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말라지고 비틀어지고 이 끝없는 갈증
눈물 한 방울 다 쏟아내고 Uh oh oh
갈라질 듯해 아니 갈라진 듯해 이미 갈라진 듯해
너와 나 이미 서로가 초라해진 듯해
W Project - 가뭄 中
"여기까지인거야, 우린. 알고 있었잖아"
모를리가 없잖아. 그래도... 그래도 내가 말 하게 해 주지. 먼저 마음 떠난 건 너였으면서 왜 너는 끝까지 나한테 나쁜 사람으로 남으려고 해.
이럴 거란 거 다 알고 왔으면서도 그 말을 네가 꺼낼 줄은 몰라서 난 지금 많이 당황스러워. 마지막까지 내가 약자이긴 싫었단 말이야.
혹시나 해서 묻는데, 너 그거 알아? 우리 3주년 딱 50일 남은 거. 아마 네 기억 속에선 오래 전에 사라졌겠지? 나도 굳이 알고 싶진 않았어.
근데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좋기만 했던 1주년의 나는, 너랑 계속 행복할 줄 알고 미련하게도 2주년, 3주년까지 다 핸드폰에 기록 해 둬서
이미 말라버린 우리 관계를 알 리 없는 핸드폰이 친절하게 카운팅을 해 준 거 있지. 아침에 네 전화를 받고 나오는데 보이더라, D-50 이라고.
"알지. 어떻게 모르겠어. 누가 봐도 우린 여기가 끝이었어"
"...그런가봐. 괜히 희망고문만 더 한 것 같다. 그치?"
"그럼 내일부터 너나 나나 솔로인거네. 축하해, 다시 솔로가 된 거"
"축하 받을 일인가, 그게? 딱히 좋은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래, 너도 축하해"
있잖아. 나 벌써 울 것 같으면 어떡해야 할까? 여기로 오는 길 내내 울지만 말자 하고 수 백번은 다짐한 것 같은데 입을 열자마자 눈물이
날 것 같으면 어쩌자는 건지, 나도 참 답이 없다. 그치? 마지막 기억은 예쁘게 남기고 싶어서 화장도 더 열심히 하고 머리도 신경 써서
하고 왔는데 끝까지 너 앞에서 난 안 되나 봐. 애초에 동등하지 않았던 관계는 끝까지 나를 힘들게 하려나 봐. 마지막까지 우리는 한 쪽이
더 무거운 저울의 모습으로 남게 되겠다. 수평은 아니더라도 얼추 비슷한 모양새는 갖추고 싶었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아, 바보같이.
"민현아, 황민현."
"응? 왜"
"아니야, 그냥."
"..."
메말라 버린다는 게, 입술도 피부도 아닌 감정이 메마른다는 게 이렇게 힘든건지 난 몰랐어. 내가 네게 가지는 감정이랑 네가 내게 가지는
감정을 손에 쥐고 힘을 주면 바람에 너무 쉽게 날아갈 것 같아. 바닥에 남는 것 하나 없이 너무 가볍게. 그 안에 우리 추억, 기억, 하나하나
모든 순간들이 물기가 말라버린채로 붙잡을새도 없이 사라질 것 같아. 감정이 메마르니까 관심이 사라져서 한 때는 포근했던 정적의 공기
마저도 지금은 너무 무겁고 아파. 수분기 하나 없이 바싹 말랐는데도 왜 이렇게 무겁니. 왜 그런걸까, 민현아. 뭐가 이렇게 난 힘든걸까
"그냥, 몇 번을 생각 해 봤는데 이 말은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런 말 있잖아.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 그러니 조금만 견디고 힘내면 괜찮아 질거라고"
"근데 우린 이미 너무 말라버려서, 눈물 몇 방울론 되돌릴 수 없어졌어. 땅이 굳기엔... 비가 많이 모자라"
평소에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잔인한 말도 넌 참... 예쁘고 다정하게 하는구나. 그래, 맞아. 비 한 두 방울로 마른 땅은 회복되지 않지.
그 땅이 마른 적이 있기나 했었던 것처럼 비가 흠뻑 내려 땅을 적셔야, 그리고 나서야 땅은 굳을 수 있는거야. 그러니까 지금 내 눈에서
비가 한 두 방울 흐른다고해서 우리가 만들고 가꾸었던, 하지만 지금은 너무도 말라버린 그 땅은 굳을수가 없어. 그냥.. 버려져야 해
왜냐면 너와 나는 이제 서로를 좋아하지 않거든. 익숙함도 편안함도 남지 않은 사이는 끝나는 게 맞아.
*
넌 믿을지 모르겠지만 이 자리가 무서웠어. 어떤 분위기에서 어떤 말들이 오갈지 뻔히 알면서도 그 곳으로 가야 한다는 건 생각보다 꽤 많이
힘들고 무거운 걸음이 될테니까. 이별을 예감하는 것과 얘기하는 건 엄연한 다르다는 거 너도 알고 있잖아. 무서운 것과 무거운 것의 차이.
그래서 그냥 내가 얘기했어. 너를 향한 애정은 일찍이 말라버린 눈을 더 마주하게 하는 건 네게 너무 큰 벌이잖아. 그 정도의 양심은 있어, 나.
"나 먼저 일어날게. 그동안 참 많이 미안했고 또 고마웠어."
"나도. 나 같은 애랑 연애하느라 고생 많았어. 수고했어, 황민현"
"무슨... 아니야, 그런 거. 나 진짜 갈게, 안녕"
난 이 길로 집에 가서 푹 자려고 해. 왠지 그러고 싶었어. 가능하다면 얼굴이 퉁퉁 부을만큼 오랫동안 길게. 이제 잘 보여야 할 누군가도 없잖아.
넌 나를 많이 미워하게 될까, 나를 욕하면서. 그리고 꾹꾹 참았던 눈물도 쏟아내겠지. 이건 너 좋을대로 생각해도 괜찮은데 먼저 가는 건 내
나름의 배려야. 걸어가면서 우는 것보단 차라리 카페에 앉아 눈물을 흘리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그럼 '저 여자 왜 저래' 라는 말보단 '애인이랑
헤어졌나 봐. 남자가 나쁜 놈이네' 하며 수군댈테니까. 사람들이 너보다는 나를 욕했으면 해. 이 말엔 한치의 거짓도 없어. 나 나쁜 놈 맞잖아
"많이 예뻤네. 너도 나도"
이제 정말 정리를 해야만 해서 찬찬히 살펴보는데 미처 신경 쓰지 못 했던 곳에서 너를 발견했어. 카톡 프로필 사진, 나보다는 남이 볼 일이
더 많아서 인식하지 못 했는데. 어렴풋이 기억나는 저 때의 너와 난 그래도 행복했나 봐, 웃고 있는 걸 보니. 사진 속 너와 눈을 마주하기가
힘들어서 삭제를 누르려는데 그거마저 힘이 들어 그냥 눈을 감아버렸어. 그러니까 어이 없게도 네가 떠오르는 거 있지. 사진에 비해 반쪽이
된 얼굴도, 너도 몰래 물어 뜯느라 어느새 메말라버린 입술도. 신경을 썼는지 오늘따라 유난히 예뻐보이던 모습도. 왜 이제 와서 이러는걸까
"그냥.. 눈 뜨고 일어나면 예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서로가 서로를 몰랐던 때로"
담담한 이별이라는 걸 한 줄 알았어, 나는. 너도 나도 예전에 놓았어야 했던 끈을 오늘에서야 비로소 버린 거니까. 근데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오늘 하루 먹은 것이 없는데도 속이 답답한 걸 보면 세상에 그런 건 없나 봐. 애초에 존재할 수 없는 거야, 끝이 아무리
차가웠다고 해도 머리가 잊어버린 기억을 몸과 마음은 아직 놓지 못 해서 끝을 받아들이는데에는 시간이 좀 걸리나 봐. 기다려야지, 뭐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진 것도 가슴이 답답하고 아려오는 것도 예상치 못 한 결과는 아니니까. 한동안은 새삼스레 네가 그리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끝내는 게 맞아. 미련과 후회는 어떤 상황이든 찾아오는거니까. 내가 네게 조금이라도 진심이었으니까 난 당연히 아파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