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혼하는 거예요
written by.허니찬
문자를 보내놓고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만을 계속 반복했다. 바쁜건지 아니면 보고도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건지. 당최 그에게서 답장은 올 생각도 없어보였다. 시도 때도 없이 전원키를 눌러 확인해보지만 화면은 똑같았다. 사실 애초에 답장은 바라지도 않았었는데.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하다는 얘기를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그렇다고 정말 연락 한 통도 없구나. 도경수. 대체 나랑 뭐하자는 거야. 그를 향한 서러운 마음 반, 보고 싶은 마음 반. 눈물이 핑 돌았다.
[아프지 말고 밥 잘 챙겨 먹어. ㅡ2013/05/08 AM10:32]
[그동안 미안했어. 경수야. ㅡ2013/05/08 AM10:33]
보고 싶어. 키패드를 꾹꾹 누르던 손을 멈추고 지움 버튼을 꾸욱 눌렀다. 이런 거 보내봤자 좋은 소리 듣지도 못할 거. 미련 그만 떨자, OOO. 정신 차려. 애써 내 마음을 다독이고 추스리다 이내 다시 무너지기를 반복했다. 어느 쪽에서도 헤어짐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내게 권태기를 느낀 경수에게 이런 내 마음이 전해질 리가 없었다. 4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간을 나는 오롯이 너와 함께 보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우리 연애의 마지막 종지부를 찍고야 말았다.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들어갔다. 물을 따라마시던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앞치마였다. 탁, 소리가 나도록 컵을 식탁 위에 내려놓은 나는 미친 사람마냥 온 집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가 입었던 옷이며 신발, 칫솔, 읽던 책까지. 주인을 잃고 나동그라진 저 물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했다. 물론 제일 가여운 것은 차가운 곳에 버려진 내 마음이었다. 욕실, 침실, 거실. 집안 곳곳에 고스란히 묻어있는 너의 흔적이 자꾸만 나를 아프게 짓누르기 시작했다. 어딜 가도 네가 보여, 경수야. 나는 이제 정말 어쩌면 좋아.
*
애초부터 경수와의 연애가 순탄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이정도일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물론 처음부터 내가 먼저 그를 좋아했기에 그가 나를 좋아해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고 그래서 지금껏 4년을 끌어온 연애가 나조차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차라리 너와의 연애가 길지만 않았더라도. 지금 내가 이렇게 아프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거실 바닥 한가운데 주저앉은 나는 어린 아이마냥 눈물을 펑펑 쏟아내고 있었다.
마주보고 밥을 먹고, 웃고, 떠들고. 평범했기에 둘이 함께라면 즐거웠는데. 우린 참 행복했는데. 어디서부터 꼬여버린걸까. 경수야, 우린. 어디서부터 잘못됐던걸까. 바닥에 널부러진 그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주워 담았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거실 수납장 서랍을 열었다. 가지런히 정리되어있는 옷가지들. 여자 혼자 사는 집인데 혹시나 강도라도 들면 어떡하게. 자주 와서 잘 거니까 여기 그냥 넣어둬. 씩 웃는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OO아.'
'응?'
'좋아해.'
'…나도. 나도 좋아해. 경수야.'
내 문자를 마지막으로 경수와는 더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내가 보낸 문자에 답장은 오지 않았고, 내가 다시 연락을 하지도 않았으니까.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우리의 연애는 시작할 때도, 그리고 끝날 때도 소리 소문없이 조용히 치뤄졌다. 가수라는 직업의 특성상, 연락이 쉽게 닿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연애를 시작할 때부터 어느 정도는 감수하고 있던 부분이었고 무엇보다 나는 그의 팬이었고, 그의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보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
한동안 괜찮던 불면증이 그가 떠난 뒤 심해졌다. 피곤함에 찌든 채 밤새워 책을 보고, 음악을 듣고, 가만히 침대에 누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겨우 잠자리에 들거나, 학교에 가거나 하는 것이 내 일상의 전부였다. 그의 물건들은 큰 상자 안에 가지런히 넣어 보관했다. 그가 언제 돌아올지 모를 일이니까. 참 바보같은 생각이지만.
[사랑해. ㅡ2012/12/25 AM00:24]
[옆에 못 있어줘서 미안해. 보고 싶다. ㅡ2012/12/25 AM00:25]
[서방님 생각은 1순위. 딴 놈은 금지. ㅡ2012/07/11 PM14:01]
[미안해. 내가 걸게. 지금 연습실이야. ㅡ2012/06/15 AM11:11]
핸드폰 메세지 보관함에 고스란히 남겨진 그의 문자. 참 좋았었는데. 씁쓸한 마음에 책 위로 눈물이 툭, 떨어졌다. 미련스럽게도 나는 그에게 너무 많은 것들을 의지했고, 내 마음을 너무 많이 허락했었다. 읽던 책을 덮어두고 침대 위로 자리를 옮긴다. 괜찮을 거야. 괜찮아.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자신에게 거는 주문이었다.
*
얼마를 잤을까. 며칠 밤을 지샌 게 피곤했는지 눕자마자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손에 쥔 핸드폰이 진동을 울려대는 있는 덕분에 단잠에서 깼을 때. 액정화면에 비추는 얼굴은 경수였다. 다른 말 하나 없이 '우리 자기'로 저장 되어 있는 그의 번호가 뜨자마자 미친듯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새벽 세 시, 하루종일 연습에 지쳐 피곤에 찌들어 있던 네가 숙소로 돌아왔을 시간이었다.
"…여보세요."
"……."
"늦었는데 왜 안 잤어."
"……."
"또 잠 못 잤구나."
"……."
귀를 파고드는 다정한 목소리에 숨이 턱 막혀왔다. 계속해서 말을 걸어오는 그였지만 그 어떤 질문에도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눈물이 흐르는 탓이었다. 자꾸만 다정하게 굴면 나 또 착각해. 그래서 너 붙잡을지도 몰라, 경수야. 수화기를 붙들고 소리 없는 오열을 쏟아냈다. 그토록 듣고 싶던 너의 목소리.
"…미안해."
"……."
"바빴어. 그래도 문자 하나 보낼 시간 없었냐고 그러면 할 말 없겠지."
"……."
"내가 관심이 있었으면, 조금만 덜 소홀했더라면."
"…경수야."
보고 싶어. 이기적인 거 아는데, 못 끝내겠어. 네 말대로 그렇게는 못 하겠어.
*
"미안하고 또 고마워요."
"……."
"그대 내 옆에서 이렇게 손 잡아줘서. 날 위로 해줘서."
"……."
"그대는 나의 lovely girl, 그대는 나의 pretty girl."
"……."
"그대는 영원한 나만의 천사, 나를 받아줄래요."
감미로운 목소리에 눈을 감았다. 나지막히 귀를 적시는 그의 세레나데에 졸음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떨리는 듯, 긴장했을 그의 표정이 눈에 선해 말없이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내 눈을 봐요. 대답할 수 있나요, 그대."
"……."
"나 청혼하는 거예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화기 너머의 그에게 말을 건냈다. 사랑해, 경수야. 라고.
* 권태기를 느낀 경수가 다시 돌아오는 내용이에요. 순전히 포맨의 청혼하는 거예요를 듣고 썼기 때문에 브금, 제목 전부 다 청혼하는 거예요. 입니당...♡ 재밌게 읽어주셨음 좋겠어요. 그리고 내가 썼지만 경수야... 네 청혼은 받아주는 걸로 하겠어*-_-* 당연한 거 아니겠냐며ㅋㅋㅋㅋㅋㅋㅋ..
* ♡아이스크림님, 삐뽀삐뽀님, 코딱지님, 린현님, 자녈워더님, 헤헹님, 거북이님, 멍멍개님, 지안님, 쿵니님♡사랑해요. 워아아니S2! 그치만 안 보이시는 몇몇 분들은 제가 알아서 목록에서 지울 듯 싶어요. 그러니까 혹시나 댓글 달아주실 땐 누구누구라고 꼭 밝혀주세요ㅠ.ㅠ 암호닉은 언제든 신청 받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