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 미륵사지 석탑 (국보11호)
"마를 캐던 서동이 이른바 '서동요'를 퍼뜨려
신라 진평왕의 셋째딸인 선화공주와 결혼했고,
훗날 무왕이 돼서 (...) 미륵사를 지었다."
라는 설화가 전해져온 미륵사지 석탑.
일제 때 당시 최신 기술이었던 시멘트 공법으로 보수했지만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다는 지적이 잇다랐음.
그래서 시멘트 제거, 해체 후 재복원이 결정됨.
공사 시작
그런데,,,
거의 해체하고 밑둥만 남은 상황,
기둥 돌 옮기는 중. 그런데...
백제 유물이 나옴 ㄷㄷㄷㄷ
그거슨 바로,
사리를 담은 항아리와 그 품질보증서(?)가 출토됨 ㄷㄷㄷ
역사학계는 당연히 흥분.
발굴 전문가 30여명이 모두 익산으로 집합함.
수십 년 전, 무령왕릉을 조진 적이 있어서 지금은 졸라 잘 함.
약간의 녹을 제거한 '금동사리외호'.
이름에 '외호'가 들어간 이유는,
알고보니 패키지 항아리가 또 있었음.
그래서 꺼내봄
높이 약 4.6cm의 짱귀탱 항아리가 나옴.
얘 이름은 '금제사리내호'.
안에 있어서 '내호'인데 얘는 그냥 금으로 만들어짐.
그래서 외호 앞에는 '금동'이 붙었는데,
내호 앞에는 '금제'가 붙음ㄷㄷㄷㄷ
근데 여기까진 흥미로운데,,,
문제가 발생함....
아까 말한 품질보증서(?)
백제왕후가 '사택적덕녀'로 나옴.
예...?
삼국유사에서는 백제왕후를 신라에서 온 '선화공주'라고 했는데..
사택적덕이 뭐여
(사택씨, 혹은 사씨 가문은 백제 후기의 유력한 귀족 가문)
그래서 이후 학계에선,
- 서동설화 거짓 설
- 사택적덕녀 후비 설
- 무령왕 미륵사 건립 설
등 다양한 해석이 등장함.
(제가 현 정설이 뭔지 모름. 아마 댓글창에 전문가님이 보충/수정 해주실거라 믿음.)
p.s. 아래는 삼국유사 TMI(?)
삼국유사 쓸 때 참고한 옛날 역사책에
'무강왕'이 등장했는데, 일연스님 등 엮은이 그룹에서
'잉? 무강왕이란 건 없어. 무왕이 맞아.'
라고 해서 무왕 기록됨.
그래서 미륵사가 무왕대가 아닌 무령왕대에 창건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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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작은 가슴이 평생을 발목 잡을 거란 사실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