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어어어!!!!!"
"어마!!!!!"
들린다 들려. 절규하는 세훈이의 목소리가. 나도 참 아이들을 좋아하지만, 이건아니야, 이건 아니라고! 애들을 잡다가 포기하고 결국에는 너스실 앞 벤치에 철푸덕 앉아버렸다. 세훈이는 나 대신 가운 펄럭거리며 쫒아가서 애들을 잡아다가 다시 놀이방에 집어넣고는, 그대로 내 옆으로 앉아 시계를 보더니, 겁나 신난다는 말로,
".....앗싸. 나 지금 수술"
"나도 수술가고 싶어....."
"수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난 간다ㅋㅋㅋㅋㅋㅋㅋㅋ"
분명히 치프가 되면서 집도가 나보다 1.5배 많아진 오세훈이 이렇게 부러운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존나 부럽군. 슈발.
여기 근황을 말해보자면, 이제는 세훈이와 나는 레지던트 4년차가 되었다. 오세훈은 질색에 질색을 했지만 도교수의 지목을 받고 치프가 되었다지. 경수쌤, 종대쌤, 백현쌤 모두 교수가 되었으며, 민교수, 준교수, 박교수는 이제는 넘볼수 없는 엄청난 교수이다. 그들 손에 의해 송도가 엄청 성장했다지- 여튼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지금 문제는
"엄마 어디써요?"
"으응? 엄마?"
피부색만 다르고 다 똑같은 저 쌍둥이가 문제지.
"아빠다아!!!"
"아휴. 죄송합니다. 애들이 많이 힘들게 했죠?"
"하하...아니에요"
"가온. 가람. 엄마말은 왜 안듣고-!"
"엄마-?"
셔츠를 입고 갓 퇴근한 것처럼 보이는 남자가 양손으로 아기들을 안고서는 간단히 타박하지만, 아기들은 그것도 좋은지 꺄르륵꺄르륵. 아빠가 왔다며 목을 끌어안고 이리 부비적, 저리부비적 거리느라고 남자분이 비틀대면서 병실로 들어가는데- 그 모습이 참 행복해보인다. 아, 나도 애낳고 싶다...
신혼인듯 아닌듯 대한민국 의사이야기.
"나 왔어요-"
"가온이 가람이 어디서 찾았어? 아까 의사선생님 둘이 데려갔는데"
"데려간거야, 아님 얘네가 끌고 나간거야?"
"아....후자가 맞는것 같은데-"
"아빠 몸은 어때?"
"아버님 그래도 회복이 빠르시데. 다행이지?"
"그러게. 가온아, 가람아! 돌아다니지 말고 여기 앉아있으세요-"
종인의 아버지가 간수술을 받게 되셨다.소문난 애주가이시더니 간이 망가지시면서 이식이 불가피하게 된것이다. 그래서 내가 병간호를 하고 있는데, 가온이 가람이를 맡길 사람이 없으니 병원에 풀어놓다시피하게 된것이다. 가끔 담당선생님이나 남자선생님, 간호사분들이 케어해주시긴하지만 워낙 죄송해서 돈을 더 내야할 판이다. 그래도 신랑이 칼같이 퇴근해서는 가온이 가람이를 데려가기는한다. 살림을 할줄 하는 남자라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김복환 환자분 혈압하고 신체증상 체크좀 할께요~아유 주무시네?"
"네, 아휴, 선생님 애들이 많이 산만하죠? 죄송해요..."
"아니에요. 그래도 애들이 예뻐서..."
"감사합니다-"
여선생이 들어와 아버님 혈압을 체크하고 링거를 보고 있는데, 그새 가온이 가람이가 쫄쫄 쫒아와서는 아빠 무릎에 앉아서 노는거다. 내자식이지만 참 귀여워 코를 꼬집었더니, 킹킹 거리며 눈을 찌푸리는게 귀엽다.
"엄마한테-"
"안돼, 엄마 동생있어"
"으응?"
"뱃속에 동생. 그래서 엄마한테 안기면 동생이 힘들어. 가온이 가람이 이제 아빠랑 집에 가자. 가서 자야지-"
"도생?"
"응. 그니까 엄마 그만 힘들게하고 가자."
...그래, 나는 또 임신을 했다. 대체 누가 나보고 여성건강이 안좋다 했는가. 하도 잘 먹기도 하고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아서 그런가- 또 셋째를 가졌더랜다. 친정에 애들을 맏겨놓고 종인이 신나서 하루 왼종일 나와 함께 침대에서 구른 덕분이었다. 가지고 기쁜 마음도 있었지만 정말 헉 하고 당황스럽더라. 애 셋을? 그것도 두살터울? 헬게이트가 열린기분이었다. 그래도 또 요령이라는게 생겼다고 시어머니 병간호를 하면서도 몸을 잘 챙기고 있다.
"갈께-"
"응. 가요. 내일 출근 잘하구."
"당신이야말로. 배 따뜻하게 하고 자고. 밥 꼭 챙겨먹고. 허리 구부정하게 자지말고."
"아휴. 알겠어."
"힘들면 전화해. 데릴러 올께"
"알겠어. 가온이 자려고 한다. 얼른 가요"
"아맞다. 오늘 병원가봤어?"
"응."
"....성별 알 수 있데?"
"음, 가운데에 뭐가 없다던데?"
"...........대박!"
"너무 좋아한다?"
"에이- 고마워서 그러지~"
"알겠어. 내일 얘기해요. 내일 더 일찍 퇴근하잖아."
"응응. 편히 자고."
"알았어"
이 끝도 없는 대화. 오늘 병원간거는 귀신같이 기억하고는 그렇게 성별을 물어본다. 남자 쌍둥이니 공주를 보고 싶댄다. 내 마음도 딸을 키워서 예쁘게 입히고 싶기도 하고...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공주인것 같다는 의사선생님 귀띔을 종인에게 알려주니, 살짝 질투가 날정도로 신나하는거다. 살짝 째려보니 고마워서 그렇다며 허리를 감싸고 가볍게 볼을 맞댄다. 아니 이사람이 시도때도 없이- 의사선생님 있는데!! 민망해져서 얼른 보내니, 그제서야 살짝 부럽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는 선생님이 보인다.
신혼인듯 아닌듯 대한민국 의사이야기.
"아유 선생님 죄송해요..."
"부럽네요. 되게 행복해보이세요"
"에이, 감사합니다. 선생님은 아직 미혼이신가? 남자친구는?"
"남자친구는 있어요- 근데 결혼은 아직-"
"곧 하시겠네~ 남자친구는 나이가....나좀봐. 점점 나 아줌마되가는것 같은것 있죠? 이런게 궁금하고"
남편분과 얘기하는 그녀의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다. 사실 이번뿐만이 아니라 시어머니가 입원했을 때부터 그녀 가족을 봐왔는데, 항상 남편은 몸조리를 하라는 소리를 달고 살았으며, 퇴근을 하면 항상 부인의 이마에 뽀뽀를 하는듯 했다. 말을 할 때는 꼭 그녀의 눈을 쳐다보고 했고, 수줍게 그의 눈을 바라보지 못하는 부인이 참 예쁜 그림같았다. 애가 둘이고 뱃속에 애가 있어서 산만하고 정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오롯이 그녀를 보고 사랑한다는 눈빛을 보고 있었으며, 그녀도 참 편안하고 차분해 보였다. 내가 그리는 가족의 그림을 보는것 같아 사실 나갈 때가 됬는데도 서있었던 것 같다. 남자친구를 물어보면서도 아줌마가 다되어가는것 같다며 발그레 볼을 붉히는 그녀가, 왜 그 남편이 그녀를 애지중지하는지 알것 같기도 했다.
"사실 고민이 있어요-"
"뭐가요?"
"결혼- 이요. 남자친구도 여기 병원 의사에요."
"정말요? 어우 잘된거 아닌가? 직장 동료구나?"
"아뇨, 교수님이세요. 아버님 집도하셨던 도경수교수."
"아, 와 그럼 더 대박 아닌가요? 뭐가 문제지-?"
"음, 저는 되게 결혼을 하고 싶은데- 그분은 좀 아닌것 같다고 할까"
"으응? 요즘은 약간 반대이던데. 남자분이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어요?"
흐흐. 그러게요. 제가 그분 직속인데 모르는 중요한 일을 하고 계신가봐요- 간신히 쓴웃음을 지으며 다른 환자들 회진을 돌기 위해 어쩔수 없이 병실을 나와야 했다.
"김복환 환자 상태는 어때?"
"좋아요."
"혈압도?"
"네"
"당 수치도?"
"네."
"다른 환자들은"
"다 좋습니다. 이상 무. 나가볼께요"
"....안좋은 일 있어?"
"........."
"수술하다가 다른 교수한테 깨졌어?"
그의 눈도 바라보지 않고 회진상태를 보고하는데, 또 기분이 안좋은건 귀신같이 알아낸다. 물론, 이유는 틀렸지만. 도교수는 결혼이라는 것을 크게 생각하지 않는듯 했다. 진짜. 남자들은 결혼하고 싶어한다는데 왜 이사람은 정반대인지는 모르겠다. 괜히 나만 애타는것 같고 내가 매달리는것 같아서, 정말 커플사이에 자존심이 막으면 안된다는것을 알지만-그래도 존심이 상한다. 정말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그래도 기분은 풀어줄 요량인지 냉장고에서 비타500을 하나 꺼내 들이민다. 이거 마실래-?
"아뇨. 가볼께요."
오늘은, 정말 그가 미울 뿐이다. 좀 많이.
경수쌤과의 연애도 순탄했다. 모든게 다 순탄했고, 그렇게 3년쯤 연애를 하고 나서, 나도 계란 한판을 채우는 나이가 되니 결혼이라는게 남일같지가 않았다. 연애 초때는 그냥 알콩달콩 이렇게 살아도 될 것 만 같았는데, 이제는 이렇게 하다가 결혼 적령기 다 지나고 헤어질까도 겁나기 시작한거다. 원래 30대는 이렇다. 남친이 있어도 문제, 없어도 문제라니까? 근데 이런 망부석같은 도교수님은 끄떡도 안하는거다. 펠로우를 끝내고 흉부외과 교수가 되던 작년 여름에 사실 결혼을 할 수 있을까 내심 기대했더랜다. 그런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 가끔있는 데이트날, 애들을 보면서 결혼하고 싶다- 라고 말을 흘려봐도, 나도- 이러고 끝이었다. 아니 그게 왜 끝이지?
하겠지. 언젠간 하겠지라며 혼자 기대하는것도 하루이틀이지. 이제는 괜히 나랑 결혼하기 싫은가- 이러다 진짜 결혼의견차이로 싸우다가 헤어지는게 아닌가 무섭기까지했다. 결혼얘기를 꺼낼려고 해도 괜시리 화제를 돌리고 딱 들어도 관심도가 떨어지는 어투에 진이 빠져버렸다. 하루죙일 우리가 얘기하고 살면 몰라. 간신히 가뭄에 콩나듯 생기는 우리 둘의 시간에 괜히 안맞는 말을 해서 진을 빼고 싶지 않았다.
"아 피곤해. 심혈관 수술은 정말 눈깔이 빠질것 같...왜그러냐?"
"뭐가-"
"왜그렇게 기분이 안좋대냐. 도교수님이랑 싸움?"
"아 뭐래..."
그렇게 기분이 안좋아 보이나;; 수술을 끝낸채 눈을 비비며 들어오는 세훈이가 나를 보자마자 무슨일이랜다. 기분을 계속 추측해 대는게 기분이 나빠 나가려고 하는데,
"야 세훈아"
"응?"
"남자들이 결혼을 안하려고해. 그럼 뭔뜻이야?"
".....어?"
"아니, 결혼적정기야. 결혼을 해도 될것 같아. 그런데 결혼을 안해. 그럼 뭐지?"
"아, 도교수가 너랑 결혼 안한데?"
"왜 말이 그리로 튀냐? 존나 짜증나게?"
"맞고만. 에혀. 얘기는해봤냐?"
".......아니"
아, 이새끼가 눈치가 존나 빠른거를 계산하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콕 집어서 고개를 끄덕거리는 쟤가 되게 속시원한 면도 있었다. 오히려 정곡을 찔리니 마음이 편해진건지, 본격적으로 앉아서 상담을 시작한다.
"근데 왜 그렇게 섣불리 판단해?"
"그냥 내가 싫은거면 어떡해?"
"설마. 어제까지만 해도 회식시간에 흑기사 하셨잖아"
그랬다. 설마 나에대한 감정이 식었을까- 라는 생각은 너무 헛다리인게, 매 회식시간마다 건네지는 모든 술잔들은 다 도교수의 몫이었다.(남자친구가 아닌, 지도교수라는 명목하에-) 죽어도 술먹고 눈풀린 모습을 딴놈들에게는 보이기 싫다는 것이 경수쌤의 지론이었다. 그런것만 봐도 아직 경수쌤은 나에게 애정이 식은거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것 말고도 가끔씩 일부러 레지던트실 와서 음료수 주고 가는것도 그렇고, 같이 퇴근할 때도 항상 그 다정한 눈빛 그대로이다.
"그럼, 남자들이 결혼을 안하는 이유가 뭐야?"
"음, 난 잘모르겠는데- 귀찮아서?"
"...어?"
"그니까, 혼자살다가 둘이살면 신경써야 할게 많잖아. 굳이 지금도 좋은데 뭣하러 그러냐는거지. 야 생각해봐라. 집도 알아봐야해. 가구도 다시 사야해, 게다가 양가친가 다 모여야하고, 복잡하잖아- 언젠간 해야겠지만 지금은 바쁘다 이거지"
".........."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마. 나는 아니라고. 나는 여친생기면 그대로 결혼할꺼야"
"도둑놈"
"뭐임마? 지금 결혼못한다고 징징거리고 있는게 누군데?"
"아니, 치프도 결혼하겠다는데 왜 교수씩이나 되서 뭐가힘들어서 결혼을 못하는데-"
"낸들 알겠니? 도교수님한테 물어봐라 그냥. 속시원하게"
"아씨. 막 헤어지자고 하면 어떡해? 막 결혼 재촉하는 여자친구. 이런거 되게 싫잖아."
"ㅇㅇ 그건 싫음"
"아 너도 싫어진짜. 이런 도움 안되는"
"아 뭐가- 솔직하게 남자의 입장에서 말해주는데!"
세훈이 틀린말 한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괜시리 짜증나 옆에있는 쿠션을 집어던졌더니, 쿠션을 잡으며 억울하다는듯이 말하는거다. 뭐임마. 너는 그냥 내 옆에 있는 남사친인 죄가 큰거야ㅇㅇ
아침회진을 도는 날은, 도교수와 나와 오세훈이 함께 돈다. 그날도 어김없이 김복환 환자 입원실을 들려야 했고, 입원실 문을 열려는데,
"서생니!"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기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더니, 저 끝에서부터 우다다다 뛰어오는 두 꼬맹이가 보인다. 오늘도 왔구나? 뒤에서는 뛰지말라면서도 느긋한 걸음을 빨리하지 않는 아빠가 보인다. 정장차림인것이 출근하기 직전 애들을 맏겨 놓고 가려는 모양인듯 했다. 가온이- 가람이 안녕? 한 이틀 놀아줬다고 알아보고는 웃으며 안기는 모습이 귀여워 직분도 잊고 쭈그려서 아기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만 들어가자며 도교수가 재촉을 한다.
"다행히도 혈압도 안정적이시고, 체온도 좋으시고요. 회복속도가 빠르셔요- 내일쯤이면 퇴원 고려해봐도 되겠습니다."
"아유.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이 은혜를 어찌갚아야 할지"
"아니에요. 건강해지셔서 완전히 뛰어다니시면 갚는겁니다.하하하"
도교수의 말 한마디에 모든 가족들이 숨죽여 있다가 안도섞인 웃음을 피워낸다. 낮선 남자선생님의 출몰에 낮을가리던 쌍둥이들도 풀어진 분위기에 입원실을 이리뛰고 저리뛰고 점점 산만해진다.
"가온이 가람이 이제 엄마랑 집에 있으면 되겠네"
"으응, 시러요. 선생니 조아"
"선생님한테 정붙였나봐. 어쩌면 좋아?"
"차케. 막 이케- 사타-주고"
"사탕도 주셨구나~ 그럼 우리 여기서 살까?"
"응!!!"
나와 세훈을 가리키며 우리가 좋다고 엄마한테 말하는 아기들의 발음과 천진난만한 대답에 그 곳에 있던 모든 사람이 다 웃음을 터뜨린다. 차트를 적고 있던 도교수도. 진짜. 이런거 좋다고! 나 애들한테 사랑받는 엄마 될 수 있는데!!!!
"애기들 귀엽지 않아요?"
"귀엽지. 넌 특히 애기들 좋아하잖아."
"맞아요. 저런애들 보면 애 낳고 싶어요"
"풉"
웃지마라. 저 십숑키 오세훈같으니라고. 셋이서 회진을 도는데 살짝 도교수를 떠보다가 애낳고 싶다는 말에 풉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오세훈때문에, 도교수가 세훈을 빤히 쳐다본다. 왜 웃는데?
"쟤가 쌤이랑 결혼하고 싶다던데"
"야 내가 언제...!!!!!"
"어제"
정말 입이 벌어질정도로 당황스러운 세훈의 폭탄발언이었다. 무슨소리냐며 나를 바라보는 도교수의 눈도 못보고, 차트 모서리로 오세훈 등짝을 세번 찍은다음에, 그냥 도망가버렸다. 오세훈 개새끼. 아니 개만도 못하는새끼. 어엉어어ㅓ어ㅓ어어ㅠㅠㅠㅠㅠ
생각을 해보면, 소설쓰지 말라면서 딱 잡아땠으면 나을법한 상황이었다. 괜히 제 발저려가지고 눈 크게 뜨면서 오세훈을 때리고 찌질이같이 도망가다니. 생각만해도 존나 사실이라는것을 티내고 간거다. 아니 근데, 저인간은 왜 나를 쳐다보고만 있었는데? 내가 그렇게 말하는게 그렇게 이상한건가? 또다시 생각해보면 그렇게 말하는 오세훈을 말리고 나를 데려다 놓고 면담을 시전할 만한 토픽이었다. 아니, 그때는 아니어도.
"야, 후배야. 지금몇시냐"
"11시입니다."
지금쯤이면 문자 한통이라도 있어야 하는거 아니냐는거지. 미동도 안하는 핸드폰을 탁상에 집어던지자 마자, 달칵-하고 오세훈이 들어온다.
"야, 오늘 도교수님이 퇴근 같이하자시는데. 지금 수술 끝났어."
"몰라. 나 퇴근할꺼야"
"얼래? 너 왜그러냐- 아 삐졌어 내가 그얘기해서?"
"어. 존나 삐졌다. 야! 내가 얘기할라고 그 얘기를 한줄 알아? 응? 아진짜. 나 오늘 술마실거야. 도경수인지 도갱수인지,나 찾으려면 포장마차로 오라고 해!"
"와....진짜 삐졌네...."
내가 지금 그사람이 수술실에 있었던 뭘하던 별로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존나 개썅마이웨이로 나갈꺼야. 그리알어!!! 그제서야 좀 심각성을 느꼈는지 나를 붙잡는 세훈이를 뿌리치고 진짜로 혼자 퇴근을 했더랜다.
"으윽,써어"
"그치. 술 쓰지. 술도 못먹는 애가 왠 갑자기 술이야."
정말 생각하지만, 나는 정말 술을 못마시는 것 같다. 술을 두잔먹고 머리가 어지러워 술잔을 빙빙, 돌리면서 중얼대는데, 턱, 하니 내 앞에서 나긋한 목소리가 들린다. 익숙한 향수냄새가 나서 고개를 들 뻔 했지만 간신히 고개를 들지 않았다. 오늘은 진짜 나 화난 날이야. 아니, 창피한 날인가-
"왜그래. 말로하자 말로"
"시러요. 이거 놔아-"
"여주야."
"으응?"
"참ㅋㅋㅋㅋ"
제법 심각한 얼굴로 살짝 혀가 꼬인 나를 타박하려다가, 내가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치니, 고개를 숙이며 큭큭대는거다. 왜, 왜웃어!
"왜웃어요-"
"이뻐서 웃는다 왜."
"치. 이쁜데 왜,"
"결혼 빨리 하고 싶었으면 말을 하지."
"치, 본인은 생각도 없죠? 교수니까 막 혼자 살아도 되는거니까아?"
"말 예쁘게 하지. 그럼 더 예쁠텐데."
"왜에. 맞는말 했죠. 뭐. 교수되니까- 남부러울것도 없고. 게다가 요리가 안되기를 해, 청소가 안되기를 해? 혼자 다 해결할 수 있으니까 결혼 생각도 없는거잖아요. 치이. 나는, 나는"
"너는 뭐-"
"나는, 나는- 아니이! 내가 교수님만 보게 했으면, 언능! 잡아줘야지. 치. 나 이러면 확 딴 놈한테 갈꺼야,,!!"
"허-?"
나왔다. 내 생각 필터링 못하고 뱉는 술버릇. 참을수도 있었지만 그냥 술김이 다 얘기하자 싶어서 우다다 감정을 쏟았더니, 살짝 인상을 찌푸린채 나를 빤히 쳐다보는거다. 그렇게 쳐다보지마요. 심장떨리니까.
"참, 나도 잘못생각하기는 했지만 너도 한참은 잘못생각하고 있네"
"뭐가요?"
"너, 나한테 어떤 남편 만나고 싶다고 했었는데?"
"으응?"
언제 내가 저사람에게 내 남편상을 얘기한 적이 있었지? 눈을 깜박거리면서 기억을 더듬다가, 불현듯 생각이 났다. 아-
"결혼은 어떤 남자랑 하고 싶어?"
"능력있는 남자요-"
"어떤 능력?"
"그냥. 많은 능력이요.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성격적으로나-"
그게 언제적 얘기더라. 심지어 연애 전 얘기일거다. 도경수 교수가 레지던트일때, 나는 갓 응애응애거리는 인턴때였다. 결혼에 결자도 모르고 판타지만 높을때. 아니,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고?
"나는 그래서 능력 될 때 결혼할려고 그랬는데-"
"지금도 능력되잖아요-"
"에이. 교수이제 2년차야. 한 5년차쯤에 하려 했지"
5년??????헐. 빈 술잔을 그대로 넘어뜨렸다. 날 비구니로 만들겠다고? 황당해서 그를 바라보는데, 진심이 담긴 그의 동그란 눈에 할말을 잃었다. 게다가 내 이상형에 맞춰보겠다고 그랬다니 할말도 없는 노릇이었다.
"난 니가 결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줄 알아?"
"왜요"
"딴놈한테 갈까봐"
"나한테 얘기하지. 좀만 기다려달라고. 한마디도 안하고 그러고 있으면 아나.."
"당신이나 얘기하지 그랬어요. 빨리 결혼하자고. 한마디도 안하고 그러고 있는데 아나?"
쩝.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닌것 같다. 빤히, 서로 기가막히다는듯이 바라보다가 경수쌤이 답답하다는 듯이 술잔을 기울이다가- 차가있는지 그대로 다시 내려놓는다.
"그니까, 우리가 서로 대화가 부족했던거야. 그치?"
"그러게요-"
"다음부터는 혼자 생각하지 마시고요, 그냥 나한테 물어봐라. 응?"
"쳇. 자기도 그랬으면서!"
"그래도 나는 너한테 악감정은 없었다? 너는 야, 오세훈한테도 그얘기 하고..."
"......."
골목에 차를 세워놓고 우리집까지 데려다주느라 걸어가는데, 경수쌤이 오세훈에게 얘기한것을 꺼내며 나를 밉지않게 째려본다. 흐흐흐. 괜시리 민망하고 오세훈이 짜증나져 팔짱끼고 있던 손을 더 밀착해 어깨를 때리니, 내 이마를 콕콕 찌른다. 그니까 말로 하라고. 말로. 뒷담하지 말고 이 아가씨야.
"근데요, 쌤도 잘못한거 있잖아요"
"나? 내가 뭘. 니가 옛날에 얘기한 이상형 맞추려던 죄?"
"아니. 착각한거. 어떻게 본인이 능력이 안된다고 생각한거에요?"
"안정적일 때 너를 데려가려 한거지. 고생 안시키려고,"
"그니까- 그게 잘못됬다니까?"
"왜?"
"같이 있는데 뭐가 고생이에요? 진짜 나빴다. 내가 있는게 쌤은 고생하는거야?"
집 앞까지 왔는데, 문득 그런생각이 드는거다. 아니, 이사람은 그러면 안정될 때까지 저가 다 그 고생을 감당하려 했던거야? 둘이 고생하면 고생거리도 아닌거를? 웃음기를 띈 채 말을 하니, 멍하니 나를 쳐다보다가, 크게 웃음을 터뜨린다.
"그러게. 내가 잘못생각했네"
"그쵸?"
"잘못했어요~"
'그런다고 내가 풀릴줄 알아요? 내가 얼마나 맘고-"
쪽-
간단히 이마에 마주치는 그의 입술감촉에 할말을 다 못하고 머리가 새하얘지니, 나긋한 웃음을 보이며 나에게 그러는거다.
"그럼 이렇게 하면 풀리나?"
"......."
"아니면,"
"..........."
"결혼하자-"
"...."
"이 말이면, 당신 맘에 풀릴까?"
",.....쌤,"
"안풀리면, 내가 납치해야지 뭐, 이리와요."
내가 어렸을 때 생각했던 프로포즈는 그런거였다. 작은 방안에, 촛불로 하트가 그려져 있고 그 중앙에 남자친구가 있는것이다. 커플링을 손에 들면서 사랑한다며 세레나데를 불러주고 사랑한다, 결혼하자를 외치는것이다. 현실은 내가 생각하는것보다 소박했다. 우리집 빌라 앞 깜박거리는 가로등 앞에서, 커플링 없이 그는 팔을 활짝 피고 안기라며, 결혼하자고 웃음기 띈 한마디를 해주었다. 근데 왜 심장은 그렇게 뛰어대는지, 눈에서는 눈물이 날것 같은지 모르겠는거다. 괜시리 울것 같아 그가 벌린 팔 안으로 안기니까, 등을 토닥거려주며 그러는거다.
"결혼해서-"
"....."
"행복하게 살자."
"......"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어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경수쌤 말투다. 나긋나긋, 또박또박. 발음하나도 흘리지 않고 또박또박 내 귀에 읊어주는 그의 대사가 그 어떤 로맨스 영화보다 달았다.
그러하다고 합니다. 요즘 신혼썰을 정주행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구요ㅠㅠㅠㅠ부끄럽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괜히 씬나서 9월 모의고사 보고나서 의사썰과 합쳐서 번외 하나 냅니다(박력)
오랫만에 분량이 폭발에서 기분이 좋다고 합니다. 하하
ps1. 수시접수 시작했습니다. 고3파이팅. 나도 파이팅 흙흙
ps2. 9월 모평을 봤습니다. 그래요. 봤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보기만했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ps3. 뜸해진다 해놓고 꾸준히 글올리는 패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도 몰라. 언제 뜸해질지는...
ps4. 요즘 또 연재소재가 떠오른다고 한다. 아오 사내연애 힘들어ㅠㅠㅠㅠㅠ 연애를 안해봐서(...) 그런거 못쓰겠스뮤ㅠㅠㅠㅠ 그래도 쓸거야. 느린 연재 기대해 주세용. 깹성
ps5. 동방신기 팬픽중에 누군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묻거든 그거 아세요? 아오 그런컨셉 써보고 싶은데ㅠㅠㅠㅠㅠㅠㅠ배경지식이 없다. 스벌.
ps6. 의사썰 시즌투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송도에 여주 하나 떨어뜨려보죠. 하하.
ps7. 할말이 있었는데 안떠올라.....이런것도 다 메모해야하나.......아놔.
ps8. 아맞다! 그거였어. 이런것도 생각하고 있어요. 내가 상담사인거야. 그래가지고 감옥을 가서 순회를 도는거지. 그래서 범죄자들을 상담해주고 막 무죄 판결의 실마리를 찾고? 아닌가 국선변호사가 나으려나. 아오 변호사면 법들어가잖아. 거기는 내 분야가 아닌데. 아, 연재를 한다는 보장이 없구나.
ps9. 여러분들의 생각을 묻습니다. 어떤 소재가 더 끌리시는지요?
+ 뒷이야기) 그렇게 법정물도 아닌 범죄물도 아닌 요상한 범죄힐링물이 탄생했다고 합니당. 마니마니 봐주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