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만에 만난 친구 놈과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많지 않았다. 하루종일 TV로 나오는 뉴스만 노려보며 정신 사납게 다리를 덜덜 떨어댄 덕분에 컴퓨터를 들고 찾아오던 손님들은 하나같이 별 이상한 놈을 다보겠네, 하는 표정으로 컴퓨터만 맡긴 채 사라졌다. 어느새 시간은 11시가 넘어섰지만 나는 유리문을 잠그고 블라인드를 내렸을 뿐 가게인 1층의 불은 끄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서 다리만 덜덜, 엄지 손톱은 하도 물어뜯어서 엉망이 된지 오래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탕탕, 유리를 두드리는 소리에 번쩍 고개를 들고 나가자마자 보인 것은 눈 밑이 다 죽어서 힘없이 서있는 표지훈이었다.
녀석을 안으로 들인 뒤 다시 문을 잠그고, 소파에 앉은 놈에게 담요를 건넸다. 담요를 받고도 덮지 않고 멍하니 손에 쥐고 있는 놈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고 가게 구석에 있는 싱크대로 다가갔다. 냉장고 위에 늘어진 커피믹스 하나를 집고 종이컵 대신 내가 쓰는 컵에 커피를 타기 시작했다. 나도 표지훈도 말이 없어서 가게에는 TV에서 나오는 여자 아나운서의 낭랑한 목소리만 울려댔다. 현재 인터넷에서 X구역의 제 2차 폭발과 오늘 일어난 서울 폭동이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되어 일파만파로 퍼져나가고 있지만 이에 대해 서울연구소 측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반박하고 있습니다...한참을 달그락거리며 커피를 휘젓다가 표지훈에게 건넸다. 말없이 커피를 받고 고개를 숙이는 녀석.
"살아있네."
그러자 히죽 웃으며 손에 든 컵을 입가로 가져다대는 녀석. 야, 얘기 좀 해. 뭔 일이야. 내가 재촉하는데도 느릿느릿 뜨거운 커피를 잘도 마시는 녀석. 건너편 소파에 앉아 나도 턱을 괴고 녀석을 바라보는데 한참이 지나서야 천천히 입을 연다.
"우지호."
"뭐?"
"우지호는 이번에 마음을 단단히 먹었어. 정말 꽃을 피울 생각인가봐. 폭발을 일으켜서 사방을 불순물질로 막아버렸으니까."
나는 우지호가 누군지 모른다. 하지만 우지호라는 이름을 내뱉는 표지훈의 표정이 우지호? 그게 누군데, 라고 물으려던 내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대체 그게 누군데. 그 때 표지훈의 옷 주머니 끝에 비죽 튀어나온 종이가 눈에 띄었다. 내 시선이 종이에 박히는 걸 눈치챘는지 피실 힘없는 웃음을 흘리며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는 녀석. 그저 평범한 종이인 줄 알았던 그것은 사진이었다. 사진의 남자 아이는 조금 멍한 표정. 조금은 날카로운 인상과 대조되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사진일 뿐인데도 눈에서 풍기는 묘한 위압감에 나는 이를 오래 보지 못하고 곧바로 이를 뒤집었다. 그 위에 누군가가 손으로 쓴 글씨. '우지호'. 나는 고개를 들어 내 앞에서 또다시 후룩, 커피를 마시고 있는 표지훈을 바라보았다.
"이거, 지코잖아."
"..."
"한국H연구소 히든사이트. 지코, 맞지?"
어, 맞아. 그렇게 말하며 표지훈이 내 손에 들린 사진을 가져가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지코가 왜 거기에 있는 거야. 서울 폭발 때...설마, 그 폭발에서 살아남았다는 건 아니겠지."
"자세한 건 아무도 모르는 거야."
그야, 맞는 말이네. 하지만 무심하게 말하는 표지훈의 얼굴이 꼭 '나는 알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나는 의심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넌 알잖아. 우지호가 뭔데. 그러자 또다시 커피를 한 번 홀짝인 표지훈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몇 달 전에, X구역 탐사를 나간 적이 있어. 그 말을 시작으로 표지훈이 느리게 풀어내기 시작한 이야기는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야기가 시작된 순간부터 이미 다른 것들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한참을 나는 멍하니 표지훈의 말을 듣고 있었다.
"나중에 돌아올 때는 우지호가 길을 터놓은 건지 뭔지, 금방 밖으로 나오게 되더라. 그렇게 나오고 보니까 연구소는 발칵 뒤집혔고. 일단 급하게 물건이라도 챙기려고 안에 들어갔...다가, 갔다가 다시 나왔는데."
이상한 부분에서 말을 더듬은 표지훈은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 이에 답답해진 건 내 쪽. 내가 툭툭치며 표지훈의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바닥에 박고 있던 시선을 내 쪽으로 옮긴다.
"X구역 한가운데에서 빛이 나고 있었어."
"빛?"
"그냥, 갑자기 빛이 한 줄기 올라왔어. 웬만한 건 불순물질 때문에 보이지도 않을텐데 너무 잘 보였어. 처음엔 그냥 그걸로 끝인 줄 알았는데 하나 둘씩 더 올라왔어. 그리고, 그리고 나서는."
표지훈이 잠시 입술을 떨다가 이내 꾹 물었다. 뭘 말하려는 건지 알겠다. X구역 제 2 폭발. 예전에 서울 사태 때 생존자와의 인터뷰를 본 기억이 난다. 강한 빛을 봐서 실명했다던 그 남자. 빛이 났어요. 빛이 하나, 둘 늘어서 나중엔 사방이 빛이었어요. 계속해서 그 말만 읊어대던 남자는 6개월 뒤 사망했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 심드렁하게 매점에서 산 우유를 마시면서 봤던 기억이 있다. 내 앞에 있는 표지훈은 우지호란 놈이 도와준건지 뭔지 눈도 멀쩡한 것 같다만.
"그냥, 그랬어."
표지훈이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는 모르겠다만, 그래도 살아있는 게 중요하니까. 표지훈의 어깨를 탁탁 두드려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올라가서 한숨 자라. 그러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표지훈. 계단을 올라가는 녀석의 등짝에 나 피곤해요, 하고 큼지막하게 쓰여있는 것 같다. 표지훈이 올라가고 나서도 나는 잠시 서성거리며 가게에 남아 있었다. TV에서는 아까와는 다른 여자 아나운서가 똑같은 말을 읊어대고 있었다. 네, 오늘 있었던 X구역 제 2 폭발은....
1년. 흔한 말로 표현하자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폭동에, X구역 폭발로 인해 잠시 소란스러웠던 대한민국이지만 웬만한 곳은 이미 다시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가 있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고, 하루가 멀다하고 컴퓨터를 싸들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정도면 CPU 새로 가시는 게 나을 거 같은데요. 내 말에 남자는 잔뜩 인상을 쓰며 투덜거리다가 '그럼 연락주세요'하고 가게를 나갔다.
"송민호."
"지금 일어났냐, 설마?"
"어떻게 알았냐."
2시를 알리고 있는 시계와 표지훈을 번갈아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병신이.
표지훈도 나도 일년동안 놈이 연구소에서 있을 때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처음에 표지훈이 입고 왔던 옷은 빨래를 할 때 뒤져보니 사진이 사라져 있었다. 대체 표지훈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하여간에, 정말. 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탈탈 털며 소파에 앉는 표지훈에게 그 날의 우울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고등학생 때의 생각없던 모습과 더 닮아 있었다.
"야, 송민호."
"왜."
"나 사람 좀 찾아 줘."
"웬 사람."
음, 그니까. 잠시 TV만 바라보며 입을 다물고 있던 녀석이 이내 축축한 수건을 바닥에 널브러뜨리며 답했다. 이태일.
"뭐?"
"뭐가."
"아니, 내가 잘못 들었나 해서. 누구라고? 이태일?"
"응."
"설마 내가 아는 그 이태일은 아니지?"
맞는데. 그 말에 기겁한 건 내 쪽이었다. 이태일? 1년동안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녀석이 뜬금없이 저렇게 나오니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이태일? 이태일은 갑자기 왜. 그러자 '그런 건 물어보지 말고 그냥 찾아달라면 찾아 줘'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녀석. 슬리퍼를 질질끌며 다시 계단으로 가던 녀석이, 힐끗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설마 못 찾아서 그러는 건 아니지?"
아니, 저 새끼가 근데. 인상을 쓰며 '맞을래?'하자 히죽 웃으며 '그럼 찾아줘'하고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한다. 놈의 뒷모습이 2층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멍하니 그 쪽만 바라보던 나는 천천히 입을 다물었다. 뭐지? 뭐지? 이태일이라니.
히든 사이트에서 보았던 이태일의 사진이 생각났다. 10년 전 사진이긴 했지만 그 사진에서 본 이태일이라는 사람은 아무리 봐도 그저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장난끼가 많아 보이는 개구진 인상. 쳐진 눈꼬리가 꽤나 선한 인상이라 호감을 주는 남자였다. 물론 지금은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10년, 아니 11년이나 지났으니까. 표지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꽤나 히스테릭한 성격이던데. 지금도 과연 그 모습일까. 멍하니 남자의 얼굴을 생각하던 내 눈에, 바닥에 널브러진 젖은 수건이 들어왔다.
"야, 표지훈! 수건 안 갖고 가? 너 나가, 개자식아!"
찾았어.
그 말에 웃으며 화분을 만지고 있던 표지훈의 얼굴이 굳었다. 애지중지하던 화분에서 천천히 손을 뗀 녀석이 한숨을 푹 내쉬며 창턱에 올려둔 화분만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태일, 찾았어? 어. 찾았어. 어딨는데.
"부산."
부산이라고? 표지훈이 인상을 쓰며 뒷목을 주물러댔다. 열린 창문으로 찬 바람이 들어오기에 나는 화분을 안전한 곳으로 옮긴 뒤 창문을 닫아버렸다. 한참을 얼굴을 굳히고 있던 표지훈이 이내 얼굴을 피고 웃으며 내게 말했다. 야, 송민호. 부탁 하나 더 있어.
"왜, 또. 누구 또 찾아줘?"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럼 뭐."
"네가 나 대신 이태일 좀 만나야겠다."
뭐, 이 미친 놈아? 잠시동안 놈이 진심으로 미친 게 아닐까 고민했다. 하지만 표지훈은 그저 싱글벙글 웃기만 할 뿐. 내가 잠시 어버버거리다가 '내가 지금 헛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하고 말하자 '아니, 헛소리 아닌데?'하고 웃는 낯으로 대답한다. 야, 이 미친 놈아.
"내가 이태일을 왜 만나. 네가 만나야지. 난 그 사람 누군지도 모르거든."
"아니, 그냥 네가 좀 만나 줘."
"이유가 뭔데, 대체? 너 그 인간하고 친하지 않았어? 근데 왜 굳이 나보고 만나라는 건데?"
그러자 다시 입을 꾹 다물고 표정을 굳히는 표지훈.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킥킥, 낮게 웃음소리를 낸다.
"모르겠어. 그냥, 네가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니놈 새끼가 가."
그러자 아예 바닥에 벌러덩 눕는 표지훈. 내가 경악하는 표정으로 보자 좋다고 빙구처럼 웃어댄다. 네가 좀 가. 알았지? 하느님 맙소사, 대체 왜 저런 새끼를 만들어주신 겁니까. 예?
내가 지금 대체 뭐하는 거야, 여기서. 한숨을 내쉬며 푹 눌러쓴 모자챙만 만지작거렸다. 병원 건물 앞에서 가방 하나를 둘러메고 서 있자니 기분이 영 그렇다. 표지훈이 올 자린데 왜 내가 와 있지? 하여간 표지훈 그 새끼는 대체 무슨 생각인지. 한숨을 내쉬며 병원 내부로 들어갔다.
[환자 분들의 건강 때문에 엘리베이터의 속도가 느립니다.]
엘리베이터 구석에 있는 모니터에 떠 있는 문구. 하지만 한 번씩 그 문구를 보며 투덜거리는 건 병원복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아, 졸라 느려! 병원복을 입은 중학생 정도의 여자애가 말하자마자 옆의 교복 두 명이 '맞아, 맞아'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갑갑하고 좁은 엘리베이터가 느릿느릿 8층에 도착하고, 나를 비롯한 꽤 많은 사람들이 8층에서 내렸다. 어휴, 됐다. 이제 좀 살겠네. 숨을 들이쉬며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808호.
이ㅇㅇ
808호는 3인실이었지만 입원한 사람은 한 명이었다. 성이 이씨인 사람. 그럼 역시 맞겠지. 문 손잡이에 손을 얹었지만 쉽게 열지 못했다.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야. 와야되는 건 표지훈 아닌가? 인상을 쓰고 있다가 간호사가 이상하게 쳐다보며 지나가기에 한숨을 쉬며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건 창가 쪽 침대에 앉은 남자 한 명. 유리창에 가만히 올려둔 손. 살짝 흘러내린 병원복 소매 위로 보이는 손목이 얇다. 병실 문을 닫자 찾아온 정적. 조용한 병실 내엔 가습기 돌아가는 소리만 들렸다. 한동안 둘 다 말이 없다가,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박경, 오늘 못 온다더니. 어떻게 왔네."
그렇게 말하면서도 남자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창 밖을 바라볼 뿐이다. 전망이 꽤 좋다. 높은 건물도 없고,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새파랬다. 남자는 한참이 지나도 답이 없자 의아했는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가 자신이 아는 사람이 아니란 것에 놀랐는지 움찔. 누구야.
"안녕하세요, 이태일 박사님."
그러자 이태일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여전히 경계하는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연 이태일. 표지훈이야? 예? 내가 표지훈이라고요? 잠시 눈살을 찌푸리다가 문득 든 생각은 하긴, 목소리 때문에 헷갈릴 수도 있겠네, 이거였다. 하지만 이태일은 내가 표지훈이 아니란 것도 알았는지 눈을 가늘게 뜨며 몸을 뒤로 뺐다. 두 다리는 이불 속에 가려진 채였다.
"누구야."
"표지훈은 아니고요, 표지훈 친구 송민호라고 합니다."
표지훈 친구라고? 남자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인상을 팍팍 쓰며 묻는다. 표지훈은 어디가고 네가 와? 표지훈에게 듣던대로 한 성깔 하는 모양이다.
"표지훈은 사정이 있어서 못 왔고요, 대신 제가 왔어요. 표지훈이 부탁을 해서, 전해드릴 것도 있고."
이태일이 긴장이 풀렸는지 잔뜩 굳어 있던 어깨를 힘없이 내렸다. 고개를 숙인 채 뭐라 궁시렁거리던 이태일이 고개를 들며 다시 물었다. 뭐하려고 온 거야. 그리고 표지훈이 안 오고 왜 뜬금없이 표지훈 친구가 와. 아무리 사정이 있대도 그 새끼 대신 네가 올 이유는 없잖아. 예, 맞아요. 박사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 표지훈은 대체 뭐하는 새낍니까?
"일단 그냥, 표지훈이랑 우지호랑 동굴에서 도망갔던 날, 그 날 이야기도 해야되고 박사님은 어떻게 지내셨는지도 들어오라고 했어요."
"나 이제 박사 아니야."
궁시렁거리며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내가 봤던 사진은 그저 선해 보이는 인상이었는데 이렇게 보니 딱히 그렇지도 않다. 분명 쳐진 눈꼬린데 어째서인지 날카롭게 보이는 눈이 한 몫 했다. 무슨 사람 눈빛이 저렇게 사나워.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모자를 벗은 뒤 의자를 끌고가 침대 앞에 앉았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어떻게 지내긴. 보시다시피 병원 생활하잖아."
투덜거리던 이태일이 이내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날 둘이서 그렇게 가고 나서, 박경 부축 받으면서 겨우겨우 동굴 밖으로 나왔어. 나오고 보니 기다린다던 군인들은 없지, 연구소랑 통신도 안 되지. 우리 둘 다 망했구나, 하고 어찌어찌 연구소까지 갔는데 아주 난리가 났더라. 그래서 일단 박경이랑 같이 서울 떴고 여차저차해서 부산까지 왔어."
"근데 왜 병원에 입원해 계신 거에요."
"이 병원이 재활로 좀 유명하다며. 그래서."
이태일이 창 밖을 내다보다가 이내 창문에 콩, 머리를 기대었다. 밖을 바라보는 이태일의 표정이 어딘가 아련하다. 눈가가 물기로 젖어갈 때 쯤에야 이태일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 표지훈은 잘 지내?
"잘 지내요. 저희 집에 얹혀 살고 있어요."
"네가 혹시 걔야? 컴퓨터 잘 다룬다는?"
"예? 아아, 네. 표지훈이 그런 것도 말했어요?"
"어. 컴퓨터 수리점한다고 고장나면 다 너한테 맡기라던데. 공짜로 해줄거라면서."
그렇게 말하며 개구지게 웃는 이태일. 표지훈에게 들어왔던 이미지보다는 생각보다 좋은 사람인 것 같다. 이태일의 시선이 내가 바닥에 내려둔 가방에 닿았다. 저건 뭐야? 뭐 들었어? 그러고보니 전해줄 거 있다 그러지 않았냐. 그제야 나는 '아아'하고 가방을 들어 올렸다.
지퍼를 열고 빈 화분 한 개와 진공포장 된 씨앗을 꺼냈다. 그걸 보는 이태일의 얼굴에 의아함이 가득 들어찬다. 그게 뭐야.
"표지훈이 연구소 갔다가 찾은 씨앗이에요. 우지호 방 바닥에 이거랑 같이 떨어져 있었대요."
그렇게 말하며 조금만 힘을 줘도 찢어질 것 같은 쪽지를 건넸다. 그 쪽지를 받은 이태일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아간다. 쪽지에 적힌 세 글자, '이태일'. 가만히 그 쪽지를 바라보던 이태일이 조심스럽게 종이를 원래 모양으로 접어 두 손 안에 쥐었다. 두 손을 맞잡고 있던 이태일이 천천히 눈을 감고, 속눈썹이 미미하게 떨려왔다. 바르르 떨리던 입술이 뱉은 말은 '우지호'. 금방이라도 울 것 같던 이태일은 이내 입술을 꾹 물고 고개를 들었다.
"우지호 병신."
"..."
"그냥 주면 될 걸, 왜 이렇게..."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이태일은 조금은 떨리는 한숨을 뱉으며 종이를 창턱에 올려두며 이불을 걷었다. 마른 두 다리가 드러나고 나는 표지훈이 했던 말이 떠올렸다. 이태일은 다리를 못 써.
"걸을 수 있으"
이태일이 바닥에 얌전히 놓여 있던 슬리퍼에 발을 구겨넣고 자리에 섰다. 잠시 비틀거리던 이태일이 이내 화분과 씨앗을 들어올리며 화장실로 걷기 시작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하자 어떻게 알았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넌 앉아 있어. 내가 할 거니까."한다. 잘 보면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지만 언뜻 보기엔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걸음걸이였다. 뭐아, 표지훈. 뻥 친 거야? 화장실로 들어간 이태일. 한동안 물소리만 들리고 나는 멍하니 병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과연 우지호는 어떤 놈이었을까. 이태일이랑 친구였다고?
지잉. 핸드폰 진동 소리에 시선은 여전히 창 밖에 고정 시킨 채로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핸드폰 액정에 뜨는 이름은 표지훈. 문자?
[송민호 고맙다-표지훈]
뭐야, 갑자기. 가만히 문자 내용을 바라보다가 인상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가'라고 답장을 보내려다가 그냥 통화버튼을 누르니, '전화기가 꺼져 있어...'하는 여자의 목소리만 흘러나올 뿐이다. 뭐야, 표지훈. 뭐야. 뭔데. 가만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이태일이 문을 열고 나오다가 날 의아하게 바라본다. 왜 그래? 침대 옆 탁자에 화분을 내려놓은 이태일이 손을 탁탁 털기 시작했다.
"박사님, 저 죄송한데 가야될 것 같아요."
"그래? 금방 왔다 금방 가네."
"죄송해요. 가게에 일이 생긴 것 같아서 가볼게요."
이태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표지훈한테 안부 전해주고, 어쨌거나 고맙다. 네, 건강하세요. 어색한 인사를 마친 뒤 나는 곧바로 병실 문을 열었다.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밝은 빛에 잠시 인상을 쓰다가 뒤를 돌아보니, 이태일은 화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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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해요 제가 많이 늦었죠 흡 심지어 필명도 또 바ㅋ뀜ㅋ병맛이야!!병맛이라거!!! 쓰다가 세 번 날아가서 깊은 빡침을 느끼고 다시 썼는데 처음 썼던 것 만큼 안나오네여...ㅁ7ㅁ8 나중에 꼭 수정을 해야져 뭐... 아 글구 원래 여기서 끊으면 안되는데너무 급하고 당분간 글 쓸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서 일단 이렇게 올리고 갈게요ㅍ퓨ㅠㅠㅠㅠㅠㅠㅠ밉다고 떄리면 앙됨 다음편 제목이 21-2일지 아니면 22편일지 저도 궁그미 근데 제가 평소에 여기다가 무슨 말을 썼었나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갑자기 왤케 어색하게 느껴지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상해옄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도 내가 아닌 것 가타....ㅁ7ㅁ8 늦게왔다고 욕하시면 오장육부를 토할 기세로 통곡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