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친구 정재현 지독하게 짝사랑하는 썰 10
“서여주, 이게 다 무슨 상황이야. 네가 설명해봐.”
“......”
“형, 여주가 컵을 깨서,”
“정재현 나가는 거 다 봤어. 걔도 너처럼 넋이 다 나갔더라. 무슨 일이냐니까 대답도 안 하더라. 너라도 말해봐, 정재현이랑 관련 있는 거 맞지. 지금 내가 생각하는, 그 이유야?”
넋 놓고 재민의 치료를 받던 여주는 갑자기 들어온 영호에도 놀라지도 않아. 그저 멍하니 앉아 아까 재현을 따라 온 여자와 재현은 결국 사귀는 사이가 된 걸까, 영호는 왜 갑자기 저를 찾아와 이렇게 윽박지르고 있는 걸까하고 답이 나오지 않는 생각들을 이어 갈 뿐이지.
“형, 제가 사장님께 말씀 드릴 테니까 일단 여주 집으로 보내야할 것 같아요.”
영호는 여주 걱정하는 재민의 말에 그제야 여주 상태 제대로 확인해. 그리고 고맙다고 말하고 여주 데리고 집으로 가. 집으로 오는 길에도, 그리고 도착해서 둘은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아.
“여주야, 놓아 주는 법도 알아야 해. 네 마음 무시하는 거 아니야. 그런데 있잖아, 그만큼 했는데도 네 마음 몰라주는 사람이면 접는 게 맞아. 이제 상처 받지 말자.”
불편한 정적에 먼저 방으로 들어가려는 여주 잡고 영호가 말하지. 틀린 말 하나 없는 영호의 말에, 오로지 자신을 걱정하는 영호의 마음에 여주는 알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어.
사람 마음이라는 건 참 간사해서 아무리 부정하던 감정일지라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진실로 변해. 재현에게 처음 제 마음을 털어 놓은 순간부터 마음이 눈덩이처럼 커졌던 것처럼. 며칠을 생각에 잠겨 있던 여주는 그 사실을 깨닫고 마는 거지. 그래서 재현을 찾아가 혼자만의 이별을 고해야겠다고 결심해.
그동안 재현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입었던 옷들, 붉어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 했던 화장들을 벗어 던지고 가장 여주다운 모습으로 재현의 집 앞을 찾아가. 어쩌면 마지막이 될 것 같아서, 진짜 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야.
연락도 없이 무작정 집 앞으로 찾아 갔으니, 몇 시간이라도 재현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마음먹었는데, 재현은 이내 여주에게 제 모습을 보여. 상자를 들고 있는 재현은 아직 여주를 보지 못한 것 같았어. 고개를 숙인 채 쓰레기 수거함으로 향한 재현은 들고 있던 상자에서 편지 봉투를 하나하나 꺼내 버리기 시작해. 차마 재현을 부르지도 못하고 그 모습을 보던 여주는 의아함에 재현에게 다가가. 그리고 보고 말지. 편지 봉투에 쓰인 자신의 이름을. 자신은 받은 적도, 읽은 적도 없는 그 편지들을 본 순간 이별을 고하겠노라 했던 여주의 다짐은 무너져.
“오빠, 이게 다 뭐야? 이 편지 다 뭐냐고.”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쓰레기야.”
편지를 가리키며 쓰레기라고 말하는 재현의 눈에는 여주가 여태껏 보지 못했던 슬픔이 묻어 있었어. 여주에게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말 한 번 하지 않았지만 저와 꼭 닮은 표정을 하고 있는 재현을 보며 재현도 같은 마음이었다는 걸 알게 돼. 그렇다면 왜 저를 밀어낸 걸까. 여주의 눈에는 버려진 편지들은 그동안 버려졌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마음 같았고, 또한 재현의 마음과 같아 보였어.
“오빠, 나 좀 봐. 그동안 왜 나를 밀어냈어? 이 편지들을 보고도, 이래도 날 좋아하지 않는다고 할 거야?”
“내가 말했잖아. 나한테 너는 서영호 동생이라고.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 거야, 여주야.”
“나한테 할 말이 겨우 그것뿐이니? 내가 서영호 동생이라는 이유로 날 밀어냈어? 오빠 네 마음이 나랑 같았다면, 그 말에 상처받는 나를 알았더라면 고작 그 이유로 이러면 안 됐어. 오빠 겁 많은 다섯 살짜리 아니잖아.”
“아니, 난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어른스럽지 않아. 그래서 고작 그 이유 하나로, 뻔히 상처 받는 너 알면서도 그렇게 밀어냈어. 밀고 또 밀어내도 너는 끝이 없더라. 너한테 상처 주는 게 싫어서, 그런 내가 너무 미워서 정말 끝내고 싶었어. 그래서 소개팅도 나가서 나 좋다는 사람이랑 웃고 떠들고 다 해봤다고. 그런데 결국에는 네가 아니라서 안 되겠더라. 이제 네가 내 마음 다 알았으니까, 우리 같은 마음이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너 껴안고 좋아해야해? 아니, 난 오히려 절망적이야.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내 마음 감춰 왔는지 너도 알잖아. 너랑 영호 잃고 싶지 않아서 그랬어. 연애하면 평생 행복 할 것 같아? 영호는 군 말 없이 너랑 나 사이 인정해줄 것 같고? 여주야, 나는 나 자신한테도 확신이 없어. 널 평생 행복하게 해줄 거라는 흔해빠진 약속도 못 할 사람이라고. 이 편지들처럼, 내 마음 버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어. 그러니까 내 마음 알았어도 모른 체 하고 넘어가주라. 너도 이제 나 좋아하지 않겠다고, 그 말 하려고 찾아 온 거잖아. 조금만 아프고 나면 예전처럼 잘 지낼 수 있어. 그럴 수 있을 거야.”
“지금까지 오빠한테 거절당하면서 내 마음은 더 이상 다칠 곳도 없이 찢어졌어. 그런데도 오빠가 너무 좋으니까, 기회주고 있는 거잖아. 나한테 오빠 마음 모른 체 하라고 한 거, 그 말 진심이야?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
“그래, 7년이면 나 진짜 오래 끌었다, 그치? 나도 이제 지친다. 그만 할래, 그만 할게 나도. 그런데 있잖아, 그건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 최악의 선택이야. 난 오빠랑 전처럼 지낼 수 없을 것 같거든. 결국 우리 모두를 지키지 못한 건, 오빠가 끔찍하게 아끼는 우리 둘 중 하나를 잃은 건 순전히 오빠 네 잘못이야.”
그 말을 끝으로, 여주는 재현에게서 등을 돌려. 처음으로 저를 봐달라고 애원했던 날, 먼저 등을 돌린 여주, 그리고 그런 여주를 바라보는 재현. 그 날과 상황은 같았지만 여주는 전처럼 눈물 흘리지 않았고, 재현은 전보다 훨씬 더 깊은 절망에 빠져 자리에 주저앉고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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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불금 보내고 계신가요?
드디어 여주도 재현의 마음을 알게 됐네요. 글을 쓰는데 여주, 재현이가 너무 불쌍해서 마음이 아팠어요...
저라면 진작 접었을 마음을 이렇게 오래 간직한 여주가 대단하기도 하고, 그 마음을 숨기고만 있었던 재현이도 참 가슴 아프네요ㅠㅠㅠ
23일부터 진행했던 투표는 종료 되었습니다!
끝을 향해 달려 가고 있는 이 글이 끝난 후 다음 장편으로는 연예인 도영과 작가 여주의 이야기를 들고 올 것 같네요!
너무나도 부족한 글을 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암호닉]은 여전히 신청받고 있으니까 댓글에 자유롭게 남겨주시면 됩니다!
좋은 밤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