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XO GAME; 01 |
심심해. 주말이라 할것도 없고, 핸드폰도 잠잠하고. 침대에서 뒹굴거리던 백현이 휴대폰 집어들어 눈앞에 바짝 가져다댔다. “뭐 재미있는거 없을까?” 책상쪽으로 걸음을 옮긴 백현이 서랍을 하나하나 열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숨겨놓은 성적표와 작은 피규어들. 여러 잡동사니가 뒤섞인 모습에 혀를 차던 백현이 책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책장을 뒤적이며 이리저리 살피던 도중 무언가가 백현의 발 앞으로 툭 떨어졌다. 이게 뭐지? 의아한 마음에 그것을 집어든 백현이 손가락으로 그것을 쓱 훑었다. “게임 CD?” 아무것도 그려져있지 않은 네모난 케이스에는 달랑 EXO GAME이라고 적혀있을뿐, 다른 설명은 어디에도 적혀있지 않았다. 괜한 호기심에 앞뒤를 살펴봐도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자, 백현은 케이스를 열어 CD를 꺼냈다. 흰색 CD에는 작게 '초능력자' 라는 글귀와 함께 따개비인지 뭔지 모를 이상한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심심하던 차에 잘됐다 싶어 냉큼 컴퓨터를 실행시키고 의자에 걸터앉은 백현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근데 내가 이런 게임CD도 있었나? 왠지 처음보는것같은 게임CD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백현이 이내 앉은 자세를 고쳐잡았다. 아무렴 어때, 재밌기만하면 되지. 컴퓨터에 CD를 넣고 게임을 실행시키자, 로딩화면과 함께 이 게임의 줄거리를 설명하는듯한 영상이 나왔다. “오, 나온다!” 대충 보아하니 세계수의 심장을 지키기 위해 서로다른 초능력을가진 12명의 초능력자들이 붉은 눈에 맞서 싸운다는 내용인것 같았다. 붉은 눈은 세계수를 위협하는 반사회적인 집단 즉 악당이라는 것이고, 플레이어가 초능력자가 되어 붉은 눈을 무찌르는 게임인 것 같았다. 유치한것 같지만, 원래 유치한게 더 재미있는 법. 능력을 고를 수 있는 화면이 나오자, 백현의 눈이 반짝였다. “어떤 능력할까? 불? 아까 피닉스 완전멋있던데. 아니야, 번개?결빙?” 뭐하지 뭐하지? 발을 동동구르며 이것저것 눌러보던 백현의 손이 일순간 멈칫했다. “세계를 이루는 축. 만물의 근원 빛 이라...” 뭔가에 홀린듯 그 부분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백현은 무의식적으로 그 능력을 클릭했다. 순간 모니터에서 강한 빛이 쏟아져나와 백현을 감쌌다. 쏟아져나오는 빛에 눈을 찡그린 백현이 모니터를 끄기위해 의자에서 일어났다. 순간, 몸이 붕 떠오름과 동시에 어딘가로 빨려들어가는 아찔한 감각이 느껴졌다. 이상한 느낌에 눈을 뜨려던 백현이 강한 빛에 다시 눈을 꽉 감았다. 눈을 뜰수조차 없을만큼 밝은 빛과 가빠져오는 호흡. 점점 멀어져가는 의식에 정신을 다잡은 백현이 몸을 이리저리 뒤틀었다. 그래봤자 달라진 것은 없다. 거친 숨을 내뱉는 백현의 눈가에 눈물이 아롱졌다. 숨쉬기가 힘들어. 점점 호흡이 가빠지고 정신이 아득해짐과 동시에 백현은 정신을 놓았다.
엉덩이를 쓱쓱 문지르며 울상을 짓던 백현이 익숙하지 못한 주위 환경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여기가 어디야!” 분명 내 방 컴퓨터 앞에 앉아있어야 할 몸뚱아리가 왜 이런 숲속에 있는거지?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보이는건 풀과 나무뿐. 온통 녹색으로 뒤덮인 주변환경에 백현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 이건 꿈일거야.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이던 백현이 팔뚝을 살짝 꼬집었다. “아악! 아픈데? 이거 꿈이 아니잖아?”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나오지 않는 답에 답답해질 무렵, 백현은 갑자기 머리를 둔탁한 흉기로 맞은듯 멍해졌다. 분명 처음 보는 장소이기에 낯설어야 할 이 숲이 어딘지모르게 익숙해보인다라. 설마 아까 그 게임 영상속 숲인가?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없는 추리에 피식 웃음을 지은 백현이 주변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까지 세세하게 둘러보던 백현의 표정이 점차 굳어졌다. 설마, 아닐거야. 하지만 나무에 열린 무지개색의 열매부터 입이 달린 괴상한 꽃까지 이 모든것이 그 영상속 숲의 풍경과 매우 흡사했다.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
| EXO GAME; 02 |
“말도안돼, 게임 속으로 들어오다니?” 꿈이겠지 싶어 다시 팔뚝을 꼬집자 팔끝부터 찌르르한 감각이 퍼졌다. “아악! 아파! 꿈이 아니잖아?” 아픈 팔뚝을 살살 문지르며 주위를 둘러봐도 역시 똑같은 풍경. 그 녹색의 향연에 혀를 내두른 백현이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계속 걷다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백현은 끝없이 늘어선 나무들을 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에라 모르겠다. 힘들어 죽겠네.” 큰 나무 밑에 벌러덩 눕자, 옅게 바람이 불어왔다. 약한 바람에 땀에 젖은 앞머리가 살랑살랑 나부꼈다. 조금 어이없고 힘들긴 해도 왠지 기분이좋아져 베시시 웃어보인 백현은 살짝 눈을 감았다. 부스럭- “방금 무슨 소리가 들린것 같았는데. 설마 몬스터는 아니겠지?” 재빨리 나무 뒤에 몸을 숨기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몸을 웅크린 채 긴장하던 백현이 갑자기 조용해진 주위에 고개만 쑥 내밀어 바깥을 살폈다. 왜 갑자기 아무 소리도 않나지? 고개먀 살짝 내민 채 앞을 보니 수풀 사이에서 하얀 토끼 한마리가 튀어나와 귀를 쫑긋거리고 있었다. 토끼 한마리에 쫄았다니, 한심해. 몽글몽글한 털뭉치같은 토끼의 모습에 저절로 경계심이 사라진 백현이 쭈그리고 앉아 토끼에게 손을 내밀었다. “토끼야 이리와. 너 진짜 귀엽다.” 크르릉- “너도 같이가자. 잡아먹히면 어떡해.” 위험해. 본능적으로 위험을 눈치챈 백현이 토끼를 안고 수풀사이로 내달리자 크르릉거리는 소리가 더 가까이 들려왔다. 마치 바로 앞에 있는듯이...바로 앞? 달리는걸 멈춘 백현이 밑을 내려다보자 털이 삐죽삐죽하게 선 토끼가 시뻘건 눈알을 부라리며 백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크르릉- “저게 뭐야!” 저게뭐야!토끼 맞아? 계속 달리며 비명에 가까운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백현은 갑자기 땅이 울리는 느낌에 힐끗 뒤를 돌아봤다. “으악!” 뒤를 돌아보니 토끼의 형상을 한 괴물들이 무리지어 백현의 뒤를 쫓고 있었다. 시뻘건 눈알을 한채 혀를 낼름거리며 뛰어오는 그것들의 모습은 가히 공포영화에 한장면 같았다. 얼핏 봐도 열마리도 넘어보이는 괴물들에 죽자살자 달리던 백현의 눈에 큰 나무가 들어왔다. 나무 위로 올라가면 못쫓아오겠지? 나무에 다가선 백현이 손을뻗어 낮은곳의 가지를 휘어잡았다. 가지를 잡은 채 튀어나온 틈에 발을 딛고 몸을 올린 백현이 다시 더 높은곳의 가지를 잡았다. 잔가지를 밟고 좀 더 굵고 튼튼한 가지에 손을 뻗는 순간 잔가지가 부러지면서 발이 밑으로 쑥 꺼졌다. “으아악!” 손을 휘젓다가 잡힌 가지를 꽉 부여잡고 대롱대롱 매달려있으니, 밑에있던 괴물들이 폴짝폴짝 뛰며 백현을 위협했다. 아, 괜히 게임속에 들어와서 개죽음을 당하겠구나. 손에 점점 힘이 풀리고 있었다. 그럴수록 밑에있는 괴물들은 더 날뛰어댔다. 더이상 못버티겠어. 절망적인 상황에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밑을 내려다보니 시뻘겋게 충혈된 괴물들의 눈이 괴기스러웠다. 손에 힘이 빠져 가지를 놓쳐 떨어지려던 순간, “어어?위험해요!” 약하게 불고있던 바람이 갑자기 거세게 몰아치며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바닥을 향해 추락하던 몸이 거센 바람에 의해 허공에 띄워졌다. 간신히 몸을 지탱하던 백현은 고개를 돌려 소리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백현이 도망치던 숲의 반대쪽. 그곳에서 한 인영이 걸어나왔다. “많기도 하네. 어디 다친데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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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O GAME; 03 |
사람이다! 하루종일 걸어도 사람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었는데. 왠지 모를 안도감에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 울어요? 무서워요? 내려줄까요?” 말을 건네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사람의 모습이 뿌옇게 보였다. 그나저나 이쪽으로 오면 안되는데. 밑에 괴물들이 득실거리는데 어떡하지? 다급하게 눈물을 닦아낸 백현이 그 사람에게 소리쳤다. “오지마세요! 밑에 괴물들이 있어요.” 백현의 목소리에 잠시 멈칫하던 사람이 다시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둡게만 보이던 그 사람의 얼굴이 달빛을 받아 점점 뚜렷해졌다. 그 사람이 다가오자, 괴물들이 일제히 그쪽으로 몸을 돌려 으르렁거리며 시뻘건 눈으로 노려보았다. 한걸음 두걸음. 점점 다가올수록 괴물들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커졌고, 발걸음을 멈춤과 동시에 괴물들이 그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크아앙- 눈을 감은지 한참이 지난것 같은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자, 이상함을 느낀 백현이 슬며시 눈을 떴다. 눈을 뜨지마자 보인 광경은 상상했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분명 괴물떼에게 물어뜯겨 처참한 몰골로 마주할줄 알았는데. “괴물들이 어딨지?” 한군데도 다치지않고 멀쩡한 사람의 모습과 사라진 괴물들. 의아함에 그 사람을 쳐다보자, 그는 아무 말 없이 검지 손가락을 위쪽으로 뻗어보였다. 그 손가락을 따라 위를 쳐다보니 공중에 높이 뜬채 바둥거리는 괴물들이 보였다. 방금 전까지 으르렁거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낑낑거리며 짧은 손발을 휘적이는 모양새가 퍽 웃겼다. 그 사람이 손을 들고 크게 한번 휘두르자, 거센 돌풍과 함께 공중에 떠있던 괴물들이 일제히 숲 저편으로 날아갔다. 고요한 다른곳과는 달리 그 사람의 주위에는 옅은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 사람이 다시 작게 손짓하자 백현의 몸이 점점 바닥과 가까워졌다. 땅에 발이 닿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백현에게로 그 사람이 다가왔다. “괜찮아요? 어디 다친곳은 없죠?” “네.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백현 앞에 쭈그리고 앉은 남자가 걱정된다는듯 백현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그 남자에게 시선을 두자, 한참을 어쩔줄 몰라하더니 이내 피식 웃어버렸다. “전 세훈이라고해요. 오세훈. 나이는 이제 막 성인이 된 20살이고요.” 아! 자신을 세훈이라 소개하는 남자의 주변에 옅은 바람이 일렁였다. 기분 좋은 바람이 머리칼을 흩뜨렸다. 잘생겼다. 근데 묘하게 예쁘게 생긴것 같기도 하고. 바람에 살랑이는 금빛 머리칼이 부드러워보였다. “아, 저는 변백현이라고해요. 나이는 22살이고요.” “아, 저보다 형이시네요? 어려보여서 동생인줄 알았는데. 말 편하게 하세요 백현이형.” “아, 네! 아니, 응!” 살짝 치켜올라간 눈꼬리때문에 언뜻보면 차가울 인상인데 웃을때 접히는 눈꼬리가 귀엽다. 키도크고. 아씨 나보다 크네? 짜증나. 혼자 뾰로퉁해 있는 백현에 모습에 살짝 웃은 세훈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일단 좀 걸어봐요. 걸을 수 있겠어요?” “아까는 그냥 다리가 풀렸을 뿐이야. 걸을 수 있어.” 벌떡 일어나 세훈에게 쏘아붙이는 백현의 모습에 세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먼저 세훈을 지나쳐 성큼성큼 걷는 백현을 보던 세훈이 재빨리 그 뒤를 따랐다. 왠지 재미있는 사람이다.
“웃지마!” 언제 웃었냐는듯이 딴청을 부리던 세훈이 뭔가를 발견한듯 저쪽 나무를 가리켰다. “저거 먹을 수 있을까요?” 세훈이 가리킨것은 처음 이곳에 빨려들어왔을 때 봤던 무지개색 나무열매였다. 가지마다 주렁주렁 열려있는 열매들이 여간 탐스러워보이는게 아니였다. 백현이 그쪽으로 다가가 손을 뻗자, “안닿네요 형.” 아씨. 가까워보였는데 왜 안닿지? 폴짝폴짝 뛰어도보고 돌멩이도 던져봤지만, 야속하게도 열매는 하나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 때, 뒤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오며 나무 가지를 흔들었다. 바람 한번에 우수수 떨어지는 열매들을 허망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백현은 뒤돌아서 세훈을 째려보았다. 그 모습에 세훈은 어깨를 으쓱했다. “따달라고는 안했잖아요.” 틀린말이 아니기에 반박할 말이 사라진 백현은 조용히 떨어진 열매들을 줍기 시작했다. 판판한 땅 위에 큰 나뭇잎을 깔고 열매를 내려놓자, 세훈이 다가와 나뭇잎 위에 털썩 앉았다. 뒤따라 백현도 앉아서 열매를 하나 집었다. 열매를 살펴보던 백현이 궁금한게 있는듯 세훈을 툭툭 쳤다. “세훈아, 아까 바람 어떻게한거야?” “제 능력이 바람이거든요. 아, 맞다! 형은 능력이 뭐예요?” “능력? 무슨 능력?” “형이 가진 초능력이요. 만약 형이 초능력자가 아니라면 이곳에 있을리가 없잖아요.” 이곳이라니. 이곳이 어디길래? 초능력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 기억속을 더듬어보니 아까 게임메뉴에서 능력을 고른것 같기도 하고. “일단 세훈아. 여기가 어디야?” 황당하다는 듯이 날 쳐다보던 세훈이 시선을 돌려 하늘을 응시했다. 해가 저물어 주황빛을 띄는 하늘의 모습에 눈을 살며시 감은 세훈이 조용히 대답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 가장 성스럽고 생명의 기운이 충만한 땅. 세계의 어머니이자 모든 생명의 고향. 그 모든것을 보살피는 세계수님께서 계신 숲이잖아요.” “세계수님의 숲? 여기가?” 게임속에서 나를 포함한 초능력자들이 지켜야 할 세계수? 세계의 주축인 그 세계수의 숲이라고? 말도안돼. 시작부터 세계수의 숲이라니. 당황한 백현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않고, 세훈이 말을 덧붙였다. “이곳, 아무나 들어올 수 없어요. 알잖아요, 세계수의 숲은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세훈의 터무니없는 말에 벙찐 백현이 손에 든 열매를 떨어뜨렸다. 굴러가는 열매를 탁 잡은 세훈이 백현쪽으로 다시 열매를 던졌다. 엉겁결에 그것을 잡은 백현은 아무생각 없이 한입 깨물었다. 아삭아삭 씹히며 달달한 과즙이 입안에 퍼졌다. 맛있네. “세훈아 이거 맛있다. 너도 먹어봐.” 우물거리며 세훈에게 열매를 하나 집어 건네는 백현의 모습에 뭔가 더 말하려던 세훈의 표정이 싹 굳었다. “형. 얼굴이 빨개요.” “그래? 힘들어서 그런가?” “아니요. 지금은 주황, 아니 이젠 노래요. 무지개색으로 변하는것 같아요. 지금은 초록색이네요.” “뭐? 진짜로?” “색이 하나씩 층을 이루고있어요. 지금 무지개떡 같아요.” 놀란 백현이 근처 샘으로 다가가 얼굴을 비추자, 왠 무지개떡 하나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악!” “형. 일단 진정을...” “너 같으면 진정하겠냐? 내 잘생긴 얼굴 어떡해!” “형 그건 좀 아닌...” “시끄러!” 얼굴을 이리저리 문지르며 발을 동동 구르는 백현의 얼굴이 무지개색으로 물들었다. 무지개떡처럼. “일단 진정하고 해독초부터 찾아봐요. 이 숲 어딘가에 있을거에요.” 자리를 털고 일어난 세훈이 안먹길 잘했다며 백현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EXO GAME; 04 |
세훈은 날뛰는 백현을 뒤로한채, 얽혀있는 덩쿨사이로 들어갔다. 빨리 얼굴을 되돌려야 할텐데. 얼굴이 무지개색으로 변한 백현도 백현이지만, 그 모습을 봐야하는 자신의 불쌍한 눈을 위해서라도 세훈은 손놀림을 빨리했다. 얽힌 덩쿨 가지들을 풀어내자, 앙증맞은 버섯들이 옹기종기 피어있었다. “형! 이리와봐요. 이런거 먹으면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을까요?” “버섯? 산에서 나는 버섯은 함부로 먹는거 아니랬는데.”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에요? 그리고 여긴 세계수의 숲이라고요. 이상한게 있을리 없잖아요.” 왠지 수긍가는 말에 알록달록한 여러색의 버섯중 흰색 버섯을 뜯어 입에 털어넣었다. “어? 점점 원래색으로 돌아와요.” “정말? 다행이다.” 뿌듯하게 웃던 세훈의 표정이 갑자기 다시 굳어졌다. 한참을 뜸들이던 세훈이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형. 색은 원래대로 돌아왔는데요...얼굴에 물방울무늬가 생겼어요.” 오세훈 나쁜놈. 저걸 죽여 말아? 생각해보니 저 무지개떡같은 열매도 이 숲에서 난거잖아? 이를 부득부득 갈던 백현은 화낼 힘도 없다며 도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바닥에 널브러져 고개를 돌리자 한 약초가 눈에 띄었다. 다른 풀들은 그대로인데, 유난히 그 약초만 하얗게 빛났다. 백현은 의아한 마음에 세훈을 툭툭 쳐 약초를 가리켰다. “세훈아, 저기 저 약초 보여? 혼자 빛나는거.” “빛나는 약초? 어디있는데요?” “저기 있잖아. 저쪽에!” “어디요? 안보이는데.” 자꾸 두리번거리며 못찾는 세훈이 답답해진 백현이 엉금엉금 기어가 약초를 잡아 뜯었다. 전혀 모르겠다는 세훈의 표정에 이상함을 느낀 백현은 다시 눈을 비비고 쳐다봤다. 약초는 여전히 반짝였다. 내 눈에만 반짝이는건가? 신기하네. 약초를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자 세훈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드디어 원래대로 돌아왔어요!”
“지금 이 숲은 하늘에 떠있는 작은 섬에 있어요. 하지만, 짙은 구름에 둘러쌓여있어 평소엔 보이지 않죠. 이 섬과 지상을 잇는 통로를 여는 법은 문지기에게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것 밖에 없어요. 즉, 초능력자만이 들어올 수 있다는거죠.” 그말은 지금 여기가 하늘 위라는거야? 온통 나무로 둘러쌓여 하늘인지 땅인지조차 분간이 안갔다. 백현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다시한번 확인했다. “그러니까 여기는 세계수의 숲이고, 하늘위에 떠있다는거지? 너는 바람의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고.” “맞아요. 그리고 덧붙이자면 형이 초능력자라는거. 12명이나 되는 초능력자들 다 언제 찾나 했는데. 운좋게도 금방 찾았네요.” 활짝 웃으며 열매를 집어들던 세훈이 다시 열매를 내려놓고는 옷의 목 부근을 잡아늘였다. “아마 초능력자라면 몸 어디에 표식이 있을거에요. 저처럼.” 세훈이의 쇄골에는 검은색으로 바람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어디있지? 소매를 걷어보던 백현은 아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왼쪽 손목 부근에 빛을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져있었다. “빛이네요? 신기하다.” “응. 근데 문제가 있어.” “뭔데요?” “너는 니 능력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잖아. 근데, 난 몰라. 뭘 어떻게해야 빛이 나오는지, 어떤식으로 써야할지 하나도 모르겠어.” “괜찮아요. 그럴수도 있죠. 이제부터 차근차근 배우면 되잖아요.” 세훈이 씩 웃으며 어깨를 두어번 두드렸다. 왠지 같이 웃음이 나서 백현도 씩 웃어버렸다. “일단 늦었으니 먼저 자고, 내일 여길 나가든 말든 해요.” “그래, 그러자. 잘자 세훈아.” “네. 형도 안녕히 주무세요.” 침낭도 없이 얇은 나뭇잎 하나 달랑 덮은채 둘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누군가 같이 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늦은 밤 숲속도 춥지 않았다.
“세훈아, 형 먹을것 좀 구해올게. 여기서 기다려.” 다 쓰고 나뭇가지를 휙 던진 백현이 콧노래를 부르며 숲속으로 들어갔다. 좀 더 깊은 숲으로 들어오자, 나무틈 사이로 커다란 호수가 보였다. 넓게 펼쳐진 호수의 맑은 물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그곳으로 다가간 백현이 물을 마시기위해 고개를 숙였다. 손을 물속에 담구니, 차가운 물의 감촉이 느껴졌다.어? 무언가가 손 옆으로 휙 지나가는 느낌에 물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울긋불긋한 잉어들이 헤엄치고있었다. “오늘 아침밥은 너 당첨!” 손가락으로 빵 하고 총쏘는 시늉을 한 백현이 바지를 걷고 호수에 들어갔다. 백현의 다리 사이로 잉어들이 유유히 지나쳐갔다. “앗 차거! 우와, 고기 무지 많다.” 대충 손으로 물속을 휘저어도 잡히는 잉어들에 신난 백현이 닥치는대로 고기를 잡아댔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열댓마리의 잉어가 땅 위에서 펄떡이고 있었다. “이렇게 많이는 필요 없는데. 두마리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풀어줘야겠다.” 남은 잉어들을 다시 물가에 풀어주고, 한손에 잉어 한마리씩을 든 백현이 발걸음을 돌렸다. 식사거리를 구했다는 생각에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세훈이 있는 곳에 다다르자, 초조한 표정의 세훈이 백현을 보고 소리쳤다. “형! 함부로 돌아다니면 어떡해요! 또 괴물들 만나면 어쩌려고요?” “미안. 먹을거좀 찾아오느라.” 화가 난 듯한 세훈의 표정이 백현의 손에 들린 잉어를 보고 사르르 풀어졌다. “불은 제가 필게요. 형 사랑해요.” 잔가지들을 모으며 세훈이 하트를 마구 날렸다. 세훈은 어제 저녁부터 굶었던터라 많이 허기졌을것이다. 나무꼬챙이에 꽂은 고기들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고 있었다. 고기가 구워지자마자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세훈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백현도 속도를 내어 고기를 먹어치웠다.
“배불러. 살것같다. 밥도 먹었겠다, 이제 여기서 나가볼까요?” “그래. 근데 어떻게 나가?” 그 말에 세훈이 씨익 웃으며 손을 높이 들었다. 그러자, 바람이 세훈과 백현의 주위를 감쌌다. “어떻게 나가긴요. 이렇게 나가죠.” 말이 끝나자마자 몸이 붕 떠올랐다. 바람이 그 둘을 싣고 섬의 끝자락으로 날아갔다.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풍경들을 바라보던 백현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피곤한데 조금 눈이나 붙여야지. 그렇게 한참을 날아갔을까, 섬의 끝자락에 다다르자 세훈이 백현에게 크게 소리쳤다. “형! 이제부터는 좀 무서울거에요!” 세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섬 밖으로 나온 몸이 바닥으로 쑥 꺼졌다. 섬을 벗어나자마자 무서운 속도로 바닥으로 하강하는 바람에 백현이 비명을 내질렀다. “살려줘!!!!!!” 바람을 타고 끝없이 밑으로 떨어지며 세훈은 미친듯이 웃어댔다 |
| EXO GAME; 05 |
지탱할것도 없이 바람에 휘감겨 수직으로 낙하하는 몸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얼마나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지 미친듯한 속도에도 불구하고 바닥은 보일생각조차 하지않았다. “오세훈 진짜 죽여버릴거야!!!” 강한 바람에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부릅뜨고 세훈을 노려보니, 세훈은 태연하게 다리를 꼬고 앉은자세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저 미친놈. 아무리 지가 바람을 다룬다고 해도 사람인데 이게 안무섭나? 궁시렁거리며 세훈을 욕하던 백현도 오래 떨어지다보니 지루해져 눈을감고 잠을 청했다. 세훈이 보기엔 자신도 그렇지만, 떨어지는 도중에도 잠을 자는 백현도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세훈아, 거의 다 왔어. 저기 마을 보인다! 우리 저기 가서 좀 쉬자.” “.......” “세훈아?” 대답이 없는 세훈에 의아해진 백현이 세훈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세훈이가 눈을 감고 자고있었다. 세훈이 자는구나. 많이 피곤했나보다. 어? “오세훈!일어나 임마!니가 자면 어떡해!” 백현이 잠든 세훈의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었다. 이대로 가면 땅에 메다 꽂힐텐데. 으으, 죽을뻔한지 얼마나 지났다고 또 이래? 울상을 지은 백현이 세훈의 뺨을 내리쳤다. “일어나라고!” “아 형 왜요. 도착하려면 멀었어요.” “미친놈아 밑에좀 보라고!” 막 깨어나 부스스한 머리를 쓱쓱 문지르고 밑을 내려다본 세훈의 눈이 튀어나올듯 커졌다. 원래 세훈의 바람이 몸을 감싸서 떨어질때 땅에 부딪히지 않게 해줘야 하는데, 세훈이 잠들어버렸기 때문에 그냥 땅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세훈이 다급히 손을 뻗어 바람을 일으켰다. 아, 조금만 있으면 부딪힐것 같은데. 바로 눈 앞으로 다가온 땅의 모습에 백현이 눈을 질끈 감았다. 순간, 미약하던 바람이 급격히 강해져 땅에 꽂힐뻔한 백현과 세훈의 몸을 공중에 들어올렸다. “후아, 살았다. 큰일 날 뻔 했어요.” “니가 제정신이야?” “아 형, 잘못했어요. 때리지마요. 악!” 백현이 공중에 뜬 채로 세훈을 주먹으로 퍽퍽 내리쳤다. 아프다며 몸서리치던 세훈이 손을 내림과 동시에 세훈과 백현이 동시에 떨어졌다. “야! 갑자기 떨어뜨리면 어떡해.” “형이 때려서 그러잖아요!” 그나마 높지 않은 높이라서 다행이지. 아픈 허리를 툭툭 두들기던 백현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주위를 둘러봤다. 사람이 하늘에서 떨어졌대. 마을 사람들이 백현과 세훈을 빙 둘러싼채 손가락질하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아마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졌으니 놀랐을것이다. 머쓱해진 백현과 세훈이 몸을 일으키며 손을 내저었다. “저희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그 말과 동시에 웅성거림이 뚝 멎었다.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주고 받으며 백현에게 다가갔다. 둘 중 더 순해 보이는 인상탓이었을것이다. “어디에서 온 누구십니까?”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한분께서 백현에게 말을 건넸다. 마을 사람들을 조용히 시키며 진정시키는 모습을 보니 아마 이 마을의 이장님이신듯 했다. “저희는 여행객인데요. 길을 헤매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졌어요.” “혹시, 그 높은곳이라는데가 저기 저 산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장님께서 마을 뒷쪽에 큰 산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저 산과 이곳까지는 좀 거리가 있는데. 어쩔수 없지. 세훈과 눈빛을 주고받은 백현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저곳이에요. 산이 어찌나 험하던지 죽는줄 알았네요.” 백현의 말을 들은 이장님의 표정이 순간 묘해졌다. 마을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심해졌다. 이에 눈치를 보던 백현이 조심스레 이장님께 하룻밤 묵기를 부탁했다. “말씀 편히 하세요. 그리고, 죄송하지만 저희가 잘곳이 없어서요. 오늘 하루만 이곳에서 묵어도 될까요?” “그러시오. 저기 하늘색 지붕의 집이 우리 집이니 그곳에서 하루밤 자면 될거요.” 다행이다. 속으로 쾌재를 부른 백현이 세훈을 보며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었다. 세훈도 웃으며 백현과 함께 이장님댁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 뒤로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상에, 저 산에서 왔대. 둘의 뒷모습을 보는 마을사람들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이것봐, 늑대 인형이야! 귀엽다.” 늑대모양의 인형을 집어든 백현이 세훈에게 들이밀었다. 귀찮다는듯이 손을 휘휘 내저은 세훈이 침대에 몸을 뉘었다. “형. 저 조금만 잘게요. 이따 저녁먹을때 깨워주세요.” 이불을 덮고 잠이 든 세훈을 보고 입을 삐죽이던 백현이 문이 열리는 소리에 뒤를 돌았다. 문틈 사이로 머리를 양갈래로 묶은 귀여운 여자아이가 보였다. 고개만 빼꼼 내밀어 백현을 쳐다보던 아이가 백현에게 말을 걸었다. “오빠, 진짜 저 산에서 왔어?”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묻는 꼬마가 너무 귀여워 보였던 백현이 문쪽으로 다가갔다. 문틈 사이로 손을 내밀어 아이의 다갈색 머리를 쓰다듬으니 아이가 재촉하듯 다시 물었다. “진짜 저 산에서 왔냐니까?” “응. 저 산에서 왔지.” 아이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쓱쓱 쓰다듬으며 말하자 아이가 놀란듯이 백현의 옷자락을 꼭 잡았다. 귀여워. 한참동안 옷자락을 잡고있던 아이가 백현의 손을 치워내며 머뭇거렸다. 말할게 있는듯 한참을 망설이던 아이가 결심했는지 고개를 치켜들며 소리쳤다. “저 산에는 ‘그것들’이 있잖아! 어떻게 살아서 나왔어? 오빠 짱 센가보다!” “응? ‘그것들’이라니?” “어라? 오빠 저 산에서 왔다며? ‘그것들’을 만나지 않았어?” 백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들’이 뭐지? 산에 있으니까 산짐승인가? 백현을 바라보던 아이가 문 사이로 몸을 들이밀고는 집 안으로 들어왔다. 아장아장 백현의 앞으로 걸어온 아이가 백현의 하얀 손가락을 잡고 흔들었다. “오빠. 있잖아, 저 산에는 ‘그것들’이 살아. 원래는 그렇게 난폭하지 않았는데, 최근에 이상해졌어. 아 맞다. ‘그것들’이 뭐냐면....” “샐리! 여기서 뭐하는거니?” 문 사이로 긴 손이 쑥 튀어나와 아이의 손을 휘어잡았다. 벌컥 열린 문 앞으로 한 아주머니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타이르듯 혼냈다. “여행하시느라 힘드셨을텐데 쉬게 두셔야지. 귀찮게 하면 되겠니?” “아니요오...저는 그게 아니라...” “됐으니까 빨리 가자.” “네에...오빠 안녕!” 어딘지모르게 다급해보이는 아주머니의 손길 뒤로 아이가 손을 흔들었다.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주자, 곧 문이 탁 소리나게 닫혔다. 다급하게 아이를 이끌고 나가시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백현의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도대체 ‘그것들’이 뭘까?
“세훈아 일어나. 저녁먹으러 나오시래.” 몸을 뒤척이던 세훈이 백현의 말에 몸을 일으켰다. 세훈이 뻗친 뒷머리를 정리하며 밖으로 나가자, 백현도 뒤따라 나가며 문을 닫았다. “우와! 완전 진수성찬이다!” 밖으로 나가보니 마을 공터 한 가운데에 큰 테이블이 놓여져 있었고, 그 위에 여러가지 음식들이 차려져있었다. 갓 구워낸 빵과 딸기쨈, 따끈따끈한 우유와 바삭하게 익힌 돼지고기, 뱃속에 여러 잡곡을 넣어 쪄낸 칠면조고기와 신선한 야채와 과일들.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진 음식들에 백현과 세훈의 눈이 튀어나올듯이 커졌다. “차린건 없지만 많이 들어요.” 비스켓을 나르며 아주머니가 인자하게 웃었다. 백현과 세훈이 의자를 빼 앉고는 큰 소리로 소리쳤다. “잘먹겠습니다!” 지금까지 제대로 먹은건 잉어구이 하나밖에 없었기에, 허기졌던 백현과 세훈은 허겁지겁 음식을 먹어치웠다. “완전 맛있어요!” 한 손으로 칠면조의 다리를 들고 뜯던 세훈이 아주머니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보던 아주머니가 천천히 먹으라며 물컵을 앞에 놓았다. 그 물을 벌컥벌컥 마신 세훈이 부른 배를 퉁퉁 두드리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완전 배부르다. 그쵸?” “응. 살것같아.” 사과를 들고 아삭아삭 깨물어먹던 백현이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그 때, 진지한 표정의 이장님이 다가와 둘의 앞에 앉았다. 왠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백현과 세훈이 바짝 긴장을했다. 이장님이 앞에놓인 물을 한모금 마시더니 조심스레 입을 떼었다. “자네들 말일세, 혹시 힘 좀 쓰나?” “예?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아니, 얼마전부터 산짐승이 계속 마을에 내려와 밭을 망치지뭔가. 혹시 괜찮다면 그 산짐승을 좀 처리해줄수 있겠나?” “그정도야 뭐. 이렇게 먹여주시고 재워주시는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알겠습니다.” “고맙네. 그 짐승들은 주로 밤에 나타나니 지금쯤 출발해야하는데, 괜찮겠나?” “예. 어디로 가면 되나요?” 이장님께서 마을 뒷 산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깜깜한 밤의 산이라. 아까 볼땐 몰랐는데 늦은 밤에 보니 꽤나 을씨년스러웠다. 세훈이 벌떡 일어나 백현의 손을 잡아끌었다. “형, 더 늦게가면 위험하니까 지금 빨리 가요.” “으응. 알았어.” 왜 하필 늦은 밤이래. 왠지 모르게 찝찝한 기분이들었다. 세훈에게 이끌려가는 와중에도 백현의 머릿속엔 아까 그 아이의 말이 맴돌았다. 「저 산에는 ‘그것들’이 있잖아! 어떻게 살아서 나왔어? 오빠 짱 센가보다!」 ‘그것들’이 뭘까? 온통 머릿속엔 ‘그것들’에 대한 생각이 가득찼다. 백현은 ‘그것들’에 대해서만 생각하느라 이장님의 날카로운 눈빛이 자신들의 뒷모습을 쫓는것을 보지 못했다.
“백현이형. 힘들어요? 여기서 쉬었다갈까요?” “아니야. 그러면 너무 늦을것같아. 그냥 가자.” “그럼 조금만 힘내요.” 백현의 어깨를 두어번 두드린 세훈이 앞장서서 산을 올랐다. 산은 생각보다 험했다. 가파른 경사와 튀어나온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였고, 밤이라 잘 보이지도 않아 미끄러질 뻔한적도 많았다. 으악! 돌에 걸려 넘어질뻔한 백현의 허리를 세훈이 낚아챘다. “조심좀 해요. 이게 몇번째야 벌써.” “미안. 조심할게.” “왜 산짐승은 코빼기도 안보일까요?” “그러게. 있긴 한걸까?” 손등으로 땀을 훔치며 나무에 기댄 백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아무래도 뭔가 걸린다. 특히 그 ‘그것들’이라는게. 세훈이는 뭔지 알까? 혼자 속앓이 해봐야 답이 안나온다는걸 깨달은 백현이 세훈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저, 세훈아. 아까말이야, 너 잘때 한 여자아이를 만났거든? 근데, 그 애가 이 산에는 ‘그것들’이 산대. 도대체 그게 뭘까? 아이가 뭔지 말하려고 했을때 아주머니가 아이를 데려가셨어.” “산짐승이겠죠. 아까 이장님이 그러셨잖아요. 멧돼지나 뭐 그런거 아닐까요?” “그런가?” 멧돼지가 사람을 해치나? 그럴수도 있겠다. 근데 왜 살아서 나온게 신기하단거지? 멧돼지라고 단정 지은 후에도 꼬리를 무는 의문에 백현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때, 뭔가가 휙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형. 방금 무슨 소리 못들었어요?” “들었어. 나타났나봐.” 세훈이 조용히 손에 바람을 모으며 다시 소리가 나길 기다렸다. 한참 기다려도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자, 세훈이 한발자국 발을 뗐다. 순간 발에 채인 돌멩이가 데구르르 굴러가며 뭔가에 부딪혔다. 부딪혀서 탁 소리가 남과 동시에 수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형, 제 뒤로 와요.” 세훈이 백현을 등뒤로 숨기며 바람을 더 단단히 응축했다. 그 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커지며 수풀 틈으로 번뜩이는 노란 눈동자들이 보였다. 세훈이 더 가까이 다가가자 수풀에서 무언가 한마리가 튀어나왔다. 아우우우우- “거기서 나오지 말고 있어요.” 다시 손을모아 바람을 일으킨 세훈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섯마리. 한마리 처리히긴 했어도 여전히 불리한 상황이었다. 갑자기 작은 늑대 한마리가 달려들어 세훈의 얼굴을 할퀴었다. “윽...” 할퀸 자리에 길게 긁힌 자국이 났다. 상처를 따라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피를 보자 광분한 늑대들이 일제히 울부짖었고, 그 소리를 들은 늑대들이 점점 더 몰려들었다. 젠장. 흐르는 피를 쓱 문지른 세훈이 다시 바람을 일으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백현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세훈이가 다쳤는데 도움도 못되고. 바보 멍청이 변백현. 자책하며 머리를 쥐어뜯던 백현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나도 능력을 쓸 수 있지 않을까? 다시 살며시 눈을감은 백현이 마음속으로 빚을 그렸다. “제발 되라.” 간절한 마음으로 날카로운 창 모양의 빛을 여러개 상상한 백현이 눈을 떴다. 백현의 주위에 빛으로 만들어진 창들이 둥둥 떠있었다. 성공했어! 백현이 공중에 떠있는 빛의 창들을 늑대쪽으로 손짓하자 창들이 일제히 날아가 늑대의 몸에 꽂혔다. 놀란 세훈이 백현을 쳐다보자 백현이 씨익 웃으며 손가락으로 브이를 했다. 이 기세를 몰아 세훈이 바람을 일으켜 늑대들을 멀리 내던졌다. “그만해!” 그때, 갑자기 하늘에서 큰 구멍이 생기더니 그곳에서 한 남자가 걸어나왔다. 까무잡잡한 피부와 짙은 쌍커풀, 큰키와 날렵하게 빠진 몸이 어딘지 모르게 늑대를 연상시켰다. 그 남자가 나옴과 동시에 하늘에 뚫렸던 구멍이 소용돌이치며 사라졌다. 날카롭게 둘을 쏘아보던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누구지?” |
| EXO GAME; 06 |
졸린듯 나른한 남자의 눈빛 속에는 낯선 대상에 대한 강한 경계심이 서려있었다.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온 남자가 뒤를 돌아 늑대들에게 손짓했다. 그 손짓에 늑대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저 남자가 누구길래 늑대들이 저 남자의 말을 듣는거지? “분위기상 우리편은 아닌것같네요.” 손으로 작은 바람을 만들어내는 세훈의 눈이 바쁘게 남자를 훑었다. 마른 침을 꼴깍 삼켜낸 백현이 손끝에 힘을모아 작은 불빛을 만들어냈다. 갑자기 밝아진 시야에 인상을 찡그리는 사이에, 앞에있던 남자가 사라졌다. “뭐야. 어디갔지?” “나를 찾는건가?” “으악!”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란 백현이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시끄러운듯 귀를 막던 남자가 귀에서 손을 떼고 백현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어깨에서 느껴지는 강한 악력에 옅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너희는 어디에서 왔지?” 백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묻는 남자의 목소리가 소름끼치도록 차가웠다. 가까스로 손을 떨쳐낸 백현이 어깨를 주무르며 대답했다. “저 산 밑에있는 마을에서 왔어요.” “저기보이는 작은 마을 말인가. 저곳과 여기는 꽤 멀텐데 어쩐일로 여기까지 왔지?” ”마을사람들이 산짐승을 잡아달라길래 부득이하게 밤에 산을 오르게됬어요.” “산짐승이라...” 남자의 눈빛이 알수없게 변했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듯 살짝 찡그린 미간이 남자다웠다. 한참을 가만히 서있던 남자가 뒤돌아서 늑대들이 있는쪽으로 걸어갔다. “마을사람들에게는 미안하게됬다. 하지만, 우리도 이러고싶어서 이러는건 아니야.” “그렇다면, 뭐때문에 그러는거죠?” “그건 너희들이 상관할 바 아니다. 위험하니 신경끄고 동이 트거든 하산해. 괜히 야밤에 싸돌아다니다가 저놈 꼴나지말고.” 턱짓으로 세훈을 한번 가리킨 남자가 천천히 늑대의 모습으로 변했다. 다른 늑대들과는 다른 검정색 털. 그 남자가 늑대로 변하자 다른 늑대들이 일제히 울부짖었다. 남자는 가뿐히 나무에 뛰어올라 크게 울부짖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 뒤를 따라 늑대들도 하나둘씩 자리를 떴다. 세훈이 분한듯 씩씩거렸으나, 이미 그들은 떠난 후였다.
”여기 그대로 있다가 어떤 꼴을 당하려고요. 조금 걷다보면 산장같은게 있을지도 몰라요.” “올라오면서 그런거 못봤잖아. 이 깊은 산속에 그런게 있겠어?” “없을것도 없죠. 그니까 아까 올라온 반대쪽으로 내려가면 되잖아요. 빨리가요.” 바닥에 풀잎을 깔고 누울 준비하는 백현의 모습에 세훈이 기겁을하며 팔을 잡아 끌었다. 빨리 내려가요. 손등으로 얼굴에 묻은 피를 대충 문지른 세훈이 걸음을 재촉했다. 세훈의 뒤를 따르던 백현은 갑자기 주변이 환해지는것을 느끼고 걸음을 멈췄다. “어? 이게뭐지?” 「경험치가 700 오르셨습니다. Lv.2로 레벨업이 되셨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이상한 글귀들이 나타났다. 세훈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듯 글자를 통과해서 지나간 세훈이 백현을 재촉했다. 맞다, 여기 게임 속이였지? 아까 그 늑대들을 잡은것 때문에 레벨업이 됐나보다. 뿌듯한 마음에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기분좋게 한걸음 옮기려고 했으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더니 별안간 두꺼운 책 하나가 백현의 앞으로 툭 떨어졌다. “스킬북(skill book)?” 그것은 낡은 겉표지에 필기체로 스킬북이라고 쓰인 두꺼운 책이였다. 백현이 그것을 집어들어 펼쳤다. 색바랜 누런 종이들에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촤르륵 종이를 넘기던 백현의 손이 맨 앞장에서 멈췄다. 「스킬 Lv1 라이트스피어(Light Spear) ; 빛으로 만든 여러개의 작은 창을 소환하여 적을 관통하는 능력. 최대 12개까지 소환 가능하다.」 아, 그럼 아까 내가 소환해낸게 이건가? 적혀진 설명을 손으로 짚으며 따라읽던 백현이 책을 탁 소리나게 덮었다. 백현이 책을 덮자마자 책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형! 빨리안오고 뭐해요? 확 그냥 버리고간다?” 한참 내려간 세훈이 백현에게 빨리 내려오라며 성화를 부렸다. “갈게! 기다려! 너, 먼저가기만해봐?” 다급하게 뜀박질을 하는 백현의 얼굴에 미소가 만면했다. 드디어 능력을 다룰수 있게됬어. 세훈에게 다가간 백현이 미안하다며 두손을 싹싹 비볐다. 뚱한 표정의 세훈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형. 저기 불빛이 보이는것 같아요.” “어? 그러네? 진짜 산장이 있나봐.” “다행이네요. 노숙은 질색이였는데.” 행여 불이 꺼질까봐 발걸음을 빨리한 둘이 산장의 문 앞에 마주섰다. 가까이서 보니 그곳은 나무로 지은 낡은 산장이였다. 이런데에서도 사람이 사나? 궁금증을 잠시 접어둔 채, 세훈이 손을 들어 문을 세번 두드렸다. 똑똑똑- “계세요?” 백현의 목소리가 들리자 내부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불이 꺼졌다. 황당해진 세훈이 문을 다시 두드리며 크게 소리쳤다. “저희 나쁜사람 아니에요!” 억울한듯 소리치는 세훈의 목소리에 다시 불이 켜지더니, 이내 문이 열렸다. 문 앞에는 창백한 얼굴의 아주머니 한분이 서계셨다. 척 보기에도 많이 고생한듯 야윈 몸과 부르튼 입술이 안쓰러워보였다. 살짝 옆으로 몸을 비켜낸 아주머니가 작게 속삭였다. “들어오세요.” “감사합니다.” 덩달아 목소리를 죽인 백현과 세훈이 산장 안으로 몸을 들였다. 겉보기완 달리 아늑한 내부에 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폭신한 양털 러그가 깔린 내부에 목재 식탁과 의자두개가 놓여져있었고, 방 한켠에 큰 침대 하나와 작은 침대 하나가 놓여져있었다. 식탁 앞으로 둘을 인도한 아주머니가 화로에서 끓고있는 큰 솥으로 다가갔다. 국자로 그것을 몇번 휘휘 저은 아주머니가 접시 두개를 꺼내어 끓인 수프를 담았다. “늦은 밤이라 줄게 이거밖에 없네. 미안해요, 그래도 손님인데.” “아니에요. 늦었는데 저희 재워주시는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숟가락으로 뜬 수프를 후후불며 백현이 미소지었다. 그런데 먹을거에 사족을 못쓰는 세훈이 수프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별안간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왜그래? 무슨 문제라도 있어?” “이상해. 이 깊은 산속에 늙은 여자분 혼자 사신다니. 그리고 가구들을보면 다 두개씩이야. 침대도 의자도 하다못해 수저까지도.” 부엌에서 물을 내오던 아주머니께서 그 말을 듣곤 빙그레 웃음을 지어보였다. 두개의 물컵을 식탁위로 내려놓은 아주머니가 품속에서 낡은 사진을 한장 꺼내보였다. “원래는 아이랑 같이 둘이 살았어요. 저희 아이가 몸이 약해서 요양차 이 산속에 들어와서 살게 됬거든요.” 사진속에는 볼살이 통통하게 오른 아이가 귀엽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작은 침대에 걸터앉은 아주머니께서 이불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보시다시피 이 산에는 늑대들이 많아요. 하지만, 예전의 늑대들은 사람을 해치지 않았어요. 오히려 산짐승들을 사냥해서 마을사람들에겐 이로운 존재였죠.” “아...근데 지금은 왜 이렇게 된거죠?” 아까 늑대들이 공격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세훈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주머니께서 살짝 웃으시며 말을 이었다. “어느날부터였더라. 아이가 숲에서 이상한 돌멩이를 주워온 다음날부터였을거에요. 멀쩡하던 애가 갑자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어요. 열이 펄펄끓고 온몸에 식은땀이 범벅이였죠.” “이상한 돌멩이요?” “네. 손바닥만한 크기에 빨간색으로 이상한 무늬가 새겨진 돌멩이였어요. 아무튼 아이가 갑자기 몸이 안좋아지면서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죠.” “헛소리라니 어떤...?” 가만히 웃던 아주머니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자식이 아프다는데 어떤 부모가 마음이 편할까? 괜히 실례가되는게 아닌가싶어 눈치를 살피니 괜찮다는듯 다시 웃어보인 아주머니가 조심스레 사진을 쓰다듬었다.
「그분이 오실거야. 이제 이 세상은 그분의 것이 될거야! 그분께선 미개한 인간들은 벌하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실것이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가 목이터져라 소리쳤다. 통통했던 볼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눈밑이 검게 그늘졌다. 계속 허공으로 손을 내저으며 그 말을 반복하는 아이의 모습에 아주머니가 눈물을 흘렸다. 허공을 배회하는 마른 손을 꼭 잡아쥔 아주머니가 조용히 기도했다. ‘제발 이 착한 아이를 살려주세요.’
“그러다가 눈을 떠보니 아이는 사라져있었고, 바닥에 붉은색으로 큰 문양이 남겨져 있었어요.” 조심스레 일어난 아주머니가 바닥에 깔린 러그를 치우자, 바닥에 피와 같은 붉은 액체로 이상한 문양이 새겨져있었다. “늑대들이 이상해진건 아이가 사라진 이후부터였어요. 온순하던 늑대들이 갑자기 난폭해지더니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죠.” 문득 아까 봤던 남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도 이러고싶어서 이러는건 아니야.」 명백히 타의가 섞였다는듯한 말투. 그렇다면 이 아이와 관련이 있다는건가? 아이가 사라진 후부터 난폭해진 늑대들. 붉은 문양의 돌. 이게 무슨 상관이 있는거지? “붉은 마녀의 저주를 받은거에요.” “붉은 마녀?” “저희 아이는 그 이상한 돌멩이때문에 변해버렸어요. 마녀가 되버린거죠. 그 아이가 저주했기 때문에 늑대들이 그렇게 변한거에요. 아마 아이는 이 마을사람들을 전부 해치려 할거에요.” “그럴수가!” 산짐승을 처리하러 온줄 알았는데. 너무 복잡한 이야기를 들은것같다. 세훈이 고개를 들어 백현을 쳐다보자 백현도 나름 복잡한 표정으로 고민에 잠겨있었다. 입술을 꼭 깨물던 아주머니가 세훈과 백현의 손을 꼭 잡았다. “제발 그 아이를 말려주세요. 그 아이를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이렇게 된다면...어쩔수 없잖아요.” 힘겹게 말을 잇는 아주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사랑하는 자식을 해할수밖에 없는 부모의 심정이 오죽하랴. 가슴이 미어지고 짓물러 터질것같은 느낌에 아주머니가 가슴을 움켜잡았다. 그 애절한 광경에 백현과 세훈의 눈가에도 눈물이 고였다. “걱정마세요. 저희가 꼭 무사히 아이를 데려올게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흐윽..” 자신보다 훨씬 어려보이는 남자들에게 허리굽혀 감사인사를 건네는 아주머니의 모습에 어쩔줄 몰라하던 둘이 같이 허리숙여 인사를 했다. 그 아이..꼭 구해줄게요. |
| EXO GAME; 07 |
조용해진 분위기속에 숟가락이 달그락거리는소리만 들려왔다. 입맛이 없어. 숟가락을 내려놓은 백현이 아까 본 남자가 했던 말을 되새김질했다. 명백히 자의가 아니라던 말투. 그리고 그들이 변한건 아이가 사라진 후. 분명 그 아이와 관련있는 일일거야. 한참을 고민 하던 백현이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수프를 떠먹던 세훈이 백현을 의아하게 쳐다보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가봐야겠어.” “뭐라고요? 이시간에 어디를요?” “아까 그 남자를 찾으러. 아무래도 이상해. 그 남자가 했던말,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를 염두에두고 한 말인것 같아.” “늦었잖아요. 일단 하루밤 자고 내일가요.” “안돼. 그러다 놓치면? 그리고 늑대들이 아침에 활동하는거 봤어?” “그렇지만...” “아주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서두르자.” 그 소리에 군말없이 일어난 세훈이 조용히 짐을 챙겼다. 짐이라고해봤자 작은 단도 하나와 담요뿐이지만. 조용히 짐을챙긴 세훈이 뒤를돌아 아주머니를 응시했다. 울다 지쳐 잠이 드신건지 불편한자세로 주무시는 아주머니의 손에는 아이의 사진이 꼭 쥐어져있었다. 아주머니가 깨지 않게 조심스레 문을 닫고 나온 세훈이 속삭였다. 아주머니, 걱정마세요. 꼭 아이를 구해올게요.
“이쯤이였던것 같은데.” 세훈이 나무의 표면에 새겨진 엑스자를 더듬으며 주변을 살폈다. 벌써 가버린건가. 주위를 둘러봐도 남자는 커녕 늑대의 털 한올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 저기 위에!” 백현의 손이 한 나무의 위를 가리켰다. 밝은 빛이 나무를 비추자, 나무 위에 누워 눈을 감고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빛이 비추자 표정을 찡그린 남자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아까 얌전히 있으라고 했을텐데. 왜 여기까지 올라와서 남이 자는것을 방해하지?” “아까 했던말에 대해 물어볼게 있어요.” “너희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고 했을텐데?” 나무에서 폴짝 뛰어내린 남자가 날카롭게 둘을 쏘아보았다. 백현이 그쪽으로 빛을 비추자 늑대로 변한 남자가 금방이라도 달려들것처럼 발톱을 드러냈다. 황급히 빛을 없앤 백현이 세훈에게 눈짓했다. 세훈 역시 손에 모은 바람을 사그라트렸다. “혹시 늑대들이 갑자기 변했다는 이유가 붉은 마녀때문인가요?” 백현의 말에 흠칫한 남자가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천천히 둘의 앞으로 다가온 남자가 백현의 목에 대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고개를 갸웃한 남자가 세훈쪽으로 다가갔다. 기겁한 세훈이 뒷걸음질치자, 세훈의 손을 낚아챈 남자가 낮게 으르렁거리며 세훈의 목에 코를 묻었다. “그 여자의 냄새가 나는건 아니군. 그렇다면 인간이 어떻게 붉은 마녀를 알지?” “말하자면 길어요. 지금 구구절절 다 얘기할 시간도 없고. 당신, 붉은 마녀의 저주를 풀고싶죠?” “그렇다. 내 동족들이 마녀의 저주가 걸린 이후부터 난폭해졌어. 난 그때 다른곳에 있어서 저주를 받진 않았지만.” “저희가 도와줄 수 있어요.” “웃기지도 않는군. 나약한 인간주제에 어떻게 날 돕는다는거지?” 조심스레 남자에게 다가간 백현이 손을 뻗었다. 손 위로 작은 빛이 피어올랐다. 그 빛은 다시 두갈래로 갈라져 날카로운 창의 형태로 변했다. 백현이 세훈에게 눈짓하자 세훈이 강한 바람을 일으켰다. 강한 바람이 순식간에 남자를 덮쳐 몸을 속박했다. “뭐하자는거지?” ”못믿겠으면 한번 붙어보던가요. 나약한 인간들과 말이에요.” 생긋 웃은 백현이 남자에게 창을 날렸다. 그러자 바람속에 갇혀있던 남자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디갔지? 다시 창을 만들어내는 백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조용히 이어지는 대치상황 속에 갑자기 세훈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윽!” 놀란 백현이 뒤돌아보자, 사라졌던 남자가 세훈의 뒤에 나타나 뒤통수를 세게 내리쳤다. 뒤통수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휘청이는 세훈의 몸에 창의 수를 늘린 백현이 반을 남자에게 날렸다. 그러나 이미 남자는 사라져있었다. 인상을 찡그린 백현이 앞을 돌아보며 나머지 창을 날렸다. 백현의 앞에 나타나있던 남자의 옆구리에 창이 스쳤다. “보기보단 제법이군.” 창이 스쳐지나간 옆구리에 손을 대자, 진득한 피가 묻어나왔다. 피묻은 손을 할짝 핥은 남자가 눈을 가늘게 뜨고 백현을 응시했다. 세훈의 몸을 부축하던 백현도 피하지않고 그의 눈을 빤히 응시했다. “보통 인간들은 아닌것같군. 너희도 나와 같은 부류인가?” “그 부류라는게 초능력자라면.” “그럼 너희들도 이런 상처가 있겠군.” 헐렁한 바지를 아슬하게 골반께에 걸친 남자가 손가락으로 치골을 짚었다. 손가락의 위치를 잘못본 백현의 얼굴이 빨개졌다. 저거 변태아냐? 손부채질을 하며, 백현이 열심히 눈으로 남자의 치골주위를 훑었다. “거기말고 여기.” 친절하게 자신의 중요부위와 치골을 번갈아 가리킨 남자가 백현을 비웃었다. 세훈이 이상한 눈으로 백현을 쳐다보았다. “여기에 상처가있어. 태어났을때부터 있던건데 지워지지도않고 낫지도않아.” 남자의 오른쪽 치골에는 큰 삼각형안에 소용돌이가 새겨진 문양이 있었다. 까만 피부에 적당히 잡힌 근육과 검은색으로 새겨진 문양이 섹시한 느낌을 자아냈다. 괜시리 침을 꼴깍 삼킨 백현이 자신의 마른 팔뚝을 내밀었다. 왼쪽 손목에 새겨진 문양을 보자 남자의 표정이 묘해졌다. 세훈도 문양을 보여주겠다며 목 가까이 손을 대자, 남자의 인상이 눈에띄게 찌푸려졌다. 세훈의 쇄골에 새겨진 문양을 보는것을 거부한 남자가 둘에게 손짓했다. “내 능력은 순간이동이다. 정말 나를 도와 마녀의 숲으로 갈건가?” “물론이죠.” “내 이름은 카이다. 인간일 때의 이름은 김종인. 편할대로 불러.” 종인이 눈을감고 조용히 말했다. 고개를 끄덕인 세훈과 백현이 종인의 옆으로 나란히 섰다. 종인이 손을 펼쳐 허공을 할퀴자, 그 자리에 구멍이 뚫리더니 점차 영역을 넓혀갔다. 울렁이며 커진 블랙홀에 세훈이 마른침을 삼켰다. “각오 단단히 해야할거다.” 오른손은 백현, 왼손으로는 세훈의 손을 잡은 종인이 허공으로 발을 디뎠다. 공중에서 계단을 걷는듯이 발돋움을 하던 종인이 이내 블랙홀 속으로 몸을 던졌다. 온몸이 빨려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몸이 공중으로 튕겨져나왔다. “도착했다. 여기가 붉은 마녀의 숲이다.” 순간이동이라는 능력답게 순식간에 도착한 모습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던 백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까맣게 죽은 나무위엔 나뭇잎하나 없었고, 온통 누렇게 말라죽은 풀들로 뒤덮힌 숲속엔 여기저기 가시덩쿨이 엉켜서 출입를 막고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생명체가 살리가 없지. 고개를 도리도리 저은 백현이 숲쪽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타라. 마녀를 찾으려면 오래걸릴테니.” 늑대로 변한 종인이 백현의 앞에 몸을 구부렸다. 괜찮다며 한사코 거부하는 백현의 모습에 종인이 코웃음쳤다. “보기보다 산이 험하고 위험한게 많아. 가시에 긁혀서 징징거리지말고 타라고 할때 타.” “괜찮은데...정 그렇다면 알겠어요.” 백현이 종인의 등에 엎드린채 목을 꼭 껴안았다. 복슬거리는 털의 느낌이 좋았다. 이어서 세훈이 종인의 등 뒤에 타려하자 종인이 정색하며 몸을 일으켰다. “두명까진 무리야. 너는 니 능력으로 날아다니면 되잖아.” “그러려면 체력소모가 너무 크다고! 요.” 째려보는 종인의 모습에 급 존댓말을 한 세훈이 입을 삐죽였다. 치사하게 백현이형만 태워주고. “너는 바람으로 날 수 있는데 이 인간은 빛으로 날 수 없잖아. 그래서 그러는거다.” “이 인간이 아니라 변백현이거든요.” “어쨌든.” 그 말이 수긍은 가지만 그래도 서운한건 사실이었다. 미안한 표정을 짓는 백현을 뒤로한채 세훈이 바람을 일으켰다. 바람이 점점 거세지더니 세훈의 몸이 붕 떠올랐다. “그럼, 이제 가죠?” 세훈의 말에 종인이 숲쪽으로 뛰어들었다. 세훈도 질세라 바람을 타고 둘을 따라 숲속으로 들어왔다. “보기보다 무겁군.” 종인의 약올리는듯한 말투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백현이 눈을 감으며 종인의 목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숨막힌다. 안떨어지니까 조금 살살잡아.” 그 말에 손에 느슨하게 힘을 푼 백현이 슬며시 눈을 떴다. 빠른 속도로 나무 사이를 휙휙 가르며 달리자, 생소한 풍경에 백현이 눈을 동그랗게 뜬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한참 달리는 도중, 저번처럼 주위가 밝아졌다. 그러더니 허공에 다시 글자가 나타났다. 「에픽퀘스트; 붉은 마녀의 저주」 퀘스트라. 순식간에 사라진 글귀에 눈을 느리게 깜빡인 백현이 종인을 불러세웠다. “저기에 동굴이보여요.” 백현이 손끝으로 가리킨곳은 붉은 화산의 꼭대기였다. 엄청난 화염을 뿜어내는 분화구 밑에 작은 동굴이 있었다. 빽빽한 나무사이에 자리잡아 그동안 잘 보이지 않았던것인가. 이를 악문 종인이 바닥에 가볍게 착지했다. “겉보기엔 그냥 바보같은데, 생각보다 눈썰미가 좋군. 백현.” |
| EXO GAME; 08 |
종인을 따라 바닥에 착지한 세훈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지금까지 지나왔던 곳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풍경. 여기 어딘가에 마녀가 있다는 것인가? 혀로 입술을 축인 세훈이 바람을 잠재웠다. “여기서부터는 걸어가는게 좋겠군. 마녀에게 잡으러온걸 들키고싶지 않다면말이야.” 종인의 등 위에서 내려온 백현이 하품을 하며 주변을 살폈다. 여전히 보이는건 죽은 나무와 가시덤불 뿐.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변한 종인이 동굴까지의 거리를 어림잡으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를 계산했다. 저 인간도 체력이 많이 떨어진것처럼 보이고, 백현은 워낙 비실비실해보이니 오래 못걸을것같군. 더이상 시간을 지체해선 안돼. 최대한 빨리...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동족들의 난폭한 모습에 종인이 이를 악물었다. 어서 저주를 풀어야해. “지금부터 우리가 가야할 길은 너희가 상상했던것보다 훨씬 위험하다. 그러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따라와.” “알겠어요.” 망설이던 종인이 오른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따르며 백현이 마른 침을 삼켰다. 언제 어디서 뭐가 나올지 모른다. 긴장되는 마음에 주먹을 꽉 쥐었다 펴자 손바닥에 하얗게 손톱자국이 남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세훈이 단도를 꺼내 나무에 칼집을 새겼다. 이러면 나중에 헷갈리지 않겠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세훈의 뒤로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무의 딱딱한 껍질 위에 일자로 그어지는 선을 따라 검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글쎄. 길이 워낙 다 똑같이 생겨서 헷갈리는군.” 미간을 찡그리며 가시덤불을 손으로 치우는 종인의 팔에 자잘한 상처가 생겼다. 세상에 저걸 무식하게 맨손으로 하다니. 종인을 살짝 밀쳐낸 세훈이 단도로 가시덤불을 잘라냈다. 얼마나 얽혀있었던 것인지 한참을 잘라내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인상을 찡그리던 세훈이 짜증을 내며 칼을 집어던졌다. “길이 막혔잖아. 어떻게 가라는거야?” “아까 방향으로 따져봤을때 이쪽이 맞아. 근데 길이 막혔으니 어쩌지?” 백현이 난감한 표정으로 가시덤불을 툭툭 건드리자, 그 손을 낚아챈 종인이 고개를 까딱했다. “다치니까 함부로 만지지마. 일단 칼부터 줍고 다시 생각해보지.” 그래야겠다. 고개를 끄덕인 백현이 주변을 쓱 훑어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여 아까 칼이 떨어진 바닥을 보자, “어라? 칼이 어디갔지?” 이쯤 떨어졌을텐데. 엎드려서 누런 풀사이를 손으로 헤집던 백현이 순간 휘청했다. “괜찮아요?” “으응. 나무뿌리에 걸렸나봐.” 놀란듯 눈이 동그래진 백현이 천천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깜짝이야. 근데 분명히 흙밖에 없었는데 나무뿌리가 어디있었지? 바닥을 훑어보던 백현이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갸웃했다. “없어.” “뭐가요?” 대답을 하지 않은 백현이 무릎을 굽혀 바닥을 살폈다. 손으로 땅을 짚어도 보고 누런 풀을 뜯어보기도 한 백현이 이상한 느낌에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이상해. “칼이 이쪽으로 떨어지는걸 내 눈으로 똑똑이 봤어. 근데 없잖아. 그리고 내가 걸려 넘어질뻔한 나무뿌리도 없어.” 그 말을 들은 종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젠장, 이렇게 빨리 맞닥뜨릴줄이야. 경계심을 늦추지 않은채 몸을 숙인 종인이 바닥을 더듬었다. 역시 없군. 다시 늑대의 모습으로 돌아간 종인이 으르렁거리며 주위 나무틈을 노려봤다. 갑자기 늑대로 변한 종인의 모습에 덩달아 긴장한 백현과 세훈도 각자 전투태세를 취했다. “조심해!” “윽!” 갑작스레 날아온 단도에 어깨를 스친 세훈이 주저앉았다. 어디서 날아온거지? 주변을 살피며 세훈에게 다가간 백현이 세훈을 부축했다. 어깨를 스치고 떨어진 단도를 주워들자, 세훈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거 아까 제가 던졌던 단도에요. 갑자기 사라지더니 어디서 날아온거지?” 단도를 만지작거리던 세훈이 신음을 삼키며 어깨를 움켜잡았다. 도대체 어디지? 날카롭게 주변을 훑어보던 세훈의 눈에 아까는 없었던 나무뿌리가 보였다. 설마 저건 아니겠지. “아무것도 살지 않을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보네요.” 세훈이 티셔츠의 끝부분을 찢어 어깨에 감으며 중얼거렸다. 손에 묻은 피를 바지에 대충 문질러 닦은 세훈이 칼을 줍기위해 바닥으로 시선을 돌렸다. 손 뿐만아니라 바닥에도 이미 피가 흥건했다. 내가 피를 이렇게 많이 흘렸나? 세훈이 멍하게 바닥을 바라보는 사이에 나무의 뿌리가 그들쪽으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아까는 멀리있던 나무의 뿌리가 지금은 바로 앞에 다가와있었다. 뭔가 이상함을 느끼려는 찰나에 나무의 뿌리가 백현의 발목을 잡아 공중에 들어올렸다. “으악! 이게뭐야!” 벗어나려고 발버둥칠수록 더욱 강하게 옥죄며 발목을 감아오는 나무의 뿌리에 백현이 소리를 질렀다. 그 모습을 본 종인이 나무에 뛰어들어 발톱으로 뿌리를 할퀴었다. 뿌리가 잘려 떨어지며 검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내 피가 아니였잖아?” 바닥에 흥건하던 피를 자신의 것으로 치부했던 세훈이 고개를 내저었다. 세상에. 뿌리가 잘려나가며 바닥에 떨어진 백현이 옅게 신음했다. 백현의 흰 얼굴이 피로 얼룩졌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백현이 손등으로 피를 쓱 닦아냈다. “괜찮아요?” “응. 그것보다 아까 그 뿌리는?” “사라졌다. 어디서 나올지 몰라.” “도대체 그게 뭔데요?” 그게 뭐냐는 백현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종인이 대답했다. “악령쯤으로 생각하면 되겠군. 나무에 붙은 악령. 그놈들은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변형시킬수 있어. 진짜 생명체처럼 피도흘리고 고통도 느끼지.” 말하면서도 주위를 계속 둘러보는 종인의 눈이 날카로웠다. 부스럭- “이거 안놔?” 날카로운 발톱으로 계속 긁어대도 옥죄어오는 힘은 점점 강해졌다. 이대로면 장기가 다 터져 죽을것만 같았다. 배에 가해져오는 압박에 종인의 정신이 점차 희미해졌다. 눈이 감기려는 종인의 모습에 백현이 재빨리 빛으로 창을 소환했다. 하지만, 나무와 종인이 한몸인 양 너무 붙어있어 함부로 조준하기가 어려웠다. 가지가 아니라 몸통을 노리자. 가지가 뻗어나온 쪽을 쭉 따라간 백현이 그 나무의 몸통부분을 조준했다. 칼로 그은듯한 상처에서 피를 뚝뚝 흘리는 나무의 모습이 괴기스러웠다. 빛으로 만든 창을 나무에 던지자, 창이 부딪히는 부분마다 피가흘러내렸다. 「아악! 아파!」 나무가 종인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소리질렀다. 갑작스러운 나무의 말에 놀란 세훈이 나무를 쳐다보자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어낸 나무가 백현을 쏘아보고있었다. 온통 피범벅이 된 나무가 다시 가지를 뻗쳐왔다. 바람으로 가볍게 막은 세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나무에 난 상처. 왠지 익숙한데? “우리한테 왜그러는거야. 우리는 얌전히 길을 지나갔을 뿐인데.” 몸을 추스린 종인이 나무를 향해 소리쳤다. 풀린 다리는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휘청거렸다. 종인의 말에 코웃음친 나무가 다시 말을했다. 「길을 지나갈것이면 그냥 지나가지 왜 멀쩡한 나무에 칼로 상처를 내?」 “칼로 상처를 냈다고?” 아! 탄성과 함께 세훈이 머리를 짚었다. 아까 출발할때 나무에 칼로 위치를 표시해놓았었는데.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다했다. 불안한듯 입술을 잘근잘근 깨무는 세훈을 보며 나무가 소리쳤다. 「너희들 다 죽여버릴거야! 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 |
| EXO GAME; 09 |
악령에 씌인 나무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 소름끼치는 웃음소리에 온몸이 굳는것 같았다. 조용히 눈치를 살피던 백현이 등 뒤로 빛을 소환해 창을 만들어냈다. 퇴로를 확보해야해. 슬금슬금 뒷걸음질 친 백현이 악령 몰래 아까 자르던 가시덤불을 마저 잘라냈다. 그 모습을 본 종인이 백현의 앞을 막아서며 악령의 눈길을 끌었다. “고작 악령에 씌인 풀쪼가리 주제에 우릴 죽일수 있다고 생각하나? 꿈 한번 크군.” 「뭐야? 너 정말 건방지구나? 그렇다면 어디한번 막아봐!」 종인에게 수십개의 가지를 뻗쳐낸 나무가 소리쳤다. 재빨리 순간이동으로 피한 종인이 나무의 뒤로 달려들었다. 날이 선 발톱으로 나무를 할퀴자, 붉은 핏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꺄아아!!! 날 화나게 했어? 너 가만 안둬! 깔깔깔깔」 하이톤의 비명을 내지른 나무가 다시 종인쪽으로 가지를 뻗었다. 그 사이사이로 피해다니던 종인이 뒤에서 뻗어나온 가지에 등허리를 얻어맞고 바닥을 굴렀다. 바닥에 쓰러진 종인에게 나무가 다시 뿌리를 뻗어왔다. “위험해요!” 바람을 일으켜 그것을 막아낸 세훈이 백현에게 눈짓했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백현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빛으로 소환해낸 창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백현의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의 양이 많아졌다. 아씨, 왜이렇게 안돼? 백현은 아직 능력을 완전히 터득한게 아니기때문에 창을 최대치만큼 소환하지 못한다. 대신 여러번에 나눠 적은수의 창을 소환해내야했기에, 체력소모가 훨씬 컸다. “형 빨리!” 다시 세개의 창을 덤불속으로 찔러넣자 뚜두둑 소리와 함께 가시덤불이 풀어졌다. 벌어진 덤불 사이로 막혔던 길이 보였다. “다 됐어!” 백현의 말을 들은 종인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이대로 가다간 당할거야. 눈을 번뜩인 종인이 달려들어 나무의 줄기를 물어뜯었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나무 표면을 뚫으며 선명한 잇자국을 새겼다. 뚫린 구멍 속에서 붉은 피가 꿀렁꿀렁 솟아져나왔다. 지금이야! “도망쳐!” 사람으로 돌아온 종인이 양팔에 각각 세훈과 백현을 낀채 숲으로 내달렸다. 휘청거리며 쓰러진 나무가 다시 뿌리를 뻗어왔다. “젠장. 끈질기군.” 뒤를 힐끗 본 종인이 달리기에 박차를 가했다. 발끝에 닿으려는 뿌리를 발판삼아 도움닫기 한 종인이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그대로 떨어지며 바닥에 곤두박질치려는 순간 몸이 튕겨지며 낯선 장소에 떨어졌다. 「어? 어디갔지? 깔깔깔 잡히면 죽여버릴거야. 너희는 이 숲에서 못벗어나. 깔깔깔깔.」 근처에서 악령의 괴기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생각보다 멀리 못왔네. 혼자면 몰라도 셋이나 순간이동시켰으니 힘이 3배로 드는것은 당연했다. 혼자라면 더 멀리 도망칠수 있었을텐데. 입맛을 다시는 종인에게 다가간 백현이 팔을잡고 그를 일으켰다. “이대로 있다간 다시 잡히겠어요. 빨리 가요.” “알겠다 백현. 너도 일어나 인간. 일어날 수 있지?” “야, 자꾸 인간인간 거릴래? 내 이름은 인간이 아니라 세훈이거든?” “그래 세훈. 근데 왜 갑자기 말을 놓는거지? 내가 너보다 적어도 100년은 더 살았을텐데.” “지금 그게 중요해? 그리고 인간으로 치면 비슷한 또래겠네. 그냥 이 기회에 말 놓자.” 늑대인간의 수명같은걸 알리가 없다. 대충 둘러대며 말을 놓는 세훈의 모습에 기가찬 종인이 헛웃음을 뱉었다. “자자, 그만들싸우고. 빨리 가서 마녀를 잡아야하지 않겠어?” “알겠어요. 가자, 종인아.” 언제부터 친했다고 친근하게 이름을 불러오는 세훈의 모습에 어이없단 표정을 지은 종인이 걸음을 옮겼다. 일단 넘어가자. “아! 세훈이랑 동갑이라 치면 내가 형이네? 그럼 나도 말 놓는다 종인아?”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인 종인이 뭔가 잘못되었다는걸 느꼈다. 분명히 내가 더 오래살았는데... “저쪽으로 가야하지?” 대답을 구하듯 뒤를 돈 백현이 오른쪽을 가리켰다. 오른쪽 산 정상부근에서 활화산이 뭉글뭉글한 마그마를 뱉어내고있었다. 고개를 작게 끄덕인 종인이 백현을 밀어내며 앞장섰다. 앞길에 자욱하게 화산재가 끼어있었다. 이렇게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곳은 위험해. 그나마 자신이 제일 예민하단걸 알기에 위험을 자처한 종인이 손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손이 뿌연 화산재 사이를 가르며 흐릿한 풍경을 뚜렷이 했다. 무엇이 튀어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풍경이었다. 어둑어둑한 주위와 눅눅하고 매캐한 공기. 걷기는커녕 눈을 뜨기조차 어려울 지경이였다.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는 종인의 뒤로 백현이 걸음을 옮겼다. 불안한듯 세훈의 손을 꼭 쥔 백현의 손이 땀으로 축축해졌다. “으앗! 갑자기 왜 멈춰?” “무슨 소리야.” “너가 갑자기 멈춰서 니 등에 부딪혔잖아.” “부딪히다니? 난 걸음을 멈춘적도 없는데.” “세훈아, 너야?” “그럴리가요. 저는 형 바로뒤에 있잖아요, 이렇게 손도 꼭 잡은채로.” 잡은 손을 흔들어보이는 세훈의 모습에 흐릿하게 보이는 셋의 표정이 굳었다. 어디에 부딪힌거지? 그때, 발목부터 뭔가가 타고올라오는 소름끼치는 감촉이 느껴졌다. 스르륵 발목을 감싼 그것이 점점 다리위로 기어올라왔다. 뱀인가? 하지만 뱀이라 하기엔 부딪힌 몸체가 지나치게 커다랗다. “설마 아까 그 나무악령이 벌써 쫓아온건가?” “그건 아닌거같아.” 나무에 부딪혔다면 딱딱한 촉감과함께 통증이 밀려왔을것이다. 하지만, 부딪힌 물체는 물컹하면서도 끈적했다. 도대체 뭐지? 불안한 마음에 손톱을 깨물던 백현이 세훈의 팔을 잡았다. 백현을 감싸안으며 주변을 살피는 세훈의 눈초리가 매서웠다. “형. 제가 바람으로 화산재 날려보낼테니까, 빛으로 주위좀 밝혀주세요.” “알았어.” 아직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았을 터였다. 성치 못한 팔로 이리저리 바람을 일으키는 세훈의 모습에 미안함이 커졌다. 백현이 입술을 꾹 깨물며 빛을 퍼뜨렸다.따뜻한 빛이 점점 퍼지며 주위를 밝혔다. 화산재를 어느정도 날려보내자, 뿌연 시야가 조금은 뚜렷해졌다. “저게뭐에요?” “네펜데스.” “그게 뭔데요?” “딱보면 모르나? 식충식물의 한 종류지만 저렇게 큰건 처음보는군. 벌레가 아니라 사람도 먹겠어.” 백현의 허벅지까지 타고 올라온 그것은 초록빛 기다란 촉수였다. 얇고 긴 그것이 백현의 오른쪽 다리를 자를듯이 조였다. “아악! 아파!” “형!” “백현!” 몸을 뒤틀며 고통을 호소하는 백현의 모습에 두사람이 다급히 소리쳤다. 촉수는 점점더 위로 타고 올라오며 백현의 몸을 결박했다. 거대한 육식식물들의 모습에 기함을 토한 백현이 빛을 소환하려했다. 소환이 되지 않아. 어째서? 아까 힘을 너무써서 그런지 얕게 피어오르다 꺼지는 빛을 허망하게 바라본 백현이 빠져나오려 몸을 이리저리 뒤틀었다. 그럴수록 녹색의 그것은 더 단단히 조여오며 몸을 타고 올랐다. “도와줘!” “형. 그..그게...” “피차일반인것같군.” 세훈의 팔목을 스르르 감고있는 촉수를 본 종인이 인상을 찡그렸다. 종인의 머리위로 축축하고 끈적한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그 액체는 끈끈하게 흘러내리며 머리카락을 녹여냈다. 머리를 털며 고개를 든 종인이 자신의 눈 바로 앞에있는 네펜데스의 입을보고 뒷걸음질쳤다. 적어도 종인의 키의 세배는 될듯한 위압적인 크기. 살짝 벌어진 벌레잡이 통 사이에서는 달콤한 꿀내음이났다. 하지만 그것에서 흘러나온 강산성의 침은 종인의 머리카락을 녹여내고있었다. 머리를 털어내며 으르렁거리는 종인의 모습에 네펜데스가 침을 뱉어냈다. 팔뚝에 달라붙으며 살을 녹여내는 침들에 고통을 삼키던 종인이 크게 팔을 휘둘렀다. 캬아악- “백현이형!” 다리를 절뚝거리며 세훈의 곁에 선 종인이 주위를 살폈다. 없다. 백현이 없어. 온몸이 꽁꽁 결박당한채 울먹이던 백현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분명 세훈보다 백현이 더 긴급한 상황이였다. 손목만 잡힌 세훈에 비해 다리부터 온몸을 다 휘감긴 백현.그것을 망각한 종인이 근처에있던 세훈부터 구했던것이다. “백현부터 구했어야했어.” 이를 뿌드득 갈던 종인이 발톱으로 네펜데스의 큰 벌레잡이통을 할퀴었다. 통이 찢어지며 쏟아져나온 소화액 사이엔 백현이 없었다. 바닥에 닿은 끈적한 침이 흙바닥을 녹여냈다. 아마 이렇게 강한 산성이라면 작은 몸은 순식간에 녹아버렸으리라. 체념한듯 길게 울부짖는 종인의 몸위로 세훈이 왈칵 쏟아져내렸다. 어떡해. 세훈의 눈가에 눈물이 아롱거렸다.
“으아!죽을뻔했네!” 그때, 뒷쪽에서 백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살아있는거 맞죠?” “그럼 죽은줄 알았어?” “어떻게 된거야? 사라져서 놀랬잖아.” 어떻게 된거냐고? 글쎄.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했던가. 촉수에 돌돌 말려 눈만 보이게된 백현이 그대로 네펜데스의 입에 떨어졌다. 거대한 통에 쏙 들어간 백현이 급하게 통을 두드렸다. 야속하게도 벌어진 입이 닫히며 주위가 깜깜해졌다. 어디선가 달콤한 꿀내음이 났다. 자신도 모르게 홀린 백현이 몸을 더 깊이 파묻었다. 치이익- “아악!” 깊은 곳에 있는 소화액이 백현의 다리에 닿으며 옷을 녹여냈다. 녹은 옷이 살과 닿아 눌어붙었다. 고통에 끙끙거리던 백현이 몸을 웅크렸다. 이대로 죽는건가? 이렇게 죽기는 싫다. 소화액이 점점 퍼지며 백현의 몸 이곳저곳을 녹이려들었다. 필사적으로 눈을 뜬 백현이 눈을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 자신을 걱정할 세훈과 종인이 떠오른 백현이 이를 꽉물었다. 이대로 죽을수는 없어.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며 빛을 소환했다. 그 어느때보다도 환한 빛이 어두운 내부를 밝혔다. 자신의 팔 부근에 닿으려는 액체의 모습에 재빨리 창의 형태로 빛을 변형한 백현이 그대로 그것을 찔러넣었다. 열 두개의 창이 사방으로 꽂히며 네펜데스의 몸체가 너덜너덜해졌다. 그 틈으로 빠져나오자, 무너지듯 종인에게 기댄 세훈과 다리를 절뚝거리며 울부짖는 종인이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다시는 못볼줄알았어요.” “내가 그렇게 약해보여?” ”응.” ”김종인! 너한테 물어본거 아니거든?” 다시 평소와 같이 장난치며 웃는 백현의 모습에 둘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다행이야. 살짝 웃으며 백현을 밀치자 그대로 주저앉은 백현이 앓는소리를 냈다. “아으으으 아파라.” “괜찮아요?” “나야 뭐, 괜찮아. 그보다 종인이랑 너가 더 심해보이는데?” 발목에 느껴지는 통증에 인상을 찡그리던 백현이 고개를 들어 둘의 모습을 살폈다. 어깨에 묶은 천 사이로 피가 다시 비집고 나오는 세훈과 다리를 다친듯 절룩이는 종인. 이대로 다시 이동하긴 무리인것 같아 자리에 주저앉은 백현이 발목께를 어루만졌다. “오늘은 여기서 쉬고, 내일 다시 이동하자.” “안돼. 그러다 그 나무악령이 쫓아오면?” “지금 다들 너무 지쳤어. 상처도 심하고. 이상태로 더 걸었다간 위험할지도 몰라.” “맞아요. 이상태로 붉은마녀랑 싸워서 이길자신도 없고.” 한숨을 내쉰 종인이 철푸덕 주저앉았다. 몸을 둥글게 웅크린 종인이 눈을 감았다. 세훈이 근처에 앉아 종인의 꼬리를 만지작거렸다. 종인은 살짝 움찔할뿐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많이 지쳤다는거겠지. “나 잠깐 근처좀 둘러보고올게.” ”안돼, 위험해.” 감은 눈을 느리게 뜬 종인이 대꾸했다. 세훈도 동감이라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무시한 백현이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며 걸음을 옮겼다. 뒤쫓아올 힘도 없을것이다. 분명 저대로 놔두면 덧날 상처들. 세훈의 경우엔 피를 많이흘려 위험했다. 안그래도 새하얀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분명 주변에 약초가 있을것이다. 자신때문에 덧낫을 상처에 마음이 무거워진 백현이 근처 풀숲을 헤집었다. 이리저리 뒤적여도 다 똑같이 말라죽은 풀밖에 없었다. 백현도 체력적으로 많이 지친상황. 결국 아무것도 찾지못한 백현이 몸을 돌렸다. “아!” 나무 밑 작은 꽃에서 하얗게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세계수의 숲에서 봤던것과 같은 광경. 저 꽃은 분명 둘의 상처를 낫게할수 있을것이다. 다급하게 뛰어간 백현이 닥치는대로 꽃을 뽑있다. 작은 주머니에 꾹꾹 쑤셔넣고도 모자라 두손 가득 쥔 꽃을보며 백현이 환하게 웃었다. 세훈과 종인이 있는쪽으로 뛰어가려던 백현의 모습이 멈칫했다. 다시 주위에 빛이 떠오르며 백현을 감쌌다. 「축하합니다! 스킬을 마스터하셨습니다.」 이젠 제법 익숙한 글귀에 눈꼬리를 접어 웃는 백현의 위로 스킬북이 떨어졌다. 주섬주섬 주머니에 꽃을 우겨넣은 백현이 책을 펼쳤다. 첫장에 적힌 라이트 스피어(Light Spear)에는 붉은 필기채로 Master 라고 적혀있었다. 책을 탁 소리나게 덮은 백현이 둘이 있는곳으로 내달렸다. 덮힘과 동시에 사라진 책과 흩어진 글귀들. 콧노래를 부르며 둘의 앞에 당도한 백현이 주머니를 뒤집어 꽃들을 와르르 쏟아내었다. “이게 뭐야?” ”약초. 이걸 찧어서 상처부위에 바를거야.” ”아무거나 발랐다가 덧나면? 알지도 못하는 풀 주워오지마. 위험하니까.” “아니야. 이건 약초가 확실해!” “그걸 어떻게 확신하는데?” ”혹시,형. 저번처럼 이 풀이 하얗게 빛났어요?” 고개를 끄덕인 백현이 꽃을 한움큼 집어들었다. 주변에 잡히는 날카로운 돌멩이로 그것을 짓이기는 백현의 모습에 세훈이 조용히 팔을 내밀었다. 어깨에 매듭지어진 천을 풀러내고 피를 닦아낸 백현이 그 위에 약초를 덧댔다. 다시 단단히 매듭을 지은 백현이 뿌듯하게 웃었다. “다됐다! 종인이 너도 이리와.” “이거 진짜 괜찮은거 맞지?” 미심쩍은듯 주춤거리는 종인의 팔을 확 낚아챈 백현이 상처를 살폈다. 둥그렇게 타들어간 자국에 인상을 찌푸리던 백현이 조심스럽게 약초를 발랐다. 아픈듯 신음하는 종인의 팔을 단단히 잡은채 상처난곳마다 약초를 덧대는 백현의 표정은 비장하기까지했다. “살살좀해.” “이런것가지고 엄살은.” 다 된듯 팔을 툭툭 두들기는 백현에 재빨리 팔을빼낸 종인이 다시 몸을 웅크렸다. “피곤할테니 일단 자자. 그리고 내일은 꼭 마녀를 잡는거야.” “응. 다들 잘자!” “형도 잘자요.” 길게 하품한 백현이 종인의 옆에 몸을 뉘었다. 복슬거리는 털과 따뜻한 체온에 잠이 솔솔 밀려왔다. 세훈의 몸이 등뒤에 닿아오는것을 느끼며 백현은 잠에 빠져들었다.
“인간들이라. 내 숲에 인간따위가 들어오다니 불쾌하군.” 붉은 수정구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잠을 청하는 셋의 모습이 비춰졌다. 그 모습을 들여다보는 여자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날카롭게 그것을 째리던 여자가 별안간 웃어재끼기 시작했다. “호호호. 나를 잡으러 왔다니. 그에맞는 환영인사는 해줘야겠지?” 어둠속으로 사라진 그녀의 모습에 붉은 수정구가 깨지며 날카로운 파열음을 냈다. 쨍그랑- |
| EXO GAME; 10 |
주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눈뜬 백현이 몸을 일으켜 소리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백현. 나때문에 깬건가?” “아니야. 벌써 아침이야?” “그래. 세훈은 일어날 생각도 안하는군.” “쟤가 원래 좀 잠이 많아.” 길게 하품을 한 백현이 세훈을 깨웠다. 몸을 살살 흔들자 꿈틀거리던 세훈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으아 눈부셔. 세훈의 눈이 따가운 햇살에 한껏 찌푸려졌다. 팔을 쭉 펴 기지개를 하던 세훈이 종인에게로 눈을 돌렸다. “종인아? 너 털이 왜그래?” “아, 이거? 늑대 특성상 아침이되면 힘이 약해져. 그래서 털 색이 퇴색되는거다. 밤이 되면 다시 돌아와.” 커다란 몸을 덮은 부드러운 털과 매끈하게 뻗은 다리, 뾰족한 귀까지. 이는 늑대의 모습을 한 종인이 확실했다. 근데 하나 다른점은 검은 종인의 털이 어두운 잿빛으로 변했다는 것. 별거 아니라는듯 고개를 돌린 종인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윤기가 흐르는 잿빛 털 사이로 삐쭉 솟은 귀를 만지작 거리던 백현이 입을 삐죽였다. 왜 난 눈치못챘지? 바본가봐. 자신의 귀를 만지작거리는 백현의 손을 떨쳐내며 종인이 입에 물고있던것을 내려놓았다. 아침 일찍부터 나가 사냥한것인지 몸집이 제법 큰 새가 그들 앞으로 내밀어졌다. 입가에 묻은 피를 혀로 쓱 핥은 종인이 다시 바닥에 엎드렸다. “종인아, 넌 안먹어?” “난 한끼쯤 안먹어도 문제없다. 하지만 너희는 다르잖아.” “그래도 먹어야 힘이나지!” “그런거 안먹어도 충분히 힘 나니까 너네나 먹어.” 두 다리 사이로 고개를 파묻은 종인이 웅얼거렸다. 걱정되는듯 종인을 힐끔힐끔 쳐다보던 백현이 이내 칼을 꺼내들어 그것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아직 살아있었던듯 새가 푸드덕거리며 백현의 손에서 벗어나려하자 인상을 찌푸린 백현이 새의 숨통을 끊어놓고, 부위별로 잘라 먹기 좋게 손질했다. 손질한 고기를 나뭇잎위에 얹고, 그 중 한점을 종인의 앞으로 내밀자 앞으로 무언가 끌리는 소리에 종인의 귀가 쫑긋거렸다. 자신의 앞으로 내밀어진 고기에 킁킁거리며 냄새를맡던 종인이 이내 고개를 확 돌렸다. 먹으라고 해도 고집스레 입을 다물고있는 종인의 모습에 한숨을 내쉰 백현이 종인의 귀를 잡아당겼다. “아! 뭐하는짓이야!” “말좀 들어라 이 똥개야!” “똥개? 지금 나보고 똥개라고 하는거냐.” “그래, 이 똥개야! 이거 안먹으면 계속 똥개라고 부를거야.” 으드득 이를 간 종인이 앞에 내밀어진 고기를 낚아챘다. 고기를 찢어발기듯 한입에 삼켜버린 종인을 보며 백현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왠지 당한거 같은건 기분탓이겠지? 자신의 몫인 고기를 야금야금 베어먹던 세훈이 종인의 등위로 엎어졌다. 보드라운 털에 볼을 마구 부비적거리던 세훈이 종인의 허리를 꽉 껴안았다. 기겁한 종인이 세훈을 떼어내려고 몸을 이리저리 흔들자 그 움직임에 따라 흔들거리던 세훈이 종인의 몸 위에서 툭 떨어졌다. 아무렇지도 않은척 몸을 일으킨 세훈이 쪽팔렸는지 팔을 문지르며 빨리 가자고 성화를 부렸다. “지금 이럴 시간 없어요. 빨리 가죠?” “그래. 더 늦기전에 서두르자.” 세훈을 따라 몸을 일으킨 백현이 종인의 다리를 잡고 일으켜세웠다. 졸지에 두발로 서게된 종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잡힌 손을 빼 이슬맺힌 머리칼을 털어내며 걸음을 옮기는 종인의 등 뒤로 세훈이 바람을 띄웠다. “이쪽이야.” 나무악령을 만날까봐 노심초사하며 걸음을 재촉하던 셋의 앞으로 돌멩이 하나가 굴러떨어졌다. 그것을 콱 밟은 종인이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지? 분명 아무도 없는것같은데 누가 지켜보는듯한 느낌이든다. 그 돌멩이를 발로 툭 차고 날아가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돌멩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렇다할 반응은 없었다. 아무래도 찝찝한 기분에 계속 주위를 관찰하던 종인이 아무것도 발견치 못하자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종인은 산에서 오래 살아서 그런지 산 타는 폼이 제법 능숙해보였다. 반면에 등산이 미숙한 둘은 얼마 오르지 않아 금세 지친 모양이였다. 지친 세훈과 백현은 가빠오는 숨에 산 오르길 포기하고, 세훈이 띄워놓은 바람에 몸을 얹었다. 둘을 태운 바람은 느리고 여유롭게 산을 타고올랐다. 빠른걸음으로 먼저 정상에 도달한 종인이 밑을 내려다보았다. 연한 바람을 탄 세훈과 백현이 천천히 다가오고있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될것같네. 세훈이 더 세게 바람을 위로 밀어올렸다. 흔들리는 몸에 중심을 잡고 골똘하게 뭔가를 생각하던 백현이 세훈의 눈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느긋하게 누워 하늘을 바라보던 세훈은 눈 앞에 손이 드리워지자 짜증난다는듯 손을 홱 치워냈다. 손을 치워내자 심각한 표정의 백현이 그를 바라보고있었다. “잠깐 멈춰봐.” “왜요? 정상까진 아직 조금 남았는데?” “동굴말이야, 너무 쉽게 발견된것 같지 않아?” ”에?” “마치 우리를 끌여들이려는것 같아. 의도적으로.” “에이, 그럴리가요.” “아니. 확실해. 종인이가 몇달전부터 찾아헤매도 못찾던 곳이야. 알다시피 종인이의 능력은 순간이동. 신체능력도 우리보다 월등해. 아마 종인이는 이 넓은 숲을 다 뒤져봤을테지. 그런데도 발견못한곳이 이렇게 쉽게 발견될리가 있겠어?” 말을 마친 백현이 입을 꾹 닫았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초조한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세훈이 바람을 넓게 퍼뜨렸다.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종인의 기운을 잡으려 바람을 흘려보내는 세훈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기운이 사라졌어. 좀 더 짙은 바람을 퍼뜨리는 세훈의 표정이 굳어졌다. 종인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백현이형. 종인이의 기운이 바람에 얽히지 않아요.” “무슨소리야. 기운이 얽히지 않다니?” “바람결에 무언가가 닿으면 그것이 제 손끝에 전해지게 되있어요. 근데 아무것도 닿지 않아요. 이 경우에는 두가지에요. 기운을 차단시키는 어딘가로 들어갔거나, 죽었거나.” “죽었다라. 그렇다면 무슨 소리라도 들렸겠지. 종인이가 그렇게 쉽게 죽을애도 아니고.” “그렇다면 답은 하나네요. 그 동굴로 들어간것 같아요. 그 동굴이 종인이의 기운이 외부에 새나가는것을 막은것같고요.” 기운을 차단하다니, 역시 뭔가 있었어. 말을 마친 세훈이가 바람을 거두었다. 소용돌이치며 세훈의 손에 감기던 바람이 이내 사그라졌다. 그 동굴로 가야겠어. 세훈이 바람에 힘을 실어 속도를 높였다. 느릿하던 바람이 휘몰아치며 항해하듯 앞으로 미끄러져나갔다. 가공할만큼 강한 속도에 몸이 흔들렸다. 아까보다 훨씬 빨라진 속력에 동굴이 점점 가까워지자 세훈이 점점 속도를 늦췄다. 안전하게 동굴앞에 착지한 둘이 동굴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동굴 앞에는 커다란 흰색 돌이 놓여져있어 동굴의 출입을 막고있었다. 바람으로 손쉽게 그것을 밀어낸 세훈이 동굴로 발을 내딛었다. 한치 앞도 보이지않는 시꺼먼 굴은 괴물이 입을 벌리고 있는듯한 착각을 일게했다. 땀에 젖어 축축한 손을 바지춤에 문질러닦은 백현이 세훈의 뒤를따라 동굴에 진입했다 . “아무것도 안보여요.” “그러게. 종인이는 어떻게 된거지?” “일단 더 깊이 들어가봐요.” “그래.” 백현이 손가락 위로 작은 빛을 소환해내자 어두웠던 동굴 내부가 순식간에 밝아졌다. “형! 조심해요!” 강한 힘으로 백현의 팔을 낚아채 제 품으로 당긴 세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백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자 불과 한걸음 앞에 낭떠러지가 있었다. 그 낭떠러지 끝에는 뜨거운 마그마가 용솟음치며 끓어오르고 있었다. 백현의 발치에 있던 작은 돌멩이가 밑으로 굴러떨어지며 마그마에 삼켜졌다. 빛을 밝히지 않았다면 큰일날뻔했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던 백현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종인이 빛을 소환할수 있을리 만무했다. 그렇다면 한치 앞도 보이지않는 어둠속에서 이 곳을 지났다는것이다. 불안함에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던 백현이 세훈과 눈을 맞췄다. 백현의 생각을 알아차린듯 세훈이 잠시 인상을 굳혔다가 표정을 풀었다. “괜찮을거에요. 야행성동물이잖아요 늑대는. 잘 알아채고 건너갔을거에요.” 그 소리에 조금 안정이 된 백현이 세훈의 손을 치워냈다. 손을 거둔 세훈이 바람을 일으켜 둘의 몸을 단단히 휘감았다. “형. 이 위로 지나갈거에요. 바람이 조금 세게 조여도 참아요.” 그 상태로 몸을 띄운 바람이 낭떠러지의 위를 조심스레 비행했다. 낭떠러지 위에서 밑을 내려다 보니 아찔한 풍경에 백현이 눈을 질끔 감았다. 시뻘건 마그마가 그들을 집어삼킬듯 넘실대고 있었다. 이따금씩 튀어오르는 붉은 파편이 몸에 닿을것만 같다. “형, 이제 눈떠도 돼요.” 세훈의 말과 함께 바닥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 조심스레 눈을 뜬 백현이 주위를 비추며 종인을 찾았다. 없네. 실망한 표정의 백현을 다독이며 세훈이 더 깊은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쪽에선 뾰족한 종유석들이 천장에서 제각각의 크기대로 자라고 있었다. 종유석 모서리에서 물이 한방울씩 떨어지며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똑-똑- “세훈아, 어디서 진동 울리는것 같지 않아?” “글쎄요. 전 잘 모르겠는데요?” 순간, 강한 진동이 느껴지며 동굴 전체가 흔들렸다. 발끝부터 타고 올라오는 거센 진동에 백현이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동굴 안쪽으로부터 크고 작은 돌들이 굴러떨어지고 있었고, 진동은 천장까지 거세게 울리며 종유석들을 마구 흔들었다. “백현이형! 피해요!” 흔들리던 종유석들은 밑둥이 부러진채 일제히 백현이 있는곳을 겨냥하며 떨어졌다. 세훈이 다급히 손을 뻗어 백현쪽으로 바람을 보냈으나, 흔들리는 지반탓에 바람마저 공중으로 흩어져버렸다. 뾰족한 종유석들이 정확히 백현의 위로 떨어졌다. 그것들은 몸의 이곳저곳을 긁어 상처를 내고 바닥에 떨어져 산산이 부셔졌다. 그것들이 지나간 곳에선 핏망울이 고여 방울방울 떨어져내렸다. “형, 괜찮아요?” “으윽...괜찮아.” “피 많이 나요. 걸을 수 있겠어요?” “다리는 안다쳤어. 괜찮으니까 가자.” 백현이 몸을 웅크린탓에 뾰족한 모서리가 다리를 피해 어깨며 팔뚝을 긁어냈다. 자잘한 상처였으나, 다친 부위가 많아 꽤 많은 피가 흘렀다. 옅게 피가 베어나오는 상처들에 인상을 찌푸린 백현이 주머니를 뒤적였다. 주머니를 뒤집자 어제 만들어놓은 약초가 후두둑 떨어졌다. 바닥을 더듬으며 그것을 집어낸 백현이 상처부위에 바르기 시작했다. 착잡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세훈이 바닥이 울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정면을 응시했다. 낭패다. 아까 진동탓에 중심을 잃은 바윗덩어리들이 굴러오고 있었다. 세훈이 백현의 앞으로 선채 바람을 일으켰다. 잔잔한 바람이 점점 거세지면서 막을 치듯 그들을 감쌌다. “온다!” 바윗덩어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굴이 꽤 긴듯 한참을 지나 그들앞에 나타단 돌무더기에 세훈이 바람을 날렸다. 큰 바위부터 차근차근 날려버리자 그것들이 바닥에 떨어져 파편이 튀어 다시 굴러왔다. 인상을 찌푸린 세훈이 소용돌이를 일으켜 그것들을 가뒀다. 그 상태로 바람을 뒤로 던지자 그것이 소용돌이치며 뒤로 나아가다 낭떨어지에 떨어졌다. “다행이다.” “우리 빨리 가자. 종인이가 위험해질지도 모르잖아.” “네. 제 손 잡고 일어나요.” 세훈이 내민 손을 꼭 잡고 몸을 일으킨 백현이 앞서 걷기 시작했다.
작은 동굴에 몸을 우겨넣은 종인이 궁시렁거렸다. 좁은 틈에 몸이 끼었는지 한참 뒤척이자 쑥 하고 몸이 밑으로 떨어졌다. 좁고 긴 통로를 따라 떨어지던 종인이 바닥에 충돌했다. 허리를 타고 올라오는 찌르르한 감각에 몸을 뒤틀던 종인이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위를 쳐다보자 계단 끄트머리에 큰 구멍이 있었고 그 길을따라 긴 통로가 나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던 중에 구멍으로 발을 내밀어 그 통로를 따라 밑으로 떨어진 것. 작은 틈으로 빛이들어와 미약하게나마 내부를 밝혔다. 아무것도 없이 넓고 평평한 동굴. 딱히 위험할만한 요소는 없어보였다. “그 바보들, 설마 돌로 막아놓기까지했는데 그 동굴로 들어간건 아니겠지?” 아까 종인은 세훈과 백현보다 먼저 정상에 도착해 주변을 살피고있었다. 큰 나무 사이를 누비며 네펜데스나 나무악령이 없는지, 독거미나 야수는 없는지 살피던 종인이 이내 동굴 입구에 섰다. 동굴 입구에서 서성이며 둘을 기다리던 종인이 지루함에 발코로 바닥을 툭툭쳤다. “이게 뭐지?” 흙이 발끝에 채이며 그 속에 묻혀있던 나뭇잎들을 드러냈다. 그 앞에 쭈그리고 앉은 종인이 손으로 나뭇잎들을 치워냈다. 옆으로 그것들을 쓱쓱 밀어내자, 오래된듯한 나무판자가 드러났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녹이 슨 쇠로 동그란 문고리가 있었다. 문인가? 걸쇠도 없이 달랑 고리만 있는 문에 열까말까 고민하던 종인이 이내 그것을 힘껏 잡아당겼다. 끼이익- “입구를 막아놓으면 안들어가겠지.” 주변에 놓인 큰 바위를 입구에 옮겨놓은 종인이 다시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음같아선 기다렸다 같이가고싶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없었다. 종인에겐 한시가 급했다. 미쳐가는 동료들을 보며 삼킨 눈물과 쓰디쓴 절규.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스스로에 대한 무력감. 이를 꽉 깨문 종인이 계단에 발을 들였다. 한걸음 한걸음. 밑으로 발을 내딛을수록 끝없는 어둠에 잠식당하는 느낌이였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어두워져 이내 눈에 보이는것은 암흑뿐이였다. 다시 한걸음. “으악!” 발 밑이 쑥 꺼지며 밑으로 난 구멍에 몸이 끼인것이였다. 그리고 그 때, 세훈이 바람으로 돌을 치워내 종인이 막아놓은 동굴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자신이 돌로 막아놨음에도 찜찜한 기분이 든 종인이 고개를 저으며 더 깊은 내부로 들어갔다. 조용한 내부. 하다못해 물소리라던가 마그마가 끓어오르는소리조차 들리지않았다. 온통 어둠뿐인 내부에 제자리에 선 종인이 눈을 부릅떴다. 암순응에 동굴 내부가 흐릿하게나마 보였다. 아무것도 없네.근데 왜... “누가 지켜보는 기분이 들까?” 경계태세를 갖춘 종인의 등뒤로 무언가가 꾸물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종인의 등 뒤의 벽에서 흐물거리는 인간의 형태를 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마치 그림자같았다. 검은 몸을 가진 그것들이 어둠을 통해 몸을 꺼내며, 종인에게 달려들었다. “이게 뭐야!” 종인이 크게 팔을 휘두르자 그림자인간이 반으로 갈라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것은 녹아 흐물거리는 액체가되어 어둠속에 스며들었다. 그러자, 그 속에서 다시 그것들이 나와 종인에게 달려들었다. 그것을 아무리 베어도, 그것들은 어둠속에 스며 다시 몸을 드러냈다. “끊임없이 나오는군.” 늑대의 모습으로 변한 종인이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그림자 인간들은 어둠이 있는 곳이라면 아무데서나 튀어나왔다. 아마 어둡게 그늘진곳에서만 밖으로 몸을 내보낼 수 있는것 같았다. 흐느적거리며 무더기로 쏟아져나오는 그림자인간들에 종인의 몸에 자잘한 상처가 늘어났다. 아침이라 그런지 훨씬 약해진 종인의 힘. 다시 달려드는 그림자인간을 물어뜯은 종인의 동공이 느슨하게 풀렸다. 사방이 어둠에 둘러쌓여있어그런지 그것들은 끊임없이 나오고 사라짐을 반복했다. 지친 종인이 바닥에 쓰러질듯 휘청거리자 그림자 인간들이 떼거지로 종인에게 달려들었다. 피해야해. 종인이 남은 힘을 짜내 순간이동을 하려 공간을 찢어낸 순간, 강렬한 빛이 쏟아져나왔다. 종인에게 달려드려던 그림자인간들이 순간 움찔하더니 빛에 타며 사라졌다. 어둠이 진 곳이 빛에 밝혀지며 그림자인간들이 나타날 수 없게 되었다. 끄아아아악-
“빛이 사라졌어.” 백현의 빛에 의존해 힘겹게 한발한발 걷던 둘의 시야가 일순간 어두워졌다. 무언가 강렬히 빨려드는 느낌과 함께 빛이 사라졌다. 흔적조차없이. 왠지 익숙한 느낌에 입술만 깨물던 세훈이 손뼉을 쳤다. “순간이동 했을때의 느낌같아요.” “순간이동이라면...종인이?” “네. 근데 종인이가 순간이동을 썼다면?” “종인이가 위험한 상황이라는거지. 젠장, 어디있는거야?” 종인이 순간이동으로 차원을 열었을때, 그 곳으로 백현의 빛이 빨려들어간 것. 힘이 약해진 종인이 몸을 이동시키거나 둘을 데려올 여력이 안되어, 쉽게 잡힌 백현의 능력인 빛을 이동시킨것이다. 빛이 사라진곳으로 손을뻗자, 미약하게나마 빨려드는듯한 힘이 느껴졌다. “세훈아, 여기서 빨려드는듯한 힘이 느껴져. 너무 약해서 될지는 모르지만 우리 한번 가보자.” “그래요. 사라지기전에 빨리.” 백현의 손이 허공을 맴돌다가 한 곳에 멈췄다. 여기다. 빨려드는듯한 힘이 느껴지자, 백현이 있는 힘껏 그곳으로 몸을던졌다. “사라졌어! 아직 열렸나보다. 나도 빨리 가야지.” 백현이 사라진곳으로 세훈도 몸을 던졌다. |
스포일러!!!!! |
안녕하세요!작가 엑소프론티어입니다!제가 연재텀이 최근들어 많이 길어지다보니..죄송한 마음이 드네요ㅠㅠ스아실...저번에 읽어주신분은 100분가까이 되는데 댓글수가 적어서 상처받....하하핳핳하하... 그래도 제 EXO GAME을 사랑해주시는 분들을 위해 스포일러를 준비했어요!!
1. 등장인물 순서
K(백현)-K(세훈)-K(종인)-K-M-M-?-M-K-?-K-M-?-M-M
지금 백현이, 세훈이, 종인이까지 등장했죠! 앞으로 순서는 저렇게 될것 같습니다. 제가 맘이 변치 않는다면...핳하.. 중간중간에 미지의(?) 등장인물이 나와요!ㅎㅎ앞으로 쭉 지켜봐주세요!
2. 러브라인(커플링)
아직 제대로 정해진 커플링은 [카디/세준/루민/클첸/찬백/레이타오
3. 붉은 마녀 에피소드 후 나올 에피소드
아마...소인족의 나라로....예...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컨셉이나 걸리버 여행기 컨셉중 고민입니다ㅋㅋㅋ
4. 만약 각 멤버별로 에피소드 이름을 정한다면!
백현- In Game 세훈- 바람꽃(그 이유는 나중에...) 카이- 늑대와 함꼐 춤을 경수- 작은 소년과 소인족의 나라 준면- 모험, 인어의 노래(확실치 않아요) 찬열- 동화속으로 민석- 차가운 심장의 아이 루한- 눈과 심장 타오- 아카식 레코드 (부제:시간을 뛰어넘어) 크리스- 용의 둥지 레이- 인형사와 장난감 하우스 종대- 뇌신의 성
헐 겁나 스포 많이했닼ㅋㅋㅋ이거 안보면 바보ㅋㅋㅋ개인적으로 타오 에피소드가 가장 마음에 들고 스토리가 잘나오는중ㅋㅋ
그리고 Q&A 받아요!!!
예를들면) 헐 작가님 다섯번째 등장하는 M멤버는 누규??? 이런 질문도 받습니다. 근데 ?에 대해선 비밀ㅋㅋㅋ 그럼 사랑해요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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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 3까지 나온 마당에 이나은은 진짜 불쌍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