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그래프꼭짓점 인물 상세 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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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그래프꼭짓점 25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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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규가 라디오 채널을 돌리며 물었다. 핸들만 잡고 묵묵히 운전하던 우현이 성규의 눈치를 본다. 마치 사고치고 엄마 눈치를 보는 아이처럼 말이다.
"자꾸 눈치만 보면서 쭈뼛거리지말고."
이 남자가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이러는 거지? 성규는 살짝 긴장되기 시작했다.
"노력은… 해볼게요."
우현이 말을 잇지 못하고 엄한 엄지손가락만 잘근잘근 씹었다. 그 모습을 빤히 보던 성규가 담담한 말투로 먼저 말을 꺼냈다.
"고백했다가 차이기라도 했나보죠?"
한참 말이 없던 우현이 먹먹한 말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슬픔이 뚝뚝 묻어나는 그런 말투로.
"오랫동안 머물고 나서 얻은 안정감같은거요."
안정감은 조금 떨어질지 몰라도, 막연한 행복이 느낄 수 있어요.
"내가 왜 안정감이 떨어져요? 내가 얼마나 안정적인 사람인데."
성규는 조금 너그러워지기로 했다. 잠시 쳐다본 우현의 얼굴이 너무나 애틋하고 슬퍼보여서. 그리고 괜한 오기도 생겼다. 내가 저 사람 마음에서 확실히 자리를 잡아야겠다는 오기.
*
26.
"아, 참. 내일 주말에 김성규씨가 저녁식사초대했어."
우현이 출근을 하고 식탁에 앉아 순재가 갈아준 생과일 주스를 마시던 성열이 명수와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순재 몰래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으으."
따뜻한 침대에서 겨우겨우 일어난 동우의 노란 머리가 이리저리 뻗쳐있다. 침대에 걸터앉아 눈을 비벼대며 충전이 다 되어 녹색불이 들어온 핸드폰을 집어들고 간밤에 온 문자와 전화를 확인했다.
"…아."
[형. 놀랐다면 정말 미안해요. 잘자요. -호원이-]
"하아…."
'미안'까지 쓰던 동우가 여태까지 적은 문자를 모두 삭제했다. 호원에게 답장이 온다면 어떻게 답해야할지 난감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울상을 지으며 침대에 드러누워 어제 호원이 했던 고백의 순간을 떠올렸다.
'사실은요…. 나한테 형이 조금 많이 특별해진 것 같아요.'
달콤했던 호원의 목소리가 방안에 울리는 것 같았다. 베게에 얼굴을 묻고 발을 팡팡 두드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어떻게 해야하지. 분명 호원이는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한데….
"휴, 일단 씻어야지."
동우가 욕실로 들어가 물을 틀자마자 침대위에 놓인 핸드폰이 요란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안 받네…."
몇 번을 걸어도 안 받는 동우때문에 호원은 얼굴 가득 걱정을 드리운 채로 한숨을 내쉬었다.
"왜 안 받지…."
문자를 보내볼까하며 메시지 창을 켰다가 동우가 불편해할 것 같아서 그냥 먼저 전화나 문자가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어제 고백을 하기 전에 그 자신만만하던 태도는 어디가고 하루만에 의기소침해진 호원은 후회중이었다. 그냥 마음속으로 간직할 걸 그랬나하는 후회.
"안녕하세요 호 대리님."
성규가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도 호원은 그저 핸드폰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연락 올 거 있으신가봐요?"
호원이 작게 중얼거리며 책상에 엎드리더니 발을 마구 구르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댔다.
"얘 왜 저래요?"
커피잔에 커피를 채우러가던 우현이 호원의 뒷통수를 꾹꾹 누르며 묻자 성규가 그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아침 설거지를 마치고 청소기를 밀던 순재가 명치를 감싸며 잠시 청소기 전원을 내렸다. 명치가 콕콕 쑤시듯이 아픈 증상이 몇 주 전부터 간간히 보이더니 요즘 들어선 그 강도가 조금 더 세졌다.
"…약도 다 먹었네."
약국에서 사다놓은 위염약도 하도 먹은 탓에 벌써 다 떨어져있었다. 아픈 명치를 감싸며 서랍 문을 닫은 순재가 방안에 있는 성열을 크게 불렀다. 방문이 열리고 손에 연필을 들고 있는 성열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성열아. 오늘은 밖에 나갈 일 없어?" "속 아파?"
명치를 쓰다듬으며 순재가 인상을 찌푸리자 연필을 책상에 내려놓은 성열이 옷을 챙겨입고 거실로 나왔다.
"병원은 안 가봐도 돼?"
캔버스 신발을 신고 집을 나온 성열이 마당을 지나치려다가 꽃들이 모두 시들어버린 꽃밭을 보곤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꽃이야 시드는건 당연한 일이지만 왠지 가슴이 쓰린 성열이 주머니에 손을 푹 넣고 꽃밭앞에 쭈그려앉았다. 시들어버린 꽃과는 달리 치자나무와 조팝나무는 아직 푸른 잎들을 매달고 있었다. 물론 이 나무들도 내년이 되야 꽃이 피겠지. 사랑을 하면 감정이 격해진다더니 괜히 코끝이 찡해진다. 대문을 열고 나와 서둘러 근처 약국으로 걸음을 옮겼다.
우현의 식판 모서리에 놓인 당근을 보며 성규가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러던 말던 우현은 계속 당근을 골라냈다.
"애도 아니고 도대체 당근을 왜 못 먹어요?"
우현의 말에 성규가 힐끗 호원의 눈치를 보며 테이블 밑으로 우현의 정강이를 푹 걷어찼다. 윽! 우현이 짧게 신음을 뱉었다. 우현과 성규가 티격태격할 동안에도 호원은 생각에 잠겨 국그릇속에 담긴 숟가락 연신 휘저어댔다.
"호 대리님."
보다못한 우현이 숟가락을 놓고 호원을 쳐다보며 물었다.
"없다, 근심…."
금세 밥으로 시선을 돌리며 다시 숟가락을 드는 우현을 째려본 성규가 호원에게 다시 말을 건네려던때에 호원의 주머니에서 핸드폰 벨이 울렸다. 허겁지겁 핸드폰을 꺼내들고 발신자를 확인한 호원이 손을 덜덜 떨며 핸드폰을 쥔 채 잠시 전화를 받고 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사내식당을 나와 유리창 앞 벤치로 향한 호원이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네, 형!"
동우의 목소리와 함께 전기톱 소리와 작업 인부들의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가게인가봐요?"
동시에 말을 꺼낸 호원과 동우. 먼저 말해요,하며 호원이 양보를 했다.
[…호원아.]
못 알아듣는 호원을 답답해하며 잠시 머리를 헤집은 동우가 손톱을 물어뜯으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영화…같이 보러갈래?]
*
"…속 쓰릴때 먹는 약 좀 주세요."
성열의 작은 목소리가 들리지않는 건지 약사가 몇 번이나 재차 물어오자 살짝 한숨을 내쉰 성열이 조금 큰 목소리로 '속 쓰릴 때! 먹는 약이요!'하고 소리치자 그제서야 약사가 알아듣고 약을 꺼내다줬다. 계산을 마치고 약국을 나오려던 성열이 좌판에 놓인 손목보호대 하나를 집어들었다.
"이것도 계산해주세요."
*
퇴근 시간.우현이 손목시계를 보며 오늘 못 마친 서류들을 가방에 넣어 정리하고 있는 성규에게 다가섰다.
"끝나고 어디 좀 갑시다."
아까 퇴근 5분전에 몰래 빠져나가던데요? 성규의 말에 우현이 눈썹을 찌푸렸다. 8시면 다른 회사에 비해 늦은 퇴근시간도 아닌데 감히 토껴?
"너무 뭐라하진마요. 급한 일 있던 것 같던데. 이제 갑시다."
우현의 어깨를 두어번 팡팡 두드린 성규는 먼저 사무실을 나섰다. 밤 치고는 꽤 따뜻한 날씨에 성규가 기분이 좋아졌는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주차장으로 걸어가는걸 우현이 뒤에서 지켜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조수석에 타려던 성규를 누군가가 크게 불렀다.
"성규씨!"
다른 부서 여직원이 다가오더니 수줍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누구지? 처음보는 얼굴이지만 인사를 해오는 통에 성규도 얼떨결에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했다.
"저…내일 시간 괜찮으세요?"
여직원의 말에 성규가 멍청한 얼굴로 되물었다.
"사실 저 성규씨 예전부터 맘에 담아두고 있었는데…."
여직원은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조금 멀찍이에서 팔짱을 낀채 자신을 쳐다보는 우현의 표정은 딱딱히 굳어있었다. 그 시선을 느끼며 성규가 여유로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죄송한데요, 제가 애인이 있어서요."
*
우현, 다 알면서 괜스레 대답이 듣고 싶어진다. 하지만 쉽게 대답해줄리없는 성규가 괜히 말을 빙빙 돌려내뱉었다.
"내가 애인이 어딨어요. 아직까지 솔로인데."
그 말에 우현이 허,하고 어이없다는 식의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거나 그거나 마찬가지아니에요?"
성규가 휘파람을 불며 창문을 열고 시원한 밤바람을 맞았다. 정말 알 수 없는 성규의 속에 혀를 내두른 우현이 프로포즈란 말을 속으로 곱씹었다. 잠시 차안에 정적이 흘렀다. 매쾌한 매연이 들어오자 창문을 닫은 성규가 등받이에 편히 몸을 기대며 물었다.
"순재씨한텐 어떻게 프러포즈했어요?"
고개를 돌려 우현의 옆모습을 빤히 쳐다봤다. 대답을 바라는 시선에 우현이 잠시 목을 가다듬고 천천히 프로포즈했던 기억을 끄집어올렸다.
"…프러포즈 같은 거 안 했어요."
그럼, 연애가 쉽고 단순한 거라고 생각해요?
"…하긴. 그렇네요."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뀌고 차가 멈춰섰다. 운전대에 턱을 대고 곰곰히 생각하던 우현, 갑자기 성규 몸을 확 끌어당겨 격렬하게 입을 맞춘다. 흡! 깜짝 놀란 성규는 우현의 어깨를 마구 내리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성규의 손이 살며시 우현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정말 난생 처음 당해보는 격렬한 키스였다. 신호등이 빨간색에서 초록색으로 바뀌고 입술을 뗀 우현이 피식 웃으며 차를 출발시켰다. 성규는 반쯤 정신을 잃은 표정으로 우현을 멍하니 쳐다봤다.
"주,죽을래?"
덜덜 떨리는 손으로 번들번들한 입가를 닦은 성규는 그저 창문을 열고 벌게진 얼굴을 식히기 급급했다.
*
작업 인부들이 모두 퇴근한 어두컴컴한 가게앞에 서있는 동우의 표정이 기쁨과 설레임으로 가득 차있다. 가게는 이제 간판다는 일만 남았다. 전문 디자이너가 참여한 작업이라서 그런지 공간이 훨씬 더 넓어졌다. 아직 테이블과 식기가 오진 않았지만 다시 장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동우는 자꾸만 웃음이 베실베실 새어나왔다. 그러다 갑자기 누군가가 자신의 왼손을 살며시 잡아왔다. 따뜻한 온기에 깜짝 놀란 동우가 얼른 고개를 돌렸다.
"이제 거의 다 마무리되고 있네요."
호원의 모습에 동우가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불났을때만 해도 모든 게 끝난 것만 같았었는데…. 근데 호원아."
민망해진 호원이 얼른 손을 놓으며 바지춤에 손을 벅벅 닦았다. 그 모습에 푸하하 웃은 동우가 이번엔 먼저 호원의 손을 잡아 깍지를 꼈다. 호원이 조금 상기된 얼굴로 동우의 옆모슾을 쳐다봤고, 동우는 여전히 간판이 달릴 자리만 보며 기분좋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호원아."
영화보단 너가 보고 싶었거든.
드넓은 와인점에 처음 와본 성규는 그저 우현의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어머니 술 잘 하세요? 아, 장모님이라 해야하나."
모든 벽에 와인이 한가득 꽂혀있었고 천장엔 여러 종류의 와인잔들이 샹들리에처럼 빼곡히 매달려있었다. 조금 어두운 듯한 실내는 갈색 조명이 운치있게 빛났고 곳곳에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싱싱한 포도들이 디피되어 있었다. 가이드의 설명없이 혼자 차근차근 와인을 고르는 우현의 모습에 성규의 가슴이 잠시 두근거렸다.
"이 와인이랑, 이 와인이 좋겠네요."
우현이 집어든 검붉은 와인 두 병을 한번 살펴본 성규가 힐끗 벽장에 붙어있는 가격을 보고는 기겁했다.
"히익! 36만원, 20만원? 미쳤어요? 핸드폰 할부금보다 비싼 와인을 마시자구요?"
성규의 어깨를 감싸고 와인잔을 파는 코너로 향했다. 아직까지도 나무 바구니 안에 들어있는 두 개의 와인병이 영 찜찜한 성규가 좀 더 싼 가격의 와인을 사자고 설득해봤지만 우현은 묵묵히 와인잔만 골랐다.
"그만 찡찡대고 제대로 좀 골라봐요. 이건 김성규씨한테 선물로 주는거니까."
성규가 심통스런 표정으로 입술을 댓발 내밀자 검지로 입술을 살짝 툭 친 우현이 어쩔 수 없이 가장 싼 와인잔 3개를 골라 나무 바구니에 넣었다.
"김성규씨는 꼭 수 틀리면 반말쓰네요?"
쫄랑거리는 걸음으로 먼저 와인점을 나서는 성규의 뒷모습에 우현이 기분좋게 웃으며 계산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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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신작알림쪽지가 안가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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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들이 서서히 정리가 된다는건,
완결에 가까워진다는 얘기...또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