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You Mine 번외
종인은 진심이었다.
어느때보다 열심히 춤을 추고, 트레이너 선생님께 드문 칭찬을 듬뿍 받고, 다음 과제 동영상 주소를 받아적었다. 그리고 눈을 반짝였다. 저 그럼 오늘 레슨 끝이에요?
"나는 김종인이가 춤바람 말고 다른 바람이 날 줄 몰랐네."
종인은 씩 웃었다. 오늘만요. 그 웃음에서는 시원한 바닷바람 냄새가 났다.
연습용 운동화를 벗어던지고 신고왔던 컨버스를 대충 구겨신었다. 경수형이 골라준 운동화다. 습관적으로 양트르샤-발끝을 세우는 발레동작-을 하고 스텝을 밟느라 내 운동화는 앞 코가 가장 먼저 닳았다. 이 운동화는 그래도 버릴 수가 없었다. 수선집에 벌써 두어번은 더 맡겼다. 덧대고 덧대어서 이제 다른 신발보다 이게 제일 편하다.
미처 다 신을 생각을 못하고 뛰쳐나갔다. 안녕히계세요, 성급한 발걸음보다 더 급한 말투로 인사를 뱉었다. 두다다다 계단을 내려간다. 뒤축에 끌리는 느낌이 거슬릴 새도 없었다. 저 아래, 그가 있다.
"경수 형,"
보컬반 특성상 밤늦게까지 연습하는 사람이 많이 없다. 게다가 오늘은 금요일이라, 사람이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혼자 남아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커다란 연습실에, 낡은 바닥에 동그라니 앉아있는 까맣고 조그마한 머리통을 보니 다시 미안해졌다.
"....."
조명같이 동그란 눈이 나를 향해서 돌아본다. 아니, 조명이라기엔 좀 더 따뜻하고, 햇빛이라기엔 좀 더 여린, 그런 빛이 나를 향한다. 그 빛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죄스러워진다. 모를거야, 형. 형은 모를거야.
모르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다, 하지만 더 낫다고 해서 더 좋은 것은 아니었다.
눈이 시리다. 억지로 떨리는 눈꼬리를 접어 웃었다.
"미안."
"....."
"삐졌어?"
문 안으로 반만 들이밀었던 몸을 완전히 안으로 들여보낸다. 이제 완전히 같은 공간 안에 존재한다. 그가 내뱉고 들이쉰 공기들이 가득한 이 공간에서. 공기의 흐름도, 눈빛의 흐름도, 온전히 우리 둘 사이에서 존재한다.
"..아니야."
도톰한 입술이 달싹인다.
"가자, 집 가자."
그가 몸을 일으키며 말한다. 오늘따라 이상한 분위기가 그의 몸에서 흐른다. 긴장한 것 같기도 하고, 화난 것 같기도 하다. 그 미묘한 기류에 나도 덩달아 몸을 굳힌다.
"..그래."
그가 운동화를 신는 것을 바라본다. 그를 닮은 동그란 운동화. 나와 달리 코 끝이 깔끔하다. 매듭지어진 리본도 정갈했다. 나는 눈두덩이 위가 젖는 기분을 느꼈다. 축 쳐지는 눈꺼풀은 혼자만 우울한 것처럼 자꾸 내려앉았다.
평소와는 다르게 말없이 걸었다. 아니, 평소에도 이렇게 말없이 거리를 걸은 적은 종종 있었다. 그래도 그 때는 어색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는데, 지금은 누구라도 와서 아는 척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이태민이라도, 저 끝에서 나를 알아보고 야 김종인!!!하며 손을 휙휙 저었으면 좋겠다.
"...이거, 잘 들었어."
하얀 이어폰이 돌돌 말린 아이팟을 내민다.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었다.
"아, 아니야."
그런데, 이어폰이 하얀색이다.
"...이어폰..."
"...그거 내꺼야."
"어, 알아. 근데..."
"..이제 내 걸로 들어."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화난 것처럼. 뚝뚝 끊어지는 말의 끝에는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ㅈ..아해?"
달싹거리는 입술 끝에서 나온 말은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하기 충분했다.
"뭐..라고?"
"좋아..하냐고. 콜 유 마인."
내 예상과는 달랐지만, 이 말 또한 나의 입술을 굳게 하기엔 충분했다.
"엄청 많이 들었던데."
형이 그 노래를 흥얼거린 바로 그 날, 집에 돌아가자마자 다운받았다. 그리고 그 날 밤을 세워서 들었다. 귀에서는 제프 버넷의 나지막한 노랫소리가, 머릿속에서는 즐겁게 노래를 흥얼거리는 형의 모습이 밤의 어둠만큼 가득했다.
"해 줄 말이 있어."
"....."
해 줄 말이 있다면서 한참 뜸을 들인다. 우리 둘 사이를 흐르는 밤바람에 축축한 수분이 가득하다. 머리카락이 잔물결이 일듯 파도친다. 짭잘한 소금기가 눈가에서 느껴진다.
"좋아해요."
그 짭잘함이 혀끝까지 달아나기 전에, 내가 먼저 해버린다. 입가에 닿아버리면, 평생 말하지 못할 것 같아서, 내가 먼저 말해버렸다.
"좋아해요."
형은 아직도 고개 숙인 그대로다. 잔물결같은 바람도 그대로다. 하지만 바람 속의 수분은 날아가버린지 오래다.
"좋아해, 도경수."
나의 마음을 들어버린 너의 눈동자가 궁금해.
어떤 빛으로 나를 바라볼지 궁금해.
여전하게 빛났으면 해.
그리고 연극처럼, 형은 고개를 들었다. 바람 속의 수분을 모두 머금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새벽 바다의 이른 푸름을 담은 그 수분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볼을 타고 흘렀다.
"좋아해.."
수분을 먹은 목소리가 뭉그러진다. 펑펑 울진 않는다. 한 방울만, 그렇게 영화처럼 흘러내렸다.
손을 꼭 붙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주잡은 두 손에는 더운 온기가 주르륵 흘렀다. 삐져나온 손가락을 번갈아가면서 꼼지락댔다. 얼굴에 말라붙은 눈물자국은 바람이 스칠 때마다 그 존재를 각인시켜주듯 차게 시렸다. 아직은, 과거의 슬픔이 남아있다고.
하지만 지금은 현재였고, 나는 행복했다.
"아이팟 잠깐 줘봐."
"왜?"
"아, 빨리."
어깨를 흔들며 손을 내민다. 덩달아 찰랑거리는 정수리 위의 머리칼이 사랑스러웠다. 그 위에 손을 얹고 슥슥 문지른다.
"예쁜 짓."
"또 왜 이런대."
살짝 눈을 올려 흘겨본다. 그래도 또 그게 밉지 않다. 내가 그래도 주지 않자 손을 탁 풀러버린다.
"어?"
내가 깜짝 놀라자 픽 웃으면서 다시 내 손을 쥔다. 깍지를 낀다.
"자, 됐냐? 얼른 줘 봐."
단단하게 맞물린 손가락 사이사이가 새로운 온기로 메워진다. 내 손가락 아래에 작은 형의 손이 느껴진다.
"내가 졌다, 도경수."
주머니에서 아이팟을 찾아 건내주었다. 받아들자마자 화면을 키고 급하게 무엇을 찾는다. 밝게 켜진 화면 때문에 얼굴이 뚜렷하게 보인다. 더불어 볼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은 눈물길도.
"이거 봐봐."
갑자기 아이팟을 쑥 내민다. 순식간에 밝아진 시야에 눈을 잠깐 찌푸렸다.
"재생목록..은 왜.....아!"
여유로운 형의 표정이 보인다. 아, 그래서, 아.....
"그래서......아! 진짜...그래서...."
"뭐가 계속 그래서야."
"좋아하는 거 알아서, 고백하려고 했지? 내가 먼저 하려고 했는데 선수 뺏길 뻔 했잖아. 아..."
"웃기시네."
그러면서도 은근히 올라가는 입꼬리, 봉긋 솟는 볼이 또 미치도록 사랑스럽다. 톡, 건드리면 터질 것 같아도 괜히 한 번 볼을 건드려본다. 다시 나를 향하는 시선에 가슴이 떨린다.
"아, 좀 자세히 봐봐."
형이 내 허리를 툭툭 치며 재촉한다. 미간을 좁히고 다시 화면을 들여다본다. 뭐야, 달라진 거 없는데?
"....뭐야."
"도경수님의 재생목록."
내가 만들어두었던 Can I라는, 다소 유치한 제목의 재생목록 밑에 새로 만들어진 재생목록이 있었다.
Yes, You can
그리고 추가된 단 하나의 노래.
Call You Mine
Yes, you can call you mine.
번외속 번번외
"근데 너 맨날 내가 뭐 달라고 할때 예쁜짓하면 준다고 했잖아."
"그랬지."
"근데 왜 맨날 그냥 줬어? 예쁜 짓 하지도 않았는데."
"그냥 예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