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바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02
지금이 몇시래 …. 깨질것처럼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고는 시끄럽게 울고 있는 알람을 껐다. 어제 대체 술을 얼마나 마신거지. 침대에 멍하니 앉아서는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곧 어제의 일들이 하나 둘씩 희미하게 떠오르기 시작한다. 어제 … … 김태형한테 뭐라고 했었는데. 생각이 날 것만도 같은데 … ! 한참을 생각하던 나는 곧 김태형에게 온 카톡을 확인하고는 핸드폰을 던져버리고 말았다.
「 잘잤어? 우리 오늘 일일인가? 」 -김ㅌHㅌH
뭐야. 뭐야, 뭐냐구! 경악스러운 김태형의 문자 내용에 몸을 바르르 떨고있는데 곧 어제의 일들이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 너…."
" 뭐."
" 너 어때?"
" 뭐가?"
" 너 어떻냐고, 내 맞바람 상대로."
미쳤구나. 미쳤네. 하하, 그런게 아니면 이런 미친 제안을 할리가 없지. 11년 동안 볼거 못볼거 다 보고 진짜 마음 속 깊이 부르리알 친구라고 인식되어있는데. 아무리 술을 먹었다고해도 너무 홧김이었다. 그래, 그냥 장난이었다고 하자.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핸드폰을 열어 ' 농담을 왜 다큐로 받냐 짜식아!' 라고 쓰고 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또 전화가 온다.
" 모시모시…? "
' 야, 일어났지?'
" … …어."
' 지금 어제 일 취소할까 생각중이지?'
" 귀신 같은 새끼."
' 취소하지마. 내가 도와줄게.'
" 뭘 도와줘? "
' 니 남자친구 질투 유발도 해주고 다 도와줄게. 너만 질투하고 그런거 좀 억울하잖아, 그치?'
" … …."
' 일단 씻고 호석이네 카페로 와. 끊는다.'
지 말만 하고 끊는 싸가지 보소. 김태형인데 그냥 후드집업이나 입고 나가야겠다ㅡ 라고 생각하던 나는 곧 거울 속에 비친 거지 금붕어 같은 모습에 한숨을 푹 쉬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제발 어떤 위대하신 분이 술 먹고 자도 얼굴이 붓지 않는 그런 것 좀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이게 사람이야, 루주라야. 그렇게 움직여지지 않는 발걸음을 힘들게 옮겨 씻고 나오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김태형, 카페로 나오라더니, 또 재촉하러 오셨구만. 성격 급한건 하여튼간 알아줘야해.
" 호석이네 카페로 오라며! 재촉 좀 하지ㅁ…."
" 얼굴 부은 것 봐, 귀여워. 누구 만나기로 했어?"
" 뭐야, 연락도 안하고 오는게 어디있어! 화장도 안했는데."
" 어제 데리러 오라고 했잖아. 위치도 안알려주고. 그래서 지금이라도 보러왔지."
맙소사. 박지민이잖아. 화장도 안하고 옷도 대충 입었는데. 천연덕스럽게 말하며 내 볼을 꼬집던 지민이는 '아직 날씨 추운데 안들여보내줄거야?' 라고 너스레 애교를 떨어버린다. 이런거에 내가 맨날 넘어가는거 알고 이러지. 못됐어, 진짜.
" 들어와."
" 방금 머리 감았지? 집에서 샴푸 냄새 난다."
" 쓸데없이 섬세해."
" 좋다는 뜻이야. 집에서 좋은 향 난다구."
또 그 예쁜 눈을 귀엽게 접으며 미소를 짓는 모습에 또 심장이 떨어질뻔했다. 얜 대체 뭘 먹고 이렇게 귀엽지. 또 그윽하게 쳐다볼땐 더럽게 섹시하고. 여자가 많지 않은게 이상할 수준이긴 하다. 그런게 왠지 얄미워서 째려보자, 지민이는 침대에 누워서 자기 옆자리를 팡팡 치며 이리와ㅡ 라고 나지막히 날 부른다. 이것 봐. 이럴땐 또 온몸이 섹시한 세포로 가득찼다구. 미치게 하네, 진짜.
" 오늘은 안돼. 나 30분 안에 나가야한단말야."
" 누구 만나는데?"
" … … 에."
" 어제 나랑 전화한 사람?"
화내려나? 화내겠지, 그래도 남자친구니까. 어제 일은 미안하다고 사과하려고 말을 꺼내려하는데 그런 나를 비웃는 것처럼 박지민은 아무렇지않은 표정으로 입을 연다.
" 잘만나구와."
" 어? "
" 곧 나가야한다며. 아쉽지만 오늘은 이만 가야지, 뭐."
" 에? "
" 이따가 다 만나면 연락해! 그때 나 시간 봐서 만날 수 있으면 다시 봐야지, 뭐."
" 화 안내? "
" 왜 화내야하는데? "
" 아니, 어제 내가 남자랑 늦게까지 술먹기도 했구 …. 걔가 막 말도 오해할 수 있게 했고 …."
" …뭐, 너가 안그럴거란걸 알고있으니까? "
* * *
" 아니, 씻고 오라고 했더니, 물을 만들어서 씻고 왔냐? 뭔 한시간이 넘게 걸려. 화장도 안했으면서."
" 아오! 그만 좀 쨍알대봐. 이 누나 생각 좀 해야하니까."
" 뭘 생각해? 나랑 연애하는거?"
" 연애라고 하지마, 징그럽잖아!"
징그럽다니, 말이 심하네. 라며 나를 흘깃흘깃 노려보는 김태형을 가볍게 무시하고는 생각에 골똘히 잠겼다. 원래 김태형을 만나면 그냥 없던 일로 하자고 말하려고 했는데, 아까 박지민의 말이 이 김탄소의 자존심의 스크래치를 냈다고나 할까? 아, 물론 다른 연인들이라면 '니가 안그럴걸 안다.'라는 말이 믿는다는 그런 달콤한 말로 들릴 수도 있는데, 나는 왠지 '너가 나 말고 다른 남자를 만날 수 있을리가." 라는 뜻으로 들리더라.
" 야, 근데 맞바람을 피우자는게 진짜 그러자는게 아니라, 그니까 그런 흉내만 내자는거니까."
" 지내는건 계속 이렇게 지내자구?"
" 응."
" 지내는건 당연히 그대로지. 지금처럼 자주 만나고."
" … 근데 니가 무슨 바람이 들어서 날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도와줘?"
" 너 걔 때문에 우는거 싫어서."
오, 뭐야. 감동이야. 히죽히죽 웃으며 김태형의 팔을 툭툭 쳤다. 김태형은 아, 뭐! 하며 턱을 괴고는 레몬에이드를 쭉 들이킨다. 그런 김태형을 바라보다가 헛웃음이 나와버렸다. 얜 초딩때부터 늘 레몬에이드야. 그땐 나보다 키도 좀 더 작았고, 맨날 시비 걸어서 진짜 늘 싸우고 울고 그랬는데.
" 언제 이렇게 징그럽게 컸냐."
" 뭐래, 갑자기."
" 너 초딩때도 맨날 레몬에이드 먹고, 집에서 레몬에이드 만드는 게임하고 그랬잖아. 그때는 니 나보다 훨씬 작고 좀 귀여웠는데."
" 넌 지금이 더 귀여워."
" …예?"
" 어? 아니, 어. 초딩 때 너 졸업사진 가서 봐. 그 때 너 얼굴로 짱먹었잖냐."
" … …."
" 못생김으로."
와, 그런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시비 걸려고 그런 칭찬을 한거야? 어이가 없어서 인상을 찌푸리고는 김태형을 바라보자, 김태형도 민망한지 큼큼, 하고 헛기침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코트를 챙겨입더니 내 손을 잡고 일으켜준다. 어디 가는거지. 김태형을 붙잡고 일어나서 이제 손을 놓으려고 하는데, 김태형 이게 진짜 오늘 어디가 아픈지 또 손을 안놔준다. 징그럽게 손을 잡고 있어, 왜. 그런 김태형에게 이제 손을 놓으라는 눈짓을 계속 했지만, 김태형은 도무지 놓아줄 생각이 없어보인다.
" 뭐하냐."
" 뭐가?"
" 놔, 새꺄."
" 야, 그래도 오늘 일일인데 손은 잡아줘라."
" 뭔 징그러운 소리래? 지내는건 원래처럼 지내자며!"
" … …어, 아 오늘 손시려. 내가 너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그냥 잡어."
꽉 잡은 내 손을 놓지않는 김태형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얘 오늘 진짜 약먹었나보다. 정신이 아픈 것 같으니 이해해주자 …. 그렇게 호석이네 카페에서 나오면서 호석이에게 눈인사를 하는데 쟨 왜 또 저렇게 흐뭇하게 보고 있대. 왠진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엄마와 같은 미소를 보여주고 있는 호석이를 뒤로 하고는 카페에서 나왔다.
" 근데 너 어디가? "
" 글쎄, 영화나 볼래? "
그러시던지. 그렇게 손을 놔주지않는 김태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손을 잡고는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 누가 보면 진짜 커플인 줄 알겠네. 좀 전까지도 자존심 때문에 진짜 맞바람 피워본다. 라고 생각했는데, 그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온데간데 없어지고, 어느새 내 속엔 다른 남자의 손을 잡은 채 걷고 있다는 죄책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29아이덴태태, 저거 보자."
" 아, 저건 안돼. 나 저거 지민이랑 보기로 했단말야."
" … … 나랑봐! 이미 예매했으니까."
" 뭔소리래. 우리 지금 영화관 왔거든요?"
" 아까 호석이네 카페에서 폰으로 예매했어."
" 뭐야, 니 맘대로 그러는게 어디있어. 진짜 뒤질래?"
" 아아. 안들립니다. 저랑 보고 또 보시던지, 아니면 그 분과 다른 영화를 보시던지 하세요."
" 와 ….진짜 패주고싶다. 야, 이 정도 잡아줬으면 이제 손 놔."
" 아아, 그것도 싫습니다."
겁나 막무가내네. 진짜 머리를 한 대 쾅 치고 싶은 마음이 울긋불긋 올라와서 실행에 옮길까 말까를 심히 고민하고 있는데 저 멀리 박지민의 얼굴이 보인다. 쟨 왜 또 여기 있어. 당황해서 김태형 손을 뿌리치려고 하는데, 지민이의 옆으로 처음 보는 예쁘장한 여자가 함께 서있다. 순간 손에 힘이 풀려 차마 손을 뿌리치지못하고 멍하니 그 둘을 바라보고 있자, 곧 커다란 손이 내 시야를 가린다.
" 손 잡고 있어. 나랑 쟤네 지나쳐가는거야. 알겠지?"
" … …."
" 걱정하지마. 지금 니 옆에 있는 남자 이 영화관에서 제일 잘생겼어."
이 상황에 농담이 나오냐. 얜 늘 이랬다. 늘 이래서 옆에 있다는 것 자체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 살짝 웃자, 김태형은 준비 됐지? 라며 시야를 가리던 그 큰 손을 내리고는 잡은 내 손에 힘을 꽉 준 채 지민이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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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댓글 달아주신 분들 모두 재밌게 읽어주셨다고 말씀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__)!
흐헤, 감사하게도 암호닉 신청해주신 분들이 많으셔서 검색도 해보고 해서 어느정도 공부해왔어요!
다음화 가져올 때 암호닉 같이 올릴게요! 다들 암호닉 신청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ㅠㅠ).
다들 개강, 개학하셔서 이제 월요병이 시작되겠군요..흑흑, 모두 화이팅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