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시골즈
윗집 남자들 prologue
인생에서 하루를 없앤다고 하면 나는 오늘을 없앨 것이다.
하긴 오늘 이상한 꿈을 꾸고 일어난 것부터 이상하다 했어.
1교시부터 있던 조별 과제 발표를 말아먹질 않나, 학식 먹다가 숟가락을 놓쳐서 국물이 옷에 튀질 않나.
그걸 지나가다 본 임영민은 쳐 웃질않나. 오늘 누구 하나 나 건들면 다 죽는 줄 알아라.
그래 여기까지는 괜찮았어. 문제는 집 가는 길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집에 도착하기 2분 전. 바로 지금이다.
오늘 하루 동안 너무 기분이 나빠서 집에 곧장 갈 생각으로, 마지막 교시가 끝나자마자 미친 듯이 빠르게 버스를 타고 집 앞에 도착했다.
이제 몇 걸음만 더 가면 되는데.
아까 미친 듯이 뛰던 것 때문인지 신발 끈이 풀려있었다.
'집 앞인데 집 가서 묶어야지' 라고 생각하며 신경 쓰지 않고 가던 길을 갔다.
이게 문제였다. 난 왜 신경을 쓰지 않은거지?
몇 분 뒤, 나는 그 풀려있던 신발 끈을 밟아 스텝이 꼬여 그 상태로 넘어지고 말았다.
무릎이 너무 쓰라렸다. 오늘 나한테 왜 이래 진짜.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데 앞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성인으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뭔가 싶어서 보니까, 웃음을 참고 있는 거였다.
" 큽... "
어깨까지 바들바들 떨면서 입을 꽉 다물며 참고 있었다.
순간 너무나도 화가 나고 쪽팔렸다. 진짜 이보다 민망한 상황이 없을 거다.
곧 두 남자는 겨우 고비를 넘긴건지, 나에게 다가왔다.
" 괜찮으세요? "
얼굴이 동글동글하게 생긴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너 같으면 괜찮겠냐?
" 예.. "
애써 민망함을 숨기며 대답했다.
" 일어나실 수 있으시겠어요? "
" 네 그럼요. "
나는 당차게 대답을 하며 일어나려고 했다.
일어나려고 했는데,
했는데?
" 아니, 다리가 왜 이러지 "
진짜 도저히 못 일어나겠는 거다. 무릎이 미쳤나.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앞에 있는 남자를 쳐다보니,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웃고 있었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내가 넘어지는 장면은 진짜 웃기게 넘어졌다.
순간 그 남자가 웃는 걸 보고 나도 웃겨서 웃어버렸다.
" 아니..킁..그게...큽.... "
이게 개가 짖는 소리도 아니고 대체 무슨 말이람.
나의 개짖는 소리를 들은 남자는 오열을 했다. 살짝 눈물이 맺혀 있던 거 같기도.
" 집 어디세요? "
남자는 웃는 것을 멈추고 집을 물어봤다.
근데 이렇게 낯선 남자한테 집을 알려줘도 되려나.
는 무슨 내가 지금 집에 못 가게 생겼다.
손가락으로 바로 앞에 있는 건물을 가리켰다. 이렇게 눈앞에 있는 걸 보니까 더 억울하네.
" 이 건물이요? 여기 엘리베이터 없는데 괜찮으시려나.. "
" 아 괜찮아요 저 1층이라 "
" 1층이요? "
남자는 눈이 커다래지며 내게 물었다.
" 저 그 위층 사는데! "
" 네? "
갑자기 이웃 주민이라고?
" 그럼 제가 1층까지 데려다 드릴게요. 업히세요 "
" 헐 아니에요 "
" 오늘 여기서 주무시게요? "
할 말을 잃었다. 하루아침에 거지가 될 순 없지.
" 아.. "
내 표정을 읽은 건지 그 남자는 곧 등을 내밀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업혔다. 어떡하지 나 무거운데 ㅎ
내 예상과 같이 그 남자는 내가 업히자마자 약간 움찔했고, 나는 모른척했다.
당신이 먼저 내민 등입니다.
그 남자는 기합소리를 내며 힘겹게 일어났다.
일어나니, 아까 이 남자와 함께 나를 보고 웃던 또 다른 남자가 서있었다.
그 남자는 웃음 조절장애가 있는 것 같았다. 아직도 숨을 못 쉬고 있었다.
애써 모른척하며 집으로 향했다.
-
" 집에 연고 같은 거 있으면 바르세요. 흉 지거든요. 그럼 이만 "
" 아 네 감사합니다 정말 "
근데 우리 집에는 연고 같은 거 없어요 동그라미 씨.
어느새 동그라미 씨라는 이름을 얻은 그 남자는 옆에 있던 남자와 위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혼자 사는데 연고 같은 게 있을 리가.. 울컥했지만 금세 잊고 씻으러 들어갔다.
그날 밤에는 위 층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