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요 몇년간
굉장히 우울할 때 쓴 글들입니다. 그러니까 분위기가 우울합니다
그러니까 우울한 분위기가 옮는게 싫거나
타인의 우울을 보는것이 거북하신 분은 읽지 않으시는 걸 추천합니다.
저는 딱히 우울을 전시하거나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고
우울할때면 글로 표현해서 해소하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기분을 환기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썼었습니다.
또 저는 글을 쓰는것에 대해 전혀 배운것이 없습니다.
띄어쓰기가 틀리거나 일본식 표현이거나 그런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심각하게 사용해서는 안되는 표현이 아니라면
될수있는한 수정은 하고싶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런것에 민감하신분도 읽지 않으시는 걸 추천합니다 ㅠ
0.
보고 싶다. 되고 싶다.
이렇게 저렇게 하고 싶다.
슬픔을 해소하고 싶지 않다.
영원히 간직하고 갈등의 고조만을 겪고 싶다.
그래야만 바뀔 수 있다면 그러고 싶다.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가는 일이 너무
무감하고 티가 나지 않아서 두렵다.
죄책감이 동그래지면 쓸 데 가 없다.
1.
꿈에는 날개가 없다.
꿈에는 날개가 없어서
뇌속의 사막에 도착해
뇌속의 깊은 곳을 향해 걸어서 가야만 한다.
사막이 뜨겁고 거칠어
꿈은 가다 녹아내린다.
어느 날 밤에 내가 그 꿈의
이름을 부르면
죽은 줄만 알았던 꿈이
지하 속에서
꿈틀하고 몸을 한번
뒤틀어 대답한다.
3.
사랑한다고 말하면 안 되나요,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라도,
미워한다고 해도
그 사람을 떠올리면 머리카락이 쭈뼛 서도,
그래도 그 사람을 사랑이라는 단어와
붙여보고 싶은 어떠한
마음이
사랑이라고 불려서는 안 되나요.
4.
죽으려고 할 때쯤엔 풀을 키우고 싶다.
제일 친한 친구들에게 나의 고양이들을 맡기고
난 뒤 독초들을 키우고 싶다.
죽음들이 한 뼘씩 무성히 자랄 때마다 내가 어떤 기분일지
글로써 쓰는 지금과 얼마나 다를지 알고 싶다.
모든 게 끝이 아니라고, 내 절망조차 조절할 수 있는 감정이라고 믿고 싶다.
통제의 밑바닥에 자라는 괴상한 마음으로 절하 하고 싶다.
그날이 오면 누군가가 내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지옥은 없다고.
우울한 글의 특징은 우울할때만 그 글을 훨씬 더 가깝게 느낄수있다는 점 같아요.
평소에 밝을때보면 유치하고 엉성하고, 하나밖에 안보려하는게 느껴져서
공감하기 어렵지만
우울할때 읽으면 그 글쓴이가 나라고 할지라도
과거의 나도 같은 기분이었구나. 하는 마음에 왠지 이상한 위안이 되는거같아요.
혹여나 다른 사람들도 우울할때면
아무도 볼 수 없는 일기장이나 비밀게시판 같은곳에 저처럼
그냥 감정을 마구 싸지르는 느낌으로 뱉어놓고
나중에 보면서 스스로를 다독여주면 좋을거같아요.
그럼 모두 좋은 저녁보내시고 안녕히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