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렁넝 전체글ll조회 1422l 4








下.

 

 


 

 마침내 백현이 스르르 눈을 떴다. 잠시 먹먹한 회상속에 잠겨있다 깨어났다. 바로 오늘이 디데이였다. 폭풍같은 피바람을 몰고 올, 바로 그날. 드디어 오늘 그를 죽일 수 있는 날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과 조바심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물론 처음부터 백현은 살아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혼자 남겨질 경수를 생각하면 무조건 살아야만 한다는 또하나의 임무가 주어진 것만 같았다. 

 

 백현은 이곳으로 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병실에 가만히 누워있는 경수의 모습을 몰래 보고왔다. 경수는 아마 백현이 왔다갔다는 사실도 모른채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최근 경수는 이유도 모른채 날이 갈 수록 살이빠지고 창백해져만 갔다. 경수의 그런 약한 모습들을 보며 백현은 남몰래 가슴을 움켜쥐었다. 모두 나때문인 것만 같아서.

 

 

 몇 번, 숨을 깊게 들이마쉬고 내쉬기를 반복했다. 옆에 있던 형님이 멍하니 바닥만 내려다보던 백현을 툭툭 치며 말했다. 그는 평소 백현과 친하게 지내던 형님들중 하나였다. 지난 몇 년간의 조직 안에서의 추억들을 생각하니 잠시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마음을 굳게 먹었다. 지금만큼은 나는 누구보다도 강해져야 한다.

 

 

 

 

 " 야, 허당. 지금 보스 오신댄다. 준비해. "

 " 네. "

 

 

 

 조직원들이 재빨리 몸을 움직이느라, 폐공장 바닥엔 작게 먼지가 일었다. 백현도 재빨리 자리를 옮겨 열중쉬어 자세를 취했다. 그 때 폐공장 문이 열리고, 보스가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검은 양복을 입은 조직원들이 열중쉬어 자세로, 모두 고개를 일제히 숙였다.

 

 

 " 안녕하십니까, 형님! "

 

 

 그는 다른 부하들의 호위를 받으며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걸어왔다. 역시나 보스는 보스인지라 풍겨오는 분위기부터가 남달랐다. 그의 등장만으로도 폐공장 안의 분위기가 무거워지고 단단해졌다. 백현은 잠시 눈동자를 굴려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타이밍을 계산했다. 보스와 내가 가까워질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거리. 그 때를 놓치면 모든 게 끝이였다.

 

 보스는 뒷짐을 지고 폐공장 안을 천천히 돌아다니며 지령을 내렸다. 그의 강렬한 눈빛에 조직원들은 찍소리도 내지 못하게 입을 다물었고, 그가 말하는 무게있는 말 한마디에 모두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역시 한때 저의 열렬한 존경을 받았었던 엄청난 남자다웠다.

 

 그런 보스와의 거리가 조금씩, 점점 좁혀졌다. 백현은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수트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총을 잡았다. 총의 차가운 감촉은 아무리 많이 만져보아도 만질 때마다 이질감이 느껴지고 소름이 돋았다. 나는 이것으로 사람을 죽일 것이다.

 

팽팽한 긴장감에 총을 잡은 손에 식은땀이 축축하게 배어났다. 조금만…조금만 더…. 보스는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 질때마다 총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속으로 간절하게 외쳤다.

 

 

 마지막… 마지막 한걸음만 더!

 

 

 보스가 백현의 바로 옆을 스쳐갈 때, 바로 지금! 가장 이상적인 최단 거리가 완성되었다. 백현은 재빠른 몸놀림으로, 총을 꺼내 총구를 겨눴다. 그 때까지도 보스가 총탄의 목표가 되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철컥. '

 

 

 보스의 말속에 총을 조준하는 소리가 섞여들었다. 귀가 좋은 보스는 그 소리만을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보스와 백현의 눈이 마주쳤다. 그동안 한번도 제대로 올려다보지 못한 존경의 상징인 눈동자. 숨이 멎을 것만 같이 미친듯이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떨리는 손으로 백현은 방아쇠를 당겼다.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까지도, 보스는 끝까지 백현의 눈을 바라보았다.

 

 

 

 ' 탕!! '

 

 

 

 엄청난 굉음이 폐공장 안의 정적을 깨뜨렸다. 혼란속에서 모든 조직원들이 일제히 총소리가 난 곳을 쳐다보았다. 총을 맞은 보스는 가슴을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백현은 두려움에 마른 침을 삼켰다. 왜 안죽지? 왜?

 

 

 보스가 부들부들 떨며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백현과 다시 한 번 눈이 마주치는 순간이였다.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채 보스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그 순간, 패닉상태가 되어버린 백현은 머리가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해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그저 몸이 머리보다 본능적으로 먼저 반응했을 뿐이였다.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한번 더 당겼다.

 

 

 ' 탕! '

 

 

보스가 공중에 시뻘건 피를 흩뿌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마치 그 광경은 평생 그 어디서도 볼 수없는 하나의 화려한 분수쇼 같았다. 두번째로 발사된 총탄은 정확히 그의 머리부근에 맞았다. 아마 즉사임이 분명했다. 그의 머리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백현의 옷과, 얼굴에도 튀었다. 그런 것을 신경쓸새도 없이 백현은 보스가 쓰러진 것을 확인하자, 즉시 뒤를 돌아 도망쳤다.  누군가가 외쳤다.

 

 

 " 야, 야, 저 새끼 당장 잡아!!!!! "

 

 

 그와 동시에 보스를 호위하던 부하들이 백현의 앞을 가로막자 총을 겨누고는 마구잡이로 쏘았다. 탕, 탕! 길을 막고있는 부하들은 어딘가에 총을 맞고 역시나 붉은 피를 흩뿌리며 바닥으로 픽 쓰러졌다. 눈 앞에 뿌려지는 핏방울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이고 그 뜨겁고 질척한 액체의 느낌도 얼굴에 고스란히 느껴졌다. 백현은 총을 들고 폐공장 출구로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는 조직원들은 모두 개떼처럼 백현을 쫓고있었다.

 

 

 모든 일이 끝났다. 복수는 끝이 났고, 이제…, 이제 무사히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다시 돌아가서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경수와 다시 만나고, 그의 손을 잡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도망칠 것이다. 그리고 경수의 남은 시간동안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어야 하는데……. 

 

 

 

 

 정신없는 와중, 잔인한 총소리가 또 한번 울렸다. 탕!

 

 갑자기 정신없이 달리던 백현의 몸이 왼쪽으로 기우뚱하고 기울어지더니 그대로 아스팔트 바닥에 곤두박질 쳤다. 손으로 왼쪽 옆구리를 더듬어보니 엄청난 고통이 엄습해왔다. 백현의 손이 온통 붉은 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왼쪽 옆구리에 뒤에서 쏜 총을 맞아버렸다.

 

 " 아윽…으.. "

 

 

 하지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백현은 총을 맞은 곳을 한 손으로 움켜쥐며, 다시 일어서 달렸다. 하지만,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금방이라도 따라잡힐 것만 같았다. 한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허리에서는 피가 줄줄 새나왔다. 아스팔트 바닥에는 뚝뚝 떨어진 핏방울이 길을 이뤘다.  얼마 못가 한계를 느낀 백현이 달리기를 멈추고 뒤를 돌았다. 두 손으로 총을 잡고 따라오고 있는 조직원들을 겨눈채였다. 조직원들도 백현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지만 그가 들고있는 위협적인 총때문에 조직원들도 백현에게 쉬이 다가가지는 못했다.

 

 

 " …가까이 오지마. "

 

 

 백현이 그들을 증오로 가득찬 눈으로 노려보며 읊조렸다. 저 쪽에서 보스의 호위를 맡고있던 나름 상위급 간부로 보이는 남자가 소리쳤다.

 

 

 

 " 넌 무슨 이유로 우리 조직을 배신하는 것이지? 스파이인가? "

 

 

 

 그 순간 아까 했던 예상대로 먹구름이 가득낀 회색빛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투둑, 투두둑. 조금씩 몇 방울씩 바닥으로 떨어지던 비는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세게 내렸다.

 

 

 

 " 이유? 이유라면 충분해. 보스가 경수씨를 괴롭게 만들었으니까. 그게 전부야. "

 " 뭐? "

 

 

 

 남자는 도통 그게 무슨소린지 이해 할 수 없었다. 경수라는 이름을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기도 했다. 남자는 경수의 이름을 곰곰히 잘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드디어 경수가 누군지 생각해냈다. 그건 죽어버린 도명석의 아들의 이름이였다. 그런데 왜 변백현이……. 

 

 

  백현이 총을 쥔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림에도 최대한 꽉 쥐고 외쳤다. 세찬 빗소리가 시끄러워질 정도로 비가 많이 내렸다.

 

 

 

 " 어째서, 경수씨를 괴롭게 만드는거야?? 그 사람 입에서 죽고싶다는 말이 나왔어. 그 사람이 얼마나 괴로워 했는지 알기나해? "

 " 무슨……?! "

 

 

 비를 맞으며 백현은 미친듯이 악을 쓰며 소리질렀다. 내리는 비를 몽땅 맞으며 처량하게 울부짖는 절규. 그의 갈라진 외침들은 빗소리와 같이 섞여들었다.

 

 

" 그사람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힘들어해야해? 어차피 아무것도 모를텐데, 어차피, 이 너희에게 해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텐데. 경수씨만은 자유롭게 놓아줘도 되는 거였잖아!! "

 

 

 백현의 말이 끝나자 마자 뒤에 서있는 누군가가 각목으로 백현의 머리를 내리쳤다. 퍽, 소리가 나며 각목이 두동강나며 부러졌다. 

 

불시의 습격으로 백현은 억, 소리를 내며 바닥에 엎어졌다. 머리속에 뇌 자체가 미친듯이 흔들리는 것 같은 엄청난 파장이 일었다. 각목을 내리친 남자는 백현의 팔뚝을 잡으며 머리를 눌렀다. 그러나 백현은 재빨리 몸을 돌려 마지막으로 그에게 총을 겨눴다. 1초도 고민할 시간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또다시 붉은 피가 튀었다. 그러나 거센 비 때문에 얼굴에 튄 피는 조금씩 씻겨나갔다.

 

 순식간에 피와 비에 물에 젖은 생쥐꼴이 된 백현은 만신창이인 몸으로 또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살아야만, 무조건 살아서 돌아가야만 한다. 그 생각이 모든 사고를 지배했다. 다리가 무작정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었으나, 방금 전 각목으로 맞은 머리에서 피가 이마를 타고 흘렸고, 총을 맞은 옆구리에선 참기 힘든 고통이 따랐다.

 

 " 윽…!! "

 

 백현의 오른팔에 총알이 스쳤다. 그대로 앞으로 풀썩 넘어졌다. 쓰러진 상태에서 거세게 내리는 비 때문에 시야가 흐릿하게만 보였다. 남자가 엎어져 있는 백현의 팔을 꺾어 뒤로 고정시켰다. 그리고는 비에 젖은 머리채를 휘어잡아 고개를 들게했다. 그 사이, 백현은 손에 들고있던 총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저항할 무기가 사라졌다. 희망이 저 멀리 떠나간다. 온 몸으로 전해지는 아픔에 백현의 얼굴이 찌푸렸다. 엄청난 아귀힘으로 백현의 머리카락을 잡고있는 그가 백현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 그런건 우리와 상관 없어. "

 " ……. "

 " 우리는 그저 일말의 여지를 지워버릴 뿐이다. "

 

 

 백현은 그 남자를 눈이 튀어 나올듯이 노려보며 이를 뿌득 갈았다. 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쳐봤지만 소용없었다. 그의 아귀힘은 팔을 부러뜨릴 수 있을정도로 강했다. 백현의 발버둥에 보답이라도 하는듯, 남자는 백현의 머리를 아스팔트에 처박았다. 쿵! 그의 단정했던 얼굴은 피로 범벅이 되었다.  남자는 다시 한번 백현의 머리를 들어올려, 서늘한 눈을 맞추며 말했다.

 

 

 " 네가 무슨 짓을 한지는 알아? 설마 여기서 살아돌아갈 생각을 한건 아니겠지? "

 

 

 그의 눈에는 엄청난 살기가 느껴졌다. 백현은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본능적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들어섰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했다.

 

 

 " 모두 각오하고 한 일이야. "

 " 그래? 그렇단 말이지……. "

 

 

 남자는 높은 구두 뒷굽으로 백현의 머리를 지그시 밟았다. 그리고, 조용히 읊조렸다. 당연히 그래야지. 잠시 조용한 정적이 흘렀다.  그 순간만큼은 내리는 빗소리가 자꾸만 귓가에 파고들었다. 남자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다시 백현의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 마지막으로 묻는다. 도경수와는 무슨 관계지? " 

 " …으윽…아무 사이도 아니야. "

 " 그런데 왜 이렇게……. "

 

 

 입을 쉽사리 열지 못하는 백현이였다. 아주 쉬운 질문이였지만 대답은 어려웠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미친듯이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는 이유, 바로 나의 존재의 이유. 그건 바로….

 

 

 

 " 내가, 내가 경수씨를… 사랑해. "

 

 

 내가 과연 그를 사랑한다고 말해도 될까?

 

 

 " 그게… 끝이야. "

 

 

 

  백현은 경수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고백을 했다. 

 

 

내가. 그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게 끝이다. 남자는 백현과 눈을 마주쳤다. 백현의 커다란 눈에서 투명한 것이 빛났다. 그리고 이내 피로 물들어진 뺨에 물길을 만들었다. 눈물은 비와 함께 섞여들어갔다. 남자는 그의 눈을 본 순간 왠지 모르게 이상한 느낌에 흠칫했다. 이대로라면 동정과 같은 이상한 생각이 들것만 같았다. 남자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서 백현을 지켜보고 있는 조직원들에게 말했다.

 

 

 

 " 처리해. "

 

 

 그 순간 백현은 경수가 너무나도 보고싶었다. 보고싶어 미칠지경이였다. 그러나 머릿속과, 몸의 감각은 확연히 달랐다. 몇 명의 조직원들이 백현에게로 다가와서는 마구잡이로 폭력을 가했다. 발로 밟기도 하고, 연장으로 마구 패기도 했다. 온 몸이 부서지는 것만 같은 아픔에 원치않는 신음 소리를 냈다. 그야말로 정말, '비오는 날에 먼지나듯이 맞는다' 라는 속담처럼 맞았다. 온 몸은 비에 젖어 축축해지고 무거워졌다. 팔도 부러진 것 같았다. 비가 몸을 때리는 것 마저도 아팠다. 조직원 중 누군가 백현의 배를 발로 힘껏 찼다. 뻑 소리가 나도록 엄청난 세기였다.

 

 

 " 컥…!! "

 

 

 가장 치명적인 타인 듯 싶다. 번쩍 눈을 뜬 백현이 그 상태에서 바로 쓰러지며 피를 토했다. 새빨간 피가 아스팔트 바닥에 뚝뚝 떨어지며, 빗물과 함께 번져갔다. 백현은 초점없는 눈으로 번지는 피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가 병원 뒤편에서 미친 듯이 맞고있는 장면이 눈앞에 겹쳐졌다. 경수가 맞고있을 때 과연 이런 느낌이었을까? 너무나도 아프다. 아프다….  그냥 빨리 가서 경수를 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어디서 나온지도 모를 초인적인 힘으로 백현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러나 한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했다. 조직원들이 재빨리 백현을 잡으려고 하자, 남자가 그들을 한 팔로 제지하며 막아섰다.

 

 

 

 " 냅둬봐. "

 

 

 

 백현은 총을 맞은 옆구리를 잡고 비틀비틀 걸었다. 혼이 나간듯, 어딘가에 홀려 움직이는 몽환적인 발걸음이였다. 가다가, 몇 번 넘어지기도 했지만 다시 오뚜기마냥 힘겹게 일어나서 걸었다. 그가 가는 걸음 마다 붉은 꽃 같은 시뻘건 피자욱이 남았다. 

 

 

 눈동자의 촛점도 흐려지고, 위에서 쏟아붓는 비 때문에 앞을 보기가 힘들었다. 어느순간 온 몸에 기력이 다해 그 자리에 철푸덕 쓰러졌다. 그래도 머리속에는 경수를 보아야 한다는 생각만이 강하게 자리잡았다. 그는 엎어져 있는 와중에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손가락 마디마디에 힘을 주어 아스팔트를 긁었다. 계속 거친 아스팔트를 반복해서 긁다보니 그의 손가락 마저도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앞이…안 보이는데 어떡하죠? 경수씨…. 

 

 

 그 상황을 보고있던 남자는 인상을 구기고는 뒤틀린 몸부림을 치는 백현을 보았다. 그는 팔짱을 끼고 그의 부하중 한명에게 명령했다. 명령을 시키는 남자의 목소리는 한없이 냉정하고, 간결했다.

 

 

 " …은철아, 그냥 편하게 해줘라. 보기 싫다. "

 " ……예, 형님. "

 

 

 은철이라고 불린 남자가 백현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지난 여름 백현이 다쳤을 때 병원으로 옮겨준 바로 그 남자였다. 은철은 형님들 중에서 제일 백현을 예뻐하고 아꼈다. 그래서인지 백현의 앞에 서있는 은철은 마음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이렇게 망가져서 처절한 몸부림을 치는 모습을 보면 더더욱이였다. 만약 그때 은철이 백현을 다른 병원으로 데려갔다면, 경수를 만나지 않았을까? 

 

 은철은 마지막까지 손톱이 부러져라 손가락을 움직이는 백현을 보았다. 남자치고 길고 예쁘다고 생각했던 손가락은 이제 상처로 엉망이 되어 볼품없어보였다. 은철이 수트 주머니에서 총을 꺼내고는 백현의 이마 정가운데 총구를 갔다대었다. 그는 안쓰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백현아, 어쩌다 이렇게 된거냐…. 불쌍한 우리 허당아……. "

 

 

 게다가, 비도 아주 위에서 콸콸 쏟아붓는구만. 더 슬프게시리…. 은철은 백현의 젖은 앞머리를 이마가 보이도록 섬세하게 넘겨주었다. 은철은 총구의 방아쇠를 당겨야 했지만 자꾸만 망설였다. 그가 계속 주저하고 있을 때 죽은 듯했던 백현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아직 살아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반짝반짝 빛이나는 그의 눈동자가 허공으로 향했다.

 

 

 

 백현은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제는 몸이 정말로 굳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진즉에 뛰어넘은 줄만 알았던 한계는 애석하게도 다시 나를 찾아왔다.

 

 

  툭.투둑. 투툭. 조용한 빗소리만이 백현의 귀를 울렸다. 경수씨, 이제는 몸도 움직이질 않네요. 눈을 감자, 경수와 함께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아주 천천히, 느리게 스쳐지나갔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꽃을 머리에 꽂고 미소를 짓던 경수. 나의 오른팔 대신 밥을 먹여주던 경수. 붉은 피를 토하며 고통스러워하던 경수. 내 등의 업혀서 펑펑 울던 경수. 마지막으로, 거친 입술로 입을 맞췄을 때,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던 경수. 내가… 사랑하는 나의 천사, 도경수.

 

 백현은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들을 하나하나 모두 회상했다. 저절로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때의 나는 정말로 행복했으니 이젠, 그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정말로.

 

 

  다 벗겨진 손톱 밑에 상처가 가득한 손으로 아스팔트 위에서 주먹을 꾹 쥐었다. 마지막으로, 경수에게 해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자신있게 말하던 내 목소리가 목까지 차오르고 귓가에 맴돈다.

 

 

 ' …우리 도망쳐서, 아무도 모르게 살아요. 둘이서만. '

꼭, 둘이서만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자고 말했는데.

 

 

 

 ' 내가 행복하게 만들어 줄게요. 반드시. '

 경수씨를 행복하게 해줘야만 하는데…….

 

 

 '  우린 반드시 행복해질 수 있어요. '

 반드시, 우리는 행복해져야만 하는데……. 할 수 있을까?

 

 

 백현은 비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시야를 보기위해, 눈을 찌푸렸다. 그러자 흐릿하게나마 사람의 형상이 보였다. 그건 바로 경수였다. 흐릿하게 보이는 경수는 환한 미소를 짓고있었다. 백현은 그의 미소를 보자, 눈물이 나올만큼 행복했다. 아아, 죽어도 여한이 없다. 저렇게 환하게 웃고있는 경수는, 정말로 행복해보였다. 그에, 백현도 그에 보답하듯이 상처때문에 일그러졌지만 환하게 웃었다. 경수는 백현의 젖은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정말로 달콤하고, 부드러운 하늘에서 내려준 천상의 목소리.

 

 

 

 ' 백현씨, 이제 그만 힘들게 애쓰지 않아도 돼요. '

 " ……. "

 ' 백현씨는 최선을 다했잖아요. 그럼 된거예요. '

 " ……. "

 ' 우린 이미 ……행복해졌어요. '

 

 

 

 모두 알고있다는 미소와 함께 경수가 말했다. 백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경수의 두손에는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을 이어주었던 꽃 한송이를 들고있었다. 여름꽃이었다. 순백색의 꽃잎을 활짝 피고 있는 여름 꽃이 경수의 두 손안에서 아련하게 피어났다. 

 

 

 

 예쁘다…. 백현은 여름 꽃을 보자마자 활짝 웃었다. 그런데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눈물은 멈출줄을 몰랐다. 백현은 여름꽃을 들고있는 경수의 손을 두손으로 겹쳐 잡았다. 그의 손은 실제로는 차가웠지만, 백현은 그 어떤 사람의 손보다도 따듯하다고 느꼈다.

 

 

 꽃을 이마 가까이에 댔다. 백현의 표정은 마치 엄마 뱃속에 웅크리고 있는 아이처럼 너무나도 편안해 보였다. 눈에서는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백현이 마지막으로 경수에게 물었다.

 

 

" 정말 행복해요? "

 

 

 경수가 대답했다.

 

 

 ' 그럼요. '

 

 

 백현은 경수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 그럼 됐어요. "

 

 

 탕!

 

 총은 정확히 백현의 머리를 쏘았다. 모든 힘이 빠져나간 백현의 몸이 털썩, 바닥에 쓰러졌다. 은철은 정신이 나간 멍한 표정으로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백현은 은철의 손을 잡고, 스스로 총구를 자신의 이마에 대었다. 은철이 상황판단을 하는 사이에, 백현은 스스로 은철의 손가락 밑에 있는 방아쇠를 눌렀다. 은철이 총을 쏜 것이 아니라, 백현 스스로 총을 쏜 것이였다. 은철이 본 백현은 너무나도 편안해보였다. 그리고 그사이 마지막으로 마주쳤던 눈은, 너무나도 행복해보였다. 마치 허공안의 환상이라도 보고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총소리가 울린 것이었다.

 

 

 저만치서 모든 상황을 보고있던 남자가 팔짱을 풀며 말했다.

 

 

 " 이제 끝났군. "

 " 예, 형님 "

 

 

 옆에 서있던 다른 남자가 대답했다.

 

 

 " 혹시 지금이 몇 시지? "

 

 

 그의 부하가 재빨리 시계를 보고는 대답했다.

 

 " 6시 18분 입니다. "

 " 그래……. "

 

 

 

 차갑게 식어가는 백현은 여전히 차가운 비를 맞고있는 채였다. 그래도 백현은 절대 춥지 않았다. 왜냐하면 백현의 기억은 아직도 경수와 함께있던 한여름에 머물러있기 때문이였다. 한치도 보이지 않는 검은 암흑 속에서 순백색 여름꽃이 만개한 꽃밭을 보았다. 그 가운데에는 경수가 있었다. 나의, 천사. 미소가 지어졌다. 경수의 앞에선 백현이 그에게 꽃을 하나 꺾어 건네주며 말했다.

 

 

 ' 이제 정말 우리 둘이네요. '

 

 

 경수는 꽃을 머리에 꽂으며 활짝 웃었다.

 

 

 ' 나를 이렇게 행복하게 만들어 줘서, 고마워요. '

 

 

 

 ***

 

 

 

 " 선생님! 314호 도경수 환자 상태가 이상합니다!! "

 " 뭐? 무슨 소리야? "

 

 

 

 경수를 담당하던 간호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의사가 흰색의 의사가운을 휘날리며 재빨리 뛰어들어왔다. 정신을 잃은채로 호흡이 불안정해진 경수의 손이 덜덜 떨렸다. 숨이 막히는 듯 몸을 비틀었다. 컥…허…헉…….  팔다리가 사시나무 떨듯이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다. 의사는 경수의 현재 상태를 재빨리 점검하고는 간호사에게 외쳤다.

 

 

 " 당장 수술준비 들어가, 빨리!! "

 " 네!!! "

 

 

 간호사는 병실 밖으로 황급히 뛰어갔고, 다른 조수들은 경수를 분주하게 수술실로 옮겼다. 모두들 1분1초가 긴박한 응급상황인 가운데, 경수는 산소호흡기를 낀채로 숨이 벅찬듯 간헐적인 숨을 위태롭게 내뱉었다.

 

 

 

 " 이 환자, 지난 검사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갑자기 왜이래?!? "

 " 이유를 알 수 없는 갑작스런 쇼크증세 같습니다!!! "

 

 

 

 의사와 간호사들이 경수를 실은 침대와 함께 수술실로 들어서자 수술실에 빨간 불이 반짝, 하고 켜졌다. 수술실 안에서 의사가 메스를 집어드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경수의 심장박동이 미친 듯이 빨리 뛰더니, 이내 갑자기 불안정해졌다. 의사는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심폐소생술을 이행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효과는 없었다. 경수의 심장 박동이 점점 느려지더니, 심장 박동은 직선을 만들었다. 

 

 

심장이 멈췄다.

 

 

 삐-. 너무나도 잔인한 소리가 수술실 안에 울렸다. 시도도 하지 못한 비극적인 결과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정적속에서 착잡한 표정의 의사는 시계를 보며 간호사에게 말했다.

 

 

 

 " ……사망시각, 20**년, 10월 11일 오후 6시 8분 경. 급작스런 발작으로 인한 쇼크사. "

 " 예. "

 

 

 

 간호사는 경수의 사망시각을 서류에 적었고, 의사는 신경질적으로 마스크를 벗으며 한숨을 쉬었다. 

 

 

 

  " 빨리 보호자 한테 알려. "

 " 저기… 도경수 환자 보호자가 없어요. "

 " 뭐? "

 

 

 

 의사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수술실에 울렸다. 간호사는 그런 의사의 반응에 조금 눈치를 보다 입을 열었다.

 

 

 

 

 " 부모는 다 죽은 걸로 되어있고……. 요즘들어 전에 입원했던 변백현 환자랑 자주 만나기는 하던데…….  "

 " 그럼 변백현 환자라도 불러. "

 " 그런데 지금 변백현 환자도 연락이 되질 않아요. "

 " …후, 그래? "

 

 

 

 

 의사는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있는 경수의 얼굴을 잠시 보았다. 조용히 눈을 감은 경수는 평온한 얼굴이였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죄책감은 절대 사라지지 않나보다. 의사는 경건 두 손을 모으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항상 그가 수술을 집도하는 환자가 죽었을 경우 하는 필수 절차와 같은 행동이였다. 경수씨, 부디 하늘에서는 꼭,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진심으로.

 

 

 

 

- Fin

 



-




하편까지 모두 완결이 났네요

짧고도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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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이불익이니에요!!!보는 내내 눈물이 났어요ㅠㅠㅠ 경수랑 백현이는 행복해진거니까 그걸로 된거에요흓귻극ㅠㅠㅠㅠ그래도 죽은건 너무슬퍼요ㅠㅠㅠ 이렇게눈물 나는작품 오랜만에 읽어보네요ㅠㅠ렁넝님 좋은글 감사합니다!!
11년 전
렁넝
안녕하세요 이불익이니님ㅜㅜ 저도 쓰면서 이건 해피여 새드여 했지만 결국은 독자분들에 따라서ㅋㅋㅋㅋ 댓글 감사합니다~
11년 전
독자2
울면이에요ㅜㅠㅠ 아유 우리 백도들 어찌해요ㅜ 너무 안타깝네요ㅠㅠㅠ 그래도 경수가 행복하다고 했으니 다행이에요.. 둘다 천국가서 알콩달콩 잘살겠지요? 감동적이에요 이런 좋은 글ㅠㅠ 수고하셨습니다ㅠㅠㅠㅠ
11년 전
렁넝
안녕하세요 울면님 ㅠㅠㅠ 저는 백현이랑 경수가 같이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11년 전
독자3
렁넝니뮤ㅠㅠㅠㅠㅠ 최고에요!!
11년 전
렁넝
으악ㅜㅜㅜ 칭찬 감사드려요
11년 전
독자4
ㅠㅠㅠ왜저는 이런금손작가님을지금에서야 발견한건가요ㅠㅠㅠㅠㅠㅠ정주행하고왔어요ㅠㅠㅠㅠㅠㅠ
폭풍현실눈무류ㅠㅠㅠㅠㅠㅠ작가님때문에 몰컴 들킬뻔했잖아요...ㅠㅠㅠㅠ
암닉되시면 솜사탕으로 신청하겠습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죄송하지만 브금 제목 뭔지 알 수 있을까요??ㅠㅠ)

11년 전
렁넝
안녕하세요 솜사탕님!! 읽어쥬셔서 감사합니다 감덩^ㅠ^ 브금 제목은 테일즈위버 ost 리미니신스예요
11년 전
독자7
메일링된다면 [email protected]으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ㅠㅠㅠㅠ
11년 전
삭제한 댓글
본인이 직접 삭제한 댓글입니다
11년 전
렁넝
뀨뀨님 안녕하세요~ 메일링은 원하신다면 언제나 해드립니다ㅠ_ㅠ 메일주소 써주시면 보내드릴게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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