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 없는 대학 후배 전정국 X 시각장애 너탄 09
"너 알고 그랬지."
"누나가 너 좋아하는거 알고 키스한거 아냐, 너."
방금까지 헤롱헤롱거리며 정신 못차리던 김태형이 언제 그랬냐는듯 멀쩡한 모습으로 정국을 노려본다.
정국이 예상컨데 술자리에서 헤롱거리던 김태형의 태도는 아마 다 쇼였을거다, 선배들이 나가떨어지자마자, 유즈얼서스펙트의 범인마냥 태도를 바꾼채 김탄소를 챙기는 태형의 모습을 보곤 깨달았다. 은근히 저거 고단수라니까, 박수를 쳐주고싶은 연기력에 감탄하며 김태형이 내뱉는 개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술에 취해 널부러진 채 테이블 밑으로 시체들처럼 들어져 잠든 사람들 사이에서 술기운에 따끈히 볼이 발그레해져 곤히 잠든 김탄소를 부축해 1층 방 침대에 눕혀준 김태형이
방으로 들어서며 내뱉은 말이었다.
"뭔 개소린지"
"너 누나가 너 좋아하는거 알고 그런거잖아."
"너한테도 이야기 하던? 김탄소가, 정국이가 너무 좋다고."
김탄소가 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김태형도 알고있었다니, 그런데도 그때 동아리실에서 열심히 제 감정을 부정하던 태도는 뭐야, 뭐 입덕 부정기 쯤이라 해둬야하나.
정국은 실없는 생각을하면서 혼자 웃는다.
김탄소가 저를 좋아한다고, 그리 태형에게 말했단게 왜 제 입꼬리가 올라가는 이유가 되는지,
정국은 복잡한 마음에 젖은 머리를 탈탈털어댄다.
그에 김태형이 짜증난다는 투로
"물튀어 재수없는새끼야."
하고 말하면
"쳐 나가서 주무시던지요."
천하에 싸가지 없는 전정국도 뒤지지 않는다.
원래라면 방안에 학과남자들이 알코올 섞인 김들을 푹푹 내뱉어가며 치이듯 잠들어야 할 방이지만,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있던 김태형과 전정국만이 살아남아 차지한 방, 은근한 긴장감이 둘사이를 타고 자꾸만 흐른다.
"사람마음 가지고 놀지마라, 김탄소도 술김이라 키스한거 기억도 못할테니까."
"그럼 내가 기억나게 해야지."
"이 씨발새끼가."
김태형이 욱하는 마음에 욕지기를 내뱉으며 잡히는대로 배게를 주워들어 던졌다.
"땡큐."
그걸 또 약오르게 잡아챈 전정국의 모습에 양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며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 태형이었다.
-
정적이 감도는 방안에서,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한 정국이 잠에 들지 못하고 뒤척거린다.
그에 잠귀가 예민한 김태형이 온몸을 뒤흔들며 짜증을 표출한다.
"좀 씨발 잠좀자자!!"
"야."
"ㅁ..므? 뭐!!"
"넌 왜 편입하자마자 김탄소한테 그렇게 치대냐 뭐 시각장애 페티쉬있냐."
"진짜..... 김탄소같은 누나가 너같은새끼를 좋아하는게 이해가 안간다."
"질문에 대답이나 해. 말 더럽게 많아 김태형."
" 원래, 알고 있었어."
그리 옛 기억을 더듬는듯한 목소리로, 김태형이 말한다.
원래 알고 있었다는 그 말이 정국의 예상과는 완전히 달라, 불어난 호기심에 입을 달싹이면.
-드르렁 드르렁
티나게도 자는척을 해대는 김태형의 모습에 김이빠진듯 헛웃음을 짓는 정국이다.
참내, 정국이 욕실앞에 있던 김남준 선배가 벗어논 양말을 주워다가 자는척을 해대는 김태형의 입속으로 쳐넣었다.
"아 진짜 싸이코새끼!!!!!!!!!!!!!"
짐승이 포효하듯 그렇게 울부짖은 김태형을 등지고, 정국이 이불을 정리하곤 편히 드러 눕는다.
-
김탄소는 그 부드럽던 입술의 감촉에 쉬이 잠에 들지 못한다.
술기운이었지만, 비록 알코올 향이 다분했지만, 김태형대신 제입술위로 포개어 진건 분명 정국의 입술이었다,
제눈에 띄지 말라 그리 화를 내던게 잊혀질 만큼, 정국의 태도를 감 잡을수 없어 탄소가 또 혼자 욕심을 갖는다.
"옆에서 있는것만으로도 좋아... 그것만 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침대 위, 언젠가 어릴적 동네 목사님이 탄소의 눈이 보일 수 있게 해주세요, 라 기도하며 두 손을 모아주던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옆으로 웅크려 누운채로 두 손을 모아 기도한다.
"정국이가, 한번만 절 보면서 웃게해주세요.. 아니.. 하느님 정국이 얼굴을 한번만 만지게 해주세요..."
제가 볼 수 없는 웃음이라도, 정국이 절 보며 한번이라도 웃어줬음 좋겠다, 그리 간절한 소원을 빈다.
오늘따라 그 빛이 약하던 달빛이, 조용히 탄소의 모아진 손으로 내려앉는다.
-
10년전.
"야 이년아! 가만히좀 있어봐, 응? 아저씨가 기분 좋게 해줄게."
좁은 시장 골목길, 어둑어둑해진 골목을 오솔길에서 주워 예삐라 이름까지 붙여놓은 나무지팡이를 열심히 짚어가며 집으로 향하고 있을때였다.
낚아채듯 저를 끌어당기는 손길에 속수무책으로 끌려간 곳,
쾌쾌한 냄새와 불쾌하게 헉헉거리는 숨소리가 탄소의 귓가로 자꾸만 흘러들어온다.
아버지...
그 작은아이를, 눈도 보이지 않아 열심히 도망치려는 시도가 모두 물거품이 되버리는 그 불쌍한 아이를.
왜그렇게 두려움에 떨게 하셨나요.
"으으.. 하지마세요... 잘못했어요... 제발..."
그 죄없는 아이를... 왜... 그렇게 잘못했다고 울부짖는 아이를 왜 그렇게 두렵게 하셨나요,
욕망이 얼굴 구석구석에 그득히 차오른 사내가, 어린탄소의 작고 하얀얼굴을 거침없이 내리치며 소리친다.
"똑바로 만지라고!! 응? 울지만말고!!!"
제 물건을 자꾸만 작은 탄소의 손에 쥐이며 소리 쳐대는 탓에, 숨이 넘어갈 것만 같은 울음을 끄억거리며 삼켜내길 바빴다.
결국 몇번의 오입질 끝에 탄소의 허벅지에 액을 뱉어낸 남자가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주변을 둘러 볼 때였다.
"아부지!!!!!!!"
"..ㅌ..태....태형아...."
-
태형이 악몽에서 깨어나 땀에 젖은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인상을 찌푸린다.
멀찍히 등진채 자고있는 정국의 뒷모습을 한번 쳐다보곤,
그렇게 1층, 어젯밤 탄소를 눕혀놓은 방으로 걸어들어간다.
"누나... 자요?"
탄소의 이마를 쓸어내리는 태형의 손길이 떨려온다.
"미안해.. 누나... 아직은, 아직은 아닌거같아."
어린날의 기억은, 비단 탄소뿐만아닌 태형에게도 끔찍한 악몽으로 기억된다.
과거는 누구에게나 독이다.
그 독을 풀어낼 열쇠를 쥐고있는, 김태형에겐 더 없이 치명적인 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