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났을 때 내 옆은 비어있었다.
어느새 어둑해진 방 밖의 모습에 놀라 멍하니 있자 저 멀리서부터 달음박질로 내게 다가온 아이가 나를 부르며 소맷단을 잡아끈다.
퍽 귀엽게 생긴 동그란 얼굴을 가진 아이였다.
[EXO/민석준면찬열경수세훈] 인연(因緣) 5
[명사] 1.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 2. 어떤 사물과 관계되는 연줄
-이어지는 글입니다. 1편부터 보고 와주세요 제! 발!-
"주인 아가씨!"
"예?"
"아이 참-이리 계시면 제가 곤란합니다.
지체하실 시간이 없다구요."
"이게 무슨.."
어리둥절해 그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아이를 바라봤다. 내 시선에 아이는 한숨을 포옥-내쉬더니 내 몸을 이리저리 흔들어댄다.
그 즌동에 머리가 웅웅 울리는 것 같아 눈가를 찌푸리며 인상을 쓰려던 찰나,
화려하게 세공된 보석 장식이 박혀있는 칼집이 눈 앞으로 다가와 시선을 사로잡더니 나와 아이를 떨어뜨렸다.
"세훈아, 아까는 왜,"
"어사대부(御史大夫) 박근우의 자제께서 집을 방문해 계십니다.
조속히 맞으실 준비를 끝내셔야 할 듯 싶습니다."
나에게는 시선 한줄기 보내주지 않고 예의 그 딱딱한 목소리를 말을 끝마치더니 문을 닫고 나가버린다.
잠들기 전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에 당황해 그저 나가는 뒷모습 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그리 얼빠진 짓을 하는 동안 동그란 얼굴의 그 아이는 내 주변을 바쁘게 맴돌며 내 머리를 만졌다, 풀었다, 틀어올렸다를 반복하다가 결국은 내 머리를 모두 풀어헤쳐
이거저것 이상한 장신구를 마구 끼우더니 좋다고 저 혼자 웃으며 박수를 짝짝 쳐댔다.
그러고는 내 눈을 감게 하더니 피부 위로 뭔가를 톡톡 두드려 바르고는 입술에도 뭔가를 칠한다. 화장을 하는 듯 싶었다.
미래에서도 하지 않았던 화장을 이런 곳에 와서 하다니.
정혼자라는 사람을 만나기 위함인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알지 못했지만 괜히 속이 쓰려왔다.
"아가씨, 이제 나가 보셔야 해요."
"너는 같이 가지 않는 것이냐?"
"별채(別채)까지는 세훈이가 아가씨를 모실 것입니다. 어서 빨리 가보십쇼!
다녀오신 이후에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것도 잊으시면 안됩니다!"
제가 더 신이 나서는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발랄하게 외치는 아이의 모습이 귀여워 싱긋 웃어주고는 방문을 열었다.
문 앞을 지키고 서있었는지 내가 나오자 마자 고개를 돌리며 꾸벅-깍듯하게도 허리를 숙인다.
날씨가 추운 탓인지 하얀 얼굴 위에 오똑하니 솟아있던 코 끝이 빨갛게 얼어있었다.
"날씨가 이리 추운데, 들어오지 않고.."
"아랫것이 함부러 주인 아가씨의 방에 들어갔다가는 소인이 경을 칠 것입니다."
"갑자기 왜 그래,"
세훈이의 옷 소매자락을 슬쩍 쥐고 잡아당기자 내 손을 감싼 세훈이 내 손을 강하게 틀어쥐더니 나를 이끌고 내 방 뒷뜰로 달리더니 몸을 숙여 쪼그려 앉는다.
그러고는 나와 시선을 마주하고 싱긋이 웃어보이더니 양 손으로 내 볼을 감싸쥔다.
"아가씨,"
"왜에.."
"말투만 잠시 바꾼 것 뿐인데 그리 울듯한 표정을 지으면 내가 어찌해."
"네가 갑자기 그런 말투를 사용하니까.."
"언제부터 아가씨가 이렇게 어린 아이 같은 짓만 골라서 했나 몰라."
씨익 하얀 이를 드러내어 보이며 웃은 세훈이 손을 뻗어 내 머리를 톡톡 두드리더니 머리가 헝클어지지 않도록 가볍게 쓰다듬는다.
눈가를 찌그러트리며 괜히 입술을 댓발 내밀고 팔을 밀어내자 다시 씨익 웃어보이는 얼굴이 해사하다.
"이 집에는 듣는 귀가 많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또!"
"제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아가씨께서 아량을 베푸실 필요가 있습니다."
잠시나마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던 말투가 다시 존댓말로 바뀌더니 세훈이가 자리에서 먼저 일어선다. 그러고는 날 향해 손을 내민다.
일어서-하고 벙긋벙긋 입모양으로 말하고 이번에는 이가 보이지 않도록 얄팍한 입술 끝만을 끄집어 올리며 웃는다.
그 웃음과 마주해 나도 살풋이 웃어보이자 킥킥거리며 허리까지 굽혀가며 웃더니 하아-하고 숨을 내 쉬고는 내 볼을 슬쩍 두드린다.
"자꾸 소인을 이렇게 흔들어 놓으시면 곤란합니다."
"그것이 곤란한 문제라면 흔들리는 너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젠 제법 당차지셨습니다,"
장난스럽게 말꼬리를 주욱 잡아빼며 드라마에서나 본 도도한 아가씨 흉내를 내니
어이가 없다는 듯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어보인 세훈이가 다시 내 손을 맞붙잡고 발걸음을 옮긴다.
날 배려한듯한 좁은 보폭에 맞춰 조심조심 걷던 세훈이가 갑자기 자리에서 멈춰선다.
"도련님께선 어찌 오셨습니까?"
"하나뿐인 누이 동생이 정혼자를 만나러 가는데 어찌 그 모습이 궁금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으니 아가씨는 먼저 들여보내겠습니다."
"나 또한 지금까지 기다린 시간이 있으니 잠시간 말미를 내어 주는 것이 어떻겠느냐.
잠시 자리에서 물러나거라."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올리자 반듯한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거뭇해진 눈가가 먼저 눈에 들어와 괜히 고개를 푹 수그렸다.
옆에서 으득-하는 세훈이의 이가는 소리가 들려 놀라 고개를 들어올렸지만 세훈이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 없었다.
단지 입술을 꾹 깨물며 뒤로 한발자국 물러서더니 내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등을 돌려 저벅저벅 걸어간다.
"아가,"
"오라버니, 저는,"
"꽤나 다급한 말투구나."
마치,네 마음을 나는 모두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싱긋 웃어보인 준면이라는 이름을 가진 내 오라비라는 사내가 나와 시선을 마주해온다.
여전히 다정함이 담뿍 담긴 그 눈동자로 오롯이 나만을 바라본다.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아 코를 훌쩍이는 소리를 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입꼬리를 끝까지 끌어올려 다정히 웃어보인 오라버니가 내게로 한발자국 가까이 다가온다.
"내 오라비가 되어 널 불편하게 할 생각은 없으니, 표정을 푸는 것이 좋을 듯 하구나."
"오라버니..."
"머지않아 새신부가 될 아이가 그리 근심이 어린 표정을 하고 있어서야 되겠느냐."
어김없이 다정함과 따뜻함이 그득히 들어찬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네오는데 그 목소리가 담고있는 내용마저 다정하기만 해 괜히 눈가가 시큰거렸다.
붉어진 눈가를 봤는지 가볍게 손을 뻗어오더니 내 눈가를 제 옷 소매자락으로 꾸욱 눌러준다.
얼마나 밖에 서있었던건지 피부에 닿아오는 비단의 촉감이 부드럽기에 앞서 차갑기만 해 괜히 더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가, 고개를 들어 보아라."
"지금은 얼굴이 못나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네 얼굴이 내게 못나 보일 리가 없질 않느냐."
그러고는 내 턱을 가볍게 들어올리는 손길이 필요이상으로 조심스러워 괜히 마음이 아파왔다. 이 사람은 이렇게까지 나를 생각해주는데, 나라는 사람은,
"아가, 어찌 눈물을 보이는 것이냐! 내 너에게 또 무슨 잘못이라도 한것이냐,"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가...그리 울면 실로 얼굴이 못나지질 않느냐, 눈물을 거두거라."
"으,아무것도 아니,흑-으..."
눈가를 가볍게 소매 끝으로 톡톡 두드리더니 나와 진득하게 시선을 마주해온다.
그 눈에 가득 담긴 날 향한 염려와 걱정과, 그리고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 감정이 날 향해 뿜어져 나오는듯한 말도 안되는 상상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미안하기만 한 감정에 눈물이 멈출 줄을 몰랐다. 상황 파악도 하지 못하고 주륵 주륵 흘러내리는 눈물에 스스로도 당황스러워 입을 벌리고 어버버-하는 바보같은 소리를 냈다.
"오늘따라 더욱 아이같은 모습만 보이는구나."
"송구합니다. 단지,"
"어리광이 는 것 같아 보기는 좋다만 눈물은 아끼는 편이 좋겠다.
네 오라비 된 자로써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은 꽤나 큰 고역이니 말이다."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싱긋 웃어보이는 얼굴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내 앞으로 내밀어진 손 위에 내 손을 얹었다.
하얗고 고운 전형적인 단정한 도련님의 손과도 같은 그것에 괜히 마음이 떨려 숨을 급하게 들이마셨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는 오라버니의 눈빛을 알아차려 당황한 나머지 갑작스레 콱-막힌 숨통에 컥컥대며 기침을 토해냈다.
"아가!"
"으,콜록-괜찮,콜록-"
"말도 아끼는 편이 좋겠구나, 이리 약해서야 어찌 하겠느냐."
등을 다독이는 손길이 퍽 다정하다. 휘청이는 몸이 무너지지 않도록 허리를 가볍게 받치고는 등을 타독이는 손길에 숨을 골랐다.
헥헥거리며 몸을 바로하자 구겨진 내 옷을 손으로 펴 이리저리 정리하더니 다시 고개를 들고 나와 시선을 마주하고 살풋이 웃는다.
내 볼을 향해 가볍게 손을 뻗어온다. 볼을 다정하게 감싸쥐더니 두어번 손가락으로 볼을 훑어내리더니 입술을 달싹이며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고는 손을 내려놓는다.
"누구보다 어여쁜 모습을 다른 누군가에게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괜히 심통이 나는구나."
"그런 말씀 마십시오, 평생 곁에서 보고 살아야 할 오누이 사이가 아닙니까."
"그리 말해주니 고맙다 해야할지 너를 밉다 해야할지 도통 감이 잡히질 않는구나, 이제 그만 들어가 보아라."
쓰게 웃음짓는 얼굴에 괜히 내 속까지 쓰려오는 것 같아 뒤로 한걸음 물러나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알겠다며 대답하고는 나에게서 등을 보이고 그 성격만큼이나 단정한 걸음걸이로 멀어지는 오라버니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러기도 잠시, 엉덩이를 툭 치는 손길에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지르자 쳇-하며 혀 끝을 차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세훈 이 새끼.
"도련님과의 밀회는 즐거우셨습니까?"
"밀회는 무슨,"
"저까지 물려놓고 대체 무슨 대화를 나누신 겁니까?"
"아무것도 아니니 신경쓰지 말아라."
입술을 댓발 내밀고 퉁퉁거리던 세훈은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발로 흙바닥을 퍽퍽 걷어찬다.
손가락으로 어깨를 톡톡 두드리자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올려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심통난 어린아이 마냥 부루퉁하던 얼굴이 순간 사납게 굳는다.
"도련님께서 이리 만드신 겁니까?"
"아,아파.."
"제가 묻고 있질 않습니까, 도련님께서 이리 만드신 겁니까?"
"오라버니가 내게 그럴 리가 없지 않느냐!"
거칠게 턱을 움켜쥐는 손길이 억세다. 조금 전 내 얼굴을 어루만지던 오라버니의 손길과는 다른 이질감이었다.
얼굴에 가해지는 악력에 억지로 벌려진 입가가 아려왔다. 벌어진 입 틈새로 읏-하는 짧은 신음소리가 터져나왔다.
. 짧은 신음소리에 곧바로 손에 힘을 풀고는 미안하다며 고개를 꾸벅 숙인다.
"왜 제 앞에서 이런 표정을 짓고 계십니까,"
"감정이 복잡해 그런 것이니 네가 염려할 일이 아니다, 오라버니께서 다독여 주신 것 뿐이니 괜한 오해는 하지 말도록 해라."
"아가씨 표정이 이러한대, 그것이 제가 신경쓸 일이 아니면 제가 신경써야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냉랭하니 되돌아오든 대답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괜한 서러움에 겨우 멎은 눈물이 터져나올 것 같았다.
정혼자라는 사람은 날 기다리고 있다는데 이러고 있어서 되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서러운 마음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겨우겨우 터져나올 듯한 눈물을 참았지만 울상이 되어 일그러진 얼굴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울지 마십쇼."
"울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듯한 표정을 하고 계시질 않습니까."
대답을 하지 않고 고개만 푹 처박고 바닥을 쳐다보고 있었다. 땅을 바라보고 숙인 고개 위로 후우-하는 세훈이의 한숨이 쏟아져 내렸다.
그 속에 뭔가가 가득 담긴듯해 내 속이 무거워졌다. 이 아이는 속에 무엇을 담고 있는걸까. 왜 아프기만 한 표정을 짓는걸까.
준면 오라버니도, 호위무사라는 세훈이도 왜 이 세상의 나와 연관되어 있는 사내들이라고는 죄다 불쌍한 운명을 타고난걸까.
피가 섞인 혈육에게 연심의 정을 품은 오라버니에, 범접할 수 없는 주인집 아가씨를 품은 세훈이에, 앞으로 내가 만나야 하는 사내들까지 모두 이런 운명을 타고난 걸까.
내가 지금 만나야 한다는 그 정혼자 까지 이런 운명을 타고 나는 걸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아직 만나지도 못한 경수는 어떤 운명 속에 살아가고 있는 걸까.
내가 이 세상으로 왔기 때문인걸까. 모든 것은 나의 탓인건가. 마음이 시렸다. 속이 쓰라렸다. 토기가 치밀어올랐다. 속이 울렁거렸다.
"아가씨의 어머니께서는 그런 표정을 짓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 내 어머니라 한 것이냐?"
"아, 제가 그만, 실언이었습니다, 기억에서 지우십쇼."
"괜찮으니 그리 당황하지 않아도 괜찮다."
"제 어머니께서는 아가씨께 그런 표정을 짓는 방법은 가르쳐 주시 않은 것으로 압니다."
이 세상의 나는 내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걸까.
왜 어머니에 대한 언급만으로 저렇게까지 당황한 표정을 짓는건가 싶어 어리둥절했지만 계속해서 이어지는 세훈이의 말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답지 않게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가는 듯해 나도 모르게 침을 꿀떡 삼키고 경청할 수밖에 없었다.
"아가씨가 행복해지기 위해 꼭 필요한 사람을 만나러 가시는 길입니다."
"그것이 내 정혼자를 이르는 것이냐?"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세훈이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어여쁜 얼굴을 하고 계시니 어사대부(御史大夫)의 자제라는 사내도 필히 마음에 들어할 것입니다."
"네 마음에는 들지 않느냐?"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럼 나는 그것으로 되었다."
싱긋이 웃어보이자 눈에 띠게 화르륵 붉어지는 세훈이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터졌다.
어린아이같은 모습이 그 아이의 허리춤에 채워진 그 화려한 칼과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나름대료 묘한 조화를 이루는 것도 같아 애써 무시했다.
내 손을 가볍게 쥐더니 그 하얗고 잘생긴 얼굴이 눈 앞으로 가까이 다가오더니 붉던 입술이 내 입술 위로 떨어졌다.
"아!"
"먼저 그런 말씀을 하신 건 아가씨니 이건 제 잘못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뭐, 흔히 말하는 정당방위 같은 것으로 해 두겠습니다."
"말은 잘 지어내는구나."
"이제 정말 가보시는 것이 좋을듯 싶습니다."
"네가 말하는 그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만나야 하는 사내에게 말이냐?"
다시금 고개만 끄덕인 세훈이 나에게서 등을 돌리더니 먼저 앞장선다. 아까와는 다르게 성큼 성큼 넓은 보폭에 발맞춰 다급하게 세훈이의 뒤를 따랐다.
세훈이가 움직일 때마다 같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그 화려한 칼에 정신이 팔려 멍하니 그 칼만 쳐다보며 계속해서 걸음을 움직였다.
눈 앞에서 화려하게 세공된 보석 장식들이 일렁인다.
푸른빛이 나는 보석이 여기저기 박혀있기도 하고 붉은빛이 나는 보석들도 여기저기 박혀있는 것을 보니 꽤나 비싼 물건이구나- 싶었다.
"아야!"
"들어가 보십쇼."
"이 안에 계신 것이냐?"
"그렇다고 하니 어서 들어가 보시는 편이 좋을듯 합니다."
"세훈아-"
"예?"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잘 들어주었으면 좋겠어."
"괜한 소리는 하지 마십쇼."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밀고는 나와 시선을 마주해온다. 뭐냐는듯 대답을 재촉하는 그 기다림이 어린 눈동자가 오롯이 나를 바라본다.
다정하기만 한 그 여린 연심이 가득 담긴 오라버니의 눈동자와는 또 다른 느낌에 아무런 부담감 없이 그 시선을 마주하고는 말을 이었다.
혹여나 말이 꼬일까 싶어 입술을 두어번 달싹거리고는 목소리를 입 밖으로 냈다.
"너는 얼굴이 참 잘생겼다."
"그걸 이제서야 아셨습니까."
"17살인데 그정도면 키도 큰 것 같아, 더군다나 남자는 오래동안 자란다고 하니 더 키가 클 것 같기도 해."
"칭찬을 줄줄이 하시니 괜히 불안합니다."
"공부는 잘 모르겠지만 내 호위무사라고 하니 무술 실력도 뛰어나겠지."
뭔가 익숙한 전개에 세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조금 전 제가 제 아가씨의 무릎에 누워 어사대부(御史大夫) 박근우의 자제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괜한 투기(妬畿)를 표출했던 때 제가 했던 이야기였다.
그 다음에 제가 무슨 이야기를 했더라, 고민을 하던 세훈의 표정이 굳어졌다. 제 아가씨의 말을 막아야 했다.
"제가 괜한 소리는 하지 말라고 분명,"
"나는 너를 계속 세훈이라 부를테니 너는 계속 나를 아가씨라 불러주었으면 좋겠어."
"그건 또 무슨.."
"네가 변하지 않듯 나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세훈이 입을 악다물었다. 속이 답답해져왔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숨이 벅차오기 시작했다.
제 아가씨와 저의 거리를 실감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말 한마디에 거세게 뛰어대는 심장을 빼내어 발길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저에게 쓸데없는 기대를 심어주는 말 한마디에 제 몸뚱아리는 이리도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하고 솔직하게 반응해온다.
"아가씨,"
"왜 그리 부르느냐?"
"저를 떠나시기에 앞서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면 저는 어찌해야 합니까."
"누가 너를 떠난다는 말이냐."
"아가씨 외에 다른 누가 있겠습니까."
"내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입술을 꾹 깨물고 대답을 하지 않는 세훈이의 축 처진 손을 향해 팔을 뻗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손을 감싸고는 양손으로 굳은살이 가득 박힌 험한 손을 보듬었다. 아, 나를 지키는 손이구나-
"내 정혼자가 나를 행복하게 하기 위한 사람이라 했느냐."
"대답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이리 너와 대화를 나누는 것도 행복하니, 그런 말을 네 입으로 뱉으며 스스로에게 굳이 상처를 낼 필요는 없다,"
세훈이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러고는 별채를 향해 내 등을 떠민다.
급하게 고개를 숙였지만 벌겋게 달아오른 양 볼이며 눈가가 시야에 포착되 괜히 웃음이 새어나왔다.
아직 어린 아이구나, 17살이라더니. 비록 한살 차이였지만 이 곳에 와서 처음으로 챙겨주고픈 아이가 생겼으니 그것이 세훈이었다.
나보다 어린 나이를 하고 나를 지키겠다며 칼을 차고 내 옆에 서있던 그 아이, 내가 지켜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억지로 세훈에게 등떠밀려 들어간 별채에는 이리저리 펼쳐진 다기들이 놓여진 탁자 위에 남자 한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자 마자 드는 생각이라고는, 아, 세훈이가 거짓말을 한게 아니었구나. 정말로, 잘생겼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구나.
하지만 내 얼굴을 보자마자 사납게 굳어지는 사내의 얼굴에 입술을 앙다물었다. 이게 무슨-
"여봐라!"
"무슨 일이십니까?"
"나는 내 부인이 될 자를 만나러 온 것이다, 이런 것을 기다린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도련님."
"저것을 끌어내라, 그리고 내 부인이 될 자를 불러오거라!"
박찬열 (20)
황국 어사대부(御史大夫) 박근우의 장남
황국(黃國)의 승상(丞相) 김준후의 여식의 정혼자
"내 부인을 불러오거라, 내가 몇시간 동안 기다린 것은 저따위 것이 아니다."
----------------------------------------------------------------------------------------------------------------------------------------
-암호닉-
아이디 고니 준면맘 꽯뚧쌟랣 카르텔꺼 시나몬 시카고걸 모라
권지용 밝으리 열찬박 오징어땅콩 용마 메리미
장미 알콩 꽃잎 모카 매력넘치는 까꿍이 구금 뭉뭉 노트북 라임
허니 하나둘 이웃집여자 세니 카레맛 준멘님이아멘
참고해주세요, 메일링 공지에 올렸던 암호닉 목록에 있으셨던 분들 중에서 댓글에 거의 나타나시지 않았던 분들 몇분은 이번 목록에는 없습니다.
암호닉은 당분간 받지 않을 예정이예요. 참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