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경] 크리스마스 2012
Written by. 맥
우리 사장님은 졸라 이상하다. 자기도 솔로인 주제에 오늘 같은 크리스마스날, 연인들이 붙어있는 꼴을 보면 가슴 속 깊이에서 타오르는 울분을 못 참아야 정상 이것만 여친이 있는 알바생은 4시에 퇴근하도록 명령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또라이 우지호 사장의 카페 '콩깍지'에서 알바하고 있는 유권과 저, 지훈 중에서 유권은 유유히 맑은 미소를 지으며 퇴근을 했고 내가 지훈이와 함께 우지호와 김유권을 신나게 까고 있으니 우지호는 지훈이에게 너 썸타는 사람 있다고 하지 않았냐면서, 지훈을 보냈다. 표지훈 이 배신자 새끼. 지훈이는 카페에서 나가는 끝까지 '사장님 짱!' 을 외치며 사라졌다. 카페엔 저와 사장만이 남았다. 아오, 짜증나. 누군 솔로이고 싶어서 솔로이고 썸타기 싫어서 안타나. 나는 고개를 뒤를 젖히며 사람 한 명 없는 카페의 나무 천장을 올려다봤다. 보통 크리스마스의 카페는 연인들로 넘쳐나야 하는데 사장부터 이상하니깐 이 카페는 이상하게도 사람 한 명 오지 않는다. 이번 달에 돈이 없다면서 월급 안주기만 해봐. 인터넷에 악덕 사장이라고 뿌려버릴 거야.
"경아, 초코 시럽 좀 가져와 봐! 아, 데코레이션 할 것들도 좀 가져오고."
확 나도 연인 있다고 말해버려? 하지만 그러면 못 믿겠다면서 내 카톡이나 뒤질 우지호가 눈에 선해 나는 관두고 신경질적으로 서랍을 열어 초코시럽과 데코레이션에 필요한 초코칩, 설탕으로 만든 알록달록한 과자들을 챙겼다. 카페면 커피와 머핀, 허니 브래드 같은 것만 하면 되는데 하필 사장의 취미가 빵이나 케이크 만들기라 저희 카페의 주방 서랍엔 온갖 빵을 만들기 위한 재료가 있다. 그리고 사장은 꼭 빵 만들 때 저에게 잔심부름을 시키고. 지금 저만 카페에 있어서 그러는 것도 아니다. 지훈과 유권이 있을 때도 항상 저만 시켰다. 짜증나, 진짜. 경이는 작게 궁시렁 궁시렁 거리며 사장실로 들어갔다. (카페에 무슨 사장실. 어휴.)
"사장님 난 퇴근 언제 해요? 사람들도 안 오는데."
"기다려봐, 손님 곧 올 거야."
"벌써 한 시간 가까이 안 오는데."
"월급 차감시킬 테니깐 가려면 가고."
"그럼 유권이랑 지훈이는요?"
"게네들은 임자가 있잖아. 크리스마스는 원래 연인들의 날이야."
"아닌데, 하느님의 거룩한 탄생일이에요! 커플들의 날이라니 그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근데 지훈이는 썸타는 건데, 연인이 아니라."
"오늘 같은 날 썸타는 여자한테 잘해줘야 연인으로 거듭나지."
"아오! 사장님도 솔로면서 그 꼴을 어떻게 봐요!!"
"조용히 하고 다시 나가서 계산대나 지켜. 나 데코해야되서 집중해야 한다."
"내가 서러워서 내년에는 꼭 애인 사귄다, 진짜. 아오!!"
"그 꼴 나게 가만히 안 둘 거니깐 그렇게 알고, 얼른 나가라니까?"
"나간다고요!!"
나는 신경질적으로 사장실 문을 쾅 닫고 쿵쿵거리는 성난 발걸음으로 다시 계산대에 섰다. 아, 외로워. 나는 한숨을 푹 쉬고 카톡을 들어가 친구들의 상메랑 프사를 살폈다. 다들 살맛 났어요, 아주. 행쇼는 무슨 얼어 죽을. 유권이 방금 찍은 듯한 여친과 같이 있는 사진을 프사로 해놨다. 김유권은 몇 시간 전만 해도 나랑 같이 이 계산대에 서 있었는데 왜 나는 지금 이러고 있고 김유권은 여자친구랑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거지? 진짜 눈물 난다. 아, 겁나 시린 내 옆구리. 엉엉. 경이는 계산대 위에 핸드폰을 던져놨다. 크리스마스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축제란 말인가.
"경아."
"으악! 아, 좀!!"
쥐도 새도 모르게 다가와서는 갑작스럽게 백허그를 한 우지호 때문에 정말 심장 떨어질 뻔했다. 아까는 그렇게 예민하게 굴더니 이제 와서 또 기분 좋게 웃고 있다. 우지호는 감정 기복이 심해서 비위 한 번 마치려면 오질라게 힘들다. 비위마칠려고 내가 했던 온갖 일들이 눈앞에 펼쳐져서 안구에 습기가 차려고 했다. 우지호는 내 어깨에 자신의 턱을 올려놓고 나를 작게 양옆으로 흔들었다. 밀쳐내고 싶었지만 키가 182cm나 되는 우지호의 체구를 무시할 수 없어서 나는 그냥 가만히 모든 것을 체념한 채 지호가 하는 대로 내버려뒀다.
"경아, 경아. 박껴어어엉."
"뭐요. 뭐."
"좋다고."
"크리스마스날 남자 둘이 껴안고 있고 참으로 좋겠습니다."
"개 귀여워, 진짜."
"여자 소개해줄까요? 여자 안 만났더니 이상해진 것 같아요, 사장님."
우지호가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어서 나도 같이 흔들렸다. 우지호는 나의 꽉 껴안은 팔을 다시 바로잡았다. 슬슬 더워지려고 한다.
"뭐 만들고 있어요? 지금 빵 굽고 있어요?"
"글쎄, 비밀."
"혼자만 먹으면 안 돼요."
"경아 너 한 번만 깨물면 안 돼?"
"아니, 사장님이 무슨 뱀파이어도 아니고 뭔 개소리세요."
"귀엽잖아."
"귀여우면 다 깨물 거에요? 신고해야겠다."
"뭐, 우리 둘이 혼인 신고?"
"잡채 먹고 싶은 기분이다."
우리 사장은 정말 정상이 아니다. 비정상적으로 남자인 나를 너무 좋아한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나에게 구애를 한다. 사장과 있으면 나도 정신이 이상해진다. 그러고 보니 항상 우지호와 저의 대화는 항상 일방적으로 짜증 내는 우지호에게 깨갱거리는 저의 안타까운 비명이나 개드립이 다였다. 한심하다, 진짜.
"경아, 초콜릿 좋아해?"
"네! 무지! 주시려고요?"
"설마."
"아, 당장 이 손 풀어요."
"싫은데, 예쁜 우리 경이 더 꼭 껴안고 있을 거야."
"윽, 나 토하고 올래."
징그러운 소리만 해대는 사장 우지호 때문에 토 좀 하고 오려 했더니 우지호는 팔에 힘을 더 꽉 주며 나의 배를 아프게 눌러왔다. 아프다고 징징대니 또 귀엽다면서 깨물어버리겠다고 나를 협박했다. 내가 정말 이 알바 때문에 10년이 늙는다. 그때 사장실에서 빵이 다 구워졌다는 알림음이 울렸다. 우지호는 나보고 아무 탁자에나 앉아있으라고 했다. 오, 나 주려나 보다! 나는 재빨리 카페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탁자의 의자에 앉았다. 사장실에서 우지호가 쟁반에 초콜릿 케이크를 들고 나에게 다가오길래 나는 환호를 하며 박수를 쳤다. 우지호가 나의 맞은 편에 앉고 드디어 초콜릿 케이크의 자태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초콜릿 케이크 위에는 얇은 화이트 초콜릿이 올려져 있었는데 그 화이트 초콜렛 위에 데코레이션 된 가느다란 초콜릿이 어떤 사람의 얼굴을 표현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게 바로 나 같단 이 말씀. 나는 이게 뭐냐는 시선을 우지호에게 보냈고 우지호는 환하게 웃었다.
"내 마음."
"다 씹어먹어 버리라고요?"
"자, 먹어봐."
내가 혼자 포크로 먹을 수 있는데도 굳이 우지호는 자기가 직접 나에게 떠 먹였다. 꺼림칙한 표정으로 받아먹으니 아주 뿌듯해한다. 이거 뭔가 뒤가 구린데. 나는 혹시 뭐 이상한 거라도 넣어놨나 싶어 아주 천천히 케이크를 씹었다.
"내 마음 받아준 거다."
"인소 좀 그만 보세요, 제발."
"사랑해. 사귀자."
"에?"
나는 삼키려던 초콜릿을 그대로 우지호의 얼굴에다가 뱉을 뻔했다. 제 귀가 잘못됐나? 환청이 들린 걸까? 그래, 그런 걸거야. 설마 우지호가 미쳤다고 나한테 사랑해, 사귀자, 라고 했겠어. 아, 지금 카페에 울려 펴지는 노래 안에 그런 가사가 있을 수도 있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짓다가 잠깐 멈칫했던 포크 질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사랑한다고 박 경."
"잘못 들은 게 아니었어?"
"이 케이크가 내 마음이라고 했잖아."
"......갑자기 왜 이러세요. 제가 뭐 잘못했어요?"
"갑자기라니. 나 항상 너 좋아했잖아."
"그건 다 장난......"
"순진하네."
제가 순진하다니, 그래 물론 가끔 우지호 사장이 저에게 하는 스킨쉽이 농도가 짙긴 했어도 스킨쉽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싶어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저를 좋아한다니. 아니, 사랑한다니!! 앞에서 핵폭탄이 터진 것과 비등한 충격을 받았다. 잠만 내 앞에 앉아있는 이 사장님이...나를...헐. 이건 말도 안 돼.
"......."
"너 나 싫어하진 않지?"
"...네...근데 저 지금 무척이나 당황스럽고 - ."
"그럼 됐네. 자, 어서 핸드폰에 저장된 내 이름을 서방님으로 바꿔나."
"아니, 그 건 무슨 논리에요? 싫지 않으면 다 사귀는 거에요? 게다가 사장님과 나는 둘 다 남자인데!"
"지금 어떤 세상인데 사랑에 성별을 따지고 있어. 경이 그렇게 안 봤는데 보수적이네."
"보수적인 게 아니라 정상적인 거거든요?!"
"차차 만나보면서 좋아하게 만들면 되지."
참나, 무슨 자신감으로 저렇게 말하는 거지? 제가 뭐 옴므파탈이라도 되는지 알아. 그러고 보니 우지호를 쫓아다니는 여자들도 참 많다. 우지호 때문에 이 카페에 오는 여자 손님들도 많다. 근데 왜.......저를. 뭔가 말로 설명되지 않은 기분이 찾아왔다. 뭐지? 왜 우지호는 저에게 그런 말을 했지? 저를 쫓아다니던 그 많던 여자들도 내팽겨두고. 과연 제정신일까? 끝도 없는 상심과 고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서 머리가 아파왔다. 그래서 나는 그냥 우지호가 만든 초콜릿 케이크에 집중을 가하기로 했다. 진짜 달고 맛있다. 근데 고백을 받고 난 후라 그런지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온몸이 근질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진짜 이상해. 이게 다 미친 우지호 때문이야.
"야, 밖에 봐봐. 눈 온다."
"오! 두 번째로 보는 눈이다."
"야, 그만 먹고 밖에 나가서 눈이나 맞자."
"눈은 보는 게 예쁜데."
"우리 연인 되고 나서 처음 보는 눈이잖아. 기념해야지."
"아직 허락 안 했거든요?"
"거절도 안 했잖아, 그게 허락이지, 뭐."
"하는 거 봐서 해줄 거에요!"
제 말에 지호는 실실 웃어댔다. 상황이 역전됐는데도 좋단다. 쯧쯧. 내가 먼저 일어서서 자동문이 열리는 버튼을 누르고 밖으로 나갔다. 언제 자동문에 붙여진 팻말이 closed로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지호가 제 뒤에 딱 붙어 따라나왔다. 하늘에서 눈이 하늘하늘 거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진짜 예쁜 눈이다. 우지호는 제가 나오자고 했으면서 춥다고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꼭 집어넣고 나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 섰다. 나는 두 손을 모아 앞으로 내밀며 내 손에 닿자마자 온기 때문에 사르륵 녹는 눈을 관찰했다. 우지호가 귀엽다며 한 손을 주머니에서 빼 나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야, 우리 운명인가 봐. 사귀니깐 하늘에서 눈도 내려주고."
"제발 오글거리는 말 좀 하지 말라고요!"
"알았어, 예쁜 네 말 들어야지."
"으악!!"
우지호가 허리를 살짝 뒤로 젖히며 웃었다. 아니 애인이면 막 다정하게 대해주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여전히 저 놀리기 좋아하는 걸 보니 변한 게 없네. 쯧쯔......아니, 잠깐? 제가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한 거지? 헐. 미쳤다! 미쳤나 봐, 어떻게 무의식적으로 우지호랑 제가 연인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어! 죽어라, 죽어! 나도 우지호를 닮아 미쳐가는 게 분명해. 망했다.
"에?"
그렇게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 안 하고 속으로 지랄발광을 하고 있는데 제 볼에 따뜻하고 물컹한 무언가가 닿았다가 쪽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갔다. 응? 뭐지?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우지호가 멍하니 앞을 보고 있다가 헛기침을 했다. 설마...너 지금 나한테 뽀뽀한 거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떡하니 벌렸다.
"뭐, 뭐야!!"
"그러게."
"헐...허를...."
"큼, 추운데 들어갈까?"
춥긴 무슨. 지금 저 때문에 온몸이 불에 타고 있는 것 같구만. 우지호는 나의 손목을 붙잡고 다시 문이 열리는 버튼을 눌러 카페에 몸을 들이게 했다. 달콤한 초콜릿 향과 온기가 나를 감싸온다. 우지호가 맞잡은 손목이 감전된 것처럼 찌릿찌릿하다. 열이 또 확 오른다. 으으, 진짜 이상해. 의사 선생님, 이건 뭔가요? 나도 모르게 울상을 짓고 말았다.
그리고 자동문이 닫혔을 때, 갑자기 우지호는 나를 향해 휙 뒤돌더니 나를 강한 힘으로 뒤로 밀어붙여 뒤통수랑 자동문이 부딪치게 했다. 나도 모르게 나는 아! 하며 크게 소리를 질렀고 그 틈을 타 우지호는 나의 볼을 저의 양손으로 붙잡고 입을 붙여왔다. 뜨거운 혀가 금세 들어와 나의 치열을 질척하게 훑고 나의 혀를 꾹꾹 누르기도 하며 휘감아오며 나의 정신을 몽롱하게 했다. 아, 젠장. 사귀자마자 첫키스야? 미쳤네, 미쳤어. 그중에서 지금 우지호의 키스 실력에 황홀해하고 있는 제가, 가장 미쳤다.
카페 유리창 주변에서 빨간색과 초록색의 작은 전구들이 깜박거리며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고 성탄절 노래가 작게 카페에 울리고 있었다. 눈은 더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2012년의 크리스마스는 새로운 연인을 만들고 누군가를 사랑에 빠지게 하는 날이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제 독방에서 글 쓰는데 귀여워 죽겠다고 난리쳤던;;;; 이번 글은 아주 망했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배틀호모 분위기도 나고ㅋㅋㅋㅋㅋㅋㅋㅋ완전 오글토글하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정말 창피해 죽겟다ㅋㅋㅋㅋㅋㅋㅋ근데 여러분 저 글 들고왔어요, 잘했죠? 삉ㅋㅋㅋㅋㅋㅋㅋ사실 이 글은 마지막에 나오는 장면, 유리문에 기대서 키스하는 직경을 보고 싶어서 싸지른 글 입니다....똥글 드려서 죄송해여..........흡흡 직경을 보고 대리만족이나 해야지....ㅋ모쏠인생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