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
: 02
박지민이 사라진 첫 날, 다들 박지민의 부재를 궁금해 하는 듯 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 박지민에 관심을 거두었고 그 애를 기억하는 건 나뿐인 것 만 같았다. 이 아이도 외로웠지 않을까, 어디에 있을까 닿을 수 없는 물음들만 커질 뿐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옆에서 영화 이야기를, 책 이야기를,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를 해주던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게 말을 걸어주던 사람이 없어졌다. 이럴 거면서 왜 다가 왔는데? 아니, 김여주 너는 또 이렇게 될 줄 알았잖아. 왜 기대 했는데? 금방이라도 바닥 저 밑까지 잠식할 것 같은 기분에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어디에 있는데 너는. 뭐하고 있어. 빈자리가 너무 커서 아픈 기분이 들 것만 같다.
아무래도 이런 기분으로는 야자를 못할 것 같아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학교를 나왔다. 초겨울임에도 추운 바람이 매섭게 불고 코끝이 시려왔다. 오늘은 다른 길로 가볼까. 밤 8시 적당히 어두운 저녁. 사람들은 바삐 걸음을 재촉하고 나 홀로 천천히 걷고 있다. 길의 끝에 다다랬을 때 나는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익숙하면서도 다른, 같으면서도 틀린 사람이 서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봤을 때처럼 샛노란 머리는 눈물날정도로 예뻤다.
“ 어 김여주? ”
능청스럽게 내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는 박지민. 순간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이 복받쳐 올랐다. 나도 모르게 먼저 말을 걸 정도였으니
“ 너 여기서 뭐해? ”
“ 어 .. 어? ”
목소리, 처음 들어봐. 밝게 웃는 네 모습이 슬프다. 이어 뭐하고 있냐는 내말에 멋쩍게 웃으며 그냥, 일하고 있어. 라고 답하는 박지민은 손에 들고 있단 담배를 급하게 끈다. 정말 일하던 중이었는지 앞에 맨 앞치마가 보였다.
“ 학교는 이제 안 나갈거야 ”
나, 바쁜 사람이거든. 멋쩍게 다시 웃으며 말하는 박지민. 나는 답하지 않는다.
" 아 어제도 그 영화 봤어. "
" .. "
" 이제 누구한테 이 영화 이야기를 하지? "
박지민이 말하는 영화는 이터널 션샤인일 것 이다. 이 영화를 몇번이나 다시 보는 그 애는 다른 영화는 안 보는 듯 했다. 매일 봐도 매일 새로운 느낌이 좋다고 말했다. 잔뜩 흥분하며 좋아하는 장면을 말해주는 그 애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조금 긴 침묵에 이어 박지민은 침을 한번 다시 삼키며 장난스러운 웃음을 내뱉는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보네, 어떻게 지냈어, 나 없이 외로웠지 라며 내게 말을 건넸고 나는 금방이라도 응, 그랬어 라고 답할 것 같아 고개를 숙였다. 우리가 뭐라고, 내가 뭐라고.
“ 나 이제 가야겠다. 그럼 잘 지내 ”
“ .. ”
“ 나중에 또 보자 ”
안녕. 인사를 끝으로 박지민은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어쩐지 그 뒷모습이 작아보였다. 오늘도 나는 돌아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고서도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박지민이 일하는 식당을 알 수 있었지만.. 다시 내가 널 찾아 올 수 있을까. 어차피 조금만 버티면 졸업이었다. 졸업하게 된다면 나는 대학생이 되고 여러 가지 준비를 할테니 .. 그러니까 .. , 괜찮아. 괜찮을거야. 나도 뒤돌아 집으로 조금씩 걸어갔다. 여전히 추운 바람이 스치고 어쩐지 코끝이 더 시큰 한 것만 같았다.
-
“ 여주야 평소야 네가 지민이랑 친하게 지냈다며? ”
“ 네? ”
“ 아니, 지민이가 3일만 학교 더 안 나오면 퇴학 처리 되거든 ”
“ .. ”
“ 자퇴가 더 낫지 않을까 싶어서 – 혹시 지민이에게 이야기 해 줄 수 있겠니? ”
“ 아.. 저 ”
“ 그럼, 부탁 좀 하자 ”
아무래도 박지민에게 친구라고 불렸던 애들이 미루고 미뤄 내 차례까지 온 것 같다. 박지민을 마주쳤던 그 날 이후로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어쩐지 그 길을 볼 때면 꼭 박지민이 서있는 것 같아 근처로도 못 가는 날들이었다. 그런데, 이걸 직접 갖다 줘야한다니. 내 손에 쥐어진 자퇴서 한 장이 왜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는 걸까. 선생님의 부탁을 무시할 순 없기에 다시 그 애가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박지민은 정말 학교를 관둘 생각인걸까.
“ 저 .. ”
“ 네, 어서오세요 ”
“ 박지민 학생 있나요? ”
“ 아, 지민이 아직 출근 전이라. 번호라도 알려줄까? ”
여기. 박지민의 번호가 적힌 종이를 직원이 내게 건내주었고 나는 그 번호를 한참 보다 조금은 두려운 마음으로 박지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으면 뭐라고 말해야하지. 아, 전화하는거 진짜 오랜만인데. 애초에, 부모님을 제외하고서 다른 통화상대는 없었던 나였기에 더욱 힘들었다. 긴 통화 연결음이 이어지고 안받는건가 싶어 휴대폰을 귀에서 조금 떼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보세요 ”
“ 아 ”
“ 누구세요 ”
“ 나 김여주 .. ”
“ 응? 내 번호 어떻게 알았어? ”
“ 그, 줄거 있어서 어, 식당에 왔는데 네가 없길래 .. 어, ”
“ 아! 무슨말인지 알겠다 ”
심하게 말을 더듬는 나를 보며 작게 웃는 박지민은 여기로 와줄 수 있어? 내게 말했다. 어쩔 수 없이 박지민의 집으로 향하게 된 나는 박지민의 번호를 저장할까 싶다 그냥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박지민의 집으로 향하는 길은 점점 좁아졌다. 소위 말하는 달동네 였다. 집들끼리 붙어있어 작은 소리도 크게 들리는 이 곳. 다른 곳보다 햇빛이 덜 들어와 하루가 어둡다는 이 곳이 그 애의 집이었다. 조심스레 대문을 두드렸다.
" 누구니? "
문을 열고 나온건 박지민이 아닌 짙은 화장을 한 여자였다.
-
안녕하세요 허 석 입니다!
빠르게 2편으로 다시 찾아뵙게 되었네요 핫
지민이와 여주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어서 .. 연휴 기간에 연재를 최대한 하는 것이 목표임미다 !
읽어주시는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