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잠을 설쳤더니 몰골이 말이 아니다. 원래 화장은 진하게 하지 않는 편이지만 기초화장조차도 잘 듣지 않는다. 사실 회의 때도 졸아서 팀장님께 꾸중을 들었다. 사귀면 혼도 안내고 엄청 다정하게 대해줄줄 알았는데. 예전이랑 똑같다. 이게 무슨 연인인지. 그냥 난 팀원일 뿐인 것같았다. 남자친구한테 혼나는 기분이란, 정말 창피하다. 섭섭하기도 하고... 해서 팀장님에게 괜히 툴툴댔다. 눈이 마주쳐도 휙 돌려버리고 「붕어」라고 온 문자도 무시했다.
그렇게 나 삐졌어요. 라는 티를 팍팍 내고는 의자에 편히 몸을 기댄다. 날씨가 많이 풀려 따뜻해 잠이 잘 오는 날씨.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보다 '똑' 하는 소리에 깨보니 옆에서 팀장님이 의자에 앉아 책상에 팔을 괴고 날 바라보고 있다.
"팀장님?" "잘 잤어?" "아... 다른 팀원들은요?"
내가 자는 모습을 지켜봤을 팀장님 생각에 민망함이 쏟구쳐 말을 돌린다. 나 자는 모습 추할 텐데. 코나 안 골았을까 걱정이다. 이런 내 걱정을 아는건지 모르는건지 팀장님은 '먼저 점심 먹으러 가라고 했어'란다.
"아, 그렇구나.." "밥 먹으러 가자." "네? 우리 둘만요?" "애인이랑 단 둘이 밥 먹겠다는데, 안돼?" "아뇨... 그건 아닌데" "가자."
팀장님이 내 손을 잡아 일으켰다. 난 팀장님과 손을 마주잡은 채로 회사를 빠져나왔다. 아니 무슨 회사에 우리 사겨요~ 광고하고 다닐 일 있나. 안그래도 아니꼬운 시선들 때문에 피곤한데 사귄다는 소문까지 나게되면 더 힘들거다. 불안함에 주변을 둘러보며 슬쩍 손을 뺐다. 그러자 팀장님이 나를 향해 돌아본다.
"왜" "누가 보면 어쩌려구요.." "보라고 하지 뭐."
아예 빼지 못하게 깍지를 껴버리는 팀장님이다. 막무가내에다가 고집불통인데 왜이리 웃음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회사 근처에 있는 파스타집으로 갔다. 팀장님과 나는 각각 해물파스타와 까르보나라를 시키고 음식이 나오길 기다린다. 팀장님과 단둘이 음식점에 온적이 처음이네. 이렇게 단둘이 소소한 이야기도 나누며 음식을 기다리고 음식이 나오면 같이 먹는다는게 새삼 내 남자친구인게 실감이 난다. 흠, 너무 좋다. 섭섭했던 감정은 어느새 풀어지고 그저 좋다. 매순간, 순간이.
"많이 먹어. 붕어" "네 팀장님도요."
원래 내 떡보다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법. 나도 모르게 팀장님 먹는걸 입맛을 다시며 바라보고 있었나 보다. 별안간 팀장님이 피식 웃으며 포크로 자신의 면의 반을 돌돌 말아 내 접시 한켠에 놔준다.
"어! 아니에요. 팀장님 드세요." "됐어. 침 질질 흘리면서 뭘, 아까처럼 또 삐질라."
이미 다 풀어졌는데 얘기를 꺼내는 팀장님 때문에 스물스물 다시 섭섭한 감정이 밀려온다. 그런 팀장님을 조금 살짝 째려보았다.
"일종의 뇌물이랄까." "네?" "화풀어달라고, 그리고 나 예쁘게 봐 달라고"
이렇게 예쁜 말만 골라서 하는데 미워할래야 미워할수가 없다. 그리고 이런 뇌물이 뭐가 필요 있을까, 이미 나에게는 과분할 정도로 소중한 사람인걸.
팀장님과 식사를 마치고 회사로 들어와 근무에 복귀했다. 예쁘게 봐달라고한 팀장님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돈다. 아, 귀여워.
툭-
"아, 죄송합니다." "뭐야, 똑바로 보고 다녀." "...." "아 재수없어- 걸레 같은게"
다른 부서 여사원과 복도에서 부딪쳤다. 팀장님의 말에 붕 뜬 마음으로 정신 놓고 걸어서 그런거라고,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사원이 마지막에 흘리고 간 말은 나를 겨냥한 말이었다. 나의 실수가 아닌 고의로 부딪친거구나. 나는 바보같이 그녀의 말에 그 자리에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