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주웠습니다.
w.muscle king
그 이후로도 김남준과 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딱히 쓸 곳이 없는 주제로 대화를 했다. 사석에서만은 회사 이야기를 하지 말자는 우리의 암묵적인 룰 때문이었다. 김남준과 얘기를 나누면서 동시에 나는 정국이를 챙겨야 했다. 어린아이마냥 입에 묻히고 먹는 것부터 시작해, 종종 젓갈질을 잘못해 음식을 흘리기도 했으니까.
전정국은 평소보다 더 심하게 음식을 갖고 장난질을 쳐댔고, 나는 그 장난에 동조를 해주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귀여우니까, 딱 그 하나 때문이었다.
물론 김남준은 내가 계속 정국이를 챙기는 것을 보며 은근히 못마땅해 했지만 말이다.
"정국아. 왜 자꾸 묻히고 먹는 거야. 여기 묻었잖아."
"닦아줘."
"대봐."
정국이가 내게로 얼굴을 내밀었다. 나는 휴지를 들어 아마도 정국이가 일부러 묻혔을 소스를 살살, 아주 천천히 닦아주었다.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자, 계속 날 쳐다보고 있었는지 허공에서 눈이 맞닿았다.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걸까. 정국이는 그 이후로도 눈을 피하지 않고 올곧게 나만을 쳐다봤다. 나라고 피할 이유는 없었기에 휴지를 손에 꼭 말아쥐고선 정국이를 마주볼 뿐이었다. 잠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말이다.
정국이의 밤하늘 같이 까만 눈동자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는 착각이 들기 시작했다.
모든 사물은 물론이고, 김남준도 자연스레 이 공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사라져버렸다.
오롯이 전정국과, 나. 우리 둘뿐만 어두운 공간에 남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
너와 나 둘만.
문득 갑작스럽게 찾아온 고요함에 덮쳐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두려웠지만 전정국이 함께 있으니 괜찮을 것 같았다. 전정국과 함께면 그렇게 나쁠 것 같지는 않았다. 전정국의 입에서 시작해 코를 거쳐 눈까지 훑고 올라갔다.
휴지가 생명줄이라도 된 것처럼 꽉 부여잡고 있던 나는 전정국의 눈가를 매만지기 위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탄소씨."
"..아,"
"아무래도 오늘은 날이 아닌가 봐요."
김남준의 목소리에 의해 멱살이 잡혀 강제로 현실로 돌아오고 말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정국이를 밀어내며 휴지를 쥔 손을 다급하게 아래로 내렸다. 도가 지나쳤다. 자세를 바로 고치며 김남준을 힐끔 보자, 김남준은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지은 채였다.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운, 마치 남이 본다면 아무 일도 없었다고 착각할 만큼 평온한, 그런 표정이었다.
아.
위험하다.
김남준은 분명 지금 화가 나 있음이 틀림없었다. 참고 있는 거겠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더 이상은 안 된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잃어서는 안 됐기 때문에.
지금 이 상황에서 차분함을 잃고 허둥대는 것은 김남준 그에게 허점을 보이는 것일 테니 말이다. 김남준 그에게 있어서 상대방의 허점은 곧 자신의 공격대상이었다. 자신이 조금 더 우위에 올라설 수 있는 발판으로 생각하고 더 파고 들어가거나 더 드러내려 할 것이었다.
나는 다급하게, 그러나 여유롭게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탄소씨."
"네."
"너무 과하게 친절한 것은 보기 안 좋을 때도 있어요."
"......"
"친절함에서 끝났으면 좋겠어요."
"친절함의 범위는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요. "
"..그런가요."
"뭐든지 선에 맞추려 하다보면 그 본질이 흐려질 거란 것을 아시잖아요."
작게 웃으며 김남준을 쳐다봤다.
김남준 또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나 또한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람은 가면을 쓰면 쓸 수록 대담해지기 마련이었고, 자기 자신을 숨겨버리기 마련이었다. 김남준과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처음 만날 때부터 가면을 벗은 적이 없으니 말이다.
김남준은 마치 내 말을 다 수긍하는 척,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따라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전정국은 음식을 다 먹지도 않은 주제에 그냥 얼른 이 자리을 벗어나고 싶었던 건지 이미 몸을 반쯤 일으킨 상태였다.
"탄소씨 오늘은 이만 가야 할 것 같아요. 조금 늦었네요."
"그러게요. 다음에 또 저녁 먹어요."
"좋죠. 정국씨도 나중에 또 봬요."
정국이는 가볍게 그의 말을 무시했다.
김남준이 전정국을 만날 일도, 그렇다고 전정국이 김남준을 만날 일도 앞으론 절대 없을 거라고 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해야 했고 어떻게든 그렇게 만들어야 했다.
전정국이 집에 오자마자 한 일은 나를 껴안고 놔주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도 김남준의 험담을 보며 말이다.
"또 그 토 쏠리는 새끼랑 밥 먹을 거야?"
"중요한 사람이야."
"그럼 나는?"
"....."
"나는 안 중요해?"
"음.."
"나는 혼자 먹어?"
아니.
전정국이 혼자 저녁을 먹는 날을 없을 것이었다.
김남준과 저녁을 함께 하는 이유는 정말 밥을 먹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이야기를 나누고 명목상 친목을 쌓을 구실이 필요하기 때문이었으니까. 만약 밥을 먹는다 해도 오늘처럼 조금 먹고 일어날 뿐이지 정말 작정을 하고 저녁을 해치우고 오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왠지 지금은 전정국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싶지가 않았다. 이 좋은 구경을 놓칠 수는 없지.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기회주의자라고 말하며 삿대질을 해도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이 상황이 너무 재밌어 미치겠는데 무슨 낯짝으로 입을 열까.
"어쩌면 남준씨가 조금 더 중요할 수도 있고."
"......"
"어쩔 수 없잖아? 그렇다고 남준씨와 저녁을 평생 먹지 않을 수도 없는 거니까."
"김탄소."
"어차피 만날 그러는 것도 아닌데 네가 이해 좀,"
"난 혼자 싫어."
"이해 좀 해줘."
"난 이해 못 해. 아니, 안 해."
전정국의 눈빛이 순식간에 사나워졌다.
나는 다시 한 번 이해를 해달라 부탁하며 정국이의 볼을 약하게 그러쥐었다. 전정국의 표정이 조금 풀리는가 싶더니 곧바로 다시 얼굴을 굳히며 내 허리를 두 손으로 결박하고선 빠르게 밀어붙였다. 덕분에 나는 정국이가 미는대로 뒷걸음질을 쳐야 했다.
내 뒷걸음질은 내 방 침대에까지 도착하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전정국은 그대로 나를 밀어 내 위로 올라탔고, 나는 그저 웃음만 지으며 그런 정국이를 쳐다볼 뿐이었다.
웃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인 건지, 아니면 약이 올라서 그런 건지 전정국은 내 아랫입술을 꽤나 아프게 물고선 놔주지 않았다. 전정국의 양 볼을 그러쥐고서 잡아 끌어 그대로 입을 포개자, 기다렸다는 듯 두툼하고도 축축한 혀가 입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너무 말랑말랑하지도 않고 너무 딱딱하지도 않은, 딱 좋은 감촉이었다.
사실은 전정국이기 때문에 좋은 것이었지만 어쨌든. 그리고 곧, 전정국의 차가운 손이 옷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전정국의 손이 내 배를 지나쳐 언덕 위에 올랐을 때, 나는 꽤 급하게 전정국의 손을 부여 잡았다.
"안 돼."
"..싫어."
"나와."
"외로워.
오늘 하루종일 그랬어.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거, 난 알아.
지금 뿐 만이라고 해도 좋아. 좋으니까, 날 안아줘. 사랑해줘.
내가 널 느끼게 해줘."
애초에 내가 전정국을 이긴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전정국은 내가 무엇에 취약한지 알고 그것을 이용할 줄 알았으니까. 어쩌면 김남준보다 더 약은 것은 전정국일 지도 몰랐다.
나는 전정국의 말을 마지막으로 전정국과 눈을 마주하며 살갗에 닿아오는 차가운 손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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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10분간만 암호닉 받아요!
4화는 아침 9시 14분에 암호닉 마감했습니당..ㅠㅠ..
다음화에 이 글 암호닉 분들이랑
4화 AM 9시14분 내로 달아주신 암호닉 분들 같이 나타나실게요~!~!~!
아 그리고 제가.. 답글을 꼭 다 달려고 했는데..
넘나.. 넘나 많은 것...8ㅅ8... 죄송해요..ㅠㅠㅠㅠㅠㅠ...
저는 한 10개~15개 달릴 줄 알았는데 답글을 쓰는데 대ㅔㅅ글이 게속 달리더라구요..ㅠㅠㅠ..
진짜 죄송해요...ㅠㅠㅠㅠㅠ... 이렇게 댓글을 많이 달아주셔서 감사해요ㅠㅠㅠ..
왜 다들 천사세요..? 어쩐지 댓글창에서 빛이 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