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들의 거리
부제: 학교소동(中)
'어제 최이석사고났대', '드디어 걔네 무리도 벌받는거야?' 하나 둘 빈교실이 채워지면서 그와 함께 아이들의 입도 쉬지않고 움직였다. 대화의 주된 내용은 최이석에 관한 이야기였다. 어제밤 새벽에 갑자기 집밖으로 나온 최이석이 횡단보도에서 사고를 당하였다는. 다행히 다리가 부러진정도로 그쳤지만, 빠른속력으로 달려오던 자동차와 부딪혔는데, 운전석은 비어있었다는 소문으로 인해서 최이석의 이야기는 이른아침부터 아이들의 뜨거운 이슈거리였다.
운전석에 아무도 없었다라, 이번에도 그 귀신의 짓일까. 학교에 온지 며칠이 지났다고 벌써 또 새로운 사고가 터지다니,
'아오 그 새끼는 왜 새벽에 밖으로 기어나가가지고.' 김장현이 뒷문을 거칠게 열면서 들어왔다. 쟤 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입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장현의 얼굴에는 걱정이 아닌 짜증이 가득했다. 짜증뒤에 감춰둔 불안이라는 감정이 언뜻 보이는듯했고. 김장현의 등장과 함께 조용해진 교실안은 책상위로 힘차게 내려치는 가방으로 인해서 한번 들썩였다. '시발, 뭐 구경났어!' 반애들에게 짜증을 부리자 애들은 몸은 흠칫 떨면서 시선을 교실앞으로 고정한채 입을 꾹 다물었다. '야, 장현아 우리 문병한번 가봐야되는거 아니야?' 잔뜩 짜증을 담고 있는 김장현의 어깨를 같이 들어온 박시형이라는 애가 살짝 치면서 말을 걸었다. '내가 그새끼 병원은 왜 가, 지 혼자 덜덜 떨면서 헛소리 하다가 잘 됐지.' 김장현은 박시형의 손을 탁 쳐내며 재수없다는 듯 교실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래도..' 박시형이 한마디 더 하려고 하자, 김장현은 책상을 발로 차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너도 헛소리 할거면 꺼져.'라고 말을 하고는 교실을 나갔다. '야, 어디가.' 나간 김장현을 뒤따라가는 박지형의 모습에 아이들은 저마다 숨을 토해냈다.
내 앞자리에 앉아있던 가십거리를 좋아하는 부반장에게서 김장현과 이유나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유나와 장현이는 관린이의 말처럼 사귀는 사이였었다고 한다. 입학식날 이유나에게 반한 김장현이 지독히도 이유나를 쫓아다녔다고 한다. 말이 좋아서 쫓아다닌거지 스토커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유나랑 말이 거는 아이가 있으면 주먹부터 휘둘렀고, 이유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였다고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애들도 선생님이나 누군가에게 알려서 도와줘야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김장현이 너무 무서워서 그냥 모르는척 방관을 했고. 그렇게 2학년이 될때까지도 이유나만 따라다니는 김장현에 이유나는 학교에서 왕따아닌 왕따가 되었고, 여름방학이 지나고 새학기가 시작될 무렵에 둘은 연인사이가 되었다. 사귀고부터는 김장현이 아닌 이유나가 김장현에게 매달리는 관계로 바뀌었고, 김장현은 이유나를 여자친구가 아닌 애완견 취급을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했다. 예를 들면, 반 애들이 다 있는 곳에서 자신에게 키스를 할 것을 명령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이유나는 못한다고 거절을 하였고 그럴때면 김장현은 '니가 지금 나한테 이러면 안될텐데.'라고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이유나에게만 들리게 귓속말을 했다고 했다. 김장현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말을 들은 이유나는 항상 안색이 창백해져서는 김장현의 말을 그대로 따르고는 했다고.
그렇게 연인아닌 연인관계를 3학년이 되어서도 잘 이어나가다가 어느날 갑자기 이유나가 옥상에서 자살을 하였고, 다음날 일찍 등교를 하던 학생에게 발견이 되었다고 했다. 경찰에서는 타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고, 항상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했다는 김장현의 증언으로 인해서 이유나의 죽음은 빠르게 학업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학생의 비극적인 선택인 자살로 종결되었다.
부반장의 말을 듣고 나니, 이상한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아무리 타살의 증거가 없다고 해도 사건종결이 불가 하루만에 이루어졌다는 것과 스토커처럼 괴롭히던 김장현을 이유나가 받아주었다는 것은 이상했다. 사귀고 나서 이유나가 김장현에게 약자가 된것은 더욱더 그렇고. 둘간의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것같은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을 해줄 이유나는 이제 존재하지않고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김장현뿐인데....김장현이 순순히 이야기를 해줄까...
'우와, 누나 하루만에 엄청 많은 정보를 알아왔네요.', '오 누나가 저희보다 나은데요, 이참에 누나도 저랑 같이 여기 학교 다니는게 어때요?' 부반장에게 들었던 내용은 대휘와 관린이에게 전해주었다. 내 얘기를 듣고 잠시 진지한 표정을 짓던 둘은 금세 웃음을 띄우며 옆길로 샜다. 나는 부반장의 얘기를 듣고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서 머릿속이 복잡한데, 둘은 궁금하지도 않은지 장난을 칠뿐이었다. 나만 너무 진지하게 생각한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누나가 둘 사이에 무슨일이 있었는지도 알아내는 거에요?' 관린이는 눈을 빛내며 나를 보며 물었고, '당연하지, 우리 누나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 라며 대휘는 뿌듯하게 관린이를 처다봤다. 저기 얘들아, 이거 너희들도 같이 사건조사를 해야하는거였던거 같은데....
'급할것도 없는데 조금 천천히 하면 안돼요? 일 끝나면 누나 학교 더 안오잖아요..' 대휘가 눈꼬리를 잔뜩 내리며 불쌍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얘기를 했다. 나랑 학교 같이 다니고 싶어서 그런거였어, 귀엽다 정말, 그래도 벌써 또다른 피해자가 나온이상 여유롭게 사건을 조사할 시간은 없었다. 조금 있으면 큰 사건이 터질것같은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하였고. 뾰루퉁한 대휘를 달래며 관린이가 넘겨준 이유나에 관한 인적사항을 살펴보았다. '누나, 저 이거 진짜 힘들게 구한거니까 나중에 저한테 소원하나 들어줘야돼요!' 힘들게 구했다는 관린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며 이유나의 사진을 보는데, 어쩐지 낯이 익었다. 예쁘장한 얼굴에 보는 사람이 기분이 좋아지는 웃음을 띄우고 있는 여자아이는 분명 저번에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위에서 보았던 그 귀신이었다. 이렇게나 예쁘게 웃고 있는데 그때 마주한 얼굴은 아주 슬퍼보였던게 생각이나자 기분이 울적해졌다. 이유나의 인적사항에는 가족관계에 특수학교에 재학중인 중학교2학년 여동생이있다는 것말고는 특이한건 없어보였다.
김장현은 3교시가 끝날때까지도 교실로 돌아오지않았다. 오면 물어보고 싶은게 많은데 교실로 돌아오지를 않으니 내가 직접 찾아나서기로 했다. 김장현과 아는 사이가 아니었기에 수업을 빠지고 어디에서 놀고있을지 알 수없어서 빈교실이 있는 곳을 주변으로 돌아다녔다. 그러나 문을 여는 족족 텅빈 교실만이 나를 반겼고, 돌아다니다가 지칠때쯤 저번에 쓰레기소각장에서 김장현을 봤던것이 떠올라서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고 온 곳에 정말로 김장현이 있었다. 그때처럼 담배를 입에 물고서 말이다. 다른 점이라면 이번에는 옆에 아무도 없이 혼자있는 점이라고나 할까나. '야, 학생이 담배는 무슨.' 차마 김장현의 입에 물린 담배를 뺏을 용기는 나지않아서 그냥 옆에 앉으며 말을 했다. 김장현은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이내 관심이 없다는듯 고개를 돌리고 담배만 피워댔다.
'넌, 니 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데 걱정도 안되냐?'침묵속에서 내가 먼저 정면을 쳐다보며 말을 하는데 옆으로 김장현의 시선이 느껴졌다. '지랄할거면 그냥 가지.', '넌 맨날 입만 열면 욕이냐?' 김장현에게 한마디하자 그새를 못참고 주먹을 들어올리는 김장현이었다. '왜 또 떄리게?' 고개를 돌려 김장현을 보며 말하였다. '이유나 때렸던것처럼 때리려고?' 눈을 맞추며 이유나의 이름을 꺼내자 김장현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이내 거칠게 내 멱살을 잡았다. '시발, 넌 뭐냐, 뚫린입이라고 내뱉으면 다 말인줄 아나본데.', '그건 너잖아. 뱉으면 다 말인줄 아는거.' 김장현의 손을 치며 말을 했다. 솔직히 또래답지않은 체격과 성질을 가진 김장현에게 마음에 있는 말을 한다는게 쉬운일은 아니었지만, 김장현과 친해져서 이유나와 있었던 일을 알아내는 것보다 김장현을 도발하여 무슨일이 있었던것인지 알아내는게 더 쉬울것같다는 생각에 강한척했다.
다행히 내 말에 김장현은 다시한번더 내 멱살을 잡지는 않았다. '유나 니가... 죽인 거야?' 내 말에 김장현은 벽을 다리로 한번 걷어차고는 먼저 자리에서 벗어났다. 이유나와 김장현,,설마 유나가 자살이 아니고 살해를 당한것이라면 혹시 김장현이 유나를 죽인것일까라는 생각은 하긴했으나,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좋아했던 사람은 죽인다는걸 믿고 싶지않았으니까, 그런데 방금전의 김장현의 반응을 보니 어쩐지 생각하고싶지않은 일이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 생각보다 일이 엄청 복잡한것같아요.' 학교를 마치고 곧장 지성오빠가 있을 사무실로 향했다. 오늘은 사무실에 들리지말고 바로 집으로 가서 쉬라고 말을 해서 사무실을 가면서 혹시 오빠가 없으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도 오빠가 있었다.
학교에서 들었던 일들과 유나가 자살이 아닌것같다는 내 생각을 조심스럽게 오빠에게 말하였다. 타살이라는게 아직 확실하지도 않았지만 내 직감은 이미 범인이 김장현이라고까지 말을 하고 있었기에, 오빠에게만 살짝 털어놓아버렸다. 내 말을 들은 오빠는 한참 동안 입을 열지않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이번엔 여주 너가 그냥 학교에서 애들이랑 편하게 놀고오라고 시킨건데, 어째 일이 생각보다 크네. 여주 너 여기오고나서 고생만 하는것같다.' 지성오빠는 이번일에 나를 투입시킨것을 후회하고 있는것같아보였다. 저번 첫사건이 너무 커서 그런가, 그래도 그때도 나는 하나도 안다치고 멀쩡했는데. '고생은요, 오랜만에 학교도 가니까 좋은데요.' 일부러 밝게 말을 하는 내 마음을 눈치챈건지 지성오빠는 살짝 웃어주며 '사건 해결하는건 좋은데, 너 혼자 너무 무리하지마.' 말을 하였다. 귀신은 어릴적부터 질릴 정도로 많이 보고 자라서 이제는 당연한게 되었는데 자꾸 이렇게 나를 걱정해주는 오빠들을 보면, 일부러 오빠들을 만나게 해주려고 내게 이런 능력을 준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내 능력이 마냥 끔찍하지는 않았다.
사무실을 내려오다가 우진이와 재환오빠를 만났다. '오, 김여주 너 교복입으니까 진짜 고등학생같다.' 우진이는 나를 보자마자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도 학교를 다니면서 오랜만에 보는것같은 느낌에 가볍게 안부인사를 주고 받는데 '너 지금은 고등학생이니까 그럼 내가 오빠아니야? 여주야 우진오빠라고 불러봐.'라며 손을 허리에 얹으며 근엄한척 말을 하였다. 아, 뭐래. '여주야 그냥 얘는 무시해.' 재환오빠가 내 시야에서 우진이를 치우며 말을 하였다. 오빠의 말에 동의를 하며 안그래도 그러려고 했어요하고 말을 하자 우진이가 뒤에서 '아 뭔데, 지금 나 무시하냐?!'라며 방방 뛰다가 우리 둘이 끝까지 모르는척을 하자 삐친건지 쿵쿵 소리를 내며 계단을 올라 사무실로 들어가버렸다.
'우진이 진짜 삐쳤나봐요,' 우진이가 들어간 문을 보다가 풀어주려고 계단을 올라가려고 하는데, 재환오빠가 내 팔목을 잡았다.
'여주야 요즘 별 일없지?' 높게 웃던 웃음소리를 지우고 무표정으로 질문을 하는 재환오빠에게 그냥 갑자기 졸업한 학교를 다시 다니려니 어색한거빼고는 별일없어요라고 대답을 해주었다. 장난스러운 내 대답에도 재환오빠는 굳은 표정을 풀지않고 '정말 아무일 없는거지?'라고 말을 하며 손목보호대를 찬 내 팔을 한번 쳐다보았다. 사람을 꿰뚫어보는듯한 재환오빠의 눈빛에 손목을 뒤로 감추며 진짜 없어요하고 어색하게 웃음을 흘렸다.
'와, 김여주 너 진짜 나 안따라오냐!' 그때 사무실문을 다시 열며 우진이가 고개를 빼꼼 내밀며 소리를 치면서 굳어져있던 분위기가 유하게 풀렸다. '그럼 다행이고, 혹시나 무슨일이 생기거나하면 말해줘야한다.' 재환오빠가 굳어졌던 표정을 풀며 웃어보였다. 어쩐지 내가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알고 있는 것같은 재환오빠의 눈빛에 나는 더이상 웃지못하고 팔만 뒤로 더 감출뿐이었다.
병문안을 가기에는 조금 늦은 시간이었지만, 지금쯤이면 최이석의 병실에 아무도없을것같아서 병원으로 발걸을음 옮겼다. 자정이 가까워져오는 시간의 병원은 끔찍하였지만, 더 이상의 피해자의 발생과 유나의 죽음을 풀기위해서는 최이석이 도움이 될것같은 느낌에 병원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최이석이라는 석자가 써진 병실을 찾아서 돌아다니는데, 살짝 열린 병실 문틈 사이로 대화소리가 들렸다. '장현아 우리 그냥 경찰서가서 사실대로 말하면 안될까?', '야, 시발 사고났다고 머리가 어떻게 됐냐!', '..내가 박은 차에 아무도 없었다고 했잖아...아니야! 사실은 누가 타고 있었어. 틀림없이 운전석에서 나를 보며 웃고 있는 이유나가 있었다고! 나 말할래 지금 당장 경찰서에 전화해서 이유나가 죽은게..', '미쳤냐, 말하기만해봐. 니가 입 떠벌리는 순간 니가 살인마새끼되는거야.' 최이석의 휴대폰을 낚아챈 김장현은 병실바닥으로 세차게 휴대폰을 내던졌다. 최이석에게 협박도 잊지않은 김장현은 병실을 나왔다.
'이런, 액정이 완전 갔네, 수리하려면 돈 좀 깨지겠다.' 김장현이 병실에서 보이지않게 멀리 사라지는걸 확인하고나서야 최이석이 있는 병실안으로 들어왔다. 갑작스러운 나의 병문안때문인지 내가 둘의 대화를 들었을까 걱정이 되는지 김장현은 입을 벌린채로 내 눈치를 봤다. '갑자기 온다고 아무것도 못사왔다. 미안.' 구석에 있던 의자를 끌어와서 최이석이 앉아있는 침대옆에 앉았다.
'무슨 일인데.' 최이석은 불안한지 잔뜩 경계를 하며 말을 하였다. '같은반 친구가 입원을 했다는데 병문안은 와야지.' 내 말에 최이석은 친구는 무슨이라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여기 병실까지 오는동안 엄청 많은 환자들을 봤거든, 너처럼 교통사고를 당한건지 구급차에 실려서 들어오는 사람, 목발을 짚고 돌아다니는 사람 그리고 세상과 연을 다하였는지 결국 숨을 거두고만 사람까지. 아픈사람들도 많고 힘든사람들도 많더라, 여긴 병원이잖아. 생과 사가 넘나드는곳.' 내 말에 최이석은 '뭔 소리하냐, 헛소리할거면 그냥 가라.' 라며 코를 찡그렸다. '누가 친구아니랄까봐 똑같은 말을 하냐. 그러니까 하루에도 수십명도 넘는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거지, 그중에서 누군가는 사고를 당해서, 또 누군가는 누군가에 의해서 목숨을 거두기도 하고. 자기가 죽고싶었던게 아닌데 한순간에 누군가의 잘못으로 인해서 갑자기 삶을 마감한다고 생각을 해봐, 얼마나 안타깝고 억울해.' 아무말도 않고 잠자코 내 말을 듣는 최이석의 눈을 마주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사람의 목숨이라는 건 다른 누가 함부로 할 수 있는게 아닌데 말이지.....넌 죽음다음이 있다고 생각해?'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최이석은 아무말도 하지못하였지만 꽤나 머릿속이 복잡해보였다. '죽음 다음은 또 존재한다고봐.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필요하지않을까. 예를 들면 너가 유나때문에 교통사고가 났듯이 말이야. 죄는 감춘다고 없어지는게 아니거든.'
'다음에는 병문안올때는 음료수라도 들고올게, 그때는 너도 사실을 줬으면 좋겠고. 몸조리 잘해.' 최이석에게 인사를 하고 병실문을 닫고 나올때까지도 최이석은 한마디도 하지않았다. 처음부터 내게 사실을 말해줄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드는 씁쓸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최이석에게 했던 말은 최이석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그냥 했던건 아니었다. 병원은 죽은자의 영으로 가득차서 정말 괴롭고 힘든 곳이지만 그만큼 힘든 곳이기도 했다. 죽은자와 산자가 바뀌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혼자 떠나가야하는 영도 있었으며,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울음을 토해내는 닦아줄수없는 가족의 얼굴을 쓰다듬는 영도 존재했다. 죽고나서의 그 사람을 본다는 것은 축복일까 불행일까. 보고 싶은 사람의 얼굴을 계속해서 볼 수 있다면 축복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나는 아직 축복을 받지는 못했다.
자신의 가족이 더 이상 슬퍼하지않도록 안아줄 수 없는 가족을 애틋하게 한명씩 안아주다가 웃으며 사라지는 영혼,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복도를 해매다가 병원밖으로 나가는 영혼. 이 영혼은 아마 늦게라도 죽음을 받아들이고 좋은 곳으로 가거나 끝까지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떠돌다가 결국 악귀가 되어버리고 말겠지. 응급배드에 실려가는 환자의 찢어진 배에 손을 넣고 휘저으며 낄낄낄 웃어대는 악귀, 그리고 악귀의 손장난에 결국 수술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환자까지. 한 공간에서 짧은 시간에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저들은 보이지않고 내게만 보이는 그런 일들이.
밴드가 붙여진 손가락을 한참을 들여다봤다. 어제 정신을 놓고 있다가 그만 의료카트를 옮기던 간호사와 부딪쳐서 손가락이 살짝 찢어지면서 붉은피가 나고 말았다. 예리하게 그인 상처에 놀라기도 잠시 눈이 마주친 악귀에 정신이 쏠렸다. 그리고........ 갑자기 다시 드는 어제의 잔상들에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어제 병원에 너무 오래있어서 잠깐 정신이 이상해진걸꺼야, 그렇지 않고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리가 없지. 하지만 부정할수록 선명해지는 기억들에 손가락을 접어서 밴드가 보이지 않도록 가렸다.
'야, 너 잠깐만 따라와.' 그때 김장현의 무리로 부터 나를 숨겨준 아이가 복도를 걷던 내 앞을 가로막더니, 따라오라는 말을 남기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너, 이유나 뒷조사하고 다닌다며?' 그 아이를 따라 빈 음악실로 들어오자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을 하였다. '뒷조사라고 하니까, 어감이 좀 그런데. 뒷조사는 아니고 그냥 유나에 대해서 궁금한게 있어서랄까..', '니가 유나를 알아? 모르잖아 근데 니가 궁금한게 어디있어?!' 유나에 대해 궁금한게 있다는 내 말에 여자애는 지나치게 흥분을 하며 말을 하였다. '너도 유나가지고 놀려고? 죽은애 그만 좀 괴롭혀! 죽기전에도 괴로웠는데 왜 죽고나서도 괴로워야하는데!!' 무엇이 이 아이를 이토록 흥분하게 만드는 것일까.
'나는 절대로 유나를 웃음거리로 만들려는 생각이 없어. 그저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이야, 유나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흥분하여 소리를 지르는 애의 손을 잡으며 말을 하였다. 유나를 웃음거리로 만들생각이 없다고. 여자애는 진심이 담긴 내 눈빛을 본 모양인지 차츰 흥분을 가라앉히며 책상위에 걸터앉았다.
'김연지야. 유나..친구였던....' 연지는 자기소개를 하여 씁쓸하게 웃었다. '너 정말 유나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풀어줄거지?..' 연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니 연지는 작게 한숨을 토해내더니 말을 시작했다.
유나는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와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탓에 장애가 있는 동생을 혼자 키우면서도 씩씩하게 사는 학생이었다. 잠을 줄여가며 새벽까지 알바를 하여 자신은 굶으면서도 동생이 좋아하는 햄은 하나라도 더 사주는 그런 착한 언니였다. 김장현을 만나기전까지 유나는 힘들지만 괜찮은 일상을 살고 있었다. 김장현 밝고 예쁜 유나에게 첫눈에 반하기전까지. 그래도 1년이 넘도록은 김장현이 유나를 따라다니며 귀찮게 굴었지만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유나는 알바를 하면서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자신이 학교 이사장의 아들인 김장현의 눈밖에 나서 동생까지 힘들어지는 일은 만들고 싶지않았기에 참고 참았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김장현의 유나에 대한 집착은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새벽에도 유나의 집 앞에 찾아와서 문을 두드리며 나오라고 소리를 치는 바람에 동생이 잠을 자다가 놀라서 울음을 터트리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연지는 늦은밤 자신의 집을 찾아온 유나를 보고 깜짝놀랐다. 예의가 발라서 절대로 늦은 시간에 자신의 집에 찾아오지 않는 유나가 초인종을 눌렀다는 사실과 얼굴은 퉁퉁부어있고 머리와 옷이 엉망이된채로 울고 있는 유나의 모습에 당황할수밖에 없었다. 유나의 단정하지못한 교복과 얼굴을 보고 짐작을 했지만, 정말로 유나의 입에서 김장현에게 성폭해을 당했다는 말이 나왔다. 그것도 김장현의 패거리가 있는 앞에서... 앞으로 어떡하면 좋냐며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리는 유나를 안고 토닥여주는 것 말고는 연지가 해줄 수 있는게 없었다.
연지는 김장현이 무서웠지만, 그런일을 당한후 한동안 학교에도 나가지 못하는 유나의 모습에 화가나서 김장현을 찾아갔다. 당차게 찾아가서 소리를 치는 연지의 모습에도 김장현은 여유롭게 담배를 피우며 '너한테 말했냐, 설마 경찰서에가서 말한건 아니겠지?'라며 아주 단조로운 어조로 말을 하였다. 유나는 지금 집밖에도 못나가고 아파하고 있는데 가해자라는 애는 웃으면서 학교를 다니는 꼴에 열이 받쳤다. 결국 연지는 김장현이 보는 앞에서 112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성폭행사건을 신고하려고...'그러나 연지의 말은 끝맺음을 맺지못하였다. 여유롭게 담배를 피고 있던 김장현이 주머니에서 작은 커터칼을 꺼내서 연지의 볼의 그대로 그어내렸기때문에. 연지의 볼을 타고 핏방울들이 교복에 떨어져내렸다. '그러니까, 내가 가만있으라고 했잖아. 한번 더 건들이면 다음은 여기가 아니고 여기가 될거야.' 김장현을 두려운 눈으로 보는 연지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김장현이 칼로 연지의 상처난 볼을 한번 건들이더니 그대로 칼을 내려 연지의 목에 가져다대며 말을 했다. 김장현이 나간뒤로 연지는 그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서 계속해서 울음을 토해냈다. 가해자인 김장현이 어깨를 피고 다니는데도 아무도 그를 보고 뭐라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자신도 결국 힘들어하는 유나를 위해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에 떨리는 손으로 볼을 감싼채로 눈물만 쏟아냈다.
며칠뒤에 유나는 학교를 나왔고 그후로 김장현과 유나는 사귀는 사이가 되어있었다. 물론 김장현은 '그때 집에서 보니까 동생도 꽤 쓸만하던데.'라는 말로 유나를 협박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했지만 유나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담임을 찾아가서 얘기를 해보았지만, 오히려 자신을 경멸스럽게 쳐다보는 눈빛만 받을 뿐이었다.
유나는 동생을 지키기위해서 끔찍한 김장현의 말을 잘 따랐지만, 알바를 끝내고 돌아온 집에 울음소리가 가득해서 뛰어들어간 방안에는 옷이 벗겨진채로 울고 있는 동생만 있을 뿐이었다.
유나는 동생이 그렇게 된 후에도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겉으로는 김장현과 잘 지냈다. 그러다 어느날 유나가 늦은밤 연지의 집앞으로 찾아왔다. 연지는 그날이후로 유나와 거리를 두고 다녀서 유나의 얼굴을 보는게 무서우면서도 미안해서 나가지않으려고 했지만, 왠지 나가야할것같은 느낌에 밖으로 나갔다. 유나는 연지에게 김장현이 그동안 자신에게 했던 말을 다 하면서 증거도 모았다고 얘기를 했다. 더이상은 김장현이 웃고 다니는 꼴을 보지못하겠다고 말을 한 유나는 연지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하며 돌아갔다. 그리고 그게 연지가 유나를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내가 아는건 여기까지야, 증거도 찾았다는 유나가 왜 갑자기 자살을 했는지 나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해가 안돼. 절대 동생을 혼자두고 죽을 애가 아닌데....' 말을 마친 연지는 두손에 얼굴을 묻고는 한참을 울음을 터트렸다. '내가 무슨일이 있었는지 꼭 밝혀낼게. 힘들었을텐데 말해줘서 고마워.' 연지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어주니 더 울음을 터트리는 연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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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ㅜㅜ 너무 오래만에 왔죠?ㅠㅜ 상편만 달랑 남겨두고 이제야 오다니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에피소드를 끝내고 싶었는데. 저질러놓은게 많아서 결국 내용을 다 끝내지를 못했습니다.ㅠㅜㅠ 그런데 내용도 뭔가 산으로 가는것 같고, 이게 퇴마물인지 형사물인지..하...
이게 워너원글이 맞는지.....애들이 너무 안나오는데...다음편에 많이 나올거에요...오늘은 사진을 마땅한걸 못구해서...쨰니밖에 없어요ㅠㅜ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재밌게 읽으셨기를 바랍니다..
(내용까먹을만큼 늦게와서 미안해요ㅠ)
♥사랑스런 암호닉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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