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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암호닉정리

포텐님 핫삥꾸님

 

 

 

안녕,병신아

 

 

 

 

09

 

 

 

 

 


' 난.. 그러니까, 미안. '

 

 

 


얼굴이 붉어진체 평소보다 부산스럽게 방안으로 들어간 지호의 귀엔 왜이렇게 늦게 왔냐는 엄마의 잔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듯 했다.

축처져 피곤한 몸이 보기만해도 폭신한 하얀색 침대에 그대로 골인했다. 풀석, 하는 소리와 함께 침대 시트가 지호의 무게만큼 눌려 주름이 졌다. 

 

 

 


'너무 갑작스럽고,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정리가 안되서.'

 

 

 


얼이빠진표정으로 거친숨을 고르며 천장만 바라보던 지호가 가만히 왼쪽 가슴에 손을 얹었다. 앞뒤안가리고 헐레벌떡 뛰어왔더니 아직도 가슴속에서 쿵쿵거리며 주체할수 없이 뛰어대는 심장소리. 빨간 살덩이가 두터운가죽안에서 꺼내달라고 아우성을 치는듯 했다.

 

 

 

' 미안해, 정말. "

 

 

 

피하지도 않았으면서 도데체 뭐가 미안하다는거야.  그리 시원스럽지도 ,딱잘라말하지도 않은 자신의 형편없는 대답을 다시한번 곱씹어봤다.

같이 잘 즐겨놓고 한다는 소리가 그모양이라니.. 지훈도 어지간히 당황했을것이다.

 

 


" 즐기다니? 난 그런적 없는데 그냥, 그냥 기분이 좋아서.."

 

 


그게 즐긴거야, 병신아.  어디선가 경이의 비웃음섞인 목소리가 들린것같아 불쾌해졌다.

지호는 자신에대한 죄책감에 바람에 날려 헝클어진 머리를 있는힘껏 쥐어짰다. 미쳤지, 내가.  밀었어야되는데. 아니, 그 입술을 ..어떻게 밀어.

 

 

어느세 지호의 손가락은 자신의 통통한 입술에 가있었고, 마치 그때 그 느낌을 기억하려 애쓰듯 천천히 아랫입술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느낌? 옅은 가로등 불빛만을 의지한 컴컴한 방안.

눈을 감아보니 아주 생생하게도 기억이 났다. 키스하던 도중 살짝 본 강아지 마냥 긴 속눈썹, 달뜬 신음소리, 자신의 얼토당토않는 대답을 듣고 당황에 물든 지훈의 표정.

 


가족중 한명이 밤중에 일어나 물이라도 마시려는듯 달그락거리는 요란스런 소리에 정신이 번쩍난 지호가 으악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입에 가져다댔던 손을 급하게 떼어냈다. 

놀란듯한 누군가의 발걸음소리가 가까워지는걸 느꼈다. 두번의 노크를 마치고 예고없이 열린 문, 둔탁하게 터벅이는걸보니 아무래도.

 

 

 


" 안자고 뭐해? "

 

" 아, 암것도 아냐 형. 늦었는데 빨리 들어가서 자."

 

" 아무것도 아니기는. 도둑들었는줄 알고 겁나 놀랐잖아, 이새끼야. "

 

 

 

 

너나 빨리 자. 심장나올뻔했네.  언제 챙겨왔는지 태운의 손에 쥐어진 목검이 문틈사이로 삐죽 나와있었다. 잔뜩 인상이 쓰여진 태운의 얼굴이 지호의 방안을 한번 쭉 스캔하고, 그때서야 소리없이 방문이 닫혔다.

 

지호는 뜨끈하게 달아오른 양볼을 차가운 손으로 덮었다. 갑작스러운 태운의 방문때문인지, 지훈과의 입맞춤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정말 형말대로 미친놈이 된것같았다.

 

내일 지훈을 어떻게 봐야하지 라는 생각보다 시도때도없이 벌게지는 이 얼굴을 어떻게 지훈앞에 내놔야할까가 더 고민이되니, 말다한 셈이었다.

 

 


   
*

 

 

 

지훈에게 오늘은 여러모로 상쾌한 아침이었다. 예전에 항상 분신처럼 하고다니던 피어싱을 서랍구석에서 우연찮게 찾아냈고, 늦잠을 잤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매일같이 귓구멍을 괴롭히던 박찬열의 모닝콜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 그리고 또 하나 잊은거. 차였다, 그것도 애매모호하게. 우지호가 날 볼때마다 하도 아련하게 쳐다봐서 관심은 있는줄 알았더니만, 그것도 아니였나보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그토록 원하던 상대와 진하게 키스까지 나눴으니까. 지훈의 한쪽 입꼬리가 비열하게 올라갔다. 눈을 부비작거리며 침대 끝에 걸터 앉았던걸 다시 뒤로 뉘였다.
 

 


그러다 으거걱 거리는 이상한 동물 울음소리를 내며 몸을 가만 두질 못했다. 쿨내 존나 난다 시발. 진짜 이랬으면 소원이 없었겠네. 오리털 가득한 배게에 얼굴을 묻은 지훈이 이대로 콱 죽어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 그래도 우리 지호 얼굴 한번더 보고. 이런 생각부터 나다니,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미칠노릇이었다.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이것저것 사달라고 땡깡부리듯 침대위에서 아주 난리부르스를 춰댔다. 그래, 미안하지만 오늘은지각. 근데 도데체 누구한테 미안한거야?

 

 

 

" 정신좀 차려라 진짜. "

 

 

 

끝났어. 자신에게 내뱉는 충고. 가슴깊은곳 어딘가가 뻥하니 찝찝하게 뚫린듯한느낌에 멍하니 중천에 뜬 해만 바라봤다.

본래의 말끔했던 시트는 형체도 알 수 없이 구겨졌고 등교할 시간이 다되어가건만, 지훈은 이불을 정수리 끝까지 올려 침대깊숙히 파고들었다. 

 

 


*

 

 

 

 

백현과의 알콩달콩했던 데이트 이야기 봇다리를 친구들에게 풀어주느라 정신이 없던 찬열의 주머니에서 웅웅 거리며 진동이 울렸다.

 

아이씨, 작게 욕짓꺼리를 밷어내고 교복 뒷주머니로 손을 옮기는 찬열을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준홍이 그대로 책상위에 엎드렸다. 저 진절머리나는 커플얘기를 들어주다가는 머리털이 다 빠질지경.

 

그사이 찬식이 분홍색브릿지를 해서 뻣뻣해진 준홍의 머릿결을 신기하다는듯 만지작 거렸다. 하지말라는듯 강아지처럼 고개를 내젔는 준홍을 보고 피식 웃은 찬식이 이내 귀여운 머리통을 두어번 통통 두들겼다.

 

 

"저런 깜찍한 미래게이들을 봤나. "

 

 


찬열이 낮게 읇조리고는 통화버튼을 오른쪽으로 밀었다. 뭐눈엔 뭐만 보인다더니, 오해하지마 변태게이새끼야. 라는 준홍의 쩍쩍갈라지는 음성을 듣고도 모른척.

지훈의 잠긴 목소리에 집중하는 찬열이었다. 어, 왜

 

 


" 미쳤냐? 학교를 안와? "

 

[ 시발놈아 소리좀 낮춰, 담임한테는 대충 아프다고 해 그냥. ]

 

" 어휴, 알겠다 새끼야. 푹 쉬삼- 빠이. "

 

 

 

대답을 들으려 기다리고 있던 찬열의 기대와는 다르게 반대편에서 뚜뚜뚜  통화음이 끊긴 소리가 들리자 신경질적으로 종료 버튼을 눌렀다. 존나 미친새끼. 맘에 드는게 없어.

 

덕분에 이야기도 중간에 잘라먹고 뭣같은 기분에 가만히 있던 준홍의 탐스런머리칼들을 잔뜩 휘져어 놓는 찬열이었다.

진심으로 화난 표정을 하고 벌떡 일어난 준홍에게 문제집을 푸느라 정신이 없는 찬식을 조용히 가르키자. 잡아먹을듯 컁컁거리는게 아주 위협적이였다. 어휴 저 개새끼. 킬킬 웃으며 재밌다는듯 둘을 바라보는 찬열에게 드리운 그림자. 

 

 

 

" 저기, 오늘 지훈이 왜 안오는지 알아? "

 

 

 


퍽 걱정스러운 표정을하고 서있는 지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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