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국가대표 연하남과 연애중
21 : 연하남의 조건上 : 관심
w.스노우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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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의 반이 넘는 시간 동안 못 보내는 게 정상인데 정상 아닌 정국이의 능력 덕분에 오랜만에 아니 처음이라고 해야 하나... 여튼 찬기가 남았음에도 따듯하다고 말할 수 있는 바람이 불어오는 길거리를 같이 걷고 있는 중이었다. 저번 달에 대회에서 1등을 했다고 하길래 전화기 너머로 내가 얼마나 축하하는지를 전하기 위해서 불이 나도록 물개박수를 쳤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는 또 달력을 보면서 들어오자마자 선발전을 준비할 게 눈에 뻔해서 날짜를 체크하고 걱정 반, 분명 봄인데 봄답지 보내지 못할 우리의 모습에 우울 반으로 잠에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진짜 하나도 몰랐다니"
"내가 운동선수도 아닌데 어떻게 알아-"
"내가 운동선수잖아"
"그래! 내가 대회 나간 것도 아니고!"
"내가 그 대회를 처음 나간 것도 아니고"
"대회가 한두개여야지 기억하지. 뭐만 하면 대회 나가고 그러고 또 대회 나가고-"
그때 다 끝난 줄 알았던 이야기를 반복하길래 이번에는 내가 꿍해져서 계속 먼 하늘을 바라보며 댓 발 튀어나온 입으로 열심히 중얼거렸다. 그러니깐 지금 모든 대화는 쇼트트랙에 대한 나의 무지함 때문이었다. 근 몇 주간 평소보다 정국이를 보는 일이 잦았는데 마냥 정국이와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에 좋아서 왜 지금 정국이가 여기있고 어떻게 있을 수 있는지는 물을 생각조차 못한 채 싱글벙글이었다가 무심코 본 핸드폰 화면에 '정국이 선발전 D-7'을 보고 옆에 있는 정국이를 번갈아 보며 눈을 게슴츠레 하게 떴었다. 그리고 달려가서 정국이의 등짝을 찰싹 때렸고 정국이가 선발전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어디서 구라를 까냐고 또 등짝을 내려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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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선발전 준비는?"
"이번에는 안 치러도 돼-"
이게 어디서 말도 안 되는 구라를. 선발전을 안 치르면 국가대표는 어떻게 선발되는 건데. 내가 아직도 믿지 못하는 눈으로 정국이를 쳐다보자 되려 정국이가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날 바라봤다.
"이거 진짜 너무하네"
"뭐가, 너 이렇게 챙겨주는 여자친구 있어?"
"나 무슨 대회 나갔다 온 지는 알지?"
갑작스러운 정국이의 질문에 눈알을 굴렸다. 대회를 그렇게 많이 나가는 데 어떻게 다 외우고 있어. 침묵이 길어질수록 정국이가 날 게슴츠레 바라봤고 난 궁지에 몰린 쥐마냥 입술을 뜯었다. 뭐였더라. 아 무슨 선... 선... 이였는데.
"선수권대회"
아. 아까워라. 선까지 맞췄는데. 아까운 마음에 미간을 찌푸리고서 다시 정국이를 보자마자 상황이 잘못 굴러가고 있음을 인지했다.
"대회 이름도 까먹고 몇 등 한지는 알지?"
"아, 당연하지! 1등, 1등, 1등!"
"거기서 1등 하면 다음 시즌 국가대표 자격을 줘"
신명나게 검지를 쭉 뻗은 뒤 열심히 1등을 외치자 정국이가 팔짱을 풀면서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설명해줬다. 아, 그런 거구나. 엄청난 사실을 깨달았음을 여실 없이 표정으로 드러냈다. 혼자서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 정국이를 다시 바라봤을 때에는 정국이의 얼굴에는 삐짐이라는 단어가 누가 몰래 크레파스로 써놓았는지 아주 선명하게, 모른 채 할 수 없을 정도로 내 눈에 읽혔다.
"아- 진짜 몰랐어... 이제 꼭 기억할게, 약속!"
"관심이 없어"
"뭐? 뭐가 없어? 관심이 없다고?"
지금 대회 이름 하나 모르고 알고를 애정의 척도로 둔거야? 말도 안 되는 기준에 그게 무슨 멍멍이 소리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지금 눈 앞에 다시 팔짱을 끼고 눈을 마주치지 않은 정국이가 먼저였다. 전쟁에 나가는 병사마냥 심호흡을 하고 일어서 다가가 먼저 저 멀리 허공에 던져진 정국이의 시선 먼저 잡아오기로 마음먹었다.
"자꾸 어딜 보는 거야"
"...시계"
"시간 확인했으면 나 봐"
드디어 그 시선이 움직이더니 날 보나 싶었는데 이제는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뭐지, 원래 이러면 넘어오는데. 마음은 초조한데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가만히 옆에 앉아 정국이의 옆모습만 하염없이 바라보다 너무 길어져 눈을 찌를듯한 앞머리에 눈길이 갔다. 좀 잘라야겠네. 나중에 눈을 떴을 때 찌를 까봐 손으로 살짝식 옆으로 넘겨주자 눈을 살며시 떴다.
"앞머리 너무 길다."
"저번 주부터 눈 찔렀어."
"내가 잘라줄까?"
손가락으로 가위질 흉내를 내자 정국이는 살풋 웃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럴까라고 장난스럽게 대답할 수 있음에도 아닌 건 아니라고 단호하게 의사표현을 해왔다. 뭐, 내가 생각해도 내 손한테 뭘 맡기는 건... 좀 아니지.
"알고 있었어?"
"응. 근데 그냥 기르고 싶어서 기르는 줄 알았어"
"불편해"
사실 저번 주부터 자꾸만 눈썹 한참 아래까지 내려오는 머리에 저러다가 눈까지 가릴 거 같아 한 번 자르라고 얘기하려다가 정국이가 어련히 알아서 할 것 같아 놔뒀는데 지금 하는 폼을 보니 그때 잘라야지 않겠냐고 한 번이라도 물어볼 걸 그랬네. 바닥을 보고 있는 시선이, 자꾸만 알고 있었냐고 물어보는 질문들의 형식이 영락없이 엄마한테 투정 부리는 아이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게 귀여워 팔을 뻗어 먼저 목을 감아버리자 기다렸다듯이 허리를 감아왔다.
"헬멧 벗고 나서 내려오니깐. 그래서 불편하지?"
"...응"
"잘 알지?"
"응"
"이런데도 관심이 없어?"
대답 대신 정국이는 내 어깨에 고개를 묻어왔다. 으이구.
"관심 진짜 많은데"
"대회는 왜 몰라..."
"그, 그거는 그냥.. 내 머리가 나쁜 거고"
"그거 1등 하려고-"
머리 나쁜 내가 죄인이지. 무념무상의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다 내 어깨에 묻고서 말하는 탓에 조금씩 먹히는 정국이의 소리를 듣기 위해 집중했다. 그리고 간신히 들은 정국이의 말은 의외였다. 정국이는 평소에는 새벽훈련했어, 체력훈련했어 그리고 대회를 나가면 오늘은 무슨 경기했어, 몇 등 했어, 안 다쳤어 최대한 간결하게 내게 소식을 전하곤 했다. 근데 정국이가 처음으로 결론만이 아닌 과정을 말하기 시작했다.
"야간 훈련도 꼬박꼬박 하고"
"응-"
"농땡이도 안 부리고"
"그랬어?"
웃음이 터져 나오기 일보 직전이었다. 진짜 널 어떡하면 좋을까? 도대체 나보다 어린 게 맞을까 싶다가도 이렇게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연하 남자친구라서 확 깨물어주고 싶었다. 지금 품에 안겨있는 게 할머니 집에서 보던 어린 백구 한 마리 같아서, 어제 마트에서 지나치며 봤던 엄마 손을 잡고 뾱뾱이 신발 소리를 내며 걸어가는 아이 같아서.
"그렇게 했는데 누나는 모르고"
"내가 잘못했네-"
"잘못은 아니고 그냥..."
잘못은 아니란다.
"힘들었겠네-"
"힘들진 않았어."
힘들지도 않았단다.
그러면 지금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딱 하나. 알아달라고. 본인 나름대로 필히 내게 어필하는 중이었다. 그러면 난 열심히 받아줘야지. 얼굴 좀 보고 얘기할까 싶어 팔에 힘을 풀고 잠시 떨어지자 정국이는 힘없이 뒤로 밀려났다. 아무 표정 없는 얼굴이, 그 나름대로 심장을 간질여와서 내 이마로 정국이의 이마를 살짝 쿵 쳤다. 영양가 없는 많은 말들로 시간을 버리기 싫어서 언젠가부터 생긴 우리의 신호. 그리고 최고의 관심의 표현으로 한 번 더 입에 쿵. 단번에 헤매던 시선은 날 향했고 꾹 닫고 있던 입은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
"진짜 뭐."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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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는 몰라도 좋다면서..."
아직도 먼 하늘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시야에는 정국이가 가득 찼다. 그리고 다가와서는 자신의 이마로 내 이마를 아프지 않게 쿵 쳤다. 그 모습을 보는 데 결국 바람 빠지듯 웃을 수 밖에 없었다. 항상 내가 정국이에게 하던 행동이었는데 내가 당하다니. 맞다, 내가 좀 바보 같았지. 평소라면 선발전 준비 때문에 바쁠 시기였을 텐데 선발전이 일주일이 남은 기간까지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또 기분이 좋다고 헤프게 웃었다.
"아, 평소보다 더 떨려"
"왜?"
왜라니. 지금 거의 친정식구급이나 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데 안 떨릴 사람이 어디 있어. 정국이가 선발전에 참가하지 않게 되면서 선발전에 안 가려다가 정국이가 자기는 지민이 오빠 경기하는 거 보러 갈 거라는 말에 생각을 바꾸고 지금 열심히 빙상장에 가는 중이었다. 어떻게 보면 나보다 정국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니 가족이나 다름없고 맨날 전화기 속 목소리로만 만날 수 있던 사람을 직접 본다는 사실에 여러모로 긴장이 되왔다. 전화기 속에서는 엄청 친절했는데 실제로 만나면 막 불량배 같고 그러면 어쩌지... 미움받으면 어쩌지...
"처음 뵙는 거잖아"
"티비로는 많이 봤으면서"
"그거랑 실제로 보는 거랑 같겠어"
"티비에서는 어떤데"
뭔가 경기할 때는 좀 차가워 보이다가 인터뷰나 토크쇼 보면 완전 순둥순둥해보이지. 당최 뭐가 본모습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전화기 너머에서는 장난스럽기도 대체적으로 친절하신데. 전화기 너머에서는 사기꾼도, 보이스피싱하는 인간들도 그렇게 친절하니 이것도 믿을 수 있겠나. 사서 걱정을 한다는 정국이의 말에도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지 못하고 만났을 때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 무슨 대화를 해야 할지 등등 온갖 끝을 맺지 못한 시뮬레이션만 머릿속에 가득한 채 빙상장에 도착해버렸다.
"나 그냥 관람석 가면 안 돼?"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으로 선수대기실까지 왔는데 더 이상 못 버틸 거 같아 급하게 정국이의 팔을 잡으며 일그린 것도 아닌 것이 핀 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됐단 말이야. 지금이라도 당장 증발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무슨 깡따구로 정국이한테 나도 보러 갈래! 이딴 상큼한 말을 했는지 과거의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제수씨?"
날 제수씨라고 부르는 단 한 사람. 정국이를 올려다본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보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웬일로 나와있어요?"
"그냥 몸 풀려고"
낯가림의 왕 정국이의 친근 돋는 말에 부정도 할 수 없는 그분이 내게 걸어오셨다. 어딘가 불편한 사람처럼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마치 날 정국이 대하듯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왔다. 그 여유로운 행동에 눈만 깜빡이며 빤히 바라보는 데 뭔가 티비 속에서만 보던 스타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오, 신기해.
"와, 드디어 제수씨를 보다니"
"저도! 저 완전 팬이에요!"
팬이라고 말하는 것만큼 운동선수들과의 대화를 트는 데 좋은 말이 없었다. 그리고 의례적인 말인 것을 아는지 장난스럽게 정국이를 콕 가리켰다. 저 오래 살고 싶은데. 그러게요, 저도 오늘부로 수명이 줄어들 거 같네요. 위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을 무시한 채 속으로 말을 삼켰다. 아직은 정국이를 따돌리며 농담을 칠 사이까지는 아니니.
"저번에 손 다치신 건 괜찮으세요?"
"완전 괜찮아요!"
"보다가 엄청 놀랐어요"
직접 손을 들어 보여준 뒤 밝게 웃었다. 이건 대화를 잇기 위함이 아니라 진짜 걱정했던 부분이라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말을 건넸다. 그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 다쳤다는 사실에 걱정이 되어 정국이에게 물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냥 시큰둥하게 별일 아니야라고만 하는 정국이에게 더 큰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때 표정이... 어후 다시 한 번 물었다가는 내 입을 꿰맬 기세였지...
"저 그만 가볼게요. 오늘 경기 있어서-"
"아, 네! 오늘 경기도 수고하세요!"
맞다, 항상 경기 전에 말도 안 하고 무슨 컨트롤한다고 했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선수대기실로 들어가시길래 괜찮다며 밝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하고서야 길게 숨을 뱉고서 긴장을 풀자 그제야 옆에 있던 정국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괜찮다고 했잖아. 그걸 아직도 걱정했어?"
"넌 안 괜찮은 게 없잖아."
자기 손에 상처가 나도 괜찮다고 할 게 누군데. 뒤늦게서야 관람석을 찾아 걸어가는 와중에도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을 때까지 투정 아닌 투정의 소리는 간간이 들려왔다.
"오늘 경기 뭐부터 시작이야?"
"몰라"
"그걸 왜 몰라"
"관심 없어"
"난 완전 보고 싶었는데"
"왜? 내가 하는 경기도 아니잖아"
"안 봐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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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DA!!! 스노우베리에여!!
오랜만에 이야기를 상,하로 쪼갰어요. 거의 한 화 안에 에피소드를 끝냈는데 역시 분량조절 fail^^
po연하남wer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여 ٩(๑°∀°๑)۶
저도 간혹 다시 읽어보면 연...여..ㅎ...ㅏ? 이래서...ㅎ..ㅎ..ㅎ 부족한 글솜씨를 탓해야겠죠? (제발 산으로 가지 말거라...plz)
글 중에 "... 언제는 몰라도 좋다면서..." 이 부분은 10화를 보시면 뽝! 느낌이 오실거에요^ㅁ^ 부농이 질문 중 하나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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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은 당분간 받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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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이런 시간에 글을 올리게 될 줄이야!!!
이왕 이렇게 올리게 되는 거 독자님들의 월요병을 잠시만이라도 잊게 해줄 수 있는 글이 됐으면 좋겠네요❤
오늘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๑❛ڡ❛๑
❤상탄소년단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