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들의 거리
부제: 학교소동(上)
까만어둠속을 걷고 있었다. 한줌의 빛도 허용하지않는듯 모든 빛을 집어삼키고 있는 어둠속을. 한치 앞도 보이지않아서 지금 제대로 걷고 있는건지 확인은 할 수없었으나,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한다는 생각만 머리에 가득했다. 그렇게 걷고 걷고, 또 걸었을까 얼마의 시간이 흐른지, 내가 걸어온 길이 어느정도 되는지는 되돌아볼수없었지만 다리에 서서히 힘이 풀려가고 있는걸로 봐서는 꽤 많은 길을 걸어온게 분명했다.
'드디어 눈을 떴구나.' 그때 어둠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낯설지않은 목소리였다. '누구세요.' 내 목소리는 어둠속으로 조용히 사라져갔다. 내 말에 되돌아오는 목소리는 없었지만 대답을 대신하는듯 눈 앞으로 푸르면서도 붉은빛이 서서히 퍼져갔다. 이 오묘한 빛은. '혹시 옛날에 본 그 천사님이신가요?' 내 질문에 빛은 크게 일렁이며 이내 사람의 형태를 갖추어갔다. '이번에도 나를 천사라 부르는 구나, 넌.' 웃음소리라기에는 특이했지만 목소리가 유쾌한걸로 유추해봤을때 웃는게 틀림없었다. '다..당신은 도대체 누군가요?' 거인처럼 커다란 몸을 그리고 있던 빛은 한순간에 작은 원을 그리며 내 얼굴 앞으로 다가왔다. '이런 문양을 본적이있을거다.' 붉은빛과 푸른빛이 오묘하게 뒤섞여 삐뿔삐뿔하게 그려내는 원모양, 색은 달랐지만 지난번에 악귀에서 죽음을 당할뻔한 절체절명의 순간 내 손목에 생겼던 문양이 틀림없었다. '이거 당신이 제게 주신건가요? 절, 우리를 살려주신게 당신인가요?' 내 말이 끝나자 내 왼쪽 손목에서 푸른빛이 동그랗게 빛나기 시작했다. '역시 넌 아주 선명한 푸른빛이구나, 널 살려준게 아니라 오히려 사지로 몰아낸걸지도 모르지, 앞으로 죽고싶어지는 순간이 생길거다. 그럼 그때처럼 니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버티거라, 미안하구나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없어서 부디 잘 버텨주기를 바란다.' 내 손목에서 쏟아지는 푸른빛으로 오묘한빛이 집중되더니 내가 알지못할 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내가 뭐라 질문을 퍼부을새도없이 내 속목을 한번 휘감아돌더니 그대로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잠시만요, 가지마세요!' 소리를 치며 벌떡 일어나니, 어둠속이 아니라 침대위였다. 샤워라도한듯이 머리부터 등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또 꿈을 꾼건가. 왼손을 들어 손목을 들여다보는데 전에는 없던 동그란 문양이 생겨났다. 동그라미를 따라서 검지손가락으로 천천히 만져보았지만 그때처럼 푸른빛이 나오지는 않았다.
낄낄낄 이년 살아났네 살아났어 거봐, 내가 안죽는다고 그랬지 내놔, 하루만 더 누워있었어도 길동무로 삼을 수 있었는데 저들끼리 내기라도 한건지 내기에서 진 귀신은 나를 아쉽다는 눈빛으로 노려보며 눈알하나를 빼내어 옆에 있던 귀신에게 주었다. 그 옆에 얼굴에 입만 가득한 귀신이 이마에 넘겨받은 눈알을 박으며 눈을 연신 깜빡깜빡거렸다. 그리고는 이제 잘 끼워넣은건지 깜빡이던 눈을 내게 고정시키고는 잘보이네 내 앞에 있는 맛있어보이는 년이 말이야 라고 얼굴에 달린 입이 차례로 말을 하더니 한꺼번에 열개가 넘는 입들이 동시에 입을 쩍 벌리고는 내게로 빠른속도로 날라왔다. 무..뭐야! 갑자기 벌어진 일에 나보다도 내게 달려오던 귀신이 더 놀라며 내게서 한걸음 물러났다. 그러다가 다시 내게 다가왔지만 결과는 같았다. 내 몸에 닫기도 전에 귀신은 무언가에 걸린듯 튕겨져 나갔다.
그 뒤로 집에 있던 다른 귀신도 내게 달려들려고 시도를 했지만 번번히 내게 닫지못하고 떨어져나갔다. 나조차도 갑자기 생긴 이상한 일에 상황파악을 하지못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내게 다가오지못하는게 짜증이 났던 귀신이 살기를 내뿜으며 내게로 달려왔다 그리고 그 순간 손목에 있는 동그란 문신에서 푸른빛이 약하게 빛나더니 내 주위로 동그랗게 결계가 쳐졌고, 내게 달려오던 귀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뒤늦게 배터리가 나간 폰을 충전하고 나서야 부재중이 100통이 넘게 걸려와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제일 마지막으로 연락을 남겼던 지훈이에게 [미안, 나 지금 사무실로 갈게]라고 문자를 보내고는 준비를 서둘렀다. 처음으로 붉고 푸른 빛을 봤을때보다는 아니었지만 이번에도 꽤 긴 시간인 3일정도를 꼬박 자고 일어났다. 매일 사무실에 출근도장을 찍으러가던 내가 사무실에 오지도 않으니 연락을 했나보다. 본의아니게 폐를 끼친것같은 생각에 발에 땀이 날 정도로 뛰었다.
사무실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가는데, 12개의 눈이 나에게 꽂혔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어색하게 발을 들이며 인사를 하는 내 목소리에 다들 내게 시선을 고정한채 심각한 표정을 풀지않았다. '좋은 아침은 아닌것 같네요..어, 그게 저..그러니까 죄송합니다.'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할지 몰라서 더듬거리며 말을 하다가 이내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사과를 했다. '아, 누나 큰일 난줄 알고 놀랐잖아요', '저번에 집에서 우리 기다린다고 해놓고 먼저 가더니 연락도 안되고! 누나 너무한거 아니에요.' 내 사과에 정적도 잠시 내게 다가오며 툴툴거리는 대휘와 관린이의 말을 시작으로 소란스러워졌다.
소파 중앙에 앉아서 설명을 하라는듯 나를 보는 눈동자에 이마에서 땀이 흐를것 같았다. '저, 근데 다니엘오빠랑 성우오빠는 아직 병원에 있어야하는거 아니에요?' 일단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던진 질문에 '퇴원했지, 벌써 3일이나 지났잖아.' 삼일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며 말을 하는 다니엘오빠의 말에 결국 내 발등을 찍고 말았다.
'죄송해요, 그게 오랜만에 지방에 사는 친구를 만나서 술마시고 놀다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내 손목에 생긴 문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알지못했기에 손수건을 감싼 왼쪽 손목을 뒤로 감추며 서툰 거짓말을 했다. 친구랑 놀다가 3일이나 지나가는 걸 몰랐다는 말도 안되는 변명에 속아넘어가줄까 거짓말을 하면서도 걱정이 되었는데 '와, 김여주 대박이네, 생각보다 주당인가봐, 오오 담에 나랑도 마시자'라고 말을 하는 우진이를 필두로 '여주야 난 니가 엄청 바르게 사는 줄만 알았는데, 이런 인간적인 면도 있었어? 더 마음에 드네.'라고 말을 하는 지훈이까지 내 거짓말을 덥석 물어버렸다. 누가 속을까 걱정했는데 진짜 속는 사람이 있었네, 그것도 둘이나.. 내 옆에 붙어서 여주 넌 주량이 얼마야 소주 3병은 기본인거야?, 너 친구들 예쁘게 생겼어? 삼일동안 달린것치고는 상태가 진짜 멀쩡하네라고 말을 하는 우진이와 지훈이의 머리를 지성이오빠가 쥐어박으며 '둘다 다단계회사에서 아주 두팔들고 환영하겠다.'라고 말을 하였다. 우진이와 지훈이는 맞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아 진짜 형들은 맨날 머리만 때린다니까.', '맞아, 그러니까 맨날 니가 머리가 나빠지는데 말이야.'라고 하며 투덜거렸지만 지성오빠는 둘의 말은 가볍게 무시하며 무릎을 굽혀서 나와 눈을 마주쳤다. '어디 다친데는 없는거 같고, 얼굴도 괜찮고, 무슨일 없었지?'라고 묻는 지성오빠에게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입을 끌어당겨 웃으며 '그럼 됐어, 그래도 다음부터는 무슨일있으면 꼭 연락하고, 다음에는 그냥 안 넘어가줘.'라고 말을 하고는 아직도 투덜거리는 둘의 머리를 한대 더 쥐어박으며 책상으로 갔다.
지성오빠의 말에 한시름놓고있는데, 맞은편 소파에서 입은 웃고 있지만 전혀 웃고 있는것 같지않는 다니엘오빠와 눈이 마주쳤다.
사무실에 딸려있는 작은 방안에서 '다시는 걱정을 시키지않겠습니다, 연락을 잘 받겠습니다, 무슨일이있으면 꼭 연락을 하겠습니다.'라는 깜지를 5장을 빽빽히 써야했다. 다니엘오빠가 제일 쉽게 넘어갈줄알았는데, 가장 만만치않은 상대였다. 마지막으로 온점까지 다 쓰자 타이밍좋게 다니엘오빠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빠, 앞뒤 꽉꽉채워서 다 썼어요.' 내 말에 오빠는 내게 쓴 깜지를 대충 눈으로 훑고는 책상위로 내려놓으며 '그래서 반성은 다 했어?'라고 물었다. '네, 아주 손이 후들거릴정도로 했어요, 죄송합니다.' 내 말에 다니엘오빠는 아직 다 낫지않아서 붕대를 감고있는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반성다했으면, 다음부터는 진짜 걱정시킬일 만들지말고, 연락하면 꼬박꼬박 잘받고, 무슨일 생기면 바로바로 연락하고 알았지?'라고 말을 했다. 부재중목록에 다니엘오빠가 가장많이 떴던게 떠올랐다. 다니엘오빠의 눈을 마주보며 '네, 진짜 죄송해요.'라고 말을 하며 내 머리에 올려진 오빠의 손을 내렸다. 그리고 아직도 붕대가 감겨진 오빠의 손을 보며 '죄송해요 연락못한것도 죄송하고, 손 이렇게 다치게해서 더 죄송해요.'라고 말을 했다. '하나 더 추가해야겠다. 나한테 죄송하다고 하지않기.'
'여주 너가 이번에 관린이랑 대휘가 다니는 학교에 가게됐어' 덤덤하게 내뱉는 지성오빠의 말과는 다르게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잘못들었나하는 생각에 다시 되물었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같았다. '학교랑은 얘기 끝났고, 내일부터 여주 너 학교가면돼.'
우진이는 보시다시피 학교에 보내놓으면 해결은 커녕 문제만 일으킬것같아서 뺐고 지훈이는 학교얘기꺼내자마자 바로 안한다면서 도망쳤어. 그래서 남은 건 여주 너 하나. 여주 너도 정말로 진짜 도저히 못하겠다고하면 다른 애들한테 시킬 수도 있는데, 여주 넌 거절안할거 같아서 그렇지, 여주야? 라고 말을 하는 지성오빠의 말에 나도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잘못한게 있었으니 못하겠다고 거절을 하지못하는 나를 잘 알고 말을 꺼내는 지성오빠의 말빨을 이길수없었다.
학교에서 한달전에 한 여학생이 자살을 하고난 뒤로, 그 여자애 귀신이 학교에 나타난다고 하는 소동이벌어진대. 처음에는 선생님들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냐며 애들입단속을 시켰었는데, 그 여자애 귀신을 봤다는 다음날이면 학생들이 하나둘 다쳤대. 그런일이 계속 반복되니까 선생님들도 답답했는지 경찰이 아니라 우리한테 의뢰를 했더라. 그렇게 큰 일은 아닌데, 아직 대휘랑 관린이 둘이서 해결하기에는 무리라서. 여주 너가 귀신은 잘보니까, 미안하지만 출몰한다는 귀신에 대해서 알아봐줬으면 좋겠어. 학교가 끝나면 다른애들이 합류할거니까 걱정하지말고, 위험한 행동은 하지말고.
이제는 졸업을 한지도 반년은 더 지난뒤라 어색하게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어제 지성오빠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자살한 여학생이라. 무슨 억울한 일이라도 있는건가.
학교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관린이와 대휘와 함께 등교를 하기위해서 사무실에서 만나 같이 등교를 하기로 했다. '와, 누나 교복 완전 잘어울려요', '그러게 누나 교복입으니까 우리보다 더 어려보이는데요.' 교복을 입은 내 모습을 보고 칭찬을 해주는 대휘와 관린이의 말에 부끄러워서 머리를 긁적였다.
교무실에 들어왔지만 내게 잠시 시선을 두다가 금세 시선을 거두며 자신의 할일을 했다. 교무실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선생님에게 다가가 '안녕하세요, 저 그 의뢰받고 오늘부터 학교에 오기로한..' 말을 꺼내니, 내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하더니 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아무리 이상한 의뢰를 했다지만, 무슨 이런 어린애를 보냈냐.'라고 작게 말을 하던 남자는 끝쪽에 있는 한 여자를 가리켰다.
내가 오늘부터 등교하게 된 반은 자살을 했다던 여학생이 있었던 반이었다. 담임선생님은 비쩍 마르고 왜소했는데 잠은 잘 못자는지 눈밑에는 다크써클이 가득 내려앉아있었고, 신경질적이었다. 반여학생이 그런 선택을 해서 그런가...
'사정이 있어서 전학을 오게 되었어, 김여주고 앞으로 잘 부탁해.' 교탁 앞에 서서 나보다 어린애들에게 자기소개를 하려니 생각보다 쑥스러웠다. 고3에 전학생이라니하고 눈을 빛내던 애들도 금세 호기심을 잃고 눈빛을 거두었다. 선생님이 지정해주신 창가뒤쪽 자리에 앉게 되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교실을 천천히 둘러보니, 빈 책상위에 올려진 국화꽃 한개가 보였다. 저기가 그 여학생의 자리였나보네. 한달이 지나지않았음에도 책상위에는 한개의 국화꽃만 놓여져있는게 어쩐지 쓸쓸해보였다.
고3교실답게 교실에는 사각거리는 연필소리만이 울려퍼졌다. 뒷문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열리기 전까지는. 조용한 교실분위기를 한순간에 시끄럽게 바꾸어놓은 세명의 애들에게 아무도 뭐라고 불평을 늘여놓지않았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되지만, 교복을 제대로 갖춰입지않은 모습과 깔끔하게 올린 염색된 머리, 껄렁껄렁한 태도는 단번에 이애들이 이 반에서 꽤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케해주었다. '아오 시발, 이건 볼때마다 역겹다니까, 누가 계속 쳐올려놓는거야' 책상위에 올려진 국화꽃을 발견한 한 애가 책상을 발로 걷어차 쓰러뜨렸다. 책상이 넘어지면서 국화도 바닥으로 추락했고, 떨어진 국화를 남학생은 발로 짓밟았다. '이딴짓하다가 걸리기만 해봐, 그땐 내가 밟는게 이게 아닐거니까.' 위협적으로 말하는 남학생의 말에 반애들은 애써 못들은척하며 고개를 책상에 고정하였다. 함께 들어온 한 남학생은 웃으며 박수를 치고 있었고, 다른 남학생은 초조하듯 손을 뻗었지만 남학생의 행동을 말리지는 않았다.
'이게 무슨 무례한 짓들이야.' 계속해서 짓밟히는 국화를 보다가 결국 내가 일어나서 남학생을 막아섰다. 갑자기 자기앞을 막는 내 행동에 남학생은 국화를 밟던 발을 멈추었다. 쓰러진 책상을 바로 세우고 너덜너덜해진 국화를 손에 들고 살살털고 있으니, 가만히 있던 남학생은 냅다 내 멱살을 움켜잡았다. '넌 뭐냐.' 위협적으로 손에 더 힘을주며 내게 말을 하는 남학생에게 '전학생' 똑같이 눈에 힘을 주고 대답을 해주었다. '허, 골때리네 이년.' 내 말에 헛웃음을 흘리던 남학생은 시선을 내려 내 가슴쪽으로 쳐다보았다. 시선이 흐르는 방향에 기분이 나빠지는데 '김여주라..'고 하는 남학생의 말에 이름을 본것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김여주면 뭐. 죽은 친구를 위해 기도를 한번이라도 더 하지, 이건 무슨 양아치같은 행동이야.' 멱살을 잡고 있는 손을 탁치자, 힘을 빼고 있었던건지 쉽게 풀렸다. 한쪽 입을 올리며 내게 가까이 다가와 '여주야 니가 전학을 와서 잘 모르나 본데, 지금 니가 하는 행동이 양아치같은 거야, 앞으로 학교생활 편하게하고 싶으면 내 말 잘들어야할걸.' 이라고 말을 하며 기분나쁘게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툭 밀쳤다. '김장훈. 너야말로 학교생활 잘하고 싶으면 똑바로 행동하는게 좋을걸.' 명찰을 힐끔보고 이름을 부르고 말을 하고는 손으로 어깨를 툭쳐주고 교실을 나왔다. 어차피 수업까지 들어야할 필요는 없었으니.
'누나, 어땠어요? 수학진짜 지루하죠?'라고 말을 하며 울상을 짓는 대휘의 어깨를 치며 관린이가 '학교에서는 여주라고 해야지, 다른애들이 눈치채면 어떡해?, 그치 여주야.' 웃으며 말을 했다. 그러자 대휘가 표정을 바꾸며 박수를 한번 치더니 '오, 맞아맞아, 학교에서는 우리 다 친구지. 그럼 여주랑도 친구지.'라며 나를 보며 웃었다. 아까 싸가지없던 애와 달리 해맑은 대휘와 관린이를 보자 나에게 여주라며 반말을 써왔지만 안좋았던 기분이 좋아지는것같았다. '그래, 학교에서는 그냥 여주라고 불러.' 내 말이 떨어지자 관린이랑 대휘는 서로 마주보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누나, 아니 여주 맨날 학교 다녔으면 좋겠다'라고 말을 하며 싱글벙글이었다. 나한테 여주라고 부르는게 그렇게까지 신날일이니..
밥을 먹고 신이나서 학교 여기저기를 알려주는 대휘의 손에 이끌려다녔다. 관린이도 옆에 있었는데 어느순간 보니까 옆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어? 관린이는 어디갔어?' 대휘에게 관린이의 부재를 묻자, 대휘는 입을 삐죽이며 뒤를 가리켰다. 대휘의 손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여자애들에게 둘러쌓여있는 관린이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봤을때부터 잘생겼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더 인기가 좋네. '관린이 인기 많네.' 대휘에게 말을 하니 대휘는 '치, 애들이 다 보는 눈이 없어서 그런거죠.'라며 투덜거렸다. 시무룩해보이는 대휘에게 '그런가보다, 대휘가 더 잘생겼는데 그치?'라고 말을 해주자 금세 이를 보이며 해맑게 웃는 대휘였다.
어쩌다보니 분리수거를 맡게 되어서, 소각장까지 오게 되었다. 졸업하면 이런 일도 끝인줄알았는데, 다시 하게 될줄이야. 아이들의 발길이 잘 닫지않는 소각장은 주로 노는애들의 아지트로 쓰이곤했었다. 지금도 매캐한 냄새와 함께 욕설이 들려오는 걸보니, 아지트인건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인듯 싶었다. '아오, 요즘 자꾸 그년이 꿈에 나타나서 짜증나 죽겠다니까, 뒤졌으면 끝인거지 왜 자꾸 나타난데 재수없게.', '야....말이 좀....아니, 어제 현호도 학교앞에서 사고나서 입원했잖아.' 그냥 무시하고 쓰레기만 빨리 버리고 갈 생각이었는데, 뜻밖의 정보를 듣게 될것같아서 벽에 딱 기대어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너 겁먹었냐? 그러다 아주 오줌이라도 싸겠다.', '그..조심해서 나쁠거없잖아.',' '어차피 그년은 죽었고, 자살처리도 됐는데 뭐가 문젠데.', '사실..나도 요즘에 자꾸 그 애가 보여서...', '야 너 어디가서 입 함부로 놀리지마, 특히 그날밤에...누구야?!' 조금만 더 들으면 중요한 얘기를 들을 수도 있었는데, 너무 집중해서 듣는 나머지 들고 있던 쓰레기봉투를 손에서 놓쳐버리고 말았다. 툭하는 소리와 함께 말을 멈춘 김장훈은 내쪽으로 다가왔다. 아 어쩌지, 지금 엿들은거 들키면 안될것같은데, 다가오는 김장훈에 아무것도 하지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내 팔을 잡아당기며 빈공간으로 끌어당겼다.
다행히 김장훈이 보기전에 숨어서 내가 엿듣고 있었다는 사실은 숨길 수가 있었다. 나를 도와준 사람은 볼에 길게 난 흉터가 있는 예쁘게 생긴 여학생이었다. '저기, 도와줘서 고마워.', '너, 쟤들이 하는 얘기 엿들었지?'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데 날카로운 눈빛을 하며 얘기를 엿들었냐고 묻는 여학생이었다. '어...처음부터 엿들을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해도 여자애는 표정을 풀지않고 '너 방금 뭘 들었던 못들은 걸로해. 쓸데없이 입을 놀리는 순간 너도 내꼴날테니까.'라고 쏘아붙이더니 순식간에 발걸음을 옮기며 멀어졌다.
너도 내꼴이날거라니, 설마 그 볼에 흉터를 김장현이 만들었다는 얘기인가, 아니면 다른 사연이라도 있는거야. 왠지 이번 사건에서 중요한 비밀을 움켜쥐고 있는 것 같던 그 여학생의 말을 계속 곱씹어봤지만 알아낸 정보는 없었다. 아, 이럴줄 알았으면 이름이라도 물어볼걸. 단순한 귀신소동을 해결하기 위해서 왔지만 생각보다 일이 복잡하게 흘러갈것같았다.
쓰레기를 대충 소각장에 다시가서 버려두고 종소리를 들으며 복도를 걷는데 옥상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조용해졌다가 한번 더 쿵하는 소리가 들려서 옥상으로 가는 계단을 올라가는데 잠겨있는 옥상문을 통과하며 귀신이 튀어나왔다. 반듯이 자른 단발에 이 학교 체육복을 입고 있었다. '이 소리 니가 낸거야?' 귀신에게 조심스럽게 물으니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왜?' 다시 한번 물으니 귀신은 조금전 고개를 끄덕인 속도와 비슷하게 천천히 '오지말라고 아니 오라고..' 말을 했다. 오지말라고 아니 오라니 이게 무슨말이지 도와달라는 말인가. 아리쏭한 귀신의 말에 도와달라는 거야라고 물으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사려졌다.
석식을 서둘러 먹고 근처 벤치에 앉아서 대휘, 관린이와 대화를 나누었다. 김장현은 학교에서 알아주는 양아치라고 한다. 플러스로 김장현 옆에 딱 붙어다니는 박시형과 최이석까지도. 김장현의 이사장님의 아들인걸 믿고 학교에서 아주 막나간다고 한다. 선생님들은 김장현이 이사장아들이기에 건들이지 못하고 학생들은 김장현의 포악함에 고개를 숙이다보니 아주 학교가 지 세상인것마냥 기고만장이라고. '아, 맞다 그러고보니 김장현 이유나랑 사귀었었는데!' 갑자기 손뼉을 치며 대휘가 말을 했다. '이유나? 이유나가 누군데?' 대휘에게 물으니 '그 죽었다는 여자애요. 걔 이름이 이유나에요.'라고 대답을 해주었다. 둘이 사귀었던 사이라. 점점 더 수상해지는데. '근데, 사귀었다고 하기 뭐한게 이유나 김장현 협박으로 사귄걸걸요.', '김장현 일학년때부터 엄청 매달렸긴 했지. 처음에는 억지로 사귄거 같기는 했는데, 나중에는 잘 사귀지않았나?', '그랬던가.' 관린이와 대휘가 말을 주고 받았지만, 둘이 사귀었었다는 사실말고는 딱히 도움이 될만한 말은 없었다. 아무래도 대휘랑 관린이가 학교를 자주 빠지고, 다른반애 일이기도 했으니까 잘 모르는게 당연했다. 이유나...넌 정말 자살한거니..
오늘 있었던 일을 보고하기 위해서 사무실에 왔지만 딱히 지성오빠에게 보고할만한 정보를 알아오지는 못해서 시무룩해있자, 오빠는 아직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알아보라며 나를 다독여주었다. '그래서 여주 너 생각에는 자살이 아닌거 같다고?', '그게 아직 확실하게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는데 아무래도 신경쓰이는게 있어서요..아무래도 김장현 무리랑 좀 친해져야 할까봐요.' 정보를 얻기 위해서 김장현과 친해져야겠다고 말을 하자, 관린이가 '여주야 아무리 그래도 그 새끼랑 친하게 지내는 건 반대.'라고 말을 하였다. 그 생각에는 반대한다고 치는데 말이 좀 짤아지는것같다 관린아, 여긴 학교 아니고 사무실인데. '관린아 여긴 사무실이란다. 여주라니.'라고 관린이에게 말을 하니, '에이, 그냥 학교 다니는 동안에는 여주로 하죠'라고 말하더니 당당히 한번더 여주야라고 불렀다. 그럼 옆에 있던 대휘도 '헐, 그럼 나도 여주라 부를래.'라고 말을 하며 대화에 끼여들었다. 얘들 때문이라도 더 빨리 해결을 해야할 것 같다.
일찍 일어나 꽃집에 들렀다가 학교에 가니,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학생은 거의 없고 귀신들로 우글거렸다. 다행히 악귀와 같은 악한 귀신은 보이지 않았고 잡귀들만 가득했다. 손목에 문양이 생긴뒤로 귀신들이 더 많이 꼬이기 시작했다. 지금도 교실까지 걸어가는 동안 수많은 귀신을 마주쳤는데 전보다 더 격렬한 기세로 내게 달려들었다가 이내 내 몸에 손도 닫지 못하고 그래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하나둘씩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귀신들을 본 귀신들은 나를 보며 입맛을 다시기는 했지만 더이상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았다.
교실문이 잠겨있을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미 앞문이 열려 있었다. 열린 문으로 들어갔지만 교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누가 왔다간건지 어제까지만해도 아무것도 올려져 있지 않던 책상위에 국화가 한 송이 놓여있었다. 올려진 국화를 한번 손으로 들어보았다가 다시 내려놓고는 그 옆에 내가 가져온 국화를 한송이 놓았다. 유나라고했지, 얼마나 힘든 일이 있어서 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너의 죽음을 알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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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ㅜ 너무 늦게 돌아와서 죄송해요.....변명같겠지만 이번주부터 바빠지게 되면서....피곤하다는 핑계로 일찍 자버리는 바람에...오늘 드디어 올려요..
원래는 비하인드 올리려고 했지만, 일단 본편 먼저 올려요. 비하인드는 내일중으로 올리도록 할게요!!
이번편은 그동안 분량이 적었던 관린이랑 대휘를 좀 많이 넣어봤어요. 이번 사건에는 귀신은 그렇게 많이 등장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도 실망하지 마시고 봐주시길 바랄게요..... 저번편에 다들 여주에게 능력이 생겼다며 좋아하는 댓글이 가득한걸보고 여러분들이 너무 귀여워서 진짜 한참을 웃었어요 ㅎㅎㅎ 다들 너무 귀엽잖아요ㅠㅠㅜ
역시 여주인공이 너무 무능력하면 별로죠?ㅋㅋㅋㅋ
(기다리셨을 암호닉분들 늦게 와서 미안해요ㅠㅜ)
♥사랑스런 암호닉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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