 차는 네 차가 아니라 내 차야.”
“아, 나도 키스하면서 사고 내긴 싫어. 키스의 흐름이 끊기잖아.”
그리고 그런 박지민은,
“립스틱 색 바꿨네.”
"……."
“마음에 들어.”
"……."
“이건 당연히 예쁘단 소리고.”
나를 좋아했다.
잘 지냈어요? |
한 달 조금 넘어서 보죠. 우리? 늦게 온 거 미안해요ㅠㅠ 너무 바빠요, 요즘. 할 말은 많지만 일단 요약하자면! 일단 이 글은 금수저 지민이 글의 리메이크 버전입니다. 아실 분들은 아실 거라 믿어요. 아이들의 성격이 좀 변했져. 참 00이의 차는 BMW입니다. 포르쉐나 마세라티로 하고 싶었지만 그건 지민이 차인 걸로!
방탄이들에 관해서 말하고 싶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을게요. 남준이 아프지 마로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