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끔 그런 날 있지않아? 만약 내가 그 날 그러지 않았더라면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자꾸 생각하게 되는 날. 스물 한 살 먹은 나는 사랑을 잘 모르겠다. 누군가 첫사랑을 묻는 다면 누구를 꼽아야 할 지도 모르겠어. 처음에 의미를 두자면 유치원에 같이 손잡고 다닌 지금은 이름도 모르는 사진속의 남자애? 고등학생이 되어 혼자 어장에 허덕였던 동아리 오빠? 첫 연애라고 치면 알바에서 만난 한달 좀 넘기고 헤어진 동갑내기? 그래서 누군가 첫사랑을 물을 때면 그냥 웃어 보이는 것같아. 나는 아직 못 만난 것 같네요하고. 그치만 사실 자꾸 떠오르는 얼굴 하나가 있어. 잘 익은 빨간 홍옥말고 연두빛 풋사과처럼 왠지 풋내나서 생각나는 그 애. 김태형. 중학교 삼학년의 나는 그때 내 생각보다 훨씬 어렸던 것 같아. 항상 똑부러지고 당당한 척했지만 사실은 은근히 소심한 구석이 있었거든. 어릴 때 부터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지만 그렇다고 손에 꼽힐 정도로는 아닌? 과목도 막 수학천재 영어천재 그런 애들 많잖아 근데 난 딱히 꼽을 것 없이 두루뭉술하게 했어. 외모도 어디 하나 모난 구석없지만 또 특출나게 예쁘다거나 뭘 잘하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교우관계도 적당히 두루두루 인사하고 지내는 정도. 그때는 뭐 꾸미고 다니는 것도 별로 없어서 립밤바르는 게 다였다ㅋㅋㅋㅋ요즘 애들이 보면 놀랄듯. 맨날 포니테일을 고수하다가 처음 반묶음을 하고 간 날에는 현관거울을 몇번이나 확인했는지 몰라. 학교에서 몇번이나 애들이 예쁘다고 해준 다음에야 의식하는 걸 멈췄다니까ㅋㅋㅋㅋㅋㅋㅋ 나랑 반대로 김태형은 어디서든 눈에 띄는 애였어. 잘생긴 외모도 한 몫 했지만 밝은 성격과 장난끼로 주변이 늘 시끄러웠어. 그 와중에도 선하고 순수해서 선생님들도 예뻐라하는 학생이랄까. 남의 눈치보지 않고 항상 즐겁게 지내는 김태형이 나는 조금 신기했던 것 같아. 당연히 김태형을 좋아하는 애들 엄청 많았지. 거의 한 학기가 지나가도록 같은 반이었지만 우리는 아예 다른 무리라 어울릴 일이 별로 없었는데 사회수행평가 한 조가 되어서 처음 말할 일이 생겼어. 그 이후로 우리는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고 또 같은 구역 청소를 맡게 되면서 장난치는 사이로 발전했지. 반에서 김태형은 내 옆분단 대각선으로 앞에 앉아있었는데 내 자리에서 시계를 보는 방향이 딱 그 자리였어. 나는 수업 중에 가끔 시계를 확인하는 버릇이 있는데 그럴 때면 꼭 김태형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면 너는 꼭 사람 녹이는 눈웃음을 지으며 내 고개에 맞춰 요리조리 움직이면서 시계 못 보게 방해했어. 그렇게 한참 눈씨름을 하고있으면 어느새 나까지 웃고 있었다. 사실 그게 좋아서 나는 쓸데없이 시계를 보는 척 한 적도 있었어. 뺀질 거릴 것 같다는 첫 인상처럼 너는 좀 설렁설렁 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빼먹지않고 청소를 했어.그래서 늦게 끝나는 날이면 둘이 어색하게 같이 교문을 나섰다. 딱히 같이 가는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닌 비슷한 타이밍으로 가방을 싸고 같이 계단을 내려가고 실내화를 갈아신는 시간이 왠지 간지러운 느낌인 거야. 그래서 괜히 너와 같이 청소하는 목요일을 기다렸다. 시간이 갈 수록 친구들은 김태형이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어. 내가 짝궁 남자애와 장난을 치고 있자 눈치를 보며 자꾸 끼어드는 것도, 복도에서 괜히 내 머리에 손을 올리며 작은 손장난을 치는 것도 그래서 그런 거라고. 솔직히 나도 조금은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긴 했어.잠자리에 누워 오늘 내게 장난 걸었던 김태형을 떠올린 적도 많았고. 그치만 김태형은 엄청 잘생겼고 인기도 많은데 설마 나를 좋아할까 하는 마음이 더 컸어. 그래서 소위 잘논다는 우리반 여자애가 나에게 김태형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걔가 널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을때 나는 '그냥 같이 청소하는데 엄청 뺀질거려'라고 둘러댄 것 같아.왠지 나를 놀리는 것만 같아서. 그리고 그 이후로 너는 청소 구역을 다른 애랑 바꾸더라. 우린 다시 인사만 하는 사이로 돌아갔어. 그 후로 너는 더 이상 내게 장난치지 않더라. 뭐 그때 잘 되었더라도 아마 지금쯤은 헤어진지 오래일거라고 차라리 이렇게 좋은 기억으로 아쉽게 남겨둘 수 있는게 다행인지 모른다는 생각도 조금은 해. 그래도 가끔 그런 생각을 들어. 만약 그날 내가 나도 좋아하다고 말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김태형은 그때 진짜 나를 좋아했을까. 지금은 김태형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예전처럼 지금도 그렇게 예쁘게 웃고 있을까. 그런 생각. 그런데 그 눈웃음을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 몰랐네. ** 스물 한 살의 나는 재수중이야. 어릴 때 나를 생각하면 막연한 기대감이랄까 자신감이랄까 그런게 있었던 것 같아.왠지 내 스무살엔 막 장학금 받고 명문대에 들어가 있을 것같고 미래를 생각하면 전문직 유능한 커리어 우먼같은 거 있잖아. 정장 뽝 입고 외국 바이어와 유창한 외국어로 통화하는 그런 이미지. 왠지 나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사실 난 특별한 꿈은 없었어.직업이라던가 그런거. 어딜가도 꿈이 있어야 한다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막상 그 중요한 꿈을 어디서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거야. 그리고 뭔가에 관심을 가지더라도 이게 정말 꿈일까 나중에 아니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들고 되게 무겁고 어려운 거였어 꿈은. 답답하고. 그래도 일단 지금은 내가 학생이니까 나중에 어떤 꿈이 생기더라도 성적이 발목잡지 않도록 하는 만큼 공부해놓자 이런 생각이었던 것 같아. 그렇게 남들처럼 적당히 공부하고 또 가끔씩 딴짓도 하면서 학교와 독서실 집을 오가며 고삼생활을 보냈어. 그래서 수시 넣고 최저맞춰서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추천해주시는 과에 들어가야겠다 그러고 있었지. 가끔 라디오나 인터넷에서 수능 날 사고나서 재수합니다 이런 글 볼 때, 와 진짜 황당하다.어떻게 저런 일이 있냐.이랬는데 내가 그 당사자가 될 줄은 진짜 꿈에도 몰랐다. 엄밀히 말하자면 난 당일은 아니고 그 전 날 미리 자리나 보고 와야지 하고 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버스에 치였대. 사실 난 기억안나 통째로 날라간 것 처럼. 난 신호를 건너고 있고 버스가 오는데 그게 영화처럼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어. 난 그거 다 뻥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더라. 뇌가 위기감을 느끼면 평소보다 머리에서 사진을 더 많이 찍는대. 어 왜 이렇게 빨리 오지? 어..가까이 온다? 안 멈추는데? 하고 그 뒤론 기억이 없어. 무릎 한 쪽이 거의 박살나다 시피해서 바로 구급차타고 병원으로 갔다던데 내가 막 울고불고 난리쳤다는데 그것도 기억에 없다. 기억나는 건 수술에서 깨고 나서 회복실에서 눈떴을 때. 드라마 같은 거 보면 수술하고 막 깨어나면 부모님이나 연인이 막 손잡고 있다가 어머 깼나봐.막 이러면서 탄소야,엄마야.이런 따뜻한 장면같은 거 연출하잖아. 근데 현실은 차가운 회복실에서 눈뜨면 간호사 분들이 하시는 막 일상적인 얘기들이 들려.오늘 저녁은 뭐 먹을까같은. 그 사람들은 이게 일상이니까 누워있는 내 상황도 항상 보는 일상중 하나겠지. 정신차리면서 내가 여기가 어디지하고 두리번 두리번하고 있으면 그제서야 와서 환자분 정신차리셨어요?하고 물어봐. 그리고나면 다리에 타는 것 같은 통증이 점점 느껴지는 거야. 그래서 엉엉 우니까 의사들이 와서 주사를 놔주더라. 조금 있으니까 수치가 안정되었다면서 병실에 올라갈꺼래. 그제서야 그 층에서 나오니까 엄마아빠가 보이더라 이게 뭔 상황인지도 모르겠고 너무 아픈데 울면 안될것 같고 내 손 잡은 아빠손 꼭 잡으면서 저절로 움직이는 병원천장만 쳐다보고 있었어.도착하니까 짐짝처럼 사람들이 내 침대커버를 잡고 나를 병실침대로 옮기더라. 그렇게 내 병원생활이 시작되었어. 첫 일주일은 실감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매일 아파서 울다가 약먹고 주사맞고 그랬어. 그러다 일주일 지나니까 수능생각이 나더라. 억울하고 답답하고 근데 진짜 그 새 나 어떻게 됐는 줄 알고 반쪽이 된 엄마아빠 얼굴을 보니까 그런 티 못내겠더라고. 그 날 난 귀찮다고 가기 싫다고 했는데 아빠가 그래도 꼭 가보라고 했거든. 아빠가 얼마나 자책했는지 얼굴만 봐도 느껴지는 거야. 그리고 일단 내가 내 다리로 걸을 수 있을지 다리는 구부릴 수 있을지가 문제인 상황에 수능이 대수야. 이미 벌어진 일 돌이킬 수 도 없는데. 그렇게 병원에서의 팔 개월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하루하루의 연속이었지만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어. 힘들었고 끔찍했던 재활이지만 그래도 워낙 사교적인 우리 엄마덕분에 병원에서 소중한 인연도 많이 만들고 정형외과 병동에 거의 유일한 젊은 피였기 때문에 어르신들 예쁨도 많이 받으면서 지나고 보니까 그렇게 끔찍하지만은 않은 시간을 보낸 것 같아. 나 처음으로 워커끌고 걸었을 때 재활선생님이 돌잔치해야겠다고 그러셨닼ㅋㅋㅋㅋㅋ나때문에 진짜 고생많이하셨어. 어쨋든 예전처럼 자유롭지는 않지만 내가 걸을 수 있을까 차라리 그냥 휠체어에 있을래 하고 재활끝나고 엉엉 울던 내 모습보다는 훨씬 장족의 발전을 해서 거의 열달만에 집으로 돌아왔어. 집에만 가도 좋겠다 진짜 바라고 바라던 건데 막상 집에 오니까, 아무도 없는 조용한 집에서 혼자 있으니까 그제서야 상실감이 막 오는 거야. 시간 진짜 금방 가. 안 그래? 그렇게 기나 긴 터널을 어떻게 지나온 건지 아니면 아직도 많이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서 이제 좀 그 깜깜한 곳에서는 벗어난 것같아. 어쨋든 나도 이제 살아야하니까. 그리고 오늘 하루가 그 병실에서 간절히 바라던 꿈같은 하루니까. 니가 오늘 불평하는 건 진짜 간사한거야. 김탄소. 그리고 덕분에 진짜 소중한 사람들도 만나고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알게 됐잖아.하면서 올해 초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했어. 사실 말만 시작한거지 거의 시늉만 하는거야. 재수없게 바로 교과과정이 왕창 바뀌는 바람에 공부도 다시 해야하고 일년 놀아서 그런가 개뿔도 모르겠더라. 몸이나 성하면 좋겠는데 후유증 덕분에 자꾸만 뭐 하나 마음대로 제대로 못하는 내가 화가 나기도 하고 다른 애들 스무살,스물한살을 보면서 너무 상대적 박탈감 같은 게 느껴질 때도 있고 그래도 어떻게든 버틴다고 버틴 것 같은데 수능 오십일도 안 남은 이 시점에 내가 이렇게 충동적인 사람인지 처음 알았다. 아침에 평소같이 일어나서 운동갔다가 집에가서 씻고 밥먹고 인강을 들어야했는데 가을이라서 그런가 날씨가 너무 좋은거야.하늘이 진짜 파랬어.나는 원래 구름이 좀 낀 하늘을 좋아하거든.근데 오늘은 그 호불호를 잊을만큼 예쁘게 파랬어.이름은 모르지만 길가에 꽃도 피어있고 근데 마음이 너어어무 답답했어. 막 뭔가 꼭 누르고 있는 기분. 왠지는 모르겠는데 그래서 그 길로 집에가서 씻고 제일 예쁜 옷을 꺼내 입었어. 안하던 화장도 공들여하고 있는 돈 다 꺼내서 무작정 챙기고 그리고 어딜 갈까 하다가 괜히 바다가 보고싶은거야. 괜히 영화나 드라마 같은데선 주인공들이 이럴때 바다로 떠나고 막 그러잖아. 생각해보니까 올해 초에 제일 친한 친구랑 나 이제 많이 나아진 기념으로 지하철타고 벚꽃구경한답시고 인천에 간 적이 있거든. 전형적인 여행코스 '차이나타운-동화마을-월미도'. 사실 콩크리트 길에 팬스건너 바다같지도 않은 바다지만 나같은 길치가 어디 새로운 곳 가기도 무섭고 버스보다는 만만하고 그래서 그냥 거기 가자 하고 무작정 지하철을 탔어. 방학도 아니 주말도 아닌 평일 애매한 낮시간이라 그런가 지하철에도 사람 별로 없다라. '야 미쳤어?! 뭐하는 거야. 김탄소' 이러면서도 몸이 집으로 돌아가지지는 않았어. 엄마랑 같이탄 쪼꼬만 꼬맹이, 사이좋아 보이는 커플, 짐이 많은 할머니, 이어폰끼고 폰만 들여다보고있는 남자, 데이트를 가는지 연신 거울을 들여다 보던 아가씨, 사람들이 타고 내리고를 반복하다가 어느새 두시간이 훌쩍 지나 내릴 때가 되었더라고 그래서 나는 홀린듯이 월미도가는 버스를 탔어. 혼자 막 웃으면서 이게 뭐하는 거지.이러면서 도착한 바다는 내가 생각했던 것 만큼 형편없었어. 모래사장도 뻘도 없이 바다와 나 사이에는 콩크리트바닥과 돌 무더기가 다였거든. 바다 너머 보이는 풍경은 이름 모를 아파트단지들과 뒷산. 근데 그것도 바다라고 주저앉아서 파도소리랑 물거품이는 걸 구경하고 있으니까 왠지 좋은거야. 그냥 뭐 특별할 것도 없이 계속 움직이는 물결인데 괜히 홀린 듯이 바라보게 됐어. 멍하니 내 발에서 얼마 안떨어진 돌이 물에 잠겼다 빼꼼 젖어서 남들보다 조금 짙은 색을 하고 나왔다 다시 잠기는 걸 보면서. 마실나온 아줌마부대가 옆에서 사진찍고 뒤에선 간간히 놀이기구 타는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근데 갑자기 눈물이 막 나더라. 너무 많은 게 서러워지면서, 난 내게 기대가 진짜 많은 사람이었는데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이는 거야. 너무 작은 사람같고 앞으로의 일도 너무 막막하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 지도 지금까지 해온 것들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고, 하루이틀도 아니고 매번 자주보지도 못하는 친구들이랑 연락할 때마다 우는 소리하기 싫어서 그냥 괜찮은 척 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외롭고 진짜 무슨 실연당한 애처럼 한참 울었던 것 같아. 그 자리에서. 되게 오랜만에. 시원하게. 어차피 또 볼 사람들도 아니니까 진짜 하나도 의식안하고. 한 삼십분 울었나 달래줄 사람도 없고, 울다보면 또 그쳐지는 시간이 오잖아.혼자 조용히 잘 뚝 그쳤어ㅋㅋㅋㅋㅋㄱ그리고 나니까 괜히 창피해서 화장실가서 세수도 하고 뭔가 딱히 달라진 건 없지만 조금 후련한 기분도 들고, 사실 난 감정을 표현하기보단 숨기는데 익숙해서 스스로도 괜찮다고 나 멀쩡해라고 말하다보니까 가끔은 나 자신도 깜빡 속을 때도 있는데 오늘은 나조차도 숨기고 모른척 하고 있었던 감정들과 마주한 기분이었어. 오랜만에 어쨋든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긴 아쉽고 디스코팡팡은 무리고 소리나 실컷 지르고 가야지 하고 바이킹표를 끊었다. 울고 불고 이미 못볼 꼴 다 보였는데 또 볼 사람들도 아니고 하면서.가니까 사람도 별로없고 막 시작하려고 했는지 줄도 안서고 바로 앉자마자 기구가 움직였어. 내 뒤엔 커플한쌍이 타고 내 건너편에 교복입은 애들 서너명이 타고 근데 나처럼 혼자 탄 남자가 하나 있는 거야. 괜히 묘한 동질감이랄까. 바이킹은 점점 올라가기 시작하고 심장은 두근거리고 뱃속이 간질간질한 기분에 이왕 소리지르려고 탔으니까 눈도 질끈 감고 진짜 엄청 소리 질렀다. 속이 다 뻥 뚫리더라. 사람도 없어서 엄청 오래 태워줬어. 그리고 이제 다시 점점 땅으로 내려가면서 높이가 낮아지는데 건너편 사람 얼굴이 눈에 들어오는 거야. 어, 어디서 많이 봤는데. 저 이목구비. 그리고 기구가 거의 멈추고 나니까 김태형이 나를 보면서 웃고있더라 시계 못보게 할 때랑 똑같이. 내리시는 문은 반대쪽에 있습니다.하는데 나는 뭔가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 멍하니 있었어. 근데 김태형이 그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와 내 손을 잡으며 '왜 안 내려 김탄소' 하고 잡아끄는거야. 뭐지하면서도 그때 꿈은 아니구나 했어. "맞지,김탄소. 우와. 어떻게 여기서 만나냐.나 김태형이야. 김태형." 니가 너무 반가워해서 나도 모르게 그냥 우리가 원래 이렇게 반가운 사이인 것처럼 느껴졌어. 오년간의 부재가 증발이라도 해버린 것처럼.너야말로 혼자서 뭐해.하니까 나 이제 곧 군대가 친구들이랑 군대가기전에 뭉치기로 했는데 짜식들이 여친한테 전화왔다고 바로 사라져버렸다.하면서 웃는데 뭔가 진짜 김태형 맞구나 싶었어. 그렇게 웃는 사람은 진짜 김태형밖에 없거든. 우리는 둘다 배고파서 약속이나한 것처럼 핫도그를 하나씩 입에 물었어. 그리고 으레하는 시덥지않은 것들을 물었던 것 같아. 어떻게 지냈어 같은 거. 나는 아무렇지 않게 짧은 치마 아래로 드러난 수술자국을 보여줬어. 나 수능전 날 정의롭게 동네 양아치들이랑 오대일로 싸우다가 생긴 영광의 상처야 하면서. 김태형은 웃지도 않고 놀란 눈을 하고는 눈으로 묻는 거 있지. 무슨 일이냐고. 나는 울지 않으려 최선을 다하면서, 내 재미없고 긴 이야기가 계속 되는 동안 너는 조용히 담담하게 내 얘기를 들어줬어. 그리고 그 끝에 너는 내 머리에 적당한 무게로 손을 올리고 눈을 맞추며 "고생했네.장하다. 우리 탄소."하고 말해줬어. 한번 터진 눈물샘은 되게 쉽게 다시 터지는 거 알지?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다시 워터파크 재개장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창피햌ㅋㅋㅋㅋㅋ내가 너무 서럽게 우니까 너는 되게 어설픈 손길로 내 등을 토닥토닥 해줬어. 근데 그러면 누가 달래주면 더 우는 거 알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ㄱㅋㅋㅋㅋㅋㅋㅋㅋ오년만에 만난 좋아했던 애 앞에서 이렇게 울게 될 줄이얔ㅋㅋㅋㅋㄱ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ㄱ 또 상황도 되게 웃기잖아. 좀 지나니까 태형이가 막 주위 눈치보는 척하면서 "야 이러니까 꼭 내가 울린 것 같잖아. 주변에서 나 나쁜놈처럼 쳐다본다." 너스래를 떨어서 나도 좀 웃음이 나왔어. 내가 좀 그쳐가니까 태형이는 울면서도 꼭 손에 쥐고 있었던 핫도그 꼬치를 빼앗아서 잠깐만 있어 하고는 물을 가지고 돌아왔어. 연신 니가 나를 웃겨줘서 나는 다시 제 페이스를 찾은 것 같아. '아이구. 우니까 예쁜 얼굴 못생겨졌네. 김탄소.'하면서 내 눈가를 쓸어주다가 갑자기 이마를 아프지 않게 꽁 때리는 거야. 그러더니 "야.니 왼쪽 손목이랑 이마 누구껀지 알아?"이러는 거야.내가 이게 무슨 황당한 질문이야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니까 "기억 못하나 보네. 예전에 우리 같이 청소할 때 누가 먼저 끝내나 하고 내기 한 적 있었잖아. 손목이랑 이마맞기 걸고. 그때 내가 이겨서 보류하는 대신에 그때까지 내꺼하기로 했는데. 기억 안나지?" 생각해 보니까 얘가 하도 뺀질거려서 내가 그런 내기했던 기억이 나더라. 그런 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나 싶고. "나 사실 니가 첫사랑이다. 김탄소. 나 너 되게 좋아했어. 그래서 너랑 오래있고 싶어서 맨날 뺀질거렸는데. 넌 눈치없이 그런 내기 하자고 하더라." "어..?뭐?ㅇ...왜?" "뭐가 왜야. 좋아했다니까. 너 되게 예뻤는데. 말하는 것도 예쁘고 웃는 것도 예쁘고 공부하는 것도 예쁘고. 나 원래 공부 엄청 안해서 너랑 같은 조 됐을 때 진짜 아무것도 몰랐는데 니가 계속 웃으면서 하나하나 다 가르쳐줬잖아. 그 때 처음으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한 거 알아? 사실 나 대학들어온 것도 어떻게 보면 네 덕이야.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멋있는 거. 넌 쎈 척 안하고 함부로 아는 척 안하고 솔직히 말했잖아. 잘모르는 건 모른다. 지금도 그렇게 큰 일을 겪고도 넌 속상해해도 누굴 원망하지도 않고 대단한 일 아닌 것처럼 말하잖아. 그냥 시간이 지난 거라고 사실 그렇게 딱히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해쳐 나온 것도 아니라고 근데 탄소야. 사실 가끔은 그냥 그 시간을 지나왔다는 것 자체만으로 대단한 것 같아 나는. 네 말처럼 목숨이 오늘 내일 하는 사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누구나 자기가 겪는 고통이 제일 큰 거잖아. 다른 사람이 어떻든 나한테 힘든 시간이었다면 그 시간을 지나온 나를 대견스러워 해도 된대. 나도 누구한테 들은 말." 태형이 입에서 한마디,한마디 나올 때마다 되게 멍했다.김태형 입에서 예쁘다는 말이 나올 지 진짜 몰랐거든. 거울을 봐 지가 제일 예쁘게 생겼으면서. 멋지다는 말은 더더욱. 근데 진짜 오랜만에 타인의 입에서 나오는 내가, 나라는 사람이 진심으로 꽤 괜찮은 사람같아 보였던 거 알아? 진짜 그런가?하면서. 그동안 내 자신한테 실망하는 데만 익숙해 있었거든.여러가지 이유로. "근데 이렇게 더 예뻐졌을 줄 몰랐네. 나 고등학교 오면서 인천으로 이사와가지고 너 엄청 찾았는데 그 흔한 SNS하나 안하냐. 진짜. 핸드폰 번호도 바뀌고. 내가 얼마나 후회했는데. 차이기라도 할 껄." 야속하다는 네 표정이 꽤 진지해서 진짜로 얘가 나를 많이 좋아했구나 실감이 났어.아직도 신기하긴 하지만. "나도 너 좋아했어." 이렇게 만났는데 이 정돈 얘기해도 되겠지. 그 큰 눈이 더 커지는데 왜 내 입꼬리는 올라가지? 그리고 한참을 시덥지 않은 옛날얘기를 했어. 어느순간 내가 더 좋아했다.아니다 내가 더 좋아했다고 이야기가 흘러가서 나랑 같은 구역 맡으려고 우유당번 대신 한 얘기부터 시작해서 태형이의 절절한 짝사랑 경험담을 라이브로 듣고 있었다 무려 당사자갘ㅋㅋㅋㅋㅋㅋㄱ 그 때 생각이 나면서 막 풋풋하고 귀엽고 또 태형이 입에서 나오는 내가 너무 괜찮은 사람인거야. 막 신기하기도 하고. 급식먹던 우리가 마주앉아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게 웃기기도 하고 한참을 얘기하다가 어둑어둑해지고 지하철타고 집에 가는 시간도 있으니까 슬슬 일어날 시간이 된거야. 나 전철까지 바래다 주면서 자기 십이월에 입대한다고 그 전에 또 보자 하면서 연락처를 교환했어. 집에 가는 길에 지하철에 앉아서 생각했어. 태형이를 만난 것도 아직도 신기하고 둘이 했던 대화들도 곱씹으면서 결국 이런 결론이 났어. 그래.김탄소. 넌 원래 멋있는 사람이야. 그냥 지금까지 어려운 시간 잘 견뎌낸 것 만으로 잘한거야. 내가 나를 안믿으면 누가 믿어. 잘하기만 하는 사람이 어딨어. 좀 실패하고 서툴러도 괜찮아. *** 오늘 그 날로부터 딱 일년 지났어. 뭐가 달라졌냐구? 나 아직도 재수해. 그 날 이후로 수능까지 진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거든. 진짜 오랜만이다 이런 기분, 안 아팠을 때 조차 이정도였던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싶을 정도로. 그냥 좀 맹목적일 지라도 나를 좀 믿어보려고 했거든. 좀 더 괜찮은 사람이라고, 더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점수는 9월보다는 훨씬 나은 성적이긴 했지만 그동안 그렇게 놀았는데 어디가겠어? 그리고 이제서야 열심히 하기 시작했는데 아쉽기도 하고 그래 그 명문대 내가 진짜 간다.하면서 인서울이나 할까 했던 내가 패기롭게 재수를 선택했다. 뭐 아직도 몸은 하루아침에 씻은 듯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남들과 내 시계는,달력은 좀 더 늦어졌지만 작년과 크게 달라진 것 없지만 아니 스무살과 한살 더 먹은 스물 한 살 더 늦은 나쁜 상황이지만 그냥 불안한 지금도 깜깜한 지금도 나중에 뒤돌아보면 자랑스러워 할 수있는 내 역사가 하나 더 생기는 거라고 생각하려고. 아, 그리고 나 달라진 거 하나 있다. 예상했을 지도 모르지만 나 태형이랑 연애해. 고무신 신었어. 그래도 운 좋게 부대가 우리집에서 가까워서 이제 거의 주말마다 외박나온다. 어쩔땐 내 남친이 군대에 있는건지 아닌지 헷갈려. 어쨌든 어차피 난 공부하니까 잘된건지도 모르겠다. 어쨋든 이대로라면 내년에 꽃신까지 꼭 신을 예정이야. 내 손목에 있는 팔찌도 군대가기 전에 채워주고 간 거다. 찾으러 오겠다고. 제대하면 고백하겠다고 했는데 그냥 내가 확 끌어당겨서 도장찍어버렸다.ㅋㅋㅋㅋㅋㅋㅋㅋㄱㅋㅋㅋ무슨 정신이었는지 지금은 모르겠엌ㅋㅋㅋㅋㄱ나 첫뽀뽀였는데 내가 먼저 할 줄이얔ㅋㅋㅋㅋㅋㄱ그때 김태형 표정을 봤어야 하는데 멍하니 눈 깜빡깜빡하다가 씩 웃더니 다시 표정을 굳히고 내가 어떤 마음으로 한 말이 었는데 진짜 김탄소 미치게한다.하고 음 그렇게 첫키스까지 한큐에 해버렸다. 윽. 다시 생각해도 심쿵한다. 항상 웃던 애가 그 웃는 얼굴이 걷히고 나면 얼마나 섹시할 수 있는 지 그때 처음 알았다. 어쨋든 가끔은 나보다도 더 나를 믿어주는 태형이 덕분이 이번 터널은 조금 덜 외롭게 덜 힘들게 지나가고 있어. 나도 태형이한테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 항상 우리에겐 끝도 답도 없잖아. 삶은 계속 또 다음 문제를 제공할 테니까. 그래도 이번 터널이 끝나도 또 다음 그 다음 터널이 있겠지만 나를 믿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믿고 끝까지 견디다보면 결국 그 터널 사이사이에서 멋진 숲도 드넓은 하늘도 또 푸른 바다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안그래? 안녕하세요. 무밉니다. 오늘은 제가 뭘 써왔는지 모르겠네요. 하핳. 수능이 얼마 안 남기도 하고 뭐 그것 말고도 모두다 저마다의 힘듬을 지고 살아가고 계실 거라는 거 알아요. 그래서 뭔가 대신 시원하게 일탈도 좀 하고 위로도 조금 아는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쓰고 나니까 뭘 썼는지 모르겠다. 하핳. 사실 글을 쓰다보면 캐릭터들에 정도는 다르지만 조금씩 제가 묻어나오거든요. 내 생각이라던가 경험이라던가 성격이나 뭐 그런거. 근데 오늘은 좀 평소보다 많이 묻은 느낌이라 쪼오오끔 일기장 보여드리는 기분이고 그래요.하핳. 전부는 아니지만 곳곳에 여기저기 묻어있어서 흫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얘기가 좋을 것 같았지만 사실 잘 모르는데 아는 척 쓰는건 제가 능력이 안되서 하핳 그냥 최대한 아는 척하지 않고 쓰려고 했는데 잘 전달될 지 모르겠어요. 핳. 오늘 뭔가 애매하다.힣 태형이대사는 저도 실제로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인데 또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기도 해요. 아픔의 크기는 모두 상대적인 거니까 각자의 삶에서 모두 크고 작은 전투중인 우리는 지금 전력을 다해 싸웠든 후회가 있든 없든 일단 이만큼 버텨온 자신한테 박수쳐주는 시간도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신기하게 그러면 자책하고 실망하던 때보다 훨씬 잘 싸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거든요. 그리고 우리에게는 좋은 음악으로 응원과 위로를 던져주는 방탄이들도 있으니까요.아이고 자랑스러워라. 텁텁한 결말에 좀 답답하셨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너무 소설같은 해피엔딩은 오늘만은 좀 피하고 싶었어요. 그래도 태형이 번외는 꿀을 잔뜩발라 오겠습니다...! 돌 내려놓아요!ㅋㅋㅋㅋㅋㅋㄱㅋ 어쨋든 오늘 글은 특히 더 부끄럽지만 현생과 제 한계로 지금은 어쩌지 못할 걸 알기에 더 공백이 길어지기 전에 질끈 감고 던집니다. 맞고 안아프셨으면 좋겠네요 하하. 아 진짜 글잡에서 우리 독자님들께 과분한 애정받고 있는거 알아요! 이거 올리고 나면 댓글달러가야지!! 나의 낙인데 공지쓰고 멘붕와가지고 멍했지만 하핳. 공백이 길어지기 전에 얼른 쓰는게 더 좋을것 같아서 대댓을 미뤄두고 있었어요. 신난다 댓글읽어야지이이. 진짜 이사람들 눈앞에 있으면 한명씩 다 안아줄텐데. 예뻐죽겠어 진짜. 애정어린 말들에 진짜 너무 행복해집니다! 오늘은 암호닉 생략할게요! 왜냐면 댓글에서 한분한분 겁나게!!! 불러드릴꺼거든요 핳! 애정합니다! 부족한 글 항상 예뻐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고마워요! 그래서 지금 손목이 시큰한데 신나서 타자를 적고있어요! 그럼 댓글과 다음글에서 계속계속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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