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락비/지권] Find love in your song 02 |
'네. 알아요―' 뾰루퉁하게 입이 나온 지훈이 대답했다. 대체 무슨 꿍꿍이를 갖고선 유권이 형을 쳐다보는 건지 모를 시커먼 한 남자. 맘에 들지 않아 대충 단 답으로 대꾸하니 아하-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다시금 유권에게로 시선집중. 그 모습을 지켜보는 지훈의 속에선 더욱 더 이유모를 짜증의 불길이 치솟았고 그 덕분에 괜히 미간에 주름만 잔뜩 생겨났다.
오늘따라 유권의 앞에 몰려드는 사람이 많아 자꾸만 지훈의 시야를 가린다. 벤치에 앉아 빼꼼히 목을 빼고 유권을 바라보던 지훈이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일어섰다. 타이밍은 참 절묘하게 지훈의 움직임에 맞춰 노래가 끝났다. 와- 하고 박수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진다. 목소리가 참 좋아요. 앞에 서서 유권에게 말을 거는 여자도, 고개를 끄덕이며 유권을 바라보는 저 시커먼 남자도 지훈은 왠지 모르게 짜증이 난다.
. . .
"형- 오늘 멋있었어요."
"오- 진짜?"
"아니."
눈을 흘기는 유권에게 지훈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진짜 멋졌어요.' 라고 답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 왜 난 지하철을 타야하냐며 징징대는 지훈. 같은 방향에 살았으면 같은 버스를 타고 갈 수 있었을 텐데- 지훈은 자꾸만 혼자서 중얼댄다. 어느새 도착한 지하철역 앞, 유권은 징징대는 그 모습이 귀여워 피식 웃더니 지훈의 등을 떠밀었다. '얼른 들어가~' 등을 떠밀려 몇 계단 앞으로 내려간 지훈이 뒤를 돌아보더니 입술을 삐죽인다. 어서 가라 손짓하는 유권을 아쉬운 듯 바라보다 한걸음 걸어 나간 지훈이 소리쳤다. '조심히 들어가요! 누가 잡아간다?' 얼씨구- 표지훈? 지훈의 말에 유권은 그냥 허허 웃어버렸다. 웃는 유권의 얼굴을 보고서야 표정을 푼 지훈이 손을 흔들며 계단을 내려갔다.
지훈을 보내고 나서야 주머니에 구겨 넣은 이어폰을 귀에 꽂을 수 있었다. 끙-차! 어깨에 맨 기타가방을 다시 추스르며 우연히 바라보게 된 하늘. 와- 오늘 정말 날씨 좋은가보다. 서울하늘에 이렇게 별이 많이 떴던 적이 언제였더라―. 유권은 잠시 걷던 길을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반짝이는 별들이 유난히도 많다. 집에 가면 창문이나 열어놓고 노래나 쓸까- 생각하며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
"오늘은 당장 어쩔 수가 없으니까 빌려주기야 하는 건데...."
난처함과 미안함이 뒤섞인 얼굴로 말하는 한해에게 지호는 아무런 불평을 할 수가 없었다. 아이고, 저렇게 착하게 말하는데, 불평을 하면 정말 내가 나쁜 놈이지. 오늘 하루만 녹음실을 빌려 신세를 지기로 했다. 그 뒤로는, 뭐 친구들 집에서 하루씩 돌아가면서 숙박을 할까- 고민을 하던 찰나였다. '그럼 나 들어간다?' 어? 바닥을 내려다보던 지호가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이미 어깨엔 가방을 맨 한해가 서있다. 아……. 집에 간다고. 그래- 잘 가! 손을 들어 흔들었다. 한해는 멍한 표정의 지호가 귀여웠는지 지호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고는 녹음실을 빠져나갔다.
와-! 한해가 빠져나가자마자 지호는 녹음실 안에 있는 소파위로 쓰러지듯 몸을 던졌다. 노곤하다. 어느새 낮에 있었던 집안에서의 사건은 공연으로 인해 다 잊혀진듯했다. 항상 이렇게 무대에 서고나면 몸이 물먹은 솜 마냥 무거워진다. 꼭 졸음이 눈가에 얹혀 있는 것만 같다. 혼자 남은 녹음실은 고요했다. 몸을 꿈틀거리며 발치에 구겨져있던 담요를 가져와 덮었다. 그래도 봄이라고 완전 춥지는 않다. 난방이 안 되어도 살 만 할 텐데- 쓰읍. 침을 삼키며 지호는 아쉬워했다. 하지만 결국 녹음실에서 지낼 수는 없으니. 이제 정말 어쩐담. 잠시 배부르고 따뜻한 집이 그리워지기도 했지만, 그 생각도 곧 잊혀졌다. 자신의 아버지, 우사장님 생각에…….
지호는 좁은 소파가 조금은 불편한지 몸을 뒤척거렸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몸을 움직이는데 문득 아까 본 그 사람이 생각이 난다. 공연이 끝난 뒤에 마른 목이라도 축일까 싶어서 편의점에 가던 길이었다. 거리에서 공연을 하고 있던 그 사람. 이 거리는 다른 곳에 비해서 버스킹이 흔한 편이고 그만큼 버스커도 많지만, 그 사람의 목소리는 유난히도 자신을 잡아끌었던 것이다. 목소리가 참 좋다고 생각했다. 모처럼 자리를 잡고 앉아 감상을 했던 것 같다. 홀짝홀짝 목을 타고 넘어가던 포카리스웨트가 그 사람의 목소리와 잘 어울렸던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이 근방에서 공연을 하던 사람인데도 몰랐네. 하기야. 그럴 수도 있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던 지호가, 다시 눈을 떴다.
아- 근데 궁금하다 그 사람…….
. . .
하루가 지났다. 지저귀는 새소리나 눈부시게 비치는 햇살 따위에 눈을 뜰 리가 없었다. 잠이 든 곳은 창문하나 없는 지하의 녹음실이었으니. 밤새 좁은 소파에서 새우잠을 잔 탓인지 몸 여기저기가 쑤신다. 지호는 몸을 벌떡 일으켜 기지개를 폈다. 으아아-! 하는 쌩목 효과음은 덤으로. 아이구 허리야- 주먹을 쥐고 허리를 통통 치며 밤새 온 연락은 없었나 핸드폰을 확인했다. 어, 근데 정말 하나도, 하.나.도. 없네. 실망스런 얼굴의 지호는 하품을 하며 입맛을 다셨다. ‘아- 오늘은 뭐 먹나.’ 배를 긁으며 혼잣말을 내뱉어도 돌아오는 목소리도 없고. 그야말로 심심해 죽겠다. 비록 외박을 했을지라도 우지호의 배꼽시계는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꼬르륵 소리가 나는 지호의 배, 잠시 소파에 앉아 멍을 때리던 지호는 까치집 지은 머리에 모자를 눌러쓰고 녹음실을 나섰다.
핸드폰을 열어보니 현재 시각 11시 30분. 좋아, 브런치를 먹기 알맞은 시간이군. 고개를 끄덕인 지호는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따라 흥얼거리며 걸었다. 이 근처 어디에 조용한 카페가 없을까- 별다방은 너무 비싸. 콩다방은 사람이 많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조용히 브런치를 먹기 좋은 카페를 찾던 찰나, 지호의 눈에 들어온 작은 카페 하나. 아담한 크기에 원목으로 꾸민 인테리어도 산뜻하다. ‘오! 저기다!’ 작은 쾌재를 부른 지호는 곧장 그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어서 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니 딸랑거리는 방울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온다. 그리고 뒤를 이어 따라 나오는 알바생의 인사. 근데 목소리가.... 목소리가.....? 어젯밤에 계속 생각하다 잠이 들었던 그 사람의 목소리와 묘하게 겹친다고 생각했다. 휘적휘적 걸어간 지호는 푹 눌러쓴 모자를 살짝 들어 앞에 선 알바생을 바라보았다. ‘주문 받아드리겠습니다-’ 야무지게 생긴 입술을 달싹이며 말하는 알바생. 눈꼬리가 찢어진 게 꼭 고양이처럼 생겼네―. 앞에 선 알바생을 스캔하느라 주문은 까먹고 멍 때리고 있는데, 순간 지호의 정신을 퍼뜩 들게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주문하시겠어요?”
아, 아. 네.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린 곳을 쳐다보니 좀 더 키 큰 남자가 인상을 쓰고 서있다. 거, 참 목소리 한번 동굴 같네. 멋쩍어진 지호는 메뉴판을 잠시 들여다 보다 주문했다. ‘아메리카노랑 허니브레드요.’ 그러자 다시 질문이 돌아온다. ‘아메리카노 따뜻하게 해드릴까요?’ 어라. 또 그 목소리다. 메뉴판에서 눈을 떼고 다시 앞을 바라보니 한 계산대 앞에서 알바생 둘이 티격태격 이다. 자기들 딴에는 안 들리게 한다고 말하는걸 테지만 다 들린다. ‘형, 내가 주문 받는다고요!’ ‘아 자꾸 왜 그래! 손님 기다리게!’
“네. 따뜻하게요.”
“아! 네. 죄송합니다.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결국 키 큰 남자가 밀렸는지 음료를 만들러 옆으로 물러났다. 입을 삐죽거리는 건 옵션인가. 다시 고개를 정면으로 돌리니, 결제를 도와드리겠다며 싱긋 웃는 알바생. 아무리 봐도 어제 보았던 버스킹의 주인공이 맞는듯하다. 와- 말 걸어보고 싶다.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면서도 뚫어져라 자신을 쳐다보는 지호의 눈빛을 그제야 알아챈 건지, 알바생이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먼저 말을 건넸다. ‘혹시, 저 아세요?’
“아, 저기. 혹시-”
“형, 주문 밀렸잖아요.”
어라-? 퉁명스런 말투로 내뱉는 동굴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뒤를 확인하니 제 뒤에 따라붙은 사람이 세 명이나 늘었다. 아차 싶은 미안한 마음과, 왠지 구석에서 솟아오르는 아쉬움에 괜히 키 큰 알바생을 째려보았다. 그러자 그 쪽에서도 왠지 지지 않고 자신을 째려보는듯한 이상한 느낌이 들어 묘하게 기분이 불쾌했다. 여긴 직원 교육을 어떻게 하길래…….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아 저기- 손님? 거스름 돈 2500원입니다.’ 난처한 표정을 하면서도 목소리는 낭랑한 그 알바생은 저에게 거스름돈을 내밀고 있다. 아, 네. 거스름돈을 지갑에 넣고 진동 벨을 받아 주문을 마쳤다.
자리에 앉아 주문한 메뉴가 나오기 전까지 물끄러미 계산대 앞의 알바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꽤나 분주하게 포스기를 두드리고, 돈을 받고 거슬러주며 계산을 하는게 왠지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 같은 모양새다. 아마 저 사람의 머릿속엔 ‘바쁘다 바빠-’가 메아리 치고 있지 않을까. 안 그래도 점심시간이 곧이라 바빠질 텐데, 오늘은 나처럼 브런치로 하루를 여는 사람이 많은 건지. 갑작스레 카페 안으로 손님이 쏟아져 들어온다. 조용한 게 좋아서 고르고 고른 카페인데……. 뭐 좀 아쉽지만, 어제 그 버스킹의 주인공을 다시 만나게 됐으니 그것으로 된 걸로 치자며 지호는 턱을 괴었다.
|
***
와............허니브레드가 먹고싶어요ㅋㅋㅋㅋ
이제 슬슬 글의 분위기가 잡혀가나 모르겠네요
인사는 슬픈이야기라서 글을 쓰면서도 스스로도 좀 처지는 느낌이 없잖아 있었거든요
이번 글은 그보단 더 가볍게 쓰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는데
읽으시는 분들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느끼실수도 있고 글 읽기가 불편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겠네요
ㅠㅠㅠㅠㅠ흡..............
똥손의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열심히 쓸게요ㅠㅠㅠㅠ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