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친구 정재현 지독하게 짝사랑하는 썰 9
재현은 영호에게 “그래서, 여주 언제 보여줘?”와 같은 말을 내뱉곤 했어. 영호가 밥 먹듯 우리 여주, 우리 사랑둥이하니까 여주가 보고싶을 수밖에 없지. 근데 영호는 “네가 내 동생을 왜 봐”, 하면서 철벽만 치는 거야.
이미 알겠지만, 여주만 재현을 데려 오라고 그런 게 아니었어. 재현이도 틈만 나면 “아, 나도 우리 여주 한 번 보고 싶다”하면서 영호 속을 박박 긁지. 진짜로 여주가 보고 싶었던 마음 반, 철벽 치는 영호 반응 보는 재미 반으로 계속 말 꺼내.
집에서는 여주한테 시달리고, 밖에서는 재현한테 시달리니까 이쯤 되면 영호도 포기하고 못 이기는 척 집으로 재현이 초대하지. 여주는 재현이 보고 싶은 마음 없었을지 몰라도 재현은 진짜 여주가 궁금했고, 보고 싶었으니까 아침 일찍 여주가 좋아한다는 케이크 가게 줄에 서서 포장하고 호들갑 떨어. 그렇게 여주와 처음 만나고, 수줍은 듯 저를 보면서 웃는 여주를 보면서 재현은 영호가 여주를 왜 이렇게 예뻐하는지 알 것 같다고 생각해.
여주를 향한 재현의 마음은 영호와 다르지 않았어. 방학 내내 지켜 본 여주는 정말 사랑스러운 사람이었고, 그래서 재현은 평생 여주 편에서 좋은 오빠가 되겠다고 다짐해. 갑자기 생리가 터져서 쩔쩔매는 여주를 어설프게 챙겨주고, 곤히 잠든 여주가 행여나 벌레에 물리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것도 모두 이성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여주를 아끼는 마음 하나에서 비롯된 행동들이었어. 그래서 재현은 여주가 저를 오빠 친구 이상의 다른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 거란 생각을 꿈에도 하지 못했지.
재현은 한 해, 두 해가 지날수록 저를 바라보는 여주의 눈빛에서 전과 다른 애정을 느꼈지만, 설마 하는 마음에 그런 불순한 생각은 접어두기로 해. 여주에 대한 저의 애정이 더 커지고 깊어졌으니 여주도 저와 같은 마음일 거라고, 친한 오빠이자 든든한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다며 얼핏 느낀 여주의 마음을 부정하고 말지.
고3이 된 이후로는 전처럼 여주를 자주 볼 수도 없었고, 영호도 여주 얘기를 전처럼 자주 꺼내지 않았어. 재현은 잠깐씩 쉴 때 여주가 보고 싶기도 하고, 여주한테 연락해볼까 하는 생각도 하게 돼. 간혹 오는 여주의 연락에 수험생 스트레스 날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처음에는 이런 마음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 재현한테는 여주랑 매일같이 연락 주고받고, 집에서 같이 노는 게 일상이었으니까. 허전함이 클 수밖에 없는 거라고, 그게 당연하다고 정신 차려 정재현 하면서 본인 머리 치면서 애써 공부하지. 하지만 여주를 생각하는 날이 많아질수록 재현은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게 돼. 여주가 내 마음에 스며들었구나. 이 마음은 평생 혼자 지녀야겠지. 재현은 그저 씁쓸하게 미소 짓고 말지.
재현이 비로소 고등학교를 졸업한 날, 급하게 약속 장소로 간 재현은 저도 모르게 화를 내. 약속에 늦은 건 정작 본인이면서 지금 누구한테 화를 내는 건지. 우는 여주를 달래줘야 하는데 왜 전처럼 자연스럽게 여주를 대할 수 없는 건지. 재현은 그 물음의 답 역시 알고 있었어.
우는 여주를 달래려던 재현은 갑작스러운 고백에 굳을 수밖에 없었지. 저를 좋아하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물기 어린 진심. 기뻐야 하는 게 맞는데, 전혀 기쁘지 않았지. 찰나의 순간 재현의 머릿속에는 무수히 많은 일들이 떠올랐어. 저의 행동들에 붉어졌던 여주의 얼굴, 다정한 저를 보며 기대하고 설렜을 여주의 마음. 그리고 그 생각의 끝은 죄책감이었어.
여주에게 고백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영호의 믿음을 저버린 것 같았거든. 재현은 여주의 마음이 더 깊어지기 전에, 자신 때문에 더 상처받기 전에 그 여린 마음을 끊어내야겠다고 마음먹어. 그래서 머릿속에 있는 친절한 말들을 거르고 걸러 거절의 말을 찾아.
“여주야 너 서영호 동생이야.”
그 어떤 거절보다 단호한 거절. 아픈 여주를 찾아간 날, 잠깐 스치는 감정일 뿐이라고, 그런 건 착각이라고 다시 한 번 상처를 준 재현은 그 뒤로 여주를 볼 수 없었어. 여주를 거절하는 모든 말은 여주를 향하는 듯 했지만 사실 그 모든 말들은 재현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어. 어린 날 자신이 했던 다짐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기 위한 말.
재현의 대학생활은 영호가 없던 중학교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 전처럼 대놓고 적대심을 표출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간혹 들려오는 재현의 험담들은 그 수위가 더 높았지. 그래도 재현은 외롭지 않았어. 여전히 함께 시간을 보내는 영호가 있었고, 저에게 의지해주는 여주가 있었거든.
전처럼 어색하지 않게 공부를 알려 주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상에서 재현은 안정감을 느껴. 그리고 몸에서 멀어지니 마음에서도 멀어지나봐 하면서 허탈하게 웃는 여주의 말에 재현은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어. 비로소 죄책감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지. 비록 저의 마음은 그대로였지만, 아니 전보다 더 깊어진 것 같았지만 재현에게는 참 다행인 일이었어.
군대에 간다는 저의 소식을 듣고 여주가 눈물을 흘렸다는 건 상상 하지도 못했어. 여주가 저에 대한 마음을 지웠을 거라 생각했거든. 그래서 재현은 매일 밤 여주에게 부치지도 못 할 편지를 쓰면서도 여주와 제 마음이 같길 감히 기도하지도 못한 채 긴 밤을 보내야만 했지.
이루어지지 못 할 사랑이 더 애처롭고, 뜨겁다고들 말하잖아. 재현에게는 여주를 향한 제 마음이 꼭 그랬어. 그래서 제대 후 마음을 비우러 떠난 여행해서도 결국 비우지 못해 가득 찬 마음만 품고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거야.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성인이 되어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와 웃으며 장난치는 여주를 보면서 제 마음을 애써 눌러 담지. 처음 만난 날과 같은 말을 내뱉은 건 자신의 마음이 처음 만난 그 때로 돌아가길 간절히 원하는 재현의 바람이자 욕심이었어. “오빠, 나랑 연애하자고 이렇게 온 거야?”라며 저에게 팔짱을 껴오는 여주의 모습에, 그 전보다 더 간절히 저를 바라보는 여주의 눈빛에 재현의 그 마음이 절망으로 바뀌는 건 한 순간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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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저녁에 온다고 했던 것 같은데...? 11시가 저녁인가? 하하 본의 아니게 독지님들을 기다리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ㅠㅠㅠ
재현의 어나더 스토리를 가져왔습니다!
재현은 외로운 아이에요. 남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지만, 한 번 마음을 연 상대의 곁에 평생토록 좋은 사람으로 머물고 싶어하죠. 그래서 재현에게 영호와 여주는 정말 소중한 사람이죠. 그래서 여주를 향한 제 마음이 불순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지워내려고 하는 불쌍한 사람이기도 해요. 자신은 이미 상처를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니 여주에게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구요.
그렇다면 정말 최근의 재현의 마음은 뭐지??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요!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종종 재현의 마음을 들고 올 예정입니다. 오늘 재현의 감정에 대해 궁금하신 것들 있으시다면 저에게 물어주세요!
[암호닉]은 여전히 신청받고 있으니 자유롭게 신청해주시면 돼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밤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