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다니엘/옹성우]
LOVE CIRCLE
W.LIGHTER
"뭐야, 우리집은 어떻게 알았어?"
"너가 연락이 안 되니까 과사에 물어봐서 온거야."
그건 그렇고 오늘 저 선배랑 있었던 거야? 나를 처음 봤던 강다니엘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걱정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어떻게 답장을 보내려고 해도 끝없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우재 선배 때문에 할 수가 없었다고, 미안하다고 빌어야 할 정도로 언제부터 기다린건지 순간 잡은 외투에는 여름이 다가오는 계절이기는 했어도 찬 기운이 물씬 묻어있었다.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옆에 있는 옹성우를 보지 못했을 때의 이야기었다. 연락이 되지 못한 것도, 몇 시간이나 기다리게 한 셈인 장본인도 모두 나였지만 '걱정'이라는 한 단어로 이미 앞서 있는 것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한 얼굴을 해왔었다. 다만 성우 선배를 발견함과 동시에 순식간에 침체되는 분위기는 나라고 한들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오늘 우리과 선배가 회식하자고 막 난리쳐서 거기 끌려갔다가 성우 선배랑 빠져나온거야."
"강우재한테 끌려갔다가 온 거야, 너?"
갑자기 다니엘의 입에서 나오는 '강우재'라는 이름에 나는 두 눈만 깜박이고 있었다. 얘가 그걸 어떻게 알지. 어문계열에 있는 나와는 전혀 접점이 없을만큼 강의동도 다른 판국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부르는 이름은 놀랍다기보단 신기했다. 워낙에 미친놈으로 유명해서 다 아는건가, 싶었지만 그마저도 우리 과에서나 통일되는 사람이었다.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자가 되는 게 특기였던 선배는 제가 손쉽게 부릴 수 있는 영문과의 후배들만 들쑤시고 다녔지 괜한 짓까지 하면서 골치 아픈 일을 자처할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항상 선배들 앞에는 '선배님'이라는 말이 자동으로 붙는 것마냥 어딜가나 예의있게 말하던 강다니엘이 매우 기분 나쁘다는 식으로 강우재라는 이름을 뇌까렸을 때는 내가 아는 놈이 아닌 것만 같았다.
"너가 그 선배를 어떻게 알아?"
"내가 너에 대해서 모르는 게 어디있어."
그것도 그럴게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넘기며 옹성우와 나를 보는 눈빛은 가히 처음 받아보는 것이었다. 그 선배 워낙에 악질이라니까 조심해. 말이 향하는 건 나였다. 분명히 나한테 하는 말이 맞았는데 다니엘의 시선의 끝은 결국 성우 선배였다. 둘이 원체 사이가 좋은 편도 아니어서 정 가운데에 서있는 나는 딱히 할 말도 없어 어색하기만한 이 공기의 흐름을 어찌해야 될지 가늠이 가질 않았다. 평소에는 쓸데없는 생각들만 잘 떠오르면서 지금 뭐라도 말할 거리가 있으면 좋겠는데 이 놈의 머리는 굴러가질 않는거야. 다니엘과 성우 선배를 번갈아 보기를 몇 분쯤 지났을까 강다니엘은 옹성우에게 들려져 있는 내 가방을 가져다 내 손에 쥐어주었다.
"그냥 너 걱정돼서 온 거야."
"아, 응."
"너가 보고싶기도 하고, 잘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했는데 이렇게 혼자서 자취도 하고 다 컸네."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하는 다니엘의 어투는 평소보다 더 다정하고 또 다정했다. 그저 허투로 한 마디도 넘기기 어려운 듯한 그런 다정함에 나는 부러 바보같이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그만 들어가, 늦었다. 나를 들여보내며 말하는 다니엘의 행동에 나는 반쯤 떠밀려 계단을 오르고 있었고 내 손은 그 와중에 잘가라며 흔들어대고 있었더랬다. 다니엘이 우리 집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닥쳤던지라 미처 보지 못한 옹성우의 얼굴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궁금했다, 라기보다는 좀 신경쓰였다고 해야되는 건가. 순신간에 집 안으로 들어오기 전 뒤돌면서 봤던 성우 선배는 내게 짧은 눈짓만 해왔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차라리 내가 둘을 바래다 주고 오는 게 더 나았을 듯했지만 딱히 내가 있는다고 해서 나아질 분위기는 아닌지라 나는 씻지도 않은 채 그대로 침대에 몸을 내던졌다.
'내일 강의 몇 시에 있어?'
'학교 같이 가자.'
그냥 이러고 바로 자고 싶다고 생각할 찰나, 연달아 울리는 핸드폰의 진동으로 인해 무겁게 내리앉는 눈꺼풀을 가까스로 들어올렸다. 근래에 이렇게나 내 핸드폰이 다른 사람의 연락으로 바빠질 줄은 몰랐는데. 간신히 손을 뻗어 본 문자들은 첫 번째로 온 발신자는 강다니엘이었고 후에 온 발신자는 옹성우였다. 작은 화면 안에서 진한 글씨로 보이는 그 이름들이 이리도 크게 느껴질 줄이야. 뭐라 답장을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아 나는 베개 밑으로 핸드폰을 집어넣으면서 오늘 이대로 자면 내일은 화장을 안해도 되겠다, 같은 별 영양가 없는 생각들을 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 * *
"뭐 하자는 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영문학과로 지망하는 거였는데."
성우는 제 말은 귓등으로 듣지 않는 다니엘의 태도에 있는대로 미간을 찌푸렸다. 술집에서 그 난리를 피우고 온지 얼마 되지도 않는 시간이었다. 즉, 제가 ㅇㅇ와 단둘이 있는 시간은 고작 해봐야 몇 분도 안되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그녀를 바래다 주는 사람이 성우, 자신이여서 집에 가까이 올 때부터 자신을 쳐다보지 못하는 ㅇㅇ의 얼굴이 퍽이나 귀여워서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사람이 여유를 부리면 꼭, 수가 꼬인다고 하필 ㅇㅇ의 집 앞에 있는 사람이 이 자식일까. 원래도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대놓고 자신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태도를 몸소 겪자니 참 거지같았다.
"야, 강다니엘."
"괜히 ㅇㅇ 힘들게 하지 마세요."
"뭐?"
그래놓고 선수치듯 하는 말은 고작 저따구의 말이었다. 그래,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일은 결단코 즐거운 일들만 있는 건 아니니까 제가 ㅇㅇ를 힘들게 할 수도 있다. 자신은 제 감정을 숨기는 일에 무뎠고 대놓고 제가 하는 말들에 몸이 경직된 듯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그녀를 못 보는 것도 아니었으니. 근데 힘들게 하지 말라는, 저 말이 저 새끼 입에서 나올 군번은 아니지 않냐, 이거다.
"안 그래도 작은 일 하나에도 힘들어 하는 아이에요."
다 안다고 자부하는 녀석의 말이 듣기 싫었을 뿐이다. 제가 없었던 그 시간이 뭐라고 공백의 시간을 들먹이면서 있는 척, 없는 척 나불거리는 꼴이 영 못내 짜증났을 뿐이다. 성우는 입에 문 담배 끝을 잘근잘근 씹어대며 저를 보고 있는 다니엘을 향해 웃어보였다. 이게 웃는 표정인지, 아니면 한 대 패고 싶은 표정인지 모른다는 게 흠이었지만. 얼마 태우지도 못한 담배가 아쉬웠지만 이이상 강다니엘을 앞에 두고 피는 것만큼 좆같은 것도 없던지라 성우는 툭, 하니 떨어지는 담배를 가감없이 지져끄고 있었다. 진짜 내가 살다살다 별 꼴을 다 당한다, 옹성우.
"어쩌라고, 병신아."
내가 전에도 말했지. 나 포기 안 한다고. 그렇게 잘 아는 넌 왜 지금 와서 지랄이야. 이미 위를 바라본 ㅇㅇ의 방은 불이 꺼진지 오래였다. 오랜만에 이렇게 집 앞에서 배웅도 해줄 수 있는 것만으로 다니엘, 저는 충분했다. 그녀와 같은 학과가 아닌 게 문제라면 문제였으니 제 대신 옹성우라는 인간이 ㅇㅇ를 편하게 해주었으면 그걸로 된 것이었다. 그렇지만 선은 지켜야지. 자신이 생각하는 옹성우의 몫은 거기까지였다. 제가 없는 동안 자신을 대신할 사람. ㅇㅇ가 없는 시간은 무어라 말할 수도 없을만큼 좋지 못했다. 이도, 저도 아닌 관계 사이에서 그녀를 힘들게 한 사람은 자신이었지만 우리 사이가 그 정도로 무너질 사이가 아니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들이 모두 제 착각이라면, 괜한 자신의 자만감이라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막막했다. 그래서 제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에 같은 학과에, 같이 수업 좀 듣는다고 어느 순간부터 끊임없이 붙어다니는 옹성우는 제가 나눈 기준으로 보자면 정말 싫어할 부류의 인간상이었다.
"이제 와서 너는 뭘 어쩌고 싶은 건데."
"........."
"다 안다는 듯이 어줍잖게 애 주변 맴돌거면 너나 그만둬."
저 선배는 뭔데, 날 얼마나 안다고 저렇게 함부로 말을 하지. 다니엘은 속으로는 몇 번이고 성우의 멱살을 틀 생각을 했지만 아직까지는 제 이성의 끈이 더 길었다. 그래도 꼴에 선배라고 격식을 차리려는 제 생각이 우습기는 했어도 간신히 붙잡고 있는 이성은 다니엘의 습성이었다. 속과 겉이 다른 것, 마음 같아선 할 말, 못할 말 다 하고 싶었어도 머릿속으로 수십번 되뇌이는 것, 모두 유년시절부터 어른이 되는 과정 속에서 항상 새겨놓는 자신의 습성이자 습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게 숨을 들이내쉬는 자신을 보고 비웃고 있는 성우를 보면 그마저도 무색해질 것 같았지만. 굳이 내색을 하지 않았어도 자신은 불안했다. 제가 뒤늦게서야 가진 용기로는 성우 앞에선 턱없이 부족했다. 자신은 지금 그녀가 제 앞에 있는다고 해도 제 마음을 말하는데에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테지만 성우는 당장이라도 그녀의 현관문을 두드려서라도 고백을 할 사람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솔직히 자신은 그녀와 제가 함께 했던 긴 시간들이 성우와 ㅇㅇ가 함께 했을 짧은 시간보다 못할까봐, 결국엔 제 시간이 잠식 당하는 건 한순간일까봐 다니엘은 노심초사였다.
"내가 까놓고 얘기해줄까?"
"......."
"ㅇㅇ는 너한테 고백도 했고, 너한테는 그 긴 시간도 쥐어줬어. 그걸 주워먹지 못한 건 너라는 사람이고 결국 피해 본 쪽은 네가 아니라 ㅇㅇ야."
그리고 걔 주변에는 너밖에 없을거라고 착각한 것도, 네 잘못이고. 그런데 왜 괜한 곳에다가 화풀이야. 줄줄이 이어나가는 성우의 말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쉽게 표현되는 문장이 아니였다. 남의 문제에 대해서 왈가왈부 하는 선배는 예의라는 걸 밥말아 먹은 듯했지만 또 그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는 게 더 짜증났다. 객관적으로 보면 구구절절 하는 말마다 옳았다. 시기가 있었고 그 시기를 놓친 게 이렇게나 큰 잘못인 줄 알았다면, 아니 차라리 다니엘, 제가 ㅇㅇ를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이보다는 나았을텐데. 왠지 모르게 기운이 다 빠지는 기분이었다. 싸우러 온 것도 아니었지만 걱정이란 걱정은 다 짊어지고 찾아온 그녀의 집 앞에서 다른 남자랑 있는 걸 보는 것만큼 괴로운 일이 또 있을까. 근데 자신은 이제는 하다하다 본전도 못 찾게 생겼다.
"남 눈치 보느라, 너 신경 쓰느라 용기도 못내는 사람한테 내가 충고 들을 처지는 아닌 것 같아서."
간다. 제 할 말만 하고 등을 돌려버리는 성우의 뒷모습에 다니엘은 어이없는 조소가 흘러 넘쳤다. 만약 성우의 말대로 제가 늦어서 이런 걸 당해야 한다면 자신은 좀 억울할 것만 같았다. 다만 이대로 있다가는 억울함보다 더 큰 걸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해도 ㅇㅇ에게 문자를 보내는 손은 다급했다. 정말 이를테면 그녀를 그대로 잃을 것만 같아서. 일부로 가는 길을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성우와 같은 길을 걷고 싶지 않은 다니엘은 왼쪽으로 길을 틀어서 걸어갔고
"아, 진짜 세상에 쉬운 일 하나 없다."
그의 반대편에 있던 성우는 이미 자고 있을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면서 괜스레 느껴지는 조급함에, 답장도 오지 않는 핸드폰만 무던히 매만지는 손길이 바빠 보였다.
Episode 9, FIN
작가의 주저리 데쓰(라이터 사진 있어요) |
* 안녕하세요, 라이터입니다! 벌써 9월도 훌쩍 지나가버렸어요ㅠㅠㅠ이러다가 정말 눈 깜짝 하면 붕어빵 뜯고 있을 계절이 오겠네요. 오늘부터 러브서클에 올라오는 작가의 말은 접기 기능으로 해서 숨겨둘 예정이에요. 저번화에 한 독자님께서 라이터 움짤이 싫다고 댓글을 달아주셨더라구요. 원래 글을 처음 쓸 때 필명으로 엄청 엄청 고민을 많이 했는데 예전에 무서운 이야기나, 이런 만화 보면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불을 탁 붙이고 이야기가 끝나면 후, 하고 부는 그런 걸 보고 어떻게 보면 제가 쓰는 글들도 망상이여서 얼마 안되는 글이지만 제 글을 읽을 때만큼은 아무 생각 안하고 이야기에 푹 빠져서 현생을 잊고 잠깐이나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필명을 라이터로 짓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처음 견주를 시작으로 이 필명을 쓸 때부터 흔한 이 라이터 움짤이 제 심볼(?)이 될 거라 생각해서 차마 지울 수는 없어서 이렇게 숨기기 기능으로 조금이나마 가리는 게 어떨까 싶었답니다. 아직 견주에서는 읽으시는 독자님들께서 라이터 움짤이 보기 싫다고 하시는 분들은 없으셔서 평소처럼 쭉 스크롤을 내리면 보이게 되는데 혹시라도 보기 싫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러브서클 연재할 때처럼 안 보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빨리 러브서클에서 달달하게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는데 원래 제가 로맨스를 직접적으로 엄청 많이 겪어본 사람이 아닌지라(눈물) 이건 뭐 연애를 하자는 이야기인지 싸우자는 건지 모르겠네요....이러다가 조만간 다녤이랑 성우랑 투닥거리다가 정드는 청춘물로 쓰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병맛같은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ㅎ 녤이랑 이어질지 성우랑 이어질지 막 독자님들이 궁금해 하시는데 저만 알고 있으니까 너무 좋고 행복합니닿ㅎㅎㅎ흫ㅎㅎ 근데 뭐 어차피 독자님들이 무엇을 상상하시든 러브서클은 거기에 아주 충실한 이야기니까 크게 반전이 없을거예요(아마도) 오늘도 주저리가 길어졌다! 일일이 댓글 알람이 딱 오는 게 아니여서 바로 답글을 달아지지는 못하지만 제가 아프면 아플 때마다 징징대면 징징댈 때마다 걱정해주시구 응원해주시는 독자님들이 계셔서 저는 정말 너무 좋아요ㅠㅠㅠㅠㅠ제가 많이 사랑해요ㅠㅠㅠㅠㅠ 그럼 오늘도 아프지 말구 좋은 꿈 꾸고 잘 자요, 우리. 안녕! |
*암호닉 신청은 최신화에서 해주세요*
암호닉 L.O.V. 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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