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열현성] Red addicts, White addicts 21 |
“ 뚜- 뚜- 뚜- 뚜- 뚜- ”
벌써 며칠 째 핸드폰을 붙잡고있는 지 모르겠다. 어느 새 병실 한 구석엔 충전된 핸드폰배터리들이 가득 쌓여있었고, 난 그렇게 매일 배터리가 다 닳을 때 까지 이성열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이성열이 전화기를 받고, 그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 까지. 그 때까지 계속 이성열 너에게 전화를 할거야-.
“ 똑똑- ”
그 때, 문 밖에서 작은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간호사일 게 뻔해 그러려니하고 계속 두니, 곧 몇초간 아무 반응이 없더니 문이 딸칵거리며 열린다. 언제나 그랬듯, 시선하나 주지 않은 채 묵묵히 핸드폰을 부여잡곤 가만히 신호음을 기다렸다.
“ .. 김명수. ”
남자, 남자의 목소리다. 의사의 목소리는 아닌 듯해 잔뜩 푸석해진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들니, 보이는건 다름아닌 남우현. 며칠동안 난 이렇게 죽어가고있는데, 그런 나와 상반되게 예전그대로인 모습의 남우현을 보니 그저 헛웃음만나왔다. 역시 나하나 미친다고 세상이 바뀐다거나 그럴일은 없는거구나, 그래 이성열이 다시 돌아올일조차도.
“ 배.. 안 고파? ”
오랜만인 남우현과의 정상적 첫 대화내용의 시작이 배고프냐는 질문이냐니. 역시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씨발, 너같으면 이 엿같은상황에 밥이 잘도 넘어가겠다?
“ 미친. 헛소리 하지마. ”
“ ...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
“ ... ”
“ 내 성의를 봐서라도 한 모금이라도 마셔둬라. ”
멍하니 남우현의 행동을 바라보니, 내 시선을 의식하며 한 팩을 침대 옆 선반에 올려놓는다. 다시 천천히 고개를 돌려 초점을 잡고 자세히 주시하니 그제서야 보이는 속의 붉은 액체. 하지만 그 피를 보자마자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 으읍..!! ”
“ 뭐야 !! ”
정말 몰라서 묻는거냐고 남우현에게 되묻고싶었다. 이성열은 결국 피를 흘려서, 과다출혈로 죽었고. 그리고 난 피를 마셔야 살 수 있을 뿐-. 참 거지같다. 아니, 오히려 몇 마디만으로 충분히 이해되는 이 상황이 미치도록 역겹고 미웠다.
“ 집어치워. ”
“ 뭐? ”
“ 꼴… 보기도 싫어. ”
“ 미쳤어? 이거 안 마시면 너 죽어. 지금 니가 안봐서 그렇지, 너 꼴이 장난이 아니… ”
“ 차라리 말라비틀어서 죽을테니까, 아니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집어치우라고. ”
이런 내 모습이 기가 차기라도 한 듯, 그저 실소만 내뿜는 남우현을 보니 나도 그저 헛웃음만 나왔다. 그래, 실컷 웃어. 그래 그냥 차라리 실컷 웃고말자.
“ 자꾸… 너한테서 이성열이 겹쳐보여. ”
“ 뭐? ”
“ 그러니까 넌 알거야. 이성열 왜 전화안받아? ”
“ ... ”
“ 너 이성열이랑 겹쳐보인다니까, 지금. 그러니까 니가 지금 이성열 제일 잘 알거아니야. 너 이성열이랑 한 몸아니야? 응? ”
분명 내 말이 이상한것도, 무슨 말인지 모르게 많이 비꼬아져있다는 것도. 난 모두 다 알고있는데, 그런데… 자꾸만 나도모르게 자꾸만 정리되지않은 말들이 밖으로 나온다. 결국 내가 주체할 수 없을만큼 말들이 죽죽 내뱉어질만큼.
“ 빨리 말해 남.. 아니 이성열. 너 왜 자꾸 전화 안 받아? 응? 나 걱정되잖아. 나 지금 너한테 육백통 넘게전화했어 성열아. 여기 다크서클 안보여? ”
“ ... ”
“ 나 피부도 되게 푸석푸석해졌다? 너 옛날에 샤워기돌리면서 내얼굴에 물묻히고 그랬잖아. 그땐 탱탱하고 좋았는데… 근데 너없으니까 이제 피부도 푸석푸석해졌어. ”
“ ... 후우 , ”
“ 그러니까, 그래서라도 성열아. 며칠 전에도 말했었잖아, 응? 나 싫어해도되고, 안 만나줘도되니까.. 제발 한 번만 눈 앞에 나타나줘라. 응? 나 좀 안아주라.. ”
“ ... ”
“ 나.. 나 너무 힘들어 성열아. ”
눈물샘이 다 말라버려 나오지도 않을 줄 알았던 눈물이, 끝내 주르륵 푸석해진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울기싫은데 너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아프기싫은데 너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너만생각하면 머리가 아프고, 심장을 바늘로 찌르듯 엄청 따끔거리고, 숨도 쉴 수 없을만큼 목을 옥죄어와.
“ 딸칵 , ”
쉴새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채 한참을 그렇게 벅벅 문질러 애써 눈물을 닦다, 잠깐의 침묵 후 문쪽에서 소음이 나고- 숙였던 고개를 들어 병실문쪽을 바라보니 어느 새 남우현은 사라진 채 흐릿한 이성열만의 형상이 남아있었다.
“ 서.. 성열아. ”
반투명하고, 또 흐릿한 이성열이 날 바라본다. 하지만 햇빛이 비치는 곳에 선 그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자는 나타나질않았다. 뭔가 이상했지만, 그래도 아무렴어때. 너만 있으면 다 괜찮아 이성열. 하얀 침대시트에 팔을 짚고 일어나 떨리는 발걸음으로 이성열에게 다가갔다.
“ 손좀.. 잡아줘. 응? 아니 나 좀 안아줘. ”
억지로 그의 손을 잡고, 안으려해도 이성열은 결코 잡히지 않았다. 다만 이성열을 통과하는, 허공을 가르는 내 손짓만이 무참히 눈에 들어올 뿐.
“ .. 성열아, 나 니 뜻 이제 알것 같아. ”
허우적거리던 몸짓을 잠시 멈추고, 점점 투명해지는 이성열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떼었다.
“ 곧.. 니 곁으로 갈게. 너 외롭지않게, 나도 니 옆에 꼭 붙어있을게.. 거기선 우리 마음껏 사랑하자. ”
곧 고개를 도리도리젓는 이성열이 보였지만, 애써 마음을 굳혔다. 다 널 위한거야, 아니 어쩌면 날 위한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 우릴 위한 거야. 서둘러 떠날 채비를 했다. 하루빨리 니 곁으로 가고싶어 성열아. 난 너 없인 일분일초도 못 살겠거든. 왜 니가 있을땐 몰랐는데, 이제서야, 니가 사라지고나서야 네 필요성을 이렇게 절실하게 느끼는걸까. 어쩌면 가슴팍이 간질거린다는 감정을 남우현한테 일찍 말할수도 있었을텐데. 그렇다면 우리 사랑이 이렇게 비참해지진않았겠지-. 그래 모두 다 내탓이야, 그러니까 미안해서라도 네 곁으로 갈게 성열아.
* 우현시점
최대한 빨리, 어떻게든 명수를 원래상태로 돌려놓는 게 급급했다. 저대로 뒀다간 무슨 일을 벌일 지 모르는 명수이며, 그냥 한 마디로 반쯤 미쳐있는 상태였다. 분명 아까 계속 전화기를 부여잡으며 이미 저세상으로 떠난 이성열을 붙잡고있는 걸 본 순간부터.
“ 성규형, 나 왔어. ”
집 안에 들어서며 거실의 소파에 그대로 앉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니까.. 방법은 두 가지다, 이성열을 살려내거나 혹은 김명수가 이성열을 잊게 하거나. 이성열을 살려내는 것에 대한 문제는 분명 엄청 어려울 수 밖에 없을 것이며, 그렇다고 명수가 이성열을 잊게하는 것도 그리 만만한 문제는 아니었다. 결국 둘 다 시원찮은 셈.
“ 어떻게, 해결책 좀 생각났어? ”
곧 성규형이 커피를 든 채 천천히 걸어와 옆에 앉았다. 음, 생각해놓은 건 있는데 말이야.
“ 오, 뭔데? 뭐든 말해봐. ”
“ 아니, 그러니까.. 우린 됬는데, 다른 사람들이 좀 비극적일 수도 있어서. ”
“ 일단 말해봐- ”
성규형에게 내가 생각해온 것들을 조근조근말하니,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성규형. 그리고 그의 모습에 나도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전혀 상황에 맞지 않았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웃음을 띌 수 있어서 다행이다-.
“ 음- 좋다. 그러니까 일단 전쟁을 멈출 수 있고, 또 , ”
“ 아니아니, 나머진 종이에 그냥 따로 적어서 정리해서 보여줄게. ”
“ 응, 응. ”
“ 그럼, 이렇게 하기로한거다? ”
“ .. 으음. 근데, 될 확률 반반아니야? ”
“ 그래도 일단 시도라도 해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
“ 음.. 그래. 내가보기에도 이게 제일 최우선적인것같아. 그럼 이렇게 하자! ”
그래, 알겠으니까 그럼 일단 명수부터 설득하러가자. 성규형에게 말하고나니 역시 한결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아 금세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성규형과 집을 나섰다. 일단 대충 계획은 세워졌고, 역시 실행만 잘 하면 되는것이다. 그래, 그런 것이다-
*
어딕트에게만 존재하는, 그런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병원 밖으로 이동했다. 덕분에 체력소비는 많이됐지만, 그래도 어쩌면 이성열을 만날 수 있단 생각에, 함께 할 수 있단 생각에 설레는 발걸음으로 재빨리 서해안쪽으로 이동했다. 이제 몇 시간뒤면 니 곁으로 갈 수 있을거야, 성열아.
역시 어딕트라 그런지 속도가 매우 빨랐다. 그저 걷기만 할 뿐인데, 바람소리가 매섭게 귀를 때렸으며 옆의 풍경들을 바라볼 시간조차도 없이- 라면 말다했지 않은가. 그야말로 바람에 몸을 실은 듯, 휙휙 스쳐지나갔다.
“ .. 아. ”
그렇게 몇 시간을 빠르게 걸었을까, 멀리서 푸른바다가 보였다. 끝없이 펼쳐진, 인간세상에만 존재하는. 무엇보다도 어딕트세계엔 그저 어딕트들이 직접 인조적으로 만든 호수밖에 없었기에, 그것도 레드어딕트에만 존재하는, 유천(有天)속에서. 그랬기에 더욱 신선했다.
“ ... ”
아름답다, 미친듯이. 가장자리는 바닷속 모래가 다 보일만큼 투명한데, 가운데부분은 아무것도 보이지않을만큼 진한 푸른색을 띄고있었다. 저 속에, 내 몸이 가득 잠길만큼. 딱 그만큼 한 시간만 잠겨있으면 나도 곧 니 곁으로 갈 수 있을텐데 성열아. 아니, 어딕트들은 물에만 유난히 약해서 삼십분만 있어도 될 지도 몰라.
여러생각에 잠겨 정신없이 걷다보니 어느 새 발엔 차가운 바닷물이 밀려왔다 갔다거리고 있었다. 찰랑거리는 느낌이 좋아, 한참동안 발장난을 치다 날이 어두워지고있는 것을 느끼곤 천천히 바닷가 안으로 진입했다.
“ .. 아, ”
괜히 어딕트가 아니랄까봐, 빠른 속도에 벌써 무릎부근까지 물이 차올라있었다. 조금 더 속도를 늦추며, 일반 인간들처럼 천천히 물속을 거닐었다.
“ 이제.. 거의 다 왔어 성열아. 마지막으로 몇마디만 할게. ”
어깨까지 차오른 물. 몸이 점점 불고, 흐늘해지는 게 느껴졌다. 죽어간다는 것이 이런것이였나- 꽤나 징그러운 느낌에 몸을 흠칫 떨어야했다.
“ 어쩌면… 내가 이렇게 한다고 꼭 네 곁에 갈 수 있다고, 그런 장담은 못할거야. ”
“ ... ”
“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네 곁으로 꼭 갈거고, 그렇지않다고 해도… 지금보단 나을거니까. 너없이 고통스럽게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보단 나을테니까. ”
“ ... ”
“ 그리고, 그건 아마 너도 그럴거야 성열아. 너도 나 아픈거싫지? 그렇지? ”
멀리서 성열의 환영이 보였다. 오지말라고 손을 세차게 휘젓고있는 성열의 환영이.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에게 더 다가가고싶고, 그래서 걸음을 더 빨리했다.
“ 이제.. 몇 분 후면 네 곁으로 간다. ”
“ ... ”
“ 조금만 기다려, 성열아. ” |
BGM : Rachael Yamagata : Be Be Your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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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이번에도 돌맞겟다 히히 그대들 스릉흔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