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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센티넬버스 세계관
*역하렘물
*이전에 업뎃한적 있던 글 수정해서 재업합니다.  제목도 바뀜.








1.



그러니까.... 여긴 어디지?  


여주는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제 팔에 꽂힌 수액 바늘과 하얀 침대,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기계 소리. 의무실이었다.

제 마지막 기억이 센터 내부 어딘가의 복도였으니 쓰러진 저를 누군가 옮겨준 모양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걸까. 여주는 익숙한 듯 바늘을 손등에서 뽑아내고 알콜솜을 찾아내어 붙인 뒤 의무실 문을 열었다. 분명 소리 없이 문을 열었는데, 시끄러운 건 아니었을 텐데 어쩐지 저에게로 꽂히는 시선이 무척이나 따가웠다. 의무실의 바깥 쪽, 널찍한 침대에 이리저리 모여앉은 남자들은 대략 여섯 명 쯤은 되는 듯 했다. 무슨 일로 모여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오자마자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 만큼 조용해진 것이 아무래도 제가 방해한 것 같아 미안함에 고개를 꾸벅 숙이고 그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저기, 하고 절 부르는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몸은 좀 괜찮으세요?"

"네?"

"아, 아까 복도에 쓰러져 계셔서 이리로 옮겼는데... 여주씨? 맞죠?"


절 부른 남자를 돌아보고, 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옮겨준 사람이 이 사람인 듯 했다. 흘끗 고개를 돌리며 마주친 눈엔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걱정하는 기색이 가득해서 차마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마시라고 피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폐를 끼친 사람이니까. 여주는 한숨을 삼키며 완전히 몸을 돌려 남자를 마주보았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쁘신 것 같은데 제가 방해한 것 같아서 죄송스럽네요..."

"방해라니요, 전혀 아니에요.“


정말로 그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어보이는 남자의 모습에 여주는 그럼 다행이고요. 작게 중얼거렸다. 절 스치고 돌아가는 여주의 시선을 붙잡으려는 듯 남자는 다시 말을 걸었다.


“몸은 이제 진짜 괜찮으신 거죠?”

“네. 덕분에 멀쩡해요.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제가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자꾸 감사 인사를 들으니까 민망하네요.”


마음 같아선 같이 병원이라도 가드리고 싶은데... 외부로 나가려면 허가가 필요하다고 해서요.
아, 아뇨. 그 정도로 심각한 건 아니에요. 그냥 좀... 몸살이 있어서. 이쯤 되면 제가 낯선 병원에서 눈을 뜨지 않은 게 정말로 다행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괜찮다는 말이 의심스러운건지, 아니면 정말로 제가 괜찮은지 확인해보려는 건지 집요하리만큼 따라붙는 시선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여주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직접 의무실로 옮겨준 것도 그렇고, 걱정해주니 고맙긴 한데 원래 이렇게 친절이 과한 사람인가. 더 이상 무어라 대꾸해야 할지 모르겠다. 애초에 이렇게까지 길어질 대화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여주는 슬그머니 걸음을 뒤로 물리며 말을 꺼냈다.  


"아.... 전 가봐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보답해드려야 할지..."

"뭘 바라고 그런 건 아니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정 마음에 걸리시면 다음에 마주치게 되면 인사나 해주세요.“

“아. 그럼 다음에 마주치면 제가 밥 한 끼 살게요.”

“네. 그렇게 해주세요.”


실상 이 남자가 연구동 사람인지 다른 부서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이정도로 잘생긴 얼굴이 기억에 없는 걸로 봐서는 마주칠 확률이 적겠지. 여주는 내심 안도하면서 속내와는 다르게 미소를 지었다.


“조심히 가세요. 아, 아니다. 데려다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으니 볼 일 보셔도 돼요."


데려다 드릴까요? 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주는 단칼에 거절의 말을 뱉었다. 앞에 있는 잘생긴 얼굴이 가는 내내 자연 라식 정도로 시력을 올려줄 것 같긴 하지만 그건 그거고 불편한 건 불편한 거였다. 거기다 어색함까지 추가해서. 

멀리서 보아도 지금 여주의 표정은 누가 봐도 이제 나가고 싶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남자의 일행 모두가 알 만큼 적나라한 표정인데, 그걸 눈앞에 있는 남자라고 모를 리가 없었다. 

그는 흔쾌히 여주를 보내줬다. 작별 인사로 손을 흔들고 불편한 마음만큼 멀어지고 나서야 문득 밥을 사겠다는 사람치고는 이름도 나이도 어떤 것도 묻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들어가 물어볼 용기는 없었다. 다시 마주친다면 그 때 묻고 밥을 사줘도 되는 거고, 사실은 다시 들어가기가 꺼려졌다. 제가 아무리 눈치가 없다지만 저에게로 집중되는 시선이 한 두 명도 아니고 못 느끼는 게 이상할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그 시선들을 받으며 말하는 건 물론이고 숨 쉬는 것도 부담스런 지경인데 다시 들어가 집중 받고 싶진 않았다. 후우, 한숨과 함께 여주의 걸음소리가 차차 멀어졌다.





*         *          *






센터에서는 1년에 한번씩 직원들을 대상으로 건강검진과 센티넬/가이드 검사를 실시한다. 
검사는 말 그대로 일반적인 건강검진부터 센티넬/가이드 검사로 이어졌다. 센티넬/가이드 검사는 기본적으로 혈액 검사를 바탕으로 특정한 기운이 담긴 약물에 반응이 없으면 일반인,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나면 센티넬이냐 가이드냐를 구분하여 세부적으로 능력 수치를 검사 받는다. 

여주의 경우엔 하필이면 건강검진을 받는 때 몹시도 아팠다. 태어나 이렇게 아파본 적이 없다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온 몸은 물에 젖은 솜이불을 덮은 것처럼 무겁고, 조금만 움직여도 근육통이 심하게 온 것 마냥 욱신거리는데다 관절마저도 제 마음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거기다 열이 오를 때 너무 울었던 탓에 세상이 뿌옇게 보일 지경이었다. 그나마 열이 떨어졌으니 움직여야 겠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센터에 와서 검진을 받는 데는 성공했지만, 검진을 위해 온 의사가 문을 연 얼굴만 보고도 무리하지 말고 쉬는 게 어떻겠느냐고 할 정도로 몸 상태는 최악을 달렸다. 그래도 나머지는 혈액 검사니까. 얼른 피를 뽑아 달라 팔을 내미는 여주를 보고 의사는 독하다며 혀를 찼다.


"아시겠지만, 혈액검사는 시간이 좀 걸리니까 바로 집에 가서 좀 쉬세요. 약 처방을 해드릴까요?"

"아니요.. 약은 이미 받았어요."

"잘하셨어요. 힘들겠지만 잘 먹고 잘 주무세요."


여주는 인사를 하고 검진장소를 벗어났다. 마음이 좀 놓인 탓인지 이때다 하고 다시 머리가 슬슬 아파오며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욕을 잘 하지 않는데 이때만큼은 떠오르는 욕설을 마구잡이로 뱉어내지 않으면 정신을 놓을 것만 같았다. 비틀거리며 걷는 걸음에 욕설까지, 누가 봐도 지금 제 모습이 정상은 아닐 게 분명했다. 미친 여자가 나타난 것 같다고 센터 내부에 신고 당하지 않는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정신 차려야지. 이를 아드득 갈면서 여주는 모퉁이를 돌았다. 누군가와 부딪힌 것 같았는데 그것도 제정신이 아니라서 맞는 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퍽, 하고 제법 큰 소리와 함께 비틀거리는 몸과 함께 정신이 핑 돌았다. 어지럽다. 그게 마지막 생각이었다.

그리고 눈을 떠 위와 같은 상황을 겪고 숙소에 돌아와서 보니 만 하루가 지나 이제 이틀째가 되어가고 있었다. 몸은 확실히 언제 아팠냐는 것처럼 개운했지만 뭔가가 찝찝했다. 그게 뭘까, 영문을 모르는 채 여주는 제 앞으로 온 우편물을 집어 들고 소파에 앉았다.



<건강검진 및 센티넬/가이드 검사 결과서 - 이여주 님 앞>

.

.

.

.

.

.

가이드 반응 - 양성

따라서 이여주 님 께서는 0월 00일 00시까지 가이드 검사실로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대체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란 말인가. 여주는 제 손에 쥐어진 종이를 한껏 구겨 휴지통으로 집어넣었다. 납득할 수 없는 얘기였다. 이제껏 일반인으로 살아온 게 몇 년인데, 이제 와서 가이드라니! 여주는 검사 결과의 오차율이 몇 퍼센트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한 자리수를 넘지 않는 오차율에 제가 포함되는 경우기를 바래야 할 판이었다. 







2.

검사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고 바랬건만, 시간이 언제 제 편이었던 적이 있던가.


"어서 오세요, 이여주 님."


검사를 위해 센터로 들어서기 무섭게,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명찰을 목에 건 여자가 상냥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안내해드리겠다며 앞서가는 단정한 뒷모습을 따라 걸음을 옮길수록 기분은 점점 더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처음 입사했을 때만 해도 이런 곳도 있구나 내지는 평생 제가 방문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곳에 지금 제가 서 있다. 역시 인생은 어찌될지 모른다더니. 여주는 한숨을 푸욱 내쉬며 저를 안내해준 검사원을 따라 순순히 기계 앞에 앉았다.


"준비 되셨으면, 눈을 감으시고 지금 여주 씨가 손을 올리고 있는 그 판에 기운을 쏟아낸다고 생각하고 집중하세요. 도중에 뭔가 이상하다거나, 몸이 안 좋은 것 같다거나 하시면 절 부르시면 됩니다. 자, 그럼 세팅은 다 됐어요. 혹시 질문 있으신가요?"

"아니오."

"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뭔가 오류가 있었다면 좋겠다. 측정을 해도, 아무 수치가 안 나오고 그냥 일반인으로 나왔다면 좋겠는데. 

사실 여주는 아직까지도 한 가닥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오차율이 3% 미만을 달림에도 불구하고, 제가 그 희귀한 3% 일수도 있지 않겠냐는 일말의 희망. 

하지만 기계는 그런 여주의 생각을 비웃듯, 정신을 집중함과 동시에 수치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10, 50, 100, 250... 눈을 감고 있는 여주는 볼 수 없지만, 기계 고장이 의심될 정도로 급격하게 치솟는 수치에 검사를 지켜보고 있는 내부에서는 잠시간의 소란이 일었다. 

고장 나는 건 아닐까요? 
설마요. 오늘 아침에도 점검했는데 이상이 전혀 없었는데요. 
일단은 기다려 봅시다. 기계가 한 대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의심스러우면 접촉 검사를 해봐도 되겠죠. 다들 진정하세요. 

검사실 내부의 소란이 진정될 즈음, 삐이- 하고 한 차례 경고음이 울리며 여주에게는 들리지 않는, 오직 저 유리 너머의 검사원들에게만 들릴 건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수치 측정이 불가능합니다. A급 이상으로 추정.]

"다 됐습니다."

다 됐다는 목소리에 눈을 뜬 여주는 저에게로 집중된 시선에 영문을 모르고 고개를 기울였다. 저를 안내해줬던 검사원에게 끝났냐고 묻자, 그녀는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뭔가 더 남아있는 건가 싶어 묻자 지금은 가이딩의 최대 수치를 측정한 거고 다음은 접촉 검사로 직접 센티넬과 1:1로 접촉 가이딩 검사를 한다고 했다. 데려오는 센티넬들은 결코 위험한 상태가 아니니 안심하라는 말을 덧붙였지만, 고작 그 정도의 말로 기분이 나아질 리가 없었다. 치솟는 짜증에 찌푸려지는 얼굴을 겨우겨우 펴고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오랜 시간동안 기다리지 않도록 센티넬을 미리 데려온 상태인지,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 사라졌던 여자는 정말 잠깐 나가더니 다른 사람을 데리고 나타났다. 제가 앉은 책상의 바로 맞은편에 센티넬을 앉혀두고 아까 기계에 했던 것처럼 하면 된다며 짧은 설명을 덧붙였다. 그리고는 준비됐으면 시작하시라는 말만 남기고 돌아섰다. 그 뒷모습에 시선을 떼고 앞을 바라보니, 타이밍 맞게 마주한 말간 얼굴에 슬그머니 짜증이 가라앉았다. 


"...음, 이제노씨. 손잡아도 될까요?"

"네. 괜찮으니까 편하게 잡으세요."

"음... 네, 그럼 실례할게요."


눈을 굴려 '이제노' 라고 떡 하니 붙어있는 명찰로 확인한 이름을 부르자, 또랑또랑한 눈이 잠시간 커졌다가 슬그머니 휘어지며 웃음기를 머금었다. 나이는 잘 모르겠지만, 훤칠하니 잘생긴 얼굴이 꽤나 인기 있을 법한 얼굴이다. 차마 꽉 잡지는 못하고 슬그머니 내민 손끝만 잡자 반대로 저쪽에서 손을 꽉 잡아왔다. 움찔, 감은 눈이 떨릴 만큼 놀랐음에도 안 그런 척 태연히 눈을 감고 집중했다. 아까처럼, 기운을 쏟아 붓는다는 느낌으로.....



"......!"


급하게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꽉 잡은 손에서 쿵쿵, 맥박이 날뛰는 게 느껴졌다. 기계가 아니라서 대중이 없으니 언제 멈춰야 할지 타이밍을 못 잡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다 싶을 때 쯤 눈을 떴다. 바로 코앞에 있는 얼굴이 아까와는 달리 정말로 놀람을 담고 제게 닿아있었다. 뭐지, 무언가 잘못됐나 싶어 사람을 불렀다. 급하게 달려온 여자는 무언가 이상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저에겐 이상이 없었다. 고개를 젓고 아직 손을 잡고 있는 채인 제노라는 센티넬 쪽을 가르켰다.


"제노 씨? 뭔가 이상이 있으신가요?"

"아, 아니에요..."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정말로."


이제노라는 센티넬은 예의 그 선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젓곤 아쉬운 듯 손을 놨다. 그리고는 영문 모를 얼굴로 나와 이제노를 번갈아보는 검사원에게 차분히 말했다.


"A급 센티넬 이제노, 가이딩 완료되었습니다.“


검사원이 제노의 손목에 찬 가이딩 수치를 알려주는 장치에 손을 대자 선명히 보였다. 100%.
그 수치는 자동적으로 검사실로 전달되어, 내부에서 두 번째 소란이 일었다. 아까와는 다르게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대개 정기적인 검사에서 검사실로 오는 가이드들은 특출 나도 B급을 넘지 못했고 몇 년에 한 번씩 가뭄에 콩 나듯이 A급 가이드들이 한 명씩 나타나곤 했다. 그래서 접촉 가이딩 검사를 위해 붙여주는 센티넬들은 최고 등급이 A등급이었으며, 보통은 C급의 센티넬이었다. 

물론 여주에게는 기계가 심상치 않은 반응을 보였기에 당장에 붙일 수 있는 등급 중 최고 등급의 센티넬을 붙여주었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것도 아니고 단순히 손을 잡는 접촉에 가이딩 수치가 채워졌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쩌면 여주는 센터에서 그동안 그토록 찾아 헤매고 바라마지 않았던 S급 이상의 가이드일지도 모르는 존재였다. 



이제까지 한국 본부에 존재하는 A급 이상의 가이드는 역사상 가장 많아도 스물이 채 되지 않고, S급 가이드는 한 손에 꼽힐 정도로 적으며, SS급 가이드는 역사상 단 두 명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센티넬 역시도 SS급이라는 건 희귀한 존재이긴 매한가지였지만 가이드에 비하면 그들도 많은 수치였다. 지금 센터에 소속되어 있는 고위급 센티넬들도 S급 가이드도 기적인데 그 이상이 나타나리라곤 생각지도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S급 이상의 가이드가 나타난 거라면? 

원래 나기를 각성하기까지의 과정이 요란한 센티넬과는 각성 과정이 별도로 필요 없으며 본인조차 그것이 각성인 지도 모르는 과정을 거치고, 죽을 때까지 제가 일반인인줄 알고 살아가는 가이드들이 태반인 현실이다. 지금에 와서야 좀 나아지긴 했어도 아직까지도 드문 가이드들 중에서도 희소가치로 정점을 찍는 존재라면 억만금을 달라 해도 1초의 망설임 없이 스카웃해야 할 판이다. 다른 의미로 비상이 걸린 상황에 유리 밖 검사실에 앉아있던 검사원들 중 누군가 재빨리 전화기를 들면서 외쳤다. 


"아무나 S급이든 SS급이든 센티넬 지원 요청해!!!!! 최대한 빨리!!!!"


우당탕 의자를 박차고 검사원 한명이 뛰어나갔다. 소란스러운 내부와는 달리 유리 밖은 고요하기만 했다. 태풍의 눈처럼.






*         *          *






대체 인생이 내게 얼마나 빅엿을 주려는 건지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찾아달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간 이제노라는 센티넬의 말에 따르면 적어도 저는 A급 이상의 가이드였다.

이쯤되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원하지 않았음에도, 오늘을 기점으로 스스로의 인생에 광대한 가시밭길이 펼쳐질 거라는 사실이다. 어차피 이제 일반인으로서의 인생이 글러먹은 거라면 제 등급이 어떤지는 정확히 알아야 몸을 좀 사릴 수 있지 않을까. 반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의자에 몸을 기댔다. 

어쨌건 오늘부로 내 연구실아 안녕, 자료들도 안녕.. 내 연구자료는 누구한테 넘어가는 걸까. 그래도 1년간 같이 일한 정도 있는데 부서 사람들과 회식이라던지 작별인사를 할 순 없나. 센터 내부에서도 통제받는 생활을 하는 가이드이니 쉽사리 허락할 것 같진 않지만, 방법이 없으려나. 

턱을 괴고 무료하게 천장만 바라보고 기다리고 있는 사이에 맞은 편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들려 황급히 고개를 내렸다. 인기척도 못 느꼈는데, 의자 소리가 아니었으면 앉아있어도 몰랐을 지도 모른다. 아까도 그렇고 이때만 기다린 것처럼 딱 마주친 시선이 검고 짙었다. 어딘가 앳되보이는 구석이 있는 흰 얼굴에 비하면 눈은 지나치게 진중하다. 속내를 들킬 것만 같은 그 눈을 피해 어깨 즈음으로 시선을 내리면, 날카롭게 빛나는 은색 명찰 위에 새겨진 이름이 보였다. 



'Mark Lee'



"마크 리?“


생각 없이 읽어버린 이름에 눈앞의 남자가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이민형."

"이민형?"

"제 한국 이름. 이민형이에요, 누나."


누나가 부를 땐, 그 쪽이 더 좋아요. 자신을 마크이자 이민형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스스럼없이 나를 누나라고 불렀다. 아주 친근감 있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아까의 제노와는 다르게 이쪽은 시작하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테이블 위에 놓인 내 손을 잡아끌며 손가락을 얽어왔다. 낯선 접촉에 움츠러드는 손가락을 따라 올라온 시선이 꼭 그의 체온처럼 뜨겁게 느껴졌다.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였을까, 눈을 감고 집중했다. 아까와 같이. 하지만 아까까지는 그냥 집중하라니까 했고 평소와 뭐가 다른 건지 전혀 못 느꼈는데 굳이 설명하자면 이쪽에는 스스로가 기운을 쏟아 붓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메마른 땅을 적시듯이, 내 안의 무언가가 서서히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찰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조금씩. 그에 맞추듯이 조금씩 거세게 뛰기 시작하는 맥박이 고스란히 내게로 전달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본능적으로 더 이상 채우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걸 느끼고 눈을 떴을 때 그 애가 내게 속삭였다.


‘이제야 만났다’고.















- - - 

이전에 업뎃했던 글인데 그간 고쳐야지 맘만 먹구 있다가...
설정해둔 USB 잃어버리고 의욕상실 상태였는데 1년만에 찾아서 수정했습니다 ㅎ..ㅎ...ㅎㅎ...
예전에 썼던 거와는 내용이 조금 바뀔 것 같아요!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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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진짜ㅜㅜㅡㅜ제취향ㅜㅜㅜ다음편도 기대하고있을께요ㅜㅜㅜㅜ사랑합니다💚
5년 전
독자2
다음편 기다릴게요!! 글 써주셔서 가사합니다!
5년 전
독자3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넘 재밌어여ㅠㅠㅠ 무료한 세상에 단비같아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다음 편도 기다릴게요 자까님!!!!
5년 전
비회원59.54
ㅠㅜㅜㅜㅜㅜㅜㅜㅜ 너무 재밌서요 우우ㅜㅜ우ㅜㅜ 맑크 리 너무 좋아요 다음편도 기다리고 있을게용
5년 전
비회원59.54
ㅠㅜㅜㅜㅜㅜㅜㅜㅜ 너무 재밌서요 우우ㅜㅜ우ㅜㅜ 맑크 리 너무 좋아요 다음편도 기다리고 있을게용
5년 전
비회원201.27
작가님 제가 후기를 적으려고 했는데 잘못 눌렀는지 글이 두번이나 보내져서ㅠ....다음 편 기다리고 있을게요 이런 글 너무 좋아요ㅠㅠㅠ
5년 전
비회원15.99
와 안봤으면 후회할뻐/ㄴ,,,,
5년 전
독자4
왁 ... 작가님 글 분위기 너무 좋아요 신알신 누르고 기다릴게용
4년 전
독자5
악악 작가님 네임버스 읽고 왔는데 여기도 맛집이었잖아요?? 아니 그냥 작가님 천재였네요ㅠㅠㅠ 와 다 젛아요ㅠㅠㅠ 진짜 뭐야ㅠㅠㅠ 너무 좋잖아ㅠㅠㅠ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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