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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겠다. 내 자신을. - 자리를 박차고 뛰어가는 김성규를 따라 뛰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성열과 동우의 당황 섞인 목소리에 멈출 상황이 아니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디론가 뛰어가는 녀석을 따라 뛰면서도 머릿 속은 온통 걱정으로 가득 찼다. 울먹이던 녀석의 모습, 주먹을 꼭 쥐고 애처롭게 나를 보던 모습, 내 마이를 건넸을 때 당황하면서도 기뻐하던 표정, 매일 아침 웃으며 인사하던 녀석의 길쭉한 손. 그 모든 것들이 스쳐지나가면서 그제서야 내가 저지른 일이 꽤나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김성규가 멈춘곳은 학교 뒷뜰의 구석진 곳이었다. 꽤 어둡고 습기 가득한 축축한 곳이라 다른 학생들은 오기를 꺼려하지만 소위 일진들이 즐겨찾는 다는 그 곳. 다행이 오늘은 식후땡이라고 칭하며 담배를 태우러 온 놈들이 없어 보였다. 그곳에 멈춰선 녀석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는데 어깨가 가늘게 떨리는 것으로 보아 계속 울고있는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 녀석의 오른 어깨에 손을 올리니 팍, 하고 뿌리치는 게 내가 잘못을 해도 엄청난 잘못을 했다는 걸 알았다. 그런 말은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했어야하는건데. 녀석은 한참을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도 없이 울었다. 나는 그 때 소리없이 우는 데도 분위기만으로 옆사람까지 슬프게 만드는 게 더 안타까워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그 정도로 김성규는 내 입장에서 봤을 때 굉장히 슬퍼보였다. 점심시간이 끝난지는 오래고 6교시 수업시간이 끝날 무렵 김성규는 겨우 눈물을 그친듯 양 손으로 거칠게 눈을 비비며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하면 눈 더 아프고 빨갛게 부을 텐데. 하고 조금은 걱정되는 속마음과는 달리 겉으로는 그저 무표정으로 볼 수 밖에 없었다.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는 김성규의 눈에는 애처로움과 슬픔, 좌절, 절망의 감정들이 뒤섞여있었다. 내가 한 말이 상처가 되는 말인것은 알았지만 김성규의 눈에 가득한 복잡한 감정들에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나, 하고 고민이 됐다. 그저 김성규는 친구로서의 나를 잃었기때문에 이러는 것일까, 아니면 나에게 다른 뜻이 있는 걸까. 내 마음을 뒤숭숭하게 해놓고 김성규는 나를 한동안 빤히 바라보더니 그대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도 그 뒤를 따라갔어야하지만 왜인지 심란해져 그 자리에 못 박힌듯 서서 김성규의 눈물자욱들이 가득한 시멘트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 결국 종례할 시간이 되서야 나는 교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난생 처음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추스릴 시간이 필요했던거다. 김성규가 우는 모습이 잔상으로 남아 내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하기도 했고. 담임선생님이 들어오기 직전에 조심히 들어온 나를 성열이는 어디갔다 왔냐며 꾸짖었다. 그 순간 문득 떠올랐다. 혹시 성열이라면 나도 알지 못하는 내 감정이 뭔지 알려줄 수도 있겠구나하고. 그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성열에게 오늘 종례 끝나고 둘이 이야기 좀 하자고했고 성열도 나름 심각한 내 분위기를 눈치챘는 지 신나게 놀리던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담임선생님이 들어오고 종례를 하면서 돌아본 교실 안에는 김성규가 없었다. 어디갔나싶어 성열에게 물어보니 들어오자마자 조퇴를 했다고 한다. 조퇴할만하다. 그렇게 울었으니 몸도 마음도 지쳤겠지. 혹시라도 아프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뒤로 하고 김성규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계속 생각하다가는 끝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갈 김성규에 대한 생각이 두려워지는 이유가 될까.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그랬다 김성규는. 전학 온 첫날부터 신경쓰이게 만들었고 눈에 띄었고 걱정하게 만들었다. 내가 왜 그 녀석에 대한 생각을 하는지 이유도 모른채 그저 생각하게만 만들었다. 종례가 끝나고 학교 주변의 눈에 띄지 않는 카페에 들어가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성열이는 내가 할 말이 무척이나 궁금해보였지만 주문한 음료수가 나올 때까지 묻지 않는 것을 보니 내가 스스로 말할때까지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런 성열이의 태도에 고마워하며 여러 문장들이 한데 섞여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시켜나갔다. 어떤 이야기부터 꺼내야 성열이가 내 감정에 대해 정의내려 줄 수 있을까. 한참동안 생각을 정리한 나는 굳은 결심을 하고 성열이에게 하나, 둘씩 그 생각들을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김성규가 신경쓰여. 걱정되고 짜증이나. 그 녀석이 내 생활 속에 들어온게 짜증나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근데 우는 모습을 보니까 안쓰럽고 안울었으면 좋겠고 안절부절 못하겠어. 김성규가 나한테만 친절했으면 좋겠어. 나 말고 다른 사람이 건드리는게 싫어. 김성규가 내 앞에서 말하면 그 녀석 입술밖에 안보여. 가끔씩 동글동글한 머리를 쓰다듬어보고 싶어. 웃으면 휘어지는 눈이 나만 봤으면 좋겠어. 근데 이 모든 감정들이 뭔지 모르겠어. 넌 알아?" 내 말에 성열이는 벙찐듯 보였다. 내가 김성규에 대한 이야기를 할 줄 몰랐다는 표정이어서 괜히 속으로 주눅들어버렸다. 말하지말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와 고개를 푹 숙이고 애꿎은 스트로우만 이로 잘근잘근 씹었다. 긴장되고 불안하다는 증거였다. 내가 이렇게 초조할때가 있구나 싶었다. 꽤 오랫동안 말없이 있던 성열이는 정말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내 감정에 대해 알아차린건가싶어 얼른 고개를 들어 성열이를 쳐다보았다. 성열이는 뭐가 웃긴건지 눈꼬리에 눈물이 맺히도록 웃었다.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성열이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네 감정이 진짜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 그 말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었으니까. 심지어 김성규에 대한 감정때문에 짜증이 날 지경이다. 빨리 내 감정이 뭔지 알아서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고 싶은 데 그럴 수가 없으니 답답하고 짜증날 수 밖에. 대답을 원하는 눈으로 성열이를 빤히 보고있으려니 성열이가 웃으며 말했다. "넌 김성규를 좋아하는 거야. 남우현이 김성규를 친구가 아닌 이성으로서 좋아한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던 엉키고 꼬인 것들이 지워지고 단 하나만이 남았다. 남우현은 김성규를 좋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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