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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앞에 주차되어있는 익숙한 검정 에쿠스에 석진은 그대로 발걸음을 멈추었다. 한동안 조용하다 싶었더니 금세 약이 다 떨어졌는지 또 그를 부른 모양이었다. 그는 자동차 번호판 언저리를 잠시 쳐다보다 이제는 익숙한 듯 뒤돌아서서 다른 길로 새었다.

 우울증. 약쟁이. 엄마.
 지금 이 세 단어를 제외하고는 그 어느 것도 석진의 머릿속에 들어찰 수 없었다. 그는 곧이어 떠오르는 필리핀 마약상의 거무튀튀한 얼굴에 침을 퉤 하고 뱉었다.

 엄마가 마약에 빠졌단 걸 알았을 때는 불과 중학교 3학년 적이었다. 험상궂게 생긴 남자들이 집을 오고가는 건 대충 눈치채고 있었지만 그저 빚쟁이겠거니 하는 생각이었지 그보다 더 심각한 일이라곤 짐작도 못 했다. 소량으로 시작했던 헤로인은 나날이 엄마를 피폐하게 만들었고, 우울증은 이제 그녀를 잡아먹을 만큼 커졌다. 약이 없는 날엔 온몸을 벌벌 떨며 토하기 일쑤였다.

 석진은 처음으로 그 광경을 목격했던 날 바닥을 질질 기어다니며 정맥에 스스로 약을 주사하던 엄마의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석진을 반 쯤 풀린 눈으로 비틀대며 응시하다 귀가 찢어질 듯 깔깔 웃고는 말했다.


 너. 소진이랑 바꾼 거야. 소진이 알지? 너 대신 땅에 파묻혀 죽은 니 쌍둥이 말야. 너 구하느라 그랬다구. 너가 죽인 거지.
 …….


 엄마의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석진은 그대로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사고 이후 몇년간 단 한번도 꺼낸 적 없던 그녀의 이름이었다. 너가 죽인 거라고 부르짖던 엄마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몇번이고 울렸다. 그만해. 그만해… 깨질듯 아파오는 머리에 석진은 아파트 현관 앞에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쪼그려 앉았다.

 

 

 

 


[방탄소년단/김석진] 라퓨타, 천공의 성 10 | 인스티즈

 

라퓨타
 천공의 성

 

 

 

 

 


 "이 새끼 또 안 왔네."


 혼잣말을 내뱉으며 그대로 내 앞자리에 앉는 김태형의 소리에 쭉 엎드려 있던 내가 살짝 몸을 일으켰다. 거기 김석진 자린데. 차마 말은 못 하고 그의 뒷모습만 물끄러미 보면서 생각했다. 시계는 벌써 8시 20분을 가리키고 있는 참이었다.

 김태형은 휴대폰을 잠시 만지작대더니 어디론가로 전화를 걸었다.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고 나서도 귀에서 조금 거리를 둘 뿐 열심이었다. 그는 몇번이고 재차 걸다가 포기했는지 그대로 제 가방을 내 옆 자리에 가져와 털썩 앉았다.


 "점심 때 잠깐 나갈래?"


 내 눈치를 보듯 나를 힐끔대던 김태형이 입을 떼었다. 앞에서는 조례가 한창이었기에 그의 목소리가 한껏 작았다.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김석진 백프로 무슨 일 있어. 얘네 집 한번 가보게."


 점심시간 내내 혼자 교실에 앉아있는 것보단 차라리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태형은 그런 날 보며 살풋 웃었다.


 "수학여행 통신문은 일단 지금 나눠줄 건데, 숙소 배정이나 버스 자리는 자습 때 알아서 정해라."


 선생님 입에서 숙소 배정이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어딘가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버스에선 그렇다쳐도 취침시간 내내 들어가있을 숙소는 여자애들과 무조건 붙어있어야할 것이었다. 나는 앞에서 건너온 통신문을 받아들고선 그 위로 시선을 떨구었다. 김태형도 대충 눈치 챘는지 한참 아무 말이 없었다.

 조례가 끝나고 바로 이어지는 자습시간에 애들이 활기를 되찾았는지 금세 교실 안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김석진이 있었으면 미간을 확 찌푸리며 신경질적으로 책상 위에 엎드렸을 게 뻔했다. 나는 반장이 칠판 위로 표를 슥슥 그어대는 걸 지켜보았다. 여기저기에서 반장을 부르며 저와 방을 같이 쓸 사람 이름을 줄줄이 읊는 게 들려왔다.


 "조용히 해 봐. 일단 여자애들은 큰 방 하나, 작은 방 두 개고 남자애들은 큰 방 하나, 작은 방 세 개니까 방장 맡을 사람 나와서 방 애들 이름 적어. 큰 방은 여덟명 꽉 채워야 돼."


 반장이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여자애들 여럿이 우르르 나가더니 빠르게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혼자 뒷자리에 앉아있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김태형에게도, 혹은 내 자신에게도.

 결국 인원이 다 차지 못 한 방이 하나 남게 되었다. 반장은 칠판 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내게 시선을 돌리고선 힘겹게 말을 꺼냈다. 분명 동정이 서려있는 표정이었다. 탄소야, 저 방 갈래? 나는 혹여라도 뒤에서 딴소리 들을까 애써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옆에서 그런 나를 지켜보는 김태형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나는 그의 눈을 마주할 수 없었다.

 티끌만큼 남아있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뭉개져버린 자존심. 창피를 넘어선 비참함. 일부러 입꼬리를 올리느라 너무 힘을 주고 있었는지 이제는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아마 김태형 눈에도 보이겠지. 그게 더 고통스러웠다. 나는 이대로 있다간 감정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 속으로 중얼대기 시작했다. 괜찮다고. 나는 정말 괜찮다고.


 점심시간이 올 때까지 김태형은 그 어떤 말도 건네지 않았다. 오히려 그래서 조금은 더 빨리 담담해질 수 있었던 걸지도 몰랐다. 그는 점심시간 종이 치자마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한 표정을 짓더니 내게 말했다.


 "가자. 너 출결 안 까이려면 서둘러야 돼."


 이따금 김태형이 이토록 나를 챙겨주는 이유가 뭘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어보면 소리내어 웃으며 늘상 하던 것처럼 김석진이랑 닮아서라고 대답하겠지만 그보다는 좀 더 확실한 이유가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앞서 복도로 향하는 김태형을 따라 교실 밖으로 나갔다.

 조끼 위에 마이까지 걸쳐 입었는데도 오늘은 왠지 모르게 조금 쌀쌀했다. 김태형은 교문과 정반대 방향인 운동장으로 향하면서 간간이 고개를 돌려 내 쪽을 살폈다. 아마 내 표정을 주시하는 듯 했다.


 "거기 말이야. 너 방."
 "……."
 "방민아 없고 성격 파탄난 애들 아무도 없으니까…"


 그는 한창 말하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잠시 말끝을 흐렸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은 안 할게."
 "…괜찮아요."
 "여기 담 넘을 수 있어? 교문은 선도부가 교대로 지키고 있어서."


 나를 배려해 말을 급하게 돌리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말 없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태형이 먼저 담을 넘고, 그가 밑에서 나를 붙잡아 줄 계획이었다. 치마가 불편하긴 했지만 그리 높은 것도 아니었기에 오르는 데에 힘들진 않았다. 나는 김태형의 어딜 붙잡아야 할지 몰라 머뭇대며 담 위에 잠시 걸터 앉았다. 그는 그런 나를 쳐다보며 살풋 웃더니만 프러포즈 자세처럼 한 쪽 무릎을 구부리고선 제 오른손을 내 앞에 내밀었다.


 "이래야 내려올래?"


 나는 당황스런 마음에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니요, 아니요. 혼자 내려갈게요. 그리고선 다리 하나를 땅 위로 쭉 뻗는 찰나에, 김태형이 내 손목을 그대로 움켜쥐고선 살짝 힘주어 잡아당겼다.


 "담도 진짜 못 넘네."
 "……."
 "5교시 늦으면 너가 담 느리게 넘어서인 거야. 오케?"


 대답없이 뾰루퉁한 표정으로 저를 쏘아보는 내 반응에 김태형이 소리내 웃으며 조그맣게 말했다. 그거 귀엽네.


 집은 학교와 가까운 편이었다. 김태형은 자주 와봤는지 아파트 현관 비밀번호를 막힘없이 누르고선 내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나는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 엘레베이터에 탔다.


 "나 얘네 집 도어락 비밀번호도 알아."
 "……."
 "알려줄까?"
 "아니요."


 김태형은 내 대답에 머쓱했는지 한번 헛기침을 내뱉었다. 꼭대기층이라 그런지 올라가는 데에 시간이 조금 걸렸다. 김태형은 그 사이 거울을 보며 머리를 몇번 정리하더니 거울로 반사된 나를 쳐다보다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렇게 보니까 김석진보다 예쁜 거 같기도 하네."


 갑작스런 칭찬에 뭐라 대답해야 될 지 몰라 내가 반응을 않자 김태형은 도로 제 머리를 살피는 척 하더니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어느덧 다 도착한 20층에 내렸다. 비밀번호까지 안다던 그는 그래도 지킬 예의는 있는지 초인종을 먼저 눌렀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사람이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요했다. 김태형이 갸우뚱하며 한번 더 누르자 그제서야 도어락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
 "…뭐야. 씨발."


 난데없이 들려온 욕은 분명 김태형이 내뱉은 것이었다. 계단 창문쪽을 구경하고 있던 나는 그 소리에 놀라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처음 보는 내 또래의 여자가 손잡이를 잡은 채 서있었다. 잘못 온 건가? 나는 말 없이 김태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반면에 그는 나와 달리 놀란 기색보다는 어딘가 화나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먼저 입을 뗀 건 여자 쪽이었다. 무슨 일이야? 분명 둘이 서로 아는 사이 같았다. 이유 모를 실망감이 자꾸만 벅차 올랐다. 결코 여동생처럼 보이진 않았으니까. 김태형은 그녀의 물음에 대꾸조차 않고선 큰 소리로 김석진을 불렀다.


 "야, 김석진. 너가 나와."
 "석진이 아파서 쉬고 있으니까 조용히…"
 "니가 여기있는데 쟤가 어떻게 쉬냐."


 김태형이 공격적으로 쏘아붙이자 여자는 내게 시선을 돌렸다. 살짝 놀란 눈치였다. 김석진이랑 닮았다고 생각하겠지.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혀로 입술을 축였다.


 "너 보러 온 거 아니니까 비켜."


 차게 식은 분위기와 맞지 않게 여자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문을 열어주었다. 손잡이를 잡은 손 반대편에는 흰 붕대가 손목 위까지 칭칭 감겨있었다. 그걸 보니 김남준이 전에 말해준 그 여자애 이야기가 불현듯 떠올랐다. 들어가도 되는 건지 갈팡질팡하던 나는 계단에서 혼자 앉아있을 생각으로 가만히 서있었지만 곧 김탄소. 하고 나를 부르는 김태형의 목소리에 나 역시 집 안으로 발을 옮겼다.

 집 내부 자체는 평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넓었지만 복도부터 거실까지 바닥은 온통 잡다한 물건들 투성이었다. 김석진은 거실 옆 방에 꼼짝도 못 한 채 누워있었다. 나는 방 앞에서 잠시 서성였다. 여자는 김태형이 먼저 방에 들어가는 걸 지켜보더니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와 내게 물었다.


 "동생?"


 나이를 알 수 없어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그저 고개를 절레 흔드는 걸로 대신했다. 그러자 여자의 표정이 티나도록 딱딱히 굳었다.


 "교복이 우리 학굔데."
 "……."
 "무슨 사이야? 같은 반?"


 나는 계속해서 침묵을 지키며 고개짓만 해댔다. 내가 어딘가 거슬린다는 눈치였다. 여자는 몸에 할퀸 자국이 많았다. 목 옆과 팔 위, 종아리 뒤쪽까지도.


 "석진이랑 친하겠네?"


 이번엔 아예 답을 안했다. 딱히 물어보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여자는 그런 나를 보면서 소리내 웃더니만 말을 이었다.


 "난 여자친구야. 석진이 여자친구."


 김석진이 자기 옆을 떠난다 싶으면 그걸로 불러 내는 거야. 걔는 그렇게 하면 올 놈이라는 걸 아니까.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짓는 태연한 표정과 사실인마냥 뱉어대는 거짓에 뻔뻔하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갑자기 밀려오는 화에 말 없이 그녀를 제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벌컥 여는 소리에 깼는지 김석진이 침대에 누운 채 감고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나는 그와 눈을 마주하고선 웃었다. 억지로 웃었다. 그가 처음으로 너무 불쌍해보여서, 슬프게 웃었다.

 


 

 

 

 

 

 

 

라퓨타가 어느덧 10화 !!! 가 넘었습니다 :)

항상 봐주시는 독자분들 감사드려요 ♡♥

힘내서 칼업뎃 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용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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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132.115
와 ㅠㅠㅠ 하루만에 올라오다니 진짜 행복해요ㅠㅠㅠㅠㅠ 그나저나 쌍둥이...???? 제가 생각하는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면 진짜 충격일거 같아요.... 오늘도 작가님 글솜씨에 감탄하구 갑니다
7년 전
독자1
으아아 헐 대박.이네여,! 오늘도 쪼르르 신알신 쪽지 받고 왔습니다! 뭔가 긴장감 넘치는 작가님의 분위기 너무 좋슺니다.. 석진이는 아프지말구! 태형이가 잠깐 심장 폭행을 했지만 괜찮아요 (뭐래) 오늘도 잘 읽구 갑니다♥
7년 전
독자2
와대박....석진아 행복해져 ㅠㅠㅠㅠㅠㅠㅠ넘 맴찢이자나ㅠㅠㅠㅠㅠㅠ
7년 전
비회원113.89
와 진짜 미쳤습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점점 갈수록 석진이 너무 안타까워요ㅠㅠㅠㅠㅠㅠㅠ 마음 아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전 오늘도 작가님의 필력이랑 이 글 분위기에 취저 당하고 갑니다.. 전에 경희로 암호닉 신청했었는데 뭐 혹시나 적어봅니다.. 아 몰라요ㅠㅠㅠㅠ 오늘 또 정주행 해야겠어요ㅠㅠㅠㅠ 몇번을 다시 읽어도 진짜 너무 좋은 작품인것 같아요ㅠㅠ 작가님 오늘도 좋은하루되세요!!
7년 전
독자3
독방에서 추청받고 바로 정주행했습니다! 이리저리 죄책감에 시달리는 석진이가 너무 애잔하고ㅜㅜㅜ 여주도 너무 불쌍해요 이번 수학여행을 계기로 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네요 ㅠㅠㅠ
7년 전
독자4
허유ㅠㅠㅠㅠㅠ작가님 잘 보고 있어요!!!! 석진이 넘 안쓰럽구..ㅎ...ㅜㅠㅠ 여주도 젭할 찌통 벗어나라ㅠㅠㅠㅠㅠㅠㅠㅠ 신알신 신청햇서여♡!♡!♡! 울리면 바로 올게욥
7년 전
독자5
열렬 입니다! 세상에... 아 진짜 이번 화는 찌통 가득한 화인 것 같아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글 초반에 언급되었던 9살때 일이 혹시 사고로 인한 쌍둥이의 죽음이라던가.. 그런 건가요.... 석진이는 이런저런 아픔에 잡혀 살아가고 있네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안타깝고 탄소와 석진이, 둘이 서로가 서로의 구원자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네요 8ㅁ8 슬프게 웃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다음 화를 어서 봐야 되겠어요 ㅠㅜㅜㅜㅜㅜㅜㅜㅠㅠ 이번 화에서도! 감사합니다 ♥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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