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성규번외 마지막 |
너는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 네가 나를 기억할거라는 생각은 안했지만 그래도 사람이라는 게 간사하다보니 혹시라도 네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 까, 하는 생각을 종종했다. 하지만 역시나 너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고 오히려 나를 꺼려하는 듯했다. 너와 나의 마음의 거리는 벌어진 책상 간격보다 훨씬 컸다. 벌어진 책상은 가까워지기는 커녕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생활했지만 나는 누구보다 초조했고 긴장했으며 심란했다. 너는 모르겠지. 밤마다 네가 날 밀어내는 악몽과도 같은 꿈을 꾸는 나를. 하루는 네가 양호실에 쉬러 간 적이 있었다.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나 또한 양호실에서 쉰다는 핑계를 대고 침대에 누워 얌전히 자고있는 너를 옆에 앉아 바라보았다. 자고 있는 너는 그 누구보다도 평화롭고 편안한 표정인데 눈을 뜨면 그 안락함들이 다 사라진듯 귀찮음과 무심함, 그리고 그 속에 숨겨져있는 괴로움 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처음 본 너의 자는 모습에 한번 더 반했다, 너에게. 한참을 보고있었을까. 수업 시간이 끝나기 10분 전에 너는 문득 눈을 떴다. 잠에서 깬 너는 내가 왜 여기있는 지 궁금해했고 걱정되서 왔다고 하는 나의 말에 양호실에 오기전 나에게 했던 거친 언행이 마음에 걸렸는 지 너는 그러냐, 하고 대답했다. 그 말에 자신감을 얻은 나는 이제 좀 괜찮냐고 물었다. 이번에는 다시 귀찮아졌는 지 마이를 입으며 고개를 보일듯 말듯 끄덕이는 너였지만 그래도 좋았다. 어쨌든 나를 무시하지는 않으니까. 다시금 좋아진 기분에 슬며시 미소를 짓고 있으려니 내 어깨에 걸려오는 마이에 놀란듯 너를 보았다. 너는 쑥스러운듯 헛기침을 하더니 양호실 문 앞으로 가서 안가냐고 물었고 나는 그제서야 허둥지둥 너를 따라갔다. 원래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지만 옷을 무겁게 입고 다니는 것은 싫어해서 추워도 가디건 하나만 걸치고 다니는 게 일상이었는데 너는 그런 내가 추워보였나보다. 아니면 춥다고 징징대서 귀찮아질게 걱정되었거나. 뭐가 됐든 너는 나에게 마이를 벗어주었고 나는 그것이 너무 기뻤다. 교실에 도착해서도 마이를 달라는 말이 없기에 나는 불편을 감수하고 너의 마이를 꼭 덮고있었다. 키는 비슷한데 나보다 조금 더 넓은 어깨때문에 마이는 나에게 커서 종례를 할때까지 마이가 흘러내리지 않게 꼭 붙잡고있었다. 이게 네가 나에게 베푼 두번째 친절이었다. 종례가 끝나고 미리 챙겨둔 가방을 가지고 나가는 너때문에 나는 허겁지겁 짐을 싸서 네 뒤를 따라갔다. 이름을 불러서는 멈추지 않을 것 같아 너의 검은 가방을 잡았다. 그제서야 돌아보는 너에게 마이를 건네자 아, 하고 마이를 받았다. 마이를 받자마자 미련없이 등을 돌려가는 너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뒤늦게 허겁지겁 너를 따라갔다. 너와 내가 가는 길이 같아 조금은 놀란 듯한 너의 모습에 나는 애써 태연한 척 웃음을 감춰야했다. 이건 정말 내가 의도한 것도 아니었는데 마침 우리 집은 우연히 너의 옆집으로 이사를 왔다. 그 때 나는 너와 내가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네가 집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 또한 집에 들어왔다. 네가 오늘처럼만 나에게 해준다면 나는 더 이상 바랄게 없을 것만 같은데. 비겁하게도 나는 내심 너에게 조금 더 많은 것을 바라고 있었다. 아마도 그런 추잡한 생각을 한 벌일지도 모르겠다. 네가 나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이. 너무 괴롭지만 괴롭다고 표현하지 못하는 이 상황은 너를 욕심 낸 나에게 하늘이 내리는 벌일까. 만약 정말 그래서 이 벌을 다 받은 후 네가 나를 좋아하게된다면 나는 타르타로스와도 같은 이 상황을 얼마든지 견딜 수 있는데. 오늘도 나는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최대한 너를 배려하기로했다. 밥 먹을 친구도 없어서 매점에 들러 좋아하지도 않는 빵을 먹고 체할까봐 소화제를 먹는 나를 네가 알아줬으면 하는 것은 무리일까. 점심시간의 절반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다시 교실로 갔다. 양치질도 양치질이었지만 네가 뭘하고 있을 지 너무 궁금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자고있다면 교실 문 여는 소리가 방해가 될까 소리없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있는 너와 너의 친구들이었다. 나에 대한 이야기같아서 숨죽여 듣기만 했다. 아마 너의 친구들은 나를 더 이상 무시하지 말라고 너를 설득하는 것 같았고, 너는 그 설득을 내켜하지 않는 듯 보였다. 네가 왜 갑자기 나를 무시하는 지 이유를 몰랐기에 알고 싶은 마음에 가만히 듣기만 했다. 성열의 입에서 나온 강박증이라는 말이 나를 놀라게했고, 성열의 말을 들은 네가 한 말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네가 그렇게 길게 이야기하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무엇보다 나에게 더 큰 충격을 준것은 나에 대한 너의 평가와도 같은 말이었다. "친구? 누가 친구야. 김성규가 언제부터 내 친구였는데. 너네 마음에 든건 나도 어쩔 수 없어서 놔두는데 너희들이 마음에 든다고 나한테까지 그 녀석하고 친해지는 걸 강요하는 건 아니지 않냐? 너네는 알잖아. 내가 내 생활 흐트러지는 거 얼마나 질색하고 싫어하는 지. 그런데 김성규는 다 흐트러지게했어. 너희들도 안하는 짓을 그녀석이 했다고. 이게 지금 말이 되냐? 10년 지기인 너네들이 안하고, 못하는 걸 걔는 하루만에 했어. 나는 그걸 받아들일 수 없는거야. 난 친구로 너네들이면 돼. 난 너희들만 있으면 된다고. 더 이상은 필요없어." 너의 말이 내 가슴에 비수가 되어 날아와 꽂혔다. 네가 나를 내켜하지 않는 것은 충분히 알고있었지만 친구로 받아들이기 싫을 만큼 꺼려하는 지는 몰랐다. 그 뼈 아픈 충격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려고했고, 나는 애써 눈물을 참으려 두 주먹을 피가 통하지 않도록 쥐었지만 소용없었다. 너는 이야기를 끝내고 너의 친구들과 편안한 미소를 나눈 뒤 문득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너의 눈은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여지 없이 커졌고 나는 참을 수 없는 슬픔과 괴로움, 안타까움에 못 박힌 듯 서있던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달릴 수 밖에 없었다. 어디로 향하는 지는 중요하지않았다. 네가 나를 싫어한다는 것이 중요한거지. 나는 이제야 알았다. 네가 나에게 얼마나 큰 존재였고 존재인지.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입히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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