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인아 종인아."
"어 선배, 무슨 일이예요?"
무심하게 아이팟 화면을 툭툭 건드리던 뚱한 얼굴에 화색이 돈다.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보내지는 시선은 소년의 뒤통수를 헤집는 햇살보다 화사하다.
"아니..나 다음시간 자습이거든."
"근데?"
"나 엠피 놓고 왔어...연습실에 그냥 두고 왔나봐. "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아 손끝을 톡톡 두드리며 둥그런 눈을 살짝 치뜨며 웅얼거린다. 애써 시선을 맞추려고 노력하다 혼자서 피하고 만다.
"빌려줄까?"
종인은 한 손에 꽉 들어차는 아이팟을 쥐고 흔들거렸다. 얼굴에는 이미 장난스러운 미소를 걸친 후다. 한쪽 눈썹을 치켜뜨며 손을 딸랑딸랑 흔든다.
"응!"
"예쁜 짓 하면."
그 말에 경수의 미간이 살짝 구겨진다. 입술은 꽃잎이 피어나듯 살짝 붉어나온다.
"맨날 그 소리야."
그 모습에 종인은 푸스스 웃고만다. 새벽에 몰래 터지는 꽃망울처럼. 눈을 휘며 웃는다. 그 부드럽게 휘어진 눈에는 뚱한 표정의 경수가 가득하다.
"자, 여기."
쓱 손을 내민다. 굳은살이 베긴 손바닥에는 이어폰이 돌돌 말린 아이팟이 얌전히 올려져 있었다.
"예쁜 짓 안했는데?"
"했는데. 왜, 안 빌릴거예요?"
"아니야, 빌릴거야! 고마워 종인아!"
다급하게 손바닥 위의 아이팟을 채가서 가슴팍에 꼭 묻는다. 그리고는 도망치는 달려나간다. 살짝 길게 자린 까만 뒷머리가 찰박거린다.
아아, 형은 늘 젖어있는 것만 같다. 물에서 방금 나온 사람처럼 티없이 깨끗하다. 순수한 즐거움에 젖어있는 그 청량한 눈동자는 매일 쉴새 없이 빛나고 있다.
"이따가 또 보겠다."
종인은 허전해진 귀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손가락이 닿은 귀가 발갛게 달아오른지는 정말 몰랐다.
"종인아!"
멀리서 달려오는 형이 보인다. 벌써부터 내 주변 공기들은 상쾌한 수분을 머금고 달려오는 형을 기다린다. 아, 향기도 나는 것도 같다. 종인은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을 하며 천천히 미소짓는다. 그가 자신의 앞으로 다가왔을때 가장 멋진 미소를 보여줄 수 있도록.
"뭐가 그렇게 급해."
"뭐..그냥.."
"뛰어오다 다쳐."
"내가 애냐."
입술을 오물거리며 대답하는 얼굴을 지켜본다. 짙은 눈썹이 크게 굴곡지며 움직이기도 하고, 도톰하게 오른 볼살이 솟았다가 제자리를 찾기도 한다. 인위적인 붉음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베어나오는 연한 분홍빛이 하얀 피부 위에서 피어났다가 접어들기를 반복한다. 몇 번을 봐도 가슴이 간지러운 광경이다.
매일 연습실로 가는 길은 똑같다. 조용한 빌라촌을 지나기도 하고, 상점이 줄지은 시내를 지나기도 한다. 오늘도 여김없이 복작복작한 시내를 걷고 있었다.
"어? 이거."
갑자기 눈이 동그랗게 커지더니 반가운 목소리를 내뱉는다. 입술이 작게 호선을 그림과 동시에 조그맣게 입을 벌려 흥얼거린다.
"call you my own, can i..."
그 작은 입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가 이 공간의 공기의 흐름을 바꾸는 것 같았다. 나지막하게 터져나오는 부드러운 가성.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렇지 않으면 간질거리는 가슴때문에 웃음이 날 것 같았다. 이런 저를 모른채 즐겁게 흥얼거리는 모습조차 애를 닳게 했다.
어떡해, 어떡해....너무 좋아서.
"요즘 연습하는 노래예요?"
"어? 아니 그냥, 쉬는시간에 개인적으로 연습하는 곡..."
"좋아하나봐요."
"응? 어어, 그렇지. 진짜 좋아!"
대답은 않고 그냥 나지막한 눈빛으로 형을 바라보았다. 형은 신나서 조잘대기 시작한다. 요즘 레슨시간에는 다른 노래 연습하는데, 너무 어려워. 이것도 어려운데 잘하고 싶어...월말평가 뭘로 보지? 종인아, 근데 이 가수 목소리 진짜 좋지 않아? 다른 노래도 있는데, 진짜 좋아....
그 모든 조잘거림이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고, 지금은 보이지 않는 별빛이 되고, 나무 위에 올라앉아 작은 꽃송이가 되는 것 같았다.
그냥 모든 세상이 도경수 같았다. 그 때문에 아름다운 것 같았다.
"종인아, 너 지금 뭐해?"
"나 십분뒤에 레슨."
"아...진짜..?"
"예, 왜요?"
"아니..난 방금 레슨 끝났거든."
"심심했구나?"
"...됐거든."
픽 토라져서 돌아서는 동그란 어깨를 붙잡았다.
"백 점 맞아서 일찍 끝낼게. 조금만 기다려."
"...흥. 그래도 한 시간은 걸리잖아."
툭 튀어나온 입술이 머뭇거린다. 살짝 끝이 올라간 눈썹은 그대로다.
"알겠지?"
볼을 톡톡 두드린다. 그래도 살짝 삐죽이는 입술은 그대로다. 그게 또 미치도록 사랑스럽다. 위쪽으로 솟아오르는 입꼬리를 주체할 수 가 없었다.
"나 연습할거거든? 레슨 끝나면 내려오던가 말던가!"
휙 돌아서는 뒤통수에 대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어~"
그리고 돌아서지 않는다. 계단으로 내려가는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본다. 동그란 머리통이 안보일 때까지 기다린다. 마침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발자국 소리마저 작은 소음으로 잦아들었다. 그래도 그 잔상이 어두침침한 복도에 가득해서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쉰다. 허탈하게 내뱉는다. 몸을 돌려 연습실 문을 열려는 순간, 두다다다 하는 발소리가 계단에 시끄럽게 울린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나 아이팟, 빌려줘."
가쁜 숨이 입술 끝에 맺혀 몽글몽글 피어오르고, 더운 숨에 살짝 달아오른 뺨을 가득 담은 얼굴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