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소꿉친구 민윤기를 기록하는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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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가 다쳤다. 전부 내 잘못이다. 나는 그날 절대 밖에 나갔으면 안 됐다. 내가 다 잘못했다. 항상 그렇듯이 윤기랑 집에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정말 평소처럼 윤기한테 장난을 치는데, 윤기가 약간 화났는지 내게 싸한 반응을 보였다. 전에도 했던 장난이었다. 윤기의 배를 아프지 않게 살짝 쳤는데, 내게 정색을 해버렸다. 덕분에 민망해진 나는 윤기에게 욕을 뱉었고, 집을 나와버렸다. 서로 감정이 상했기에 윤기가 안 나올 줄 알았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데, 차가 오는 줄 몰랐다. 사람이 핀트가 나가면 옆이 안 보인다는 말이 이해됐다. 달리는 승용차에 몸을 부딪힐뻔했는데, 윤기가 나를 세게 밀어버렸다. 그때까지도 나는 그 사람이 윤기인 줄 몰랐다. 피가 흐르는 탓에 차에서 사람이 내렸고, 곧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그들을 밀치고 다가가는데 윤기였다. 차가운 바닥에 누워서 피를 흘리는 사람은 민윤기, 내 친구였다. "윤기야, 민윤기 일어나... 윤기야?" 내 말에 윤기는 희미하게 눈을 떴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힘든지 거친 숨을 쉬었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급히 응급차가 도착했다. 윤기를 태웠고, 나도 그 차에 함께 탔다. 안 그래도 흰 피부인 윤기는 더욱 창백해졌고, 윤기의 입에는 산소마스크가 올려졌다. 정신을 잃으면 안 된다는 구급대원들의 말에 계속해서 윤기에게 말을 걸었다. "윤기야, 아까 욕한 거 미안해. 나 그거 다 진심 아니야. 알지? 그냥 한 말이었어. 내가 다 잘못했어, 윤기야. 윤기야 제발 나랑 같이 오래오래 살자." 내 말에 윤기는 대답도 못하고 그저 약하게 잡은 손에 힘을 실었다. "너 나 놓고 가면 엄청 잘생긴 오빠랑 연애도 하고, 너랑 가려고 했던 대구도 갈 거야. 질투 나지, 민윤기? 그러니깐 얼른 일어나서 나한테 꿀밤도 놔주고 그래라. 나 그거 맞을 때마다 괜히 애정 생기고 그랬는데 이제 누가 나한테 그런 거 해줘." 그렇게 윤기의 정신을 잡게 해줄 대화들을 하다 보니 어느새 병원에 도착했다. 나를 제치고, 윤기를 급히 데리고 들어가는 의사들의 모습에 허탈하게 병원 복도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윤기가 언제 수술이 끝날지, 윤기가 얼마나 다쳤는지도 난 물어볼 수가 없었다. 혹시나 그 수술이 오래 기다려야 되고, 많이 다쳤다는 말을 직접 듣기가 무서웠다. 간호사분들이 종이에 작성을 해달라는 말에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어서 윤기의 오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지민이는 바로 받았고, 집에서 나온 건지 약간은 부스스한 상태로 응급실에 왔다. 지민이는 쇼핑백에서 두꺼운 담요 하나를 꺼내 내게 걸쳐주고는 카운터로 가 간호사와 이야기를 나눴다. 분명히 윤기에 관한 이야기를 했을 텐데 내게 돌아온 지민이는 그저 말없이 떨리는 내 어깨에 손을 올려주었다. 윤기랑 친해서 그런지 지민이에게서 은연중에 윤기의 모습들이 보였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윤기의 수술이 끝났는지 피곤한 모습으로 나오는 의사선생님께 나보다 먼저 지민이가 일어났다. 사실 일어나려는 나를 앉혀놓은 거지만. 교통사고로 들어온 윤기의 수술은 끝났지만 지금 경과를 더 지켜봐야 된다는 말을 하셨다. 그 말에 지민이는 의사선생님과 함께 내게서 약간 멀어진 곳으로 걸어가 대화를 나눴다. 멀리 있기도 했지만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얼른 지민이가 와서 윤기 수술이 잘 끝났으니깐 기다리면 된다고, 이제 괜찮다고 말을 해주길 바랐다. 다행히 정신을 잃기 전에 지민이가 달려와서 내게 수술은 잘 끝났으니깐 집에 가서 쉬어도 된다고 했다. 싫다고 고집부리는 내게 지민이는 윤기형도 이걸 원하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아니야, 지민이 네가 몰라서 그래. 저기 누워있는 건 원래 윤기가 아니라 나였어. 내가 저기 있어야 됐어." "누나,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에요, 누나." "진짜야. 저 바보 같은 놈이 나 대신 차에 치였어. 지민아, 나 이제 어떡해? 윤기 얼굴 어떻게 쳐다봐? 이런 내가 어떻게 집에 가서 쉬겠어. 나 그런 거 못하겠어. 그냥 민윤기 깨어나면 그때 사과하고 집에 갈게. 윤기가 나 보기 싫다고, 꺼지라고 그러면 그때 그냥 갈게. 나 여기 있게 해주라, 지민아." 내 말에 지민이는 고개를 숙였고, 함께 윤기의 옆을 지켰다. 중환자실로 옮겨질 때도 나는 차마 윤기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저기 누워있어야 될 사람은 민윤기가 아니라 나였는데, 왜 어째서 윤기가 누워있어야 되는지 스스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자책하는 내게 지민이는 아무 말 없이 손을 잡아줬다. 중간중간 윤기형도 이런 내 모습을 보면 더 아플 테니깐 지금은 일단 윤기형이 일어나기를 기다리자는 말을 했다. "눈앞에서 사랑하는 친구가 저렇게 죽음의 문턱까지 갔는데 제정신일 수가 있어? 지금 네 일 아니라고 그렇게 차분하게 말하지 마." "미안해요." 사실 내가 지금 지민이에게 이런 말을 해서는 안되는 상황이었다. 이 늦은 시간에 한 걸음에 달려와서 모든 걸 해결해준 지민이에게 날이 선 말을 뱉을 자격이 없었다. 그냥 한심하고, 답답한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풀어내고 싶었다. 그게 착하고, 여린 지민이에게 화살이 돌아갔다. 내게 이런 말을 듣고도 옆에 있어주는 지민이어서 금방 사과를 할 수 있었다. 윤기랑 친한 이유가 여기 있나 보다. 약간 욱하는 성격 때문에 윤기에게도 자주 짜증을 내곤 했다. 윤기는 그걸 다 받아주면서 내가 사과를 할 때까지 어디 가지 않고, 주변에 있었다. 사과를 하고 싶은데 직접 자기를 찾아서 하는 건 내 성격에 어려워하는 걸 알아서 항상 그래줬다. 윤기처럼 지민이도 옆에 있었기에 쉽게 사과를 했다. 그렇게 한동안 있었을까, 지민이는 중간중간 의사선생님과 대화를 했다. 아마 윤기의 수술에 관한 대화였겠지. 추신- 윤기가 얼른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 [암호닉]은 언제나 받습니다! 암호닉 정리는 암호닉 정리는 10화에서 보여드릴게요. 이 글에서도 받고 있으니깐 언제든 달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