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환 하고 보시면 더 좋을 것 같네요!★
by 치피스님
V, Vernon, and SEVENTEEN
조직명 : 세븐틴(SEVENTEEN)
3년 전 새롭게 등장하여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중.
잘 짜여진 위계와 상당한 실력의 조직원들이 세븐틴 성장에 한 몫 하고 있음.
24 : 完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그간 해왔던 피나는 연습들이 이룬 꿈같을 정도로. 복면이 불편하다며 그냥 우리인 거 까고 하자고 툴툴거리던 조슈아도 복면을 쓴 채로 자유자재로 돌아다녔다. 솔직히 복면을 쓰면 시야가 좁아지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정도 실력인 거면 복면을 벗었을 때 Kipper Tie정도는 그냥 없애버릴 수 있겠다고 느꼈다. 그 정도로 아주 잘 해내고 있었다.
다친 조직원은 있어도 죽은 조직원은 없었다. 다들 죽을 각오로 덤벼드니 상대팀이 정신 못차리는 것은 당연했다. 더구나 3인 1조로 움직이고 있던 탓에 사각지대도 적어져 훨씬 효율적으로 적들을 처리해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딱히 내가 지휘를 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말이다. 다만 아까부터 계속 거슬리는 것이 있었다. 13층 전체적으로 퍼져있는 20번대 CCTV들이 계속 끊기듯 송출되었다. 그것 때문에 불안하긴 해도 그쪽 조직원들이 밑 상황도 모르고 여유롭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이제 11층 클리어. 두 층만 더 올라가면 저쪽도 난리가 나겠지. 세어나오는 미소를 그대로 흘리고 있는데 B의 수신이 들어왔다.
'C, 20번대 CCTV들 아직도 끊기나요?'
"네. 끊기네요."
'이상한데.. 전혀 끊길 게 없거든요.. 굳이 13층만.. 저쪽 보스 사무실이 몇층이었죠?'
"어.. 17층이요."
'17층이라.. 네 알겠습니다~'
네. 짧게 대답을 하며 재빨리 호시 수신기를 켜 위험을 알렸다.
"호시, 뒤에!!"
'뒤? 아, 고마워요.'
"힘내세요. 얼마 안남았어요. 아참, 호시. 혹시 모르니까 13층 진입할 때 병아리 앞에 세우도록 해요."
전체 수신기를 켜며 다른 간부들에게도 전했다. 13층 진입할 때 조심하라고. 수긴기를 내리고 다시 화면에 집중했다. 모든 조직원들이 아주 순조롭.. 게.. 문득 소름이 돋는 생각이 들어 1번 화면으로 지금까지 클리어한 섹터들을 살폈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느껴지던 것에 확신이 생기며 더 소름이 돋았다. 이제 막 13층에 진입할 참인지 현장팀 팀장인 우지가 신호를 주기 위해 손을 올리고 있었다. 재빨리 수신기를 켜서 제지했다.
"우지야, 잠시만!!!! 이상해. 너무 이상해."
전체 수신기를 켰다. 13층 진입을 위해 비상구 계단에 모여 숨을 죽이고 있을 그들에게 일렀다.
"너무 순조롭다고 느끼지 않았습니까? 3인 1조인 우리에게 딱 1명의 넥타이가 붙었어요. 수가 너무 적지 않나요?"
'...결론만 말해.'
"13층 CCTV 송출이 끊깁니다. 이상해요. 그러니까, 13층에 뭔가 있을 것 같아요. CCTV상으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도 이상해요. 그들끼리 인이어로 뭔가 주고받았을 텐데, 지금..."
말하면서도 계속 CCTV들을 살피던 도중 22번 카메라에 이상한 것이 잡혔다. 어떤 넥타이 하나가 우리가 숨어 있는 비상구 계단 문을 열고 나간 것이다. 근데, 지금 우리 간부들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 뭐?'
"씨발, 같은 거에 또 당했어. 화면 바꿔치기 했나봅니다. 얘들 지금 13층에서 뭘 꾸미고 있는 것 같아요. 20번 대 CCTV들 전부 전에 녹화해놨던 것 같아요."
'어쩐지..! 계속 끊긴다 했어.. 아...'
"간부들 뒤로 빠져요. 13층은 자살부대가 올라갑니다."
'네.'
"문제는, 13층 전체적으로 저는 못 본다는 겁니다. 한 명은 남아서 저에게 계속 상황 전달해주세요."
'나나. 내가 전달할래.'
"그럼 17이 전달해주시고, 나머지는.. 끝까지 살아남아요. 회식해야죠."
실없이 터지는 간부들의 웃음소리와 함께인 대답을 듣고 17 수신기의 볼륨을 조금 키웠다. 하나도 놓쳐선 안 된다.
'지금 자살부대 투입합니다.'
"바로바로 상황 보고 해주세요."
'네. ...뭐야?'
"뭔데요..?"
수신기 건너편이 소란스러워졌다. 무슨 상황인지 몰라 답답해지려던 찰나 17의 목소리가 들렸다.
'13층에 아무도 없는데? 이 씨발 넥타이 새끼들.. 사람 빡돌게 하네.'
아무도 없다고? 어째서? 머리를 아무리 굴려봤자 답이 나오지 않았다. 넥타이들은 왜 이런 전략을 짰을까.. 그걸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건 17이 아닐까 싶어 물어보았다.
"...너라면 왜 13층에 사람을 안 둘 것 같아?"
'아, 미친. 우리 보스 어디 있어?'
"보스 사무실.. 민규랑 같이 있어."
'왜 안 뒀겠냐. 시간 끌려고 최소한의 인력만 여기 두고 13층 이후로 있는 애새끼들은 우리 조직 치러 갔겠지."
"우리 조직인지 모를 거 아니야? 너희 지금 다 복면 쓰고 있잖아."
'어디서 정보가 샜거나, 복면을 써도 가려지지 않는 잘생긴 외모 때문이지 않을까?'
'이 상황에 지랄하고 싶냐? 이프도 씨발 하나 밖에 안 짜서는. 뜻대로 안되면 돼져버려? 뜻대로 안 됬으니까 지금 이거 터뜨릴까?'
'역시 이지훈은 무서, 야. 여기서 말장난 할 게 아니야. 지금 본부가 위험하다고.'
'...씨발.'
곧 뛰는 소리가 수신기를 타고 들려왔다. 본부가 위험하다고..? 그러니까 우리? 5번 화면에 뭔가가 떴다. 우리 빌딩 앞 도로 CCTV였다.
'아직 인 것 같아, 누나. 아무도 없어. 우리 치러 오는 거 아닐거야. 침착하자.'
"...너나 걱정하지 마, 승관아. 울지 말고."
'나, 안 우는데..'
잔뜩 물기 어린 B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두려움은 나에게까지 전해졌다. 자연스럽게 물어뜯던 손톱에 비릿한 피 맛이 느껴질 즈음, 버논의 수신이 들어왔다.
'바이크 타고 가고 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제 행복은 제가 지킵니다.'
웃기게도 그 말 하나에 안심이 되었다. 두 손을 마주잡고 허벅지에 올리며 아직까지는 비어있는 빌딩 앞 도로를 바라보았다. 몇 분 후면, 검은 차들이 가득 차겠지. 최근에 다시 만든 보스의 수신기를 켜며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담담하게 말했다.
"보스, 도망가세요. 최대한 멀리. 지금 도망가면 살 수 있으실 겁니다."
'...나 혼자 살아서 뭐해. 죽어도 같이 죽어.'
"보스가 살아야 세븐틴이 이어지죠. 저희가 세븐틴을 지킬게요. 혹시 모르니까 보스는 잠시 피해계세요."
'발을 들이민 순간부터 늪에 빠진 거야. 너희가 위험한 줄 알면서도 도망치는 비겁한 사람은 아니지, 내가.'
"...최선을, 다해, 지키겠습니다."
별다른 보스의 대답은 없었다. 보스 수신기를 끄고 고개를 숙였다. 아니야. 내가 나약해지면 안 돼. 지휘를 끝내주게 잘 하면 회식할 수 있어. 애써 마음을 다 잡으며 고개를 드니 바로 보이는 5번 화면이었다. 그 화면은 나에게 비극이 시작됨을 알리고 있었다.
검은 승합차 2대가 우리 빌딩 앞에 세워졌다. 그 안에서 나온 약 20명의 사람들이 우리 빌딩으로 진입했다. 이제 도로는 필요 없으므로 1번 화면에 옮겨 놓고 비어버린 5번 화면은 우리 빌딩 1층을 보여주는 CCTV로 돌렸다. 화면을 나눠 전박적인 1층의 모습을 확인했다. 모두 하나씩 총을 든 채 조심스럽게 닫힌 상가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렇게 쉽게 본부가 뚫릴 줄 알았다면, 본부에 뭐라도 하는 건데.. 어차피 1층엔 아무도 없으므로 2번 화면으로 옮겨놓고 2층 및 진입 계단으로 5번 화면을 돌렸다. 뭐, 뭐야..? 찬이? 찬이가 2층엔 왜 있어?!
"찬아. 너 거기서 뭐해..?!"
'글쎄요. 나도 내가 뭐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지금 그들 어디에요?'
"1층에 있어. 그러니까 피해, 찬아!"
'신약 개발이 어제부로 끝났어요.'
"지금 너 실험할 때가 아니라고!"
'실험 아닌데.. 나도 조직원이잖아요. 최대한, 도움은 되어야죠.'
찬이가 주섬주섬 옆에 있던 007가방에서 4개의 유리병들을 꺼내 두 손 가득 쥐었다. 그럴 동안 넥타이들이 2층 진입을 위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찬이는 더 이상 어떠한 말도 없이 숨죽이며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난 두 손을 모으고 찬이를 보았다. 뭔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똑똑한 아이고 조직원인 아이었다. 나도 어떻게든 도움이 되려고 머리를 최대한 굴리는 만큼 찬이도 그러고 싶겠다는 것은 잘 알지만, 아직 어린데..
문이 벌컥 열렸다. 원래라면 감았을 눈을 똑바로 뜨며 상황을 보았다. 한 명만 있을 줄은 몰랐는지 당황한 넥타이들에게 유리병들을 던져버린 찬이가 그들을 최대한 빠르게 지나쳐 위층으로 올라갔다. 정신 차린 넥타이 새끼들이 찬이를 향해 계속 총을 쏴대는 통에 혹시나 다쳤을까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가는 찬이를 CCTV로 따라가며 확인했다. 7층 중간에 멈춰서 숨을 고르는 찬이가 안 다친 것이 확실시 되자마자 다시 2층 진입 계단을 보았다. 그들 사이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다. 순간 번뜩였다. 그 다리 절단한 연구팀 연구원이 실수로 쏟았던 그것인 것 같았다. 타고 올라가면서 괴사한다는 그 것. 곧 찬이가 수신기로 설명을 덧붙였다.
'조금이라도 살에 닿으면 타고 올라가며 괴사할 거예요. 도와주려고 손댔다가 그대로 당하는 거죠. 어때요? 어떻게 됐어요?'
"...효과 되게 좋네. 괴로워하고 있어."
'당연하죠. 누가 만든 건데요~ 이제 숨 좀 돌려야겠어요! 너무 긴장했네!'
찬이가 보스 사무실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화면을 보았다. 5명 정도가 그 신약에 닿지 않았는지 진입하고 있었다. 2층을 살피던 그들이 역시나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는지 내 사무실이 있는 3층으로 진입했다. 곧, 그들을 만나겠네. 보고 싶은 얼굴이 잔뜩 떠올랐다. 버논이랑 우지도 보고 싶고, 에스쿱스도 보고 싶다. 밉긴 해도 귀엽던 도겸이도 보고 싶고, 지지리도 수신기 이용 못하는 디에잇도 보고 싶다. 그냥, 다 보고 싶었다. 특히나 버논이가 제일 보고 싶었다. 버논이 온다 그랬는데, 언제 오려나.. 아니다. 차라리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위험하니까.
잠갔던 문에 손잡이가 헛도는 소리가 들리더니 세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의자를 빙글 돌려 문을 보았다. 동시에 B의 수신기가 울렸다. 손을 뻗어 수신기를 켜고 다시 문을 보았다. 언제 열려도 이상할 것 없는 문이었다. 그동안에 B와 마지막 대화나 해볼까 싶었다.
"승관아, 왜?"
'승합차 3대에 벤 1대 더 오고 있다는 거 알려주려고..'
"그렇구나.."
'우리 팀은 지금쯤 어디일까, 누나..?'
"모르겠네. 반지 다 두고 나가서."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끼리 단합대회 같은 것도 할 걸 그랬어, 그치?"
"그러게. 평소엔 그렇게 밉던 도겸이도 보고 싶더라니까."
문이 부서지듯 열리자마자 수신기를 전부 꺼버렸다. 내 앞에 있는 넥타이 새끼를 보았다. 분홍색 넥타이를 한 여자였다. 익숙한 그 얼굴은 Kipper Tie의 간부 중 하나였다.
"세븐틴에 여자 간부가 있단 말은 못 들었는데."
"난 자주 들었는데. 꽃분홍색 넥타이 자주 하고 있더니, 오늘은 그냥 분홍색이네."
"역시, 여자라 그런지 세심하네. 시커먼 남자들은 이런 거 바꿔도 모르더라고."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어?"
행복 하고 싶었다. 평생을 바라던 꿈이었는데.. 그래도 최근엔 버논에게서 꽤나 많은 행복을 느꼈던 것 같다. 달달함 또한 많이 느꼈지. 그래서 별로 후회는 없다. 계속해서 울리는 수신기들에 내가 사랑받고 있었구나가 또 다시 느껴졌다.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니 별 표정도 없이 문지방에 기대어 있던 그녀가 나를 뚫어지게 보다가 물었다.
"기회를 하나 줄까?"
"무슨 기회?"
"세븐틴 조직원 중에 되게 이국적이게 생긴 남자 있잖아. 그 남자만 넘기면 살려줄게. 어때?"
"그딴 기회면 그냥 죽여."
"역시, 조직력 하나는 끝내주네."
총을 장전하며 말을 마친 그녀가 나를 향해 조준했다. 가만히 눈을 감은 그때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니 허공에서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나를 살펴보던 그녀가 무슨 소란인지 확인하려 고개를 뒤로 빼 살펴보았다. 곧 그녀가 허둥지둥 밖으로 나가 앞으로 총을 겨눴다. 영문을 몰라 의자를 뒤로 돌려 CCTV로 확인했다.
...복면을 쓰고 있었지만 알 수 있었다. 버논이었다. 넥타이 간부와 버논이가 대치했다. 곧 버논은 복면을 벗어던지며 말했다.
"여기 저 있습니다. 그럼 저 안에 여자는 살려주시는 겁니다."
곧장 후발대로 왔던 Kipper Tie의 조직원들이 버논이를 에워쌌다. 너무 놀라서 입을 막으며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떠한 말도,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순순히 잡혀주며 어떠한 반항도 하지 않는 버논을 보았다. 뒤통수에 닿아있는 총구의 느낌이 서늘할 텐데도 버논은 두려움에 떨지도, 자신이 한 말을 무르지도 않았다. 평소엔 우지한테 할 말 못할 말 잘도 하면서 너무 순순히 그러고 있는 모습에 눈물이 차올랐다. 버논의 팔을 가져가 수갑을 채운 Kipper Tie의 간부는 버논을 뒤로 돌리더니 총구로 버논의 등을 밀었다. 그런 와중에 버논은 내가 보고 있던 CCTV를 돌아보며 말했다.
"...부디 행복하십시오."
엄청난 충격이었다. 눈물이 하도 가려 버논의 마지막 모습도 희미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버논의 부디 행복하라는 말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신 차리며 소리쳤다.
"한솔아!!!!!"
나의 소리침에 한솔이 움찔했고 몇몇 Kipper Tie의 조직원들이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그 전에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뛰어 나갔다. 복도로 나오니 한솔이 뒤를 돌아 나를 보았다. 어느새 총들은 나와 한솔이를 겨누고 있었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 선명해진 눈으로 한솔이를 보았다. 그런 나에게 한솔이가 침착하게 말했다.
"무모하십니다. 행복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너가 없이 어떻게 행복해.. 네가 나 이렇게 만들었잖아.."
"...이왕 죽이실 거면 같이 죽게 해주십시오."
심드렁하니 그러라 대답하는 Kipper Tie의 간부를 지나쳐 나에게 다가온 한솔이가 수갑을 차 묶여 버린 팔을 들어 올리더니 나와 밀착했다. 곧 그대로 팔을 내려 내 허리를 감싸니 그의 품에 안겨있는 꼴이 되었다. 틈 없이 밀착된 몸에 심장 뛰는 소리가 가까이에서 온전하게 들려왔다. 한솔이를 올려다보았다. 날 내려다보고 있던 한솔이가 힘을 줘 나를 꽉 끌어안았다. 잠시 후 총성이 크게 울렸다. 그런 총성 사이로 한솔이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사랑했습니다, 00야."
대답을 해주고 싶은데, 그러기엔 배 부분이 너무 아파왔다. 배에서부터 축축하게 젖어오는 느낌이 내 기억의 마지막이었다.
눈을 떴다. 아파오는 머리와 함께 내 마지막 기억들이 괴롭게도 재생되었다. 하.. 한솔이.. 벌떡 일어나 앉았다. 나, 왜 살아있지? 왜 살아있는 거야? 주변을 둘러보았다. 임시병실이었다. 벽에 붙어 있는 소파는 좀 낯설었지만 그 위에 쪼그려 자고 있는 남자의 모습은 익숙했다.
"우지..?"
자신의 이름이 들려서인지 움찔한 우지가 살며시 눈을 떴다. 곧 나를 보더니 벌떡 일어나 다가왔다. 어쩔 줄 몰라 하며 나를 보던 우지가 나를 꼭 끌어안았다. 다행이라 말하는 그 목소리에 물기가 젖어 있었다. 상황파악이 안 돼 답답했다. 우지에게서 벗어나려 살짝 밀어내니 금방 밀려나며 나를 보는 우지였다.
"뭐, 뭔 일.. 한솔이는?"
"......"
"왜, 대답이 없어..? 뭐야, 왜이래.."
"......"
"죽..었어..? 아니지? 나 살아 있잖아."
"...걔가 너 다 막아줬어. 우리가 도착했을 땐 이미.."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하는 우지였다. 무섭도록 순식간에 차오른 눈물이 뚝 하고 떨어지니 우지가 티슈를 뽑아와 닦아주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너는 살았잖아.' 라고 말하는 우지의 위로는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그게 가장 처절한 걸.. 그게 가장 날 아프게 하는 걸.. 나, 대답도 못한 것 같아. 한솔이 마지막 말에 나도 사랑했다는 대답을 못했다고.. 죽거든 한솔이 만나면 대답해주려고 했는데, 나 왜 살아있는 거지? 왜..?
"어? 누나 일어났네요~? 꼬박 한 주를 누워계셨어요!"
찬이가 들어오며 말했다. 그의 왼쪽 손엔 붕대가 감겨 있었다. 근데, 어딘가 이상했다.
"너.. 너 손.. 손 어디있어..?"
"아, 이거요? 그때 던지다가 나도 좀 닿았나 봐요. 어쩌겠어요, 절단해야죠. 보스가 아주 통곡을 하던 걸요? 그래도 재생하는 약 덕분에 금방 아물었어요. 아직은 흉하지만?"
찬이의 왼쪽 손이 없었다. 손가락이 있어야 할 곳에 아무렇게나 붕대가 감겨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짓는 그 맑은 웃음에 울컥 울음이 차올랐다. 왜.. 왜 우리가 죽고 다쳐야 하는 걸까.. 무엇을 위한 싸움이었으며 무엇을 위한 작전이었을까..
"다른, 다른 조직원들은..?"
"다들 무사해요~ 걱정 마세요!"
다들 무사하다는 말에 다시 생각난 한솔이었다. 찬이는 알 거였다. 한솔이의 몸을. 웬만한 상처는 별 것도 아니었던 그 몸을. 괴물이었잖아. 필사적으로 한솔이의 죽음을 부정했다. 그럴수록 확실해져 오는 현실에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터질 듯 터지지 않는 감정은 눈으로 표출되었다. 자꾸만 흐르는 눈물에 찬이가 다가오며 말했다.
"아이고.. 왜 울어요, 누나. 한솔이 형 때문에 그래요?"
"......"
"나랑 보스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손 쓸 수 없었어요. 그나마 한솔이 형 몸이 튼튼해서 누나 그 배 쪽에 상처뿐이 없는 건데.."
찬이는 여전히 잔인했다. 물론, 찬이 자신에게도 잔인했다. 다리를 절단한 조직원은 자살 했다. 자신의 신체 부위 중 하나가 없을 때 느껴지는 그 처참함을 못 견디고 정신이 든 바로 다음 날 자살을 한 거였다. 그런데 찬이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그런 거 따위 자신에겐 아무 문제가 안 된다는 태도였다.
현실 또한 나에게 잔인했다. 잔혹한 이 현실은 나의 전부였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린다. 나의 유년기도, 나의 세상도, 나의 믿음도, 나의 행복도.. 배 쪽에서 느껴지는 따끔함에 옷을 걷어보았다. 아주 작은 상처와 흉터가 남아있었다. 고작 1주 전에, 그것도 총상이 흉터만 남아있었다. 괴물은 내가 아닐까.. 내가 죽어야 모두가 안전하지 않을까..? 부정적인 생각을 방해하는 것은 한솔이의 말이었다. '부디 행복하십시오.' 한솔이 다운 딱딱한 말이었다. 그 말 한마디, 어쩌면 유언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마지막을 알고서 한 말이었으니까.
"행복해야겠어.."
"그럼요!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어요! Kipper Tie 전멸했거든요! 씨가 말랐어요, 아주! 지훈이 형이 누나 쓰러져있는 거 보고 빡쳐서 다 죽였거든요!"
앞으론 행복할 거다. 너가 없이 행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움찔거리는 우지가 옆에 있었다. 근본도 알 수 없는 나인데도 불구하고 나를 걱정해주는 찬이도 있으며,
"C!!!!!! 너, 너 괜찮, 아니, 어디 아파? 머리는? 몸은? 배는? 기억은?"
"......"
이제 막 들어와 호들갑을 떨며 이리저리 살피는 조슈아와, 그 뒤로 말없이 날 바라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 보스도 계신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보스와 조슈아를 제치고 들어와 다행이라고 말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에스쿱스도 있고, 자기가 겁이 많아 당장에 달려가지 못해 죄송했다며 울며 사죄하는 승관이도 있었다. 내 주위에 있는 이 사람들로 인해 난 행복할 수 있을 거였다.
"C, 다시는 무모한 짓 하지 마요. CCTV 돌려보고 오는 길이니까, 발뺌할 생각 말고요."
민규가 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물론 아픈 애한테 뭐하는 거냐며 우지에게 뒤통수 얻어맞고 말을 멈췄지만. 내 눈에 보이는 간부들을 가만히 보았다. 모두가 나를 바라보며 다행이라는 듯 웃고 있었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 하나 만으로 각자 몸에 붕대를 한 채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이다.
"00입니다. 내 이름."
과거가 어떻든 상관없었다. 난 이들 소속이었다.
그는 사라졌지만 시간은 똑같이 흘러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절도 흘러갔으며 청명했던 하늘도 쌀쌀했던 날씨도 지나 춥고 하얀 계절이 다가왔다. 보스에게 까이고 있는 지금의 나도 예전과 다름 없이 똑같이 흘러가는 중이었다.
"아주 그냥 너 때문에 내가,"
"죄송합니,"
"말 끊고 사과하지 말라고!!!!!"
"네."
"아오!!!!!"
너가 없었지만 모든 것은 똑같았다. 아, 전략팀의 전략이 다시 완벽해졌다는 것이 다르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쪽 세계는 모든 것을 금방 잊는 편이다. Kipper Tie라는 조직이 있었다는 사실 조차 금방 잊혀 갔다. 복수만큼 질척이는 것이 없다. 깨끗하게 싹을 잘라버린 만큼, 싹을 자른 조직이 우리인 만큼 모든 조직들은 알아서 우리에게 말을 삼갔다. 한 조직을 없애버리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하루. 그것이 그들이 우리에게 말을 삼가는 이유였다. 단 하루, 24시간도 채 채우지 못한 그 시간동안 한 조직 하나가 사라졌다는 것은 이쪽 세계에 꽤나 평판이 좋게 났다. 그래서인지 임무도 늘었고 조직원도 늘었다. 병아리들이 끊임없이 들어왔으며 그럴 때마다 우리는 항상 그랬듯 인사치레인 대면식을 했다. 보스에게 한참이나 깨진 뒤 향하는 곳이 병아리들과 인사하러 가는 곳이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더구나, 병아리만 생각하면 한솔이 생각이 나는 걸..
"C, 대면식 끝나고 잠깐 나랑 얘기 좀 할까요?"
"네? 아, 그래요."
갑작스럽게 뒤에서 나타난 호시에 놀라기도 전에 약속이 잡혔다. '꼭 입니다.' 얼결에 잡은 약속을 확인시킨 호시와 함께 훈련소로 들어갔다. 한솔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 뒤로 병아리와의 대면식은 벌써 5번째였다. 이렇게 문을 열 때마다 난 긴장을 하곤 했다. 아직도 그가 죽었다는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니까. 들어가면 처음 그를 대면식에서 만났을 때처럼 병아리들 사이에 껴서 나를 보며 웃어줄 것 같았으니까. 어김없이 가장 먼저 얼굴들을 살폈다. 역시, 없구나. 실망한 나의 표정을 확인했는지 호시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으며 미리 와 있던 우지가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괜찮아?"
"응. 괜찮아."
우지와 손을 잡은 채로 대면식을 하기 위해 차례로 섰다. 에스쿱스는 간단히 자신의 소개를 한 후 우리를 하나하나 소개해주었다. 물론 나를 소개할 땐 과장을 덧붙였다.
"코드네임은 C. 우리 중에 제일 무서운 애니까 알아서 주의하도록."
병아리들이 나에게 기어 올라서 보스가 내린 특단의 조치였다. 하도 들어 익숙해진 소개말에 그저 빨리 끝내길 바랄 뿐이었다. 단체로 고개숙여 인사하는 병아리들을 보니 한솔이랑의 대면식이 다시금 떠올랐다. 나를 보며 환히 웃어주던 그 모습이. 아, 그때부터 한솔이는 나를 알고 있던 거였을까? 그런 내가 못 알아보니까 섭섭해서 초반에 그렇게 틱틱 거렸던 건가.. 어쩜 이렇게 생각할수록 가슴이 미어질까.. 후회만 될까.. 난 그런 그에게 못된 짓만 했다. 창문 열고 뛰어 내리라는 둥, 수신기 체크 중이니까 위험해도 말하라는 둥.. 싫은 소리 한번 없이 묵묵히 내 말대로 해주던 그를, 어떻게 내가 잊은 채 살 수 있을까..
"C?"
"네? 아, 네. 왜요?"
"다 끝났으니까 가자고요. 할 말 있다고 했잖아요. 지훈아 잠깐만."
"...나랑도 말해."
"비밀이니까, 꺼져."
"씨발."
장난스럽게 웃은 호시와 함께 본관 옥상으로 향했다. 가는 길 호시는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했다. 어제 눈 오는 거 봤냐고 묻기도 했고, 눈이 오니까 미친개 녀석이 감수성이 풍부해졌는지 쿱스형에게 찾아갔다는 이야기도 해줬다. 그런 일상이야기에 조금은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웃으니 호시도 기쁜지 더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다 보니 옥상까지 금방이었다. 여전히 옥상엔 하나뿐인 의자가 외롭게 놓여 있었다. 빤히 바라보다 천천히 걸어가 의자에 앉았다. 어서 앉으라는 듯 호시를 올려다보니 호시는 내 앞에 서서 날 내려다 볼뿐이었다.
"안 앉으세요?"
"C 아직도 과거는 기억 안 나세요?"
"네. 안 나네요.."
"...C 우리 고아원 출신 아닌 거 아세요? 나보다 한 살 더 많다는 것도 아시나 모르겠어요."
"...갑자기, 그게, 무슨.."
"전원우나 이지훈이 지겹도록 반말할 때 쿱스형하고도 말 깐 내가 유독 C에게만 반말을 안 했죠."
"......"
"이런 말 불쾌할지도 모르겠지만, C가 있던 연구실 조사 내가 나갔었어요. 그러다 C의 신상정보를 봤죠."
"......"
"우리 고아원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C를 보면 내 누나가 떠올랐거든요. 그래서 여태까지 비밀로 했어요."
"......"
"누나가 C처럼 많이 아팠었어요. 그런 누나 지키려고 팔려나갔는데, 결국엔 고아원 뒷산에서 싸늘해진 누나와 재회하게 됐죠."
순식간에 호시의 눈이 슬퍼졌다. 아직도 그때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그 날 보스를 만나게 되었고 첫 임무가 연구실 정보를 끌어 모으는 거였다고 덧붙였다. 참다 참다 끝내 흐른 눈물 한 방울을 거칠게 닦아낸 호시가 한쪽 무릎을 꿇어앉으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내가 청소년까지 못 죽이는 이유가 이거였어요. 죽을 당시 누나 나이가 딱 19살이었거든요."
"아.."
"느껴졌을지 모르겠지만, 나 C에게 꽤 잘했는데. 말도 잘 듣고, 지훈이가 물려하면 막아주고."
"그랬던 것, 같네요.."
"앞으로 누나라고 부를 거예요. 속이 시원하네. 누나 된 기념으로 선물 준비했는데.."
재킷 안쪽에서 서류봉투 하나를 꺼낸 호시는 망설임 없이 나에게 건넸다. 분명 좋아할 거라며 자기가 더 기대하는 눈치였다. 예민하기는커녕 오히려 조금 귀엽기까지 한 그 모습에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지 않으며 서류봉투를 열어보았다. 안을 들여다보니 인화된 사진 같은 것이 들어있었다. 손을 넣어 꺼내니 뒷면이 먼저 보였다. 그 곳엔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은 나의 본명과 함께 한솔이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지켜줄게요 00누나
-한솔이가-
그것을 보자마자 숨이 턱 막히는 거였다. 눈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때는 말투가 딱딱하지 않았나봐, 한솔아.. 그 짧은 글귀를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았다. 삐뚤한 글씨에도 눈물이 뚝뚝 흐를 정도였다. 애써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참아내려 했으나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더더욱 뒤를 돌려볼 수가 없었다. 한솔이의 독사진이려나.. 사실 한솔이의 사진이 나에겐 단 한 장도 없었다. 조직이니 만큼 핸드폰을 사용하지 못했으니 그건 당연한 거였다. 시간이 흐르는 만큼 흐릿해지는 그 얼굴에 어떻게든 기억해내려 애썼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괜찮아요. 분명 좋아할 거예요, 누나."
호시의 응원에 떨리는 손으로 뒤를 돌려보았다. 사진을 확인하자마자 울컥 나오는 울음소리가 깨물었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호시가 말없이 옆에 앉아 내 어깨를 다독였다. 결국 참았던 만큼 크게 엉엉 소리 내서 울어버렸다. 울어도 풀어지지 않는 답답함과 후회스러움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언제쯤이면 너를 생각하며 행복할 수 있을까, 한솔아.. 언제쯤이면 너에게 미안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매일 너에게 닿지 않을 대답을 한다.
많이 늦었지만, 닿길 간절히 바라며 대답을 한다.
'나도 사랑했어, 한솔아.. 나도.. 나도..'
'사랑고아원'이라고 적혀있는 아주 예쁜 간판 밑에 어린 모습을 한 한솔이와 내가 손을 잡고 서 있었다.
나는 브이를, 한솔이는 머리위로 하트를 그리고 있었다. 한솔이는 완성되지 못한 하트를 아는지 모르는지 해맑게도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때부터 난 나빴네, 그치 한솔아.
V, Vernon, and SEVENTEEN
fin.
+
잊어버린 과거
제 2연구실 C번방에서 들리는 비명소리가 벌써 1개월 째 계속되고 있었다. C번방 문을 열고 들어간 연구소 총 책임자가 쓰러져서 움찔거리는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물었다.
"반응은?"
"아주 미세하게 나아집니다. 보십시오. 겉엔 아무는데, 속에 장기 같은 경우는 아물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곤란하군."
머리를 긁적이며 녹아내린 여자의 등판을 보던 총책임자는 눈을 돌리다 발견한 빈 주사기에 약물을 다시 주입했고 더 투입하면 위험하다며 말리던 연구원을 지나쳐 여자에게 다시 투입했다. 정신을 잃었는데도 불구하고 고통이 느껴지는지 몸을 꺾어가며 괴로워하는 여자의 모습에 총책임자는 주사기를 던져버리며 말했다.
"얘는 경과보고 내일 폐기시켜. 고아원에서는 연락 없어? 더블로 준다 그러고 데려오도록."
"네. 알겠습니,"
말을 멈춘 연구원이 이상한 느낌에 제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여자가 그 남자의 바지 끝단을 손가락마디가 하얘지도록 잡으며 말하고 있었다.
"죽, 죽여, 컥, 죽여주세..."
얼마 안가 다시 정신을 잃은 그 모습에 연구원이 경악했지만 총책임자는 여전히 무심해보였다. 밖으로 나간 총책임자를 바라보던 연구원이 제 바지를 아직도 꽉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강제로 떼어내며 진통제를 놔주곤 그곳을 나와 열쇠로 문을 잠갔다.
-
제 2연구실 C번방의 문이 열렸다. 여자는 매트릭스 위에 멍하니 앉아있다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에 느릿하게 몸을 움츠리며 물러섰다. 연구원은 그런 여자에게 다가갔으나 그보다 먼저 뒤에 있던 소년이 다가갔다.
"누나..! 누나, 괜찮아요? 저에요, 한솔이!"
"......"
"지금, 이게 뭐하는 거예요? 뭐하는 건데 누나가..!!"
"너도 곧 저렇게 될 거야."
"나만 저렇게 해요. 어떻게든 이 악물고 버틸 테니까. 누나는 놔주세요, 제발.."
연구원은 한솔을 외면했다. 여자는 여전히 몸을 움츠린 채 그들을 등질뿐이었다. 그런 둘을 번갈아 보던 한솔이 입술을 꼭 깨물었다. 반드시, 여기서 이 연구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을 죽일 거라 다짐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착하고 곱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상하고 마른 모습의 그녀는 한솔의 복수심을 불타게 하기에 충분했다.
-
제 2연구실 3번방. C번방의 맞은편이었다. 한솔이 온 후로 제 2연구실은 매일매일 낮밤 할 것 없이 한솔의 혼잣말 같은 말들이 울렸다.
"누나, 밥은 좀 먹었어요? 여기 고아원보다 맛없더라고요.."
"누나 방에 창문으로 보면 달이랑 별 보여요? 누나 달이랑 별 보는 거 좋아했잖아요.."
"누나, 나 기억은 해요..? 나는 누나 목소리가 너무 그리웠는데.."
"누난, 이 고통을 어떻게 참은 거예요..? 괜찮아요, 누나..?"
어느덧 한솔이 이곳에 온 지도 3달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 3달 동안 한솔의 목소리는 매일같이 울려 퍼졌으나 대답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말하던 한솔이에게 대답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 여.. 다ㅡ 죽여..버릴, 컥,"
다 죽여 버릴 거라던 그녀의 목소리가 숨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멎었다. 한솔이 깜짝 놀라며 문을 내리쳤다. 연구원을 목 놓아 불렀지만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한솔은 손이 뭉개져라 문을 치며 연구원을 불렀다. 손날 뼈가 박살나 더 이상 큰 소리가 안 날 때쯤엔 머리까지 동원하여 문을 쳤다. 그제야 연구원이 시끄럽다며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는 거였다. 한솔이 재빠르게 소리쳤다.
"누나! 누나 좀 살펴주세요!!"
"시끄러워!"
"제발요!!!"
귀찮다는 듯 연구원이 터덜거리며 들어와 C번방 문 안쪽을 살펴보았고 곧이어 쓰러져 있는 여자를 발견했는지 깜짝 놀라며 문을 열어 보았다. 한솔은 불안한 눈으로 상황을 보았다. 연구원이 안아들고 나온 그녀는 누가 봐도 죽은 것 같아 보였다. 절망적인 그 모습에 한솔이 눈을 감았다. 차오른 감정을 흘려보낸 후 남은 것은 처절한 복수심이었다.
-
C번방이 비었다. 이틀째 되는 날 버논은 저에게 주사를 놓으러 온 남자의 목에 몰래 숨겨놨던 포크를 찔러 넣었다. 소리를 지르는 남자를 물끄러미 보던 버논이 연구실 문 밖으로 나섰다. 눈을 피해 빠져나가는 것은 금방이었다. 설마 연구에 최적화 된 실험쥐들이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버논은 차근차근 계획을 세웠다. 힘을 키운 뒤 다시 돌아와 연구소를 제 손으로 없애버릴 것이라 다짐했다.
한편 연구소에서는 꽤나 놀라운 실험 결과를 확인하고 있었다. 한솔의 실험결과였다. 치유되는 시간 하며 박살났던 뼈가 붙는 속도하며 부작용도 없이 완벽한 성공이었다. 그래서 더 혈안이 되어 한솔을 찾았으나 끝끝내 찾지 못했다. 총책임자는 아쉬워하며 진통제에 취한 채 눈만 뜨고 있는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이 여자 또한 경과가 좋았다.
"한솔이라는 아이는요..?
정신을 차렸는지 다급하게 물어오는 모습에 투박하게 여자를 뒤로 돌려 옷을 걷어 본 총책임자는 완벽하게 아문 자리에 다시 황산을 떨어뜨렸다. 그간 조용했던 연구소에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이렇게 상처를 만들면 피부가 썩었지만 끝내는 상관없다는 듯 깨끗하게 아물었다. 현대의학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비정상적인 약의 연구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그 한솔이라는 애가 더 완벽한데.. 일단 얜 다시 C번방에 옮겨."
"네."
그로부터 5시간 후, 연구소에 불청객이 찾아온다. 총을 들고 있었으며 대책 없어 보였다. 서로를 보스와 조쉬라 칭하며 투닥거리는 모습은 철없는 사내들 같았지만 가끔 보이는 날카로운 눈빛은 그들이 보통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_
조직으로 들어가 2년 6개월간 온갖 험한 일을 다 한 한솔은 어느새 버논이라는 코드네임도 받았을 정도로 그 조직의 보스에게 신뢰를 쌓았다. 신뢰의 결과로 받은 총을 들고 찾아간 곳은 다름 아닌 그 연구소였다. 연구소에 가까워져 갈 수록 한솔은 이상함을 느꼈다. 가는 길이 원래 이렇게 풀밭이었나.. 풀밭을 헤치고 들어가니 텅 빈 공터가 나왔다. 이미 연구소는 세븐틴(SEVENTEEN) 봄버맨들에 의해 완벽히 사라진 후였다. 버논은 앞이 막막했다. 앞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나 싶었다. 끊임없는 절망이 찾아왔다. 주저 앉아버리는 그의 뒤로 그림자가 졌다. 재빠르게 일어나 총을 겨눈 버논은 양 귀 옆으로 손을 들어 올리는 크가 큰 사내에게 물었다.
"누구야."
"조직 세븐틴의 김민규라 합니다. 버논을 데려가고 싶어서요."
"......"
"꺼내려는 거 총 아닙니다."
민규는 조심스럽게 안주머니에 있던 사진 하나를 건넸다. 많이 좋아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사진 속에 있었다. 커다래진 눈을 한 버논을 확인한 민규가 들어올렸던 손을 내려 악수를 청하며 물었다.
"어쩌시렵니까?"
"갑니다. 당연히."
한솔은 민규의 손을 잡아 흔들었다. 곧 손을 놓자마자 가만히 그 사진을 바라보았다. 끊임없던 절망은 사라졌다. 그녀가 살아있음으로 인해 행복했다.
그거면 한솔이 행복하기에 충분했다.
***
우리 병아리ㅠㅠㅠㅠㅠㅠㅠㅠ
절절한 과거가 있었습니다8ㅁ8
C를 위해 연구소에 찾아갔으며 C를 위해 손날이 박살나도록 연구원을 불렀고 C를 위해 세븐틴에 들어갑니다8ㅁ8
그런 병아리는 같은 하늘 아래 없네요ㅠㅠㅠㅠㅠㅠㅠㅠ병아리야ㅠㅠㅠㅠㅠ
제가 말했었나요? 짤 하나로 시작한 글이라고.. 그 짤이 바로
이 짤입니다8ㅁ8
진짜 내가 이거.. 와.. 정말.. 8ㅁ8
버논이는 단 한번도 누나의 이름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실수로 부른 적도 없습니다.
그만큼 C를 대하는데 있어 조심스러웠거든요8ㅁ8
아! 버논이랑 C 친남매 아닙니다!ㅎㅎ 오해금물!
진짜 끝이 났네요!
뷔버셉, VVS로 불리우던 이 글도 이제 텍파를 끝으로 안녕하겠지요8ㅁ8
버논이가 죽는 세드엔딩이 V, Vernon, and SEVENTEEN의 진엔딩입니다.
물론 외전으로 해피엔딩이 텍파로 나갈 예정입니다.^0^/(짧을 예정입니다. 너무 기대하진 마세요..!)
마지막 화니까 궁금하셨던 거 다 물어봐주세요! 대답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텍파는 잠시 후에 이메일 써주시는 글 하나 올릴 것 같아요! 그게 제가 확인하기 편할 것 같거든요!
거기에 이메일과 암호닉(중요) 써주세요! 하고 싶은 말 써주셔도 돼요!
혹시나 진짜 그러실 분은 없겠지만.. 꼭 받고 싶다 하시는 분도 글에 대한 애정도를 댓글에 보여주세요!
그럼 텍파 배달될지도 몰라요(수줍)
+++
뷔버셉 텍파엔 아시다시피 본편엔 안 나온 이야기가 실릴 예정입니다. 지금 써놓은 부분도 있어서 확실합니다!
이것은 모든 암호닉분들에게 드릴 생각입니다!
++++
암호닉을 1, 2, 3, 4차로 나눈 이유 다들 아시죠?!
1차에는 모든 분께, 2차에선 추첨을 통해 열 분, 3차에선 딱 한 분에게만!!!(+2, 3, 4차에서 제 기준 자주 와주시는 분들도!)
특별편을 드릴 예정입니다!!!해피엔딩 배달갑니다^0^/
★암호닉입니다!★
<1차>
자몽소다, 전주댁, 뿌랑둥이, 치킨반반, 최벌넌, 수학바보, 솔찬히, 성수네꽃밭, 한화이겨라, 꼬솜,
파루루, 햄찡이, 노랑, 치피스, 블유, 수녕텅이, 남융, 순수녕, 볼살, 제주도민,
예에에, 제주시, 밍꾸, 애쁠, 버눗방울, 마르살라, 열일곱, 겸손, 연잎,세봉윰
<2차>
투녕, 씨그램, 쑤녕둥둥, 코스모찌, 챈솔, 햄찌, 문홀리, 1103, 란파,
비행기, 논쿱스, 김민규오빠, 닭키우는순영, 홍슈아, 두유워누, 곰부승관, 바람개비
<3차>
말미잘, 공오, 마릴린, 뿌야뿌야, 망구, 닝냥, 허긩, 발꼬락, 조아, 헕,
양양, 셉요정, 너누, 미세먼지, 두루마리, 뿌야
<4차>
17뿡뿡, 뱃살공주, 쭈구미, 메뚝, 매직핸드, 고라파덕, 순별, 꽁냥꽁냥, 갈비, 초록별,
11023, 둥둥떠, 조아, 사랑둥이, 한울제, 순주, 너누리, 심장한솔대란, 쿠조, 아리아리,
문과생, 내일, 이월십일일, 채꾸, 팽이팽이, HVC, 뽀또, 복숭아, 0101, 메이,
킨, 0219, 설우, 잼재미, 뿌작,여우별,아이스라떼, 헬륨, 솔바람, 징차,
20718, 구구콘, 낑깡, 뚱찌, 권날, 조끄뜨레, 피자빵, 일게수니, 뚜루뚜, 규애,
자몽몽몽, 체리쀼,뿌존뿌존, 리니, 비타민, 뽀랑, 뿌블리랑갑서예, 홀릭, 벌농, 호욱,
뚜뚜야, 문준휘, 꽃단, 뿌주얼, 마그마, 유유, 꽃보다감자, 마지, 깨방정, 사이다,
숭늉, 요를레히, 0320, 꽃지훈, 뿌잇뿌잇츄, 공룡, 수박승관, 사우똥, 1226, 피치피치,
순영아, 655, 권햄찌, 러브어필, 상상, 죠아욥, 소원, 바나나에몽, 치치,자몽몽몽몽몽몽몽,
럽부, 지하, 0309, 돌하르방, 꽃침, 두솔, 1600, 콧구멍, 보노보노, 전늘보,
0323, 홍당무, 8월의 겨울, 찬비, 뀨뀨, 아드리나, 1122,ㅅr랑둥이, 귤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