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0, 10:19 보고 오세요)
"헤어지자." 앞에서 들려오는 김여주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갈 곳 잃은 김여주의 시선은 이미 테이블에 맡겨진 체였다. 딱히 할 말이 없어 입을 열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여야 하나, 그래. 라고 말해야 하나. 먼저 일어나야 하나. 수십가지 갈등이 머리 속을 채웠다. "...수고했어." 마지막으로 내가 택한 말이였다. 뻘줌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한 걸음 두 걸음 발걸음을 옮겼다. 식어버린지 오래라서 그런가, 딱히 별 감흥은 없었다. 이게 가슴아픈 이별인가 싶기도 하고, 죽을 만큼 아프지 않은 가슴에 헷갈리기도 했다. 우리 둘이 자주 갔던 카페문을 열고 나서는 지금 이 순간, 딱 한가지 깨달은게 있다면 아마도 지금 우린 끝장을 봤다. 이정도? 처음이 어렵다는 말이 사실이긴 했는지 김여주와 헤어지고 얼마 안가 사랑이 척척척, 찾아오기 시작했다. 전에 김여주와 했던 것처럼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거리를 걷기도 하고 가벼운 입맞춤도 나눴다. 그렇게까지 하고나니까, 한가지 의문이 들긴 했다. 이게 사랑인가. 이렇게 쉬웟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중 남고를 버티고 대학교에 올라오자마자 나를 자연스럽게 물들여버린 김여주는 첫사랑이였다. 고백하기 전날 밤새 고민하며 다 죽어가는 얼굴로 스스로 도 모르게 좋아한다는 말을 뱉어버린 날 보며 뭐가 그리 좋은지 웃어왔던 그 얼굴은 감당하기 어려웠고, 사귄지 한달에 걸쳐 처음 잡아 본 여자의 손 또한 감당하기 어려웠고, 사귄지 50일 만에 맞춰 본 입술은 정말이지 너무 나도 어려웠고, 가끔씩 뜬금없이 사랑한다 말하는 그 단어는. 세상에서 제일 감당하기 어려웠다. 근데, 이게 이렇게 쉬운 거였나?1:50
나름대로 잘 살아간다. 아니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저녁에 과파티가 있다는 사실에 권순영과 전원우와 이미 어느정도 동기들이 들어찬 가게로 들어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얼마안가 가게엔 이시원 선배에게 어깨를 잡힌체 어색하게 들어오는 너가 보였다. 그냥 왔구나. 싶었다. 옆에서 장난스레 옆구리를 찔러오는 권순영에 손사례를 쳤고, 이내 분위기는 무르익어가기 시작할 쯤. "......" "......" 날 세상에서 가장 어렵게 만들었던, 그 눈과 마주치고 말았다. 낯설은 감정에 황급히 눈을 돌려 어색하게 권순영의 말에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울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푹 숙여있는 작은 머리통이 또 다시 날 어렵게 만들기 시작했다. 농담이라는데, 우는게 아니라는데. 이상하게 주먹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내 너에게 다시 수그러든 관심에도 나는 시선을 돌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고개를 푹 숙인체 이시원과 같이 가게를 빠져나가는 너의 얼굴, 그래 너는 울고 있었다. "......" "...야, 어디가 이지훈 야!" 꼭 니가 우는게, 그 이유가 나인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해서 두 사람의 뒷꽁무니를 쫓아 가게를 빠져 나왔다. 열 발자국 정도 걸음을 옮겼을까, 가게 옆 작게 좁은 골목길엔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있는 너가 보였다. "......" "......"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기분이 더러웠다.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쉽게 풀려가던 문제가 다시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없이 걷다보니 어느새 눈 앞에는 집이 있었고, 놀랄 새도 없이 휴대폰을 켜보니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겨 있었다. 두시간 가량을 걸어왔다는 사실에 허무해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몸을 던져 배게에 얼굴을 묻었다. "......" 꼭 너의 체취가 남아있기라도 하듯,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보고싶다.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보고싶은거였다. 그리운 거였다. 사랑은, 보고 싶은거였다. 지금 만나고 있는 고아현. 보고 싶지 않았다. 사랑이 아니였다. 사랑이 아니여서 쉬운 거였다. 뒤늦게 깨달았다. 처음이 보고싶었다. 처음이 그리웠다. 처음이 어려운거였다. 축축해진 얼굴을 두 손으로 쓸어대리며 처음처럼 홀로 남은 방이 떠나가라 울어댔다. 손바닥으로 모잘랐는지 베갯입까지 적시고 나서야 김여주를 멈출 수 있었다. "......" 다른 누구도 아닌, 김여주 였기 때문에 어려웠던 거였다.?_1:50.t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