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트/현성] 평범하지만 특별한 이야기 01 |
가을 바람이 시리다. 늦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이 애매한 시기에 전학 온 그 녀석도 애매한 녀석이었다. 여느때와 같이 등교를 하고 자리에 앉아 눈물이 찔끔 나도록 하품을 하며 조례를 기다렸다. 맨 뒤에 앉은 데다 짝궁도 없는 나는 무기력하게 턱을 괴고 있을 뿐이었고 앞에 앉은 성열만이 나에게 웃으며 뭐라뭐라 말을 했지만 한귀로 듣고 넘겼다. 어젯 밤 늦게까지 게임을 하다 잔 탓이었다. 으레 이 시기의 남자아이들이 즐기는 게임을 하고 친구들과 별 의미없는 문자를 주고 받다 밤 늦게 잠들었다. 그렇게 잠들면 아침과 오전에 죽어나는, 그야말로 악순환의 연속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깰 생각은 없었다. 내 주위 아이들도 다 이런 생활 패턴을 가지고 살고 있으니까. 몇몇 녀석들을 빼고는. 평소보다 늦은 조례에 잠잘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생각에 짜증이나 미간을 한껏 찌푸렸다. 앞문이 열리고 담임선생님이 들어오며 뒤의 누군가에게 손짓을 한다. 들어오라는 표시같았다. 전학생인가, 하는 생각을 하고 턱을 괸채 창 밖을 보았다. 어느 새 단풍들이 지고있었다. 주위를 의식하지 않으니 나뭇잎에 곱게 물이 들었는 지, 단풍들이 하나 둘씩 떨어지는 지 깨닫는게 남들보다 늦다. 성열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나와 상관없는 주변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무심한 아이라고 했다. 딱히 틀린것 같지도 않아 그러려니 고개를 끄덕였었는 데 그 말이 지금 문득 떠오른다.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을 보니 어수룩해보이는 남자애가 수줍은 듯 귀를 붉게 물들이고 눈을 살짝 내리깐채 선생님 옆에 단정한 자세로 서있었다. 타고난 머리색인지 갈색빛을 띠는 머리에 하얀 피부가 썩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어쩐지 여우를 닮은 듯한 얼굴에 여우면 사람을 잘 홀리려나, 하고 실없는 생각을 했다. 저 남자애의 자리는 이미 정해져있다. 바로 내 옆. 짝수가 맞지 않아 반에서 누군가는 늘 혼자 앉아야했는데 난 옆에 누가 앉는 걸 별로 내켜하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내 스스로 자처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일년동안 혼자 앉겠다고 했던 것 같다. 선생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피웠었다. 결국엔 누군가 앉게 되는 구나, 하고 중얼거리니 앞자리에 앉은 성열이 키득대며 말했다. 이제 너의 아웃사이더 놀이도 끝이다 자식아. 장난 섞인 말에 그저 무표정으로 쳐다보니 머쓱했는지 나를 흘겨보더니 다시 몸을 돌려 앞을 본다. 아웃사이더 놀이는 무슨, 단지 누가 옆에서 거치적 거리는 걸 귀찮아하는 것 뿐이다. 그걸 아는 성열은 나와 10년 지기임에도 불구하고 내 짝이 되는 걸 포기했다. 사교성이 좋은 녀석이라 누구와도 금방 친해져서 나중에는 별 상관 없어보이기는 했지만. "안녕. 난 성규라고해. 김 성규. 앞으로 잘 지내보자." 딴 생각을 하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는 전학생이 인사를 하고 있었다. 김 성규. 왠지 얼굴과 잘 어울리는 이름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선생님은 예상대로 성규에게 내 옆자리를 가리켰다. 성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 흔한 발자국 소리 하나 없이 조용히 걸어서 내 옆까지 다다랐다. 성열을 포함한 10년지기 몇몇을 빼고는 친구를 만들지 않은 나는 이번에도 그럴거라고 생각하며 의자를 당겨 옆에 앉는 성규에게 그 어떤 시선도 주지않았다. 단지 잘 붙어있던 책상사이를 조금 떨어뜨렸다. 낯선 이가 옆에 앉는 것은 어쩐지 부담스러워서. "저기." 하고 나를 부른 김 성규를 나는 고개만 슬쩍 돌려 바라보았다. 뭐냐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자니 녀석은 당황한건지 입술을 한번 꾹 깨물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깨물고나니 붉게 달아오르는 입술이 신기해 계속 보고 있으려니 오물거리는 게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 바람에 성규가 무슨 말을 하는 지 못 들은 나는 녀석이 내 어깨를 툭, 하고 치고서야 제대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정말 여우 같이 생겨서 나도 모르게 풋, 하고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 바람에 성열이 눈을 크게 뜬 채 놀란 듯 나를 쳐다본건 비밀. "이름이 뭐야?" 김성규는 내 이름을 물어본 것이었다. 하긴, 전학와서는 짝궁과 친해지는게 제일 무난하다고들 하지. 만약 성규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거라면 난 녀석에게 미리 미안함을 느껴야했다. 나는 낯가림이 장난아니게 심할 뿐만 아니라 누가 내 일에 신경쓰는 걸 굉장히 귀찮아하니까. 그게 10년 지기들이 나를 방임하는 이유다. 나를 신경쓰고 있다는 게 느껴지면 난 금방 그 사람을 질려하는 안 좋은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왠만한 심각한 일 아니면 그 녀석들은 나의 일에 터치하지 않는다. 그게 내가 지금까지 녀석들과 관계를 유지한 수많은 이유 중 하나이다. "남 우현." 아침이라 낮게 잠긴 내 목소리가 나와 김 성규 사이를 맴도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나의 말에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고 짐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우려와는 달리 녀석도 남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는 타입인것같다. 한층 안심이 되어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그대로 책상 위에 엎드렸다. 이렇게 엎드려서 창을 통해 보는 하늘은 턱을 괴고 보는 하늘과는 또 다른 느낌이 들어 좋았다. 내가 습관적으로 하늘을 보고 즐기는 이유도 그것에 있었다. 늘 다른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와 다양한 색을 보여주니까. 그리고 그 녀석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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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사람은 상상력이 풍부해야한다는데 상상력이 풍부해지는 법 없나요?
더불어 어휘력 키우는 법도..
신알신, 암호닉 언제나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