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야동]메시아(Messiah) w.봉봉&천월
- 15 (BGM : 넬 - 마음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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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시간이 지나갔어. 뜨고 진 해가 몇개였는지 모르겠다. 날짜를 셀 의미가 없는 하루들이 스치듯이 지나가고 있어. 내가 아는건 지금이 5월이라는 것, 그뿐이야. 열여섯살까지의 나에겐 5월이 참 행복한 달이었는데, 이젠 그냥 평범한 날들일 뿐이구나.
문득 지난 1월이 생각나. 널 처음으로 만났었던 날. 추운 겨울이었지만 하나도 싸늘하지 않았던 나날이었어. 그래서일까, 그 이전으로 돌아간듯한 지금 이 순간순간들이 너무나 괴로워. 너도...혹시 너도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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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너한테 사과할 일이 너무 많아. 있잖아, 일주일쯤 전이던가. 나 처음으로 빵을 훔쳐봤어. 너랑 헤어지고 나서 먹은게 가방에 있던 도시락이랑 물뿐이었거든. 내가 널 만나기 전엔 어떻게 음식을 구했는지 기억나지도 않더라. 그래서 그냥 굶었어, 죽기 직전까지.
이대로 죽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었어. 솔직히 말해서 내가 살 이유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잖아. 3년 동안 어떻게 목숨을 이어온걸까, 나는. 가족들은 한 줌의 재가 되어 아스라졌고, 모든 사람들이 나같은건 세상에 필요없는 사회악이라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난 이유없이 질기게 목숨을 이어왔었어. 그래도 널 만나고부턴 내가 사는 이유가 생겼었는데. 바로 너 말이야, 너. 그런데 그 이유가 내 인생에서 통째로 사라졌으니 난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지. 그랬던 내가 어떻게 다시 일어서게 되었는지 아니? 또다른 삶의 이유가 생겼거든. 힘없는 다리로 힘없는 몸을 이끌고 기계적으로 걷고 있었을 때였어. 기력도 없는데 왜 걸었냐고? 난 죽으러 가고 있었어. 배고픔은 쉽게 죽을 수도 없는 너무 끔찍한 고통이니까 누군가 날 죽여줄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감겨오는 눈을 애써 떠가며 다리를 옮기고 있는데, 나, 널 봤어. 넌 싸우다 왔나봐. 널 세번째로 만났던 때처럼 어깨에 피를 흘리고 있더라. 다쳤던 자리 또 다쳤는데, 많이 아팠겠지. 네가 동료랑 나란히 기대앉아있는 담벼락 근처의 큰 바위밑으로 몸을 숨겼어. 네 목소리가 들렸어. 난 울면서 네 목소리 하나하나를 잡아냈어.
「우리 부대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지?」
「그러게 말이야. 지난번 야간 기습부터 뭔가 수상하다 싶더니, 이렇게 싸움을 시키는구나.」
「너 안아프냐?」
「씨발, 말도 하지마. 존나 아프네. 누가 불로 지지는 것 같아.」
당장이라도 너에게 다가가 서툰 손으로 붕대를 감아주고 싶었어. 지난번에 내가 그렇게 해주었을때 너, 이제 안 아프다고 그랬잖아.
「이렇게 싸우다가 죽으면 어쩌지.」
「야, 재수없는 소리 하지마라.」
「상상하면 끔찍하지 않냐? 네가 미친듯이 총을 쏴대는 사이에 네 등 뒤에 누군가가 널 노리고 있는거야.」
「으 씨발, 무서워, 임마.」
「그 총이 발사되서 총알이 니 심장을 관통하면 넌 죽겠지.」
「죽을래? 겁주지마.」
네 말을 듣다가 문득 겁이 났어. 그렇게 니가 죽으면 어쩌지. 어차피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지만, 그래도 니가 죽으면 어쩌지. 난 어차피 이제...죽겠지만 말이야,
「미안하다, 새끼. 그냥 내가 그렇게 죽으면...부산에 우리 가족들은 어쩌나...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네 가족들은 어쩌지.
「싸우다 죽고 싶진 않다.」
너보다 먼저 죽어 하늘에서 널 지켜보는 내 심장은 어쩌지.
그래서 난 널 지키기로 했어. 주제넘게 참견해서 정말 미안해. 나같이 아무 힘 없는 놈이 누굴 지키겠어. 그렇지만 난 니가 두려워하는 그 상황에선, 널 구해줄 수 있을 것 같아. 만약 니가 싸우다가 미처 네 등 뒤의 누군가를 못 보고 위기에 처했다면 그땐 난 널 구해줄 수 있을지도 몰라. 네 등 뒤 누군가의 방아쇠가 당겨지는 순간 난 그 총구 앞으로 뛰어들거야. 많이 아프겠지만, 널 잃는 고통보다는 덜 아프지 않을까. 아파도, 많이 아파도, 새어나오는 신음소리를 꾹꾹 씹어 삼키고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죽어갈거야. 너와 네 가족들을 위해서.
그게 내가 일어서게 된 이유야. 그 날 밤 처음으로 간이상점에서 빵을 훔친 이유고, 내가 지금 살아가는 이유야.
정말 미안해. 네 앞에선 온갖 착한 척이나 해놓고 빵을 훔쳐서 미안해. 네 이야기를 몰래 엿들어서 미안해. 네 인생에 괜히 끼어들어서 미안해. 니가 당장이라도 말해줄 것 같아. 또 미안하대, 하여튼 넌 정말... 니가 미안할 일 아니니까 걱정마. 그렇게 다정하게 말해줄 것만 같네. 니가 그렇게 말하면 난 웃으면서 얘기하는거야. 그래도 미안한걸 어떡해, 라고.
그래도 미안한걸 어떡해.
널 그리워해서 정말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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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침이 밝았어. 어제보다 훨씬 따뜻해진 것 같아서 괜히 기분이 좋다. 꼭 너를 처음 만났던 그 날 같아서 마음이 설레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그런 느낌 말이야, 그런 느낌은 언제나 참 기분좋은 느낌이야.
나 어떡하냐, 물건 훔치는데 도가 텄나봐. 어제도 너무 배가 고프길래 크래커랑 물을 훔쳤어. 나 죄를 너무 많이 짓는 기분이다. 그래도, 이미 커다란 죄가 있잖아. 어차피 널 지키고 지옥에 떨어질텐데, 조그마한 죄 몇개 짓는다고 큰일나지는 않겠지?
머리가 좀 맑아지면 저멀리 니가 있는 곳으로 좀 더 다가가.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옷도, 메고 있는 가방도. 지난번 니가 사주었던 그대로야. 마음만 먹는다면 한참을 걸어가 검문소 근처에 있는 보호소에 인간인척하고 들어가 좀 씻고 옷도 갈아입을 수 있겠지만, 니가 선물한것들을 떼놓고 싶지는 않네. 네가 나한테 줬던 손전등도 가방 안에 소중히 들어있다구.
아, 저멀리 너희 부대가 보인다. 지난번보다 꽤 먼곳으로 옮겼네. 따라오느라 힘들었어. 니가 나한테서 점점 더 멀리 달아나려 하는 것 같아 걷는 내내 가슴이 아프더라. 설령 니가 정말 나에게서 영원히 도망치고 싶다고 해도, 내가 할 말은 없을 것 같아. 잘못한건 나니까 말이야. 만약 니가 원한다면 난 널 더이상 따라가지 않을거야. 니가 죽으라면 죽을거야. 그래도 아직, 넌 그런 말을 하지 않았잖아. 이렇게 계속 널 지켜도 되는거 맞지?
어두운 곳에 자리를 잡고 조용히 쭈그려 앉았어. 넌 보이지 않네. 군부대쪽을 한참 바라보다가 그냥 눈을 감아. 눈을 뜨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눈을 감으면 모든게 너무나도 생생히 보여. 너와 함께 했던 시간들과, 함께 했던 장소, 그리고 너. 나에겐 이게 모든 것이야. 오늘은 어떤 기억을 떠올려볼까. 음...처음 너와 헤어졌을땐 다시는 네 생각따윈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말이야, 그건 죽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더라. 널 잊으려하면 내 가슴이 찢어질듯이 아팠어. 죽음보다 훨씬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어. 널 잊을 수 있다는 생각은, 사랑이란 감정을 접을 수 있을거란 생각은 모두 큰 착각이었어. 매일매일 일분 일초도 빼놓지않고 널 떠올리면서 울고 울고 또 울었어.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것만 같은데 야속하게도 눈물은 눈 밑이 헐어버릴때까지 미친듯 흐르더라구. 그래서 그냥 포기했어. 널 잊는걸 포기했단거야. 애써 웃으며 너와 지새웠던 수많은 즐거운 날들을 생각하니 그제야 눈물은 멈췄어. 갈기갈기 찢어져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도 절대 나아지지 않는 내 심장은 너와의 추억만이 낫게 할 수 있더라. 눈을 감으면 붕 떠오르는 네 모습을 조심조심 더듬어가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내왔단다.
근데 있잖아, 사실 나 아직도 가끔씩 울어. 가끔씩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안 우는 날이 없다고 하면 넌 날 질책하겠지. 그치만 그 전엔 하루 24시간을 몽땅 눈물로 채웠는걸. 요즘은 하루에 손꼽을만큼만, 네가 미칠듯 그리워질때만 눈물을 흘려. 사실 나에게 넌 항상 그리운 존재지만 말이야. 우리 만나지 못한지 한달밖에 안됐는데 이렇게 궁상맞게 떨고 있다. 이런 내가 한심하게 보이지 않았기만 바랄께.
오늘은 그 날이 떠올라. 부산에 내려가기 이틀 전이었을거야. 그 날은 오랜만에 하늘에 맑은 달이 떠올랐어. 좀 칙칙한 색깔이었긴 했지만, 그래도 항상 달을 가리고 있던 구름들이 자취를 감춘 날이었지. 밤에 몰래 탈영해서 나에게 온 너와 함께 쓰러져가는 건물 잔해 위 평평한 콘크리트 조각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었어. 지금 생각해보니 너도 참 대단하다. 나랑 있고 싶어서 자칫 위험할 수 있는 탈영을 하루걸러 감행했잖아. 나랑 있고 싶었던게 아니라고 해도, 어쨌든 우린 나란히 하늘을 바라보는걸 좋아했지 않니. 그 날은 나란히 누워 달을 바라보며 설레이는 이야기를 나누었어. 난 너에게 첫사랑이 있었냐고 물어봤었고, 넌 아니라고 대답했던거, 기억나?
「첫사랑 있었어?」
「글쎄...아니, 없었다, 아직.」
「헤헤, 사랑도 안해본 꼬맹이구나.」
「그럼 넌 해보고 그러는거냐?」
「응! 난 첫사랑 있었지롱.」
「누군데.」
「우리 엄마!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이뻤거든.」
「참나, 놀고 있네.」
「치...그럼 지금 사랑하는 사람도 없겠네?」
「...그렇...겠지...」
「이런 질문 있잖아, 좀 웃길지도 모르겠는데.」
「...응.」
「만약 내일 니가 죽는다면, 넌 뭐하고 싶어?」
「뭐야, 무슨 그런 질문을 하냐.」
「그냥 전쟁 중에 길바닥 헤메다보면 온갖게 다 떠올라. 당장이라도 죽을 수 있는거니까.」
「...그래...」
「난 아직 그 질문의 답을 찾지 못했거든. 우리 엄마라면 하루종일 아빠랑 나랑 누나들이랑 다같이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겠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지금은 그럴 수 없으니까. 난 네 답이 궁금해.」
「...하...난 말이야...내가 내일 죽는다면,」
니가 뭐라고 대답했더라...순간 쥐죽은듯 고요해진 그 세상 한가운데서, 넌 뭐라고 답했었지?
「사랑하는 사람 손잡고 나란히 누워서 달을 보면서 밤을 지새울거야.」
「...사랑하는 사람 없다면서.」
「...있을지도 모르겠다...그냥 그 사람이랑 누워서 밝은 달을 보며 얘기하고 싶어.」
「...그래?」
「지금 너랑 이렇게 있는 것처럼. 그 사람한테 밤을 새워 끊임없이 사랑한다고 속삭여줄거야.」
「그 사람이 누군데?」
「글쎄. 나도 잘 몰라, 아직은.」
그 후로도 내가 몇번이나 더 추궁했지만 끝끝내 넌 그게 누군지 대답해주지 않았어. 부산에 어여쁜 아가씨라도 두고 왔냐고 놀렸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부럽다. 너에게 많이 사랑받고 있잖아. 나도 너에게 그렇게...사랑받고 싶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난다. 이러면 안되는데 봇물터지듯 눈물이 쏟아져. 목구멍에서 새어나오는 울음소리를 삼키기가 힘들 정도로. 도대체 왜 눈물이 나는걸까, 가슴이 너무 저려.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을 떠올리니까 심장이 쿡쿡 쑤신다. 도대체 누구길래 그런걸까.
있잖아, 나도 그러고 싶어.
만약 내가 당장 내일 죽는다면, 너랑 손잡고 나란히 누워서 달을 바라보며, 너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속삭여줄꺼야.
물론 나에게 그렇게 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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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울면서 잠들었네. 퉁퉁 부은 얼굴이 부끄러울 정도야. 넌 지금 뭘하고 있을까. 난 일어나자마자 무너진 건물 틈새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이라 해봤자 군인들이나 나같은 방랑자들 뿐이구나. 이 곳은 전투지역과 가까운가봐. 아까부터 저 멀리서 수류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네. 전쟁이란건 참 무서워. 어떻게 저리 사람들을 끔찍하게 죽여댈 수 있는걸까. 그 사람들도 누군가에겐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일텐데 말이야. 마치 나에게 있어서의 너처럼. 난 네가 저렇게 죽는다는 생각을 하면 눈물부터 나와. 그런 생각 절대 안하려고 해도, 전쟁 한가운데에선 그게 쉽지가 않네. 서로 죽고 죽이는 이 전쟁 속에서 내가 무엇을 바래야할까. 너무 우울한 생각이다. 기분 전환을 좀 해볼까? 저기 걸어오는 저 사람 말이야,
잠깐만.
저거, 너 아니니?
저 멀리서 걸어오는 인영은 분명 너야. 너를 본지 오래되었지만 똑똑히 기억할 수 있어. 황급히 건물 잔해 뒤로 돌아가서 숨지만 그래도 널 보고 싶은 마음은 숨길 수가 없어, 결국 고개를 빼꼼 내밀고 보고 만다.
저런, 너 또 다쳤구나. 팔에 붕대를 감고 있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또 총알이라도 스쳐지나간 상처 같아보여. 많이 아팠겠다. 너와 헤어진 이후로 내내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딱 두번 본게 전부 다친 모습이구나. 니가 아팠을걸 생각하면 내가 더 아픈 것 같아. 넌 이미 너무 많은 상처를 받은 사람이잖아. 그것도 나때문에. 너에 비하면 내가 받은 상처는 아무것도 아닐거야. 너에게 다시는 아픔이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헛된 바램이겠지? 하느님께 매일매일 빌지만 소원은 쉽게 이루어지는게 아니네. 자기전엔 항상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빌거든. 네가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만약 그 아픔 누군가 꼭 받아야한다면 차라리 나에게 달라고. 내가 너 대신 다 아플 자신 있으니까.
어깨에 총을 메고 동료들과 함께 스쳐지나간 니가 저멀리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숨죽이고 앉아있었어. 심장이 너무 거세게 뛰어서 당장이라도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아.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반응했던 순간이 지나자 세상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듯 다시 고요해졌어. 운지 얼마 됐다고 또 눈물이 나네. 넌 날 당연히 보지 못했겠고, 봐서도 안되었지만, 그래도. 그래도 너와 한번만 더 눈을 마주치고 웃고 싶어. 얘기하고 싶어. 거세게 뛰던 심장이 숨이 가쁜가봐. 또 찢어질듯이 아프네. 맞아, 나 이렇게 매일 헛된 꿈을 꿔. 네가 다시 나에게 오게 해달라는, 그 전의 일은 모두 잊고 새로 시작하게 해달라는. 너와 함께 사랑하고 싶다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잘못된 꿈을 말이야.
너에 대한 내 사랑이 이 정도로 깊을줄은 정말 몰랐어. 널 잊을 수 있다고 생각한 난 이 세상에서 제일 가는 바보였을지도 몰라. 사랑이란 감정을 너무나 가볍게 생각해서, 그래서 나 지금 이렇게 벌을 받고 있는걸까? 직접 아파보라고, 죽을만큼 아파서 사랑이란 것의 심각성을 어디 한번 깨달아보라고. 신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만약 신이 있다면 그랬을 것 같아. 죄가 너무 많은 너는 이 벌은 달게 받아야 한다면서 이런 괴로움을 선사하는거야. 사랑을 가볍게 생각하니 빵을 훔치니 하는 죄가 아니라 근본적인 죄, 나의 존재 말이야. 차라리 나라는 이 존재를 내 손으로 없애고 싶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아. 널 지켜야하니까 말이야.
정말 미안해요, 이제 깨달아서 정말 미안해요. 이런 아픈게 사랑이었다는걸 이제 와서 깨달아버려서 정말 미안해요.
한번도 사랑이란 것을 해본적 없어서 그랬나봐요. 처음으로 느끼는 사랑이 이렇게 고통스러울줄은 몰랐는데.
아마 앞으로도 다시는 아프지 않은 예쁜 사랑을 해보는 일은 없겠죠.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 될 것 같아요.
이렇게 아픈 마음을 애써 숨겨가며 그대를 이 한 목숨바쳐 지킨 다음, 쓸쓸히 죽어갈 내 미래가 눈 앞에 아른거리네요.
이미 모든걸 포기했지만, 그래서 더 이상 미련을 남기기는 싫지만.
그래도 하느님, 하나만 부탁드릴께요. 제 남은 생애가 얼마 될지는 모르지만, 이 소원 들어주시는 대신 목숨을 대가로 가져가셔도 좋을만큼 간절한 소원이에요.
그 사람 아프지 않게 지켜주세요. 절 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리고 하느님, 정말 죄송해요. 위선적인 절 용서해주세요.
겉으로는 그 사람이 날 잊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고 있으면서, 마음 속으로는 그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하는 이중적인 절 용서해주세요.
제가 이렇게 된 건, 그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가봐요.
너무, 사랑해서. 미친듯 사랑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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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죽을만큼 사랑해. 그래서 나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워. 널 너무 사랑해서 그런거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내가 사랑하는 호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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