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ano Concerto
No.2 2nd mov
(BGM- July-기억하니?)
W. 두번째손가락
14.
진환은 '쌈지길' 이라 써 있는 담 앞에 서서 어색하게 브이를 그리곤 웃어보였다.
찰칵, 찰칵. 억지로 진환을 세워둔 지원이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제 핸드폰을 들고 다양한 각도로 셔터를 눌렀다.
진환은 아까부터 코를 자극하는 빵냄새에 고개를 돌렸지만, 그때마다 지원이 괴성을 지르는 바람에 뻣뻣해진 고개를 지원을 향해 고정시켰다.
왜 기념사진을 찍어야하지? 단순한 놀림감이 되어있다는 사실은 진환만이 몰랐다.
충분히 찍었는지 만족한 표정을 지은 지원이 한빈에게 카메라를 들이미는동안 진환은 빵가게 앞으로 뿌다닥 달려갔다.
'똥빵'. 이번엔 똥 모양의 빵이 모락모락 김을 내며 향긋한 냄새를 풍겼다.
뒤에서 지켜보던 준회가 군말없이 다가와 빵을 진환의 손에 쥐어주었다. 쪼끄만게 의외로 군것질을 좋아한다. 밥은 별로 안먹으면서.
진환은 몇 번 눈치를 보다 관두고는 이젠 준회가 주는 것을 넙죽넙죽 받아 먹었다.
" 아, 여기야. 여기. "
지원이 들이미는 셀카에 한결같이 무표정으로 사진을 찍은 한빈이 건물 정 가운데에 뚫린 길로 들어섰다.
위를 올려다보니 사각형의 건물이 둘러싸여 있었다. 층층이 이어진 건물의 구조에 진환이 입을 헤- 벌렸다. 특이한 구조다.
" 이 정 가운데에 피아노 설치하고, 형이 혼자 반주 시작할거에요. "
" 나? 혼자? "
" 네. 앞으로 그냥 아무데서나 연주 연습해요. 멜로디언 들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공연하던가. 암튼 소음에 익숙해져야 하니까요. "
멜.. 멜로디언? 초등학교 음악시간에나 뿌뿌 불던 악기를 떠올리곤 진환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게 도움이 될까.
" 이 정도면 피아노 서고도 삼, 사십명은 되지 않을까? "
" 삼십. 충분해. "
" 오케이. "
지원의 대답에 한빈이 주위를 슥 둘러보고 손을 휘저었다. 느낌 좋다. 신선해. 벌써부터 음들이 손 끝에 걸리는 느낌이다.
승패도 승패지만, 즐기고 싶다. 한빈은 미소 지었다.
" 자, 그럼 돌아갈까? "
한빈이 빙그르 돌아 세 사람에게 말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이곤 길가로 향했다. 진환은 들고있던 똥빵을 재빨리 한 입에 털어 넣고 휴지통으로 달려갔다.
빨리와~ 하는 지원의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사용한 티가 별로 나지 않는 휴대폰은 여전히 깨끗했다.
한빈만이 저장된 상태 그대로인 액정에 불규칙적인 열한개의 숫자가 떠올랐다. 지원은 액정에 뜬 낯선번호에 표정을 굳히고 휴대폰을 도로 집어 넣었다.
" 안받아? "
" 난 빈이 아니면 안받아. "
" ... 어련하시겠어. "
진환이 휴지통에서 돌아오자 지원이 머리를 쓰다듬곤 준회를 향해 웃어보였다. 내 신경은 끄시고, 둘이 번호교환은 했냐?
" .. 아니. "
" 뭐? 바보들아, 빨리 지금해. "
지원의 말에 진환이 허겁지겁 휴대폰을 찾았다. 준회는 제 앞에 내밀어진 휴대폰을 보았다. 모서리가 둥근 흰색 휴대폰이 꼭 제 주인을 닮았다 생각했다.
받아든 휴대폰에는 그 흔한 패턴 하나 없었다. 배경도 기본. 저와 같았다.
번호를 하나씩 누르고 통화버튼을 누르자 몸에서 진동이 울렸다. 진환의 번호가 준회의 휴대폰에 나타났다.
" ... 저장해. "
" 어어.. "
번호교환마저 어색한 두 사람을 보며 지원은 멀었구만, 하고 웃었다.
저만치 걸어간 한빈이 벌써 택시를 잡고 있자 세 사람은 걸음을 바삐하며 인사동길을 나왔다. 준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 김지원. "
" 응? "
" 그거 혹시.. "
" ...... "
" 혹시 그 분이야? "
" ...... "
" 아직 안 찾아뵜어? "
" 뭐하러. "
" 그래도 한 번 가야 되지 않을까? 이사장ㄴ.. "
" Fuck. "
지원이 웃으며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그에 준회가 어이없다는듯이 피식 웃었다. 그 성격 어디가겠어.
택시에 올라탄 지원이 아, 맞다. 하곤 휴대폰을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한빈이 경악하자 그의 어깨에 팔을 두른 지원이 그를 토닥였다. 괜찮아.
창 밖에 비춰진 휴대폰은 차에 치이며 도로를 구르고 있었다. 그걸 또 주우려는 진환의 뒷덜미를 준회가 겨우 잡아 택시에 밀어넣었다. 한빈이 지원을 탈탈 흔들었다.
" 뭐해요? 미쳤어요? "
" 응. 너한테 미쳤어. "
" ㅇ.. 아니 뭔.. 휴대폰을 왜.. "
" 니 번호 말고 다른건 필요없어. 기분나빠. "
" ...... "
" 음~ 이 번호는 뒷자리가 1022라서 좋았는데.. 그런게 또 있을까? 빈아? "
... 미친사람. 한빈은 맑게 웃는 지원을 보고 맘대로 해요. 하곤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 어~ 김진환! 연습은 잘 되가냐? "
" 진환이다! 진환아, 안녕~ 오케스트라 들어간거 축하해! "
" 야, 야. 김진환이다. "
" 야, 진환아. 나 기억해? A클래스였는데.. 근데 너 그때 연주 어떻게 한거야? "
캠퍼스 나무 그늘. 학생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벤치에 앉아있던 동혁과 진환은 벌써 여덟번째 낯선이의 인사를 받아야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사를 받는 쪽은 진환이었다.
진환은 급격히 늘어난 저를 향한 관심에 온 몸으로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아니, 물론 이전에도 유명이사이긴 했지만. 4분 33초라는 이름으로.
진환은 샌드위치를 먹다말고 저에게 건네지는 악수들을 하나하나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케스트라에 들어온지 겨우 나흘째. 전과는 다른 느낌의 관심들이 진환에게 쏟아졌다.
못보던 여학우들까지 추파를 던지고 가니 목이 턱 막혀 컥컥대는 진환에게 앞에 있던 동혁이 물을 건넸다. 급하게 물을 들이킨 진환이 한숨을 쉬었다.
" 이게 뭐람.. "
" 어쩔 수 없어요. 그 때 형 연주 듣고 완전 이미지가 바뀌었다니까요? 몇몇 구경 오셨던 교수님들도 형을 눈여겨 보고 있다구요. "
" 하.. "
" 좋은거 아니에요? "
" .. 좋지. 부담스러워서 그래.. "
동혁이 진환의 등짝을 찰싹찰싹 때렸다. 배부른 소리! 엄마처럼 훈계한 동혁이 진환의 가방에 진환이 먹다남은 샌드위치를 챙겨 넣었다.
" 굶으면 안되는거 알죠? 다음 교양도 잘 듣구요. "
" ... 고마워. "
" 아. 이것도 먹어요. 다 챙겨 먹어야 되요. 형은 너무 말랐어! "
사돈남말 하시네. 진환은 동혁이 가방에 집어넣는 소보루빵을 보고 사색이 되어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저 맛없는 빵.
매번 어디서 구해오는지 동혁이 챙겨주는 소보루빵의 맛은 끔찍했다. 그 맛이 혀 끝에 되살아나는듯해 고개를 젓는데 위로 기다란 그림자가 드리웠다.
또 인사하러 온 사람인가. 조금 지친 얼굴로 고개를 든 진환은 제 앞에 등장한 인물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 어.. 준회? "
" 전화는 왜 안받아? "
준회가 휴대폰을 들어보이자 아. 하고 그제서야 진환이 허둥지둥 휴대폰을 찾았다. 부재중 전화 3통. 미안해.. 진환이 웅얼거렸다.
휴대폰을 시계로만 사용하던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 부분이었다. 번호를 교환하고 나서도, 며칠동안 줄줄이 그의 전화를 넘겨버렸다.
준회는 동혁을 힐끔보고 누구? 하곤 진환을 쳐다보았다.
" 아.. 내 룸메이트! 나 연습할때 많이 도와줬어. "
" ...... "
" ㅇ, 아.. 안녕? 김동혁이야. 클라리넷과.. "
동혁이 웃으며 손을 내밀자 준회는 그 손을 빤히 내려다본후 무시하곤 뒤를 돌았다. 무안해진 동혁의 손이 허공에서 주춤거리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 교양 끝나고 바로 연습실로 와. "
" ... 어? 으응.. "
그대로 빠른 걸음으로 사라지는 준회의 뒷모습을 보며 진환이 동혁의 눈치를 살폈다.
" 미안해.. 근데.. 나쁜애는 아닌데.. "
" 아니에요. 원래 성격이 저렇단 말은 많이 들었어요. "
근데 형은 많이 챙기는 것 같네. 다행이에요. 동혁이 진환에게 웃어보였다. 기분 상할법도 한데..
준회의 행동에 제가 더 속상해진 진환이 한 마디 해주겠다는 생각으로 가방을 메고는 패기있게 동혁에게 말했다. 걱정마. 내가 혼내줄게.
" 네? "
" 적어도 널 무시한건 사과 받아야겠어. 네가 날 얼마나 도와줬는데.. 그렇게 무시하면 안되는거야. "
" 형.. "
" 오늘은 방에 좀 늦게 돌아갈거야. 먼저 자. 연습하는게 늦어져서.. 대신 사과는 꼭 하라할게! "
진환은 의기양양하게 가방을 메고 일어섰다. 씩씩하게 강의동으로 향하는 그를 보며 동혁이 뒤에서 중얼거렸다.
" 형.. 가방 문이나 닫아요.. "
진환은 떡 벌어진 가방 문이 악보를 순서대로 토해낸 것을 강의실에 도착하고나서야 깨달았다.
" 형, 정신이 있어, 없어? 악보를 몽땅 잃어버린게 말이 돼?! "
준회를 혼내줘야 하는데.. 뭔가 일이 계획과 완전히 어긋나고 있다는 것을 몸소 겪는 진환이었다. 진환은 제게 큰 소리로 호통치는 한빈의 역정에 몸을 움찔거렸다.
연습하라고 받아놓은 악보는 저마다 교정을 뒹굴고 있을것이다. 악보야 다시 뽑으면 되지만, 정신을 차리지 않고 지내는게 문제라는 것이 한빈의 지적이었다.
오케스트라에 입단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헤이해진 모습은 리더로써 넘어갈 수 없었다. 한빈이 단원들을 지적할때는 그 누구도 그의 말에 끼어들 수 없었다.
지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팀파니 앞에 앉아 한빈의 모습을 지켜보는 지원은 진환이 본 그의 모습 중 가장 얌전했다.
그보다 준회를 혼내야 하는데.. 누군가를 혼낼 입장이 아닌 진환은 애꿎은 손가락만 만지작거렸다.
" 정신차려, 알았어요? "
" 응.. "
시무룩한 얼굴로 돌아서는 진환을 보고 준회가 픽 웃었다. 잘하는 짓이다. 그 말에 진환이 머리 끝까지 무언가 차오른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다.
진환이 뭐라 하려는 순간 누군가 제 2연습실 문을 두드렸다. 낯선 남자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가 들어오자 연습실 공기가 알게모르게 가라 앉았다.
강승윤이다.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에 진환이 남자를 쳐다보았다. 멀끔하게 생긴 남자는 한빈만큼 말랐지만 왜소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검은 머리에 하얀 피부, 꽤 두툼한 입술이 뭔가 지휘와는 거리가 멀게 생겼다고 진환은 생각했다.
승윤은 진환을 한 번 보고는 생긋 웃더니 한빈에게 다가갔다. 지원이 엉덩이를 들썩이는게 보였지만 몸을 일으키진 않았다.
" 오랜만이다, 한빈아. "
" .. 안녕하세요, 선배님. "
한빈의 표정은 담담했다. 갑작스러운 라이벌의 등장에 놀란 것은 오히려 단원들이었다. 여유 넘치는 그들의 표정은 아이러니하게도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했다.
" 이사장님 호출이야. 아무래도, 기대주 두 팀에게 전해줄 말이 있으신가보지? "
" ... 알았어요. "
이사장님. 이라는 말에 매끄럽던 한빈의 얼굴에 구김살이 더해졌다. 진환은 영문도 모른 채 연습실을 빠져나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저 사람이.. 강승윤이구나. 단원들이 웅성거렸다. 또 개인 연습인가?
" 야. "
" ? "
" 뭘 멍하니 서 있어. 악보 안 구해와? "
저를 불러 돌아세운 준회의 말에 진환은 아차, 하더니 비장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난데없이 인상을 구기는 진환에 준회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왜 저래.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첼로를 집어들자 이번엔 팔짱까지 끼고 한껏 무서운 표정을 짓는 진환이었다.
첼로를 잡던 준회의 손이 멈추고 턱을 괸 채 진환의 행동을 쳐다보았다.
" 그래, 뭐. 하고 싶은 말이 뭐야. "
" 어? "
" 뭐 말하려는거 아니야? "
준회의 말에 순간 당황한 진환은 이내 페이스를 찾고 단호하게 말했다.
" 이.. 제 반말 하지마! "
" ...... "
" 내가 형이잖아! 형이라 불러! 조.. 존댓말도 써! "
이게 뭘 잘못 먹었나. 뚱하니 진환을 쳐다보던 준회가 입을 열었다.
" 또. "
" 어..? 또? 또.. 동혁이한테 사과해!! .. 줘. 무시한거.. "
" 동혁이가 누구야. "
" 아까봤던 내 룸메이트.. "
아아. 준회는 흐릿하게 그려지는 동혁의 얼굴을 굳이 떠올리려 애쓰지 않았다. 꼴에 지 친구 무시한게 기분이 나빴나.
화내는 입장에서조차 쩔쩔매는 진환은 평소보다 더 작아보였다. 왜 저렇게 작지.
" 사과하면, 뭐해줄건데? "
" 응? "
" 뭐해줄건데요? "
" ...... "
" 이제 내 전화는 잘 받아줄건가. "
준회의 고개가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왜 이렇게 이 사람은 작은거지.
" 형. "
이렇게나 큰 존재로 다가오는데. 어떻게 작을 수 있지. 달싹이는 저 작은 입술이. 크나큰 무언가로 바뀌어 다가온다.
" 되게 신기하게 생겼어. 알아요? "
" 결국 졌네요. "
피아노 연습실에 멍하니 앉은 윤형의 뒤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내 스토커냐? 윤형의 말에 찬우가 가볍게 웃으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 여기 있을 것 같았어요. "
" ... 강승윤이 나 찾아오랬냐? "
" 잘 아네. 그러길래 진작 우리쪽에 왔음 좋았잖아. "
" ...... "
" 어라, 화났어요? "
찬우가 해맑게 물었다. 목소리에 악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점이 더 얄밉게 들려왔다. 윤형이 악보뭉치를 쑤셔 넣고 가방을 굳게 잠구고는 챙겨 문으로 향했다.
찬우는 아무 말 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어차피 강승윤에게 갈 것을. 손목을 휘어잡고 그 앞까지 끌고 갈 필요는 없겠지. 송윤형이 살 길은 이제 강승윤 뿐이니까.
음.. 그럼 나는 구세주정도되려나. 찬우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윤형을 천천히 따라갔다. 피아노 연습실은 꽤 넓구나. 플룻과도 이렇게 해주면 좋을텐데.
별 생각없이 걷던 찬우는 피아노 연습실8 문 앞을 지나다 발걸음을 멈추었다. 응..?
" 왜 클라리넷이 여깄지? "
연습실 창문으로 보이는 인영은 피아노가 아닌 클라리넷을 연주하고 있었다. 처음보는 얼굴. 관악기면 같은 건물에서 몇 번 마주쳤을법도한데 전혀 기억에 없다.
클래스가 낮아서 연습실에서 쫓거났나. 찬우는 혀를 차고 벌써 저만치 걸어간 윤형을 뒤따랐다.
피아노 연습실8의 희미한 클라리넷 소리가 멀어져 갔다.
두번째손가락/암호닉 |
독자분들 모두 감기는 안걸리셨나요? 전 요즘 방에만 콕 박혀있어서 밖에 날씨가 어떤지 잘 모르겠네요;_; 겨울이라고 저처럼 방에만 있지 마시고 운동 많이많이 하세염! 건강이 최곱니다! 오늘은 어째 내용이 싱숭생숭하군여... 며칠에 걸쳐서 썼어요.. 집중이 깨 안되더라구요.. 역시 글은 잘 써질때 몰아서 써야하나봐요ㅠㅠ흡..
[암호닉] : 점점 늘어가는 암호닉을 보면 뿌듯합니다ㅠ3ㅠ 제 사랑을 받으세요 모두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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