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예요 여러분! 됴혜예요.
늦은 밤 드디어 어언 1년만에 열네번째 교실이 왔습니다.
작년 가을에 쓰던 것 같은데, 이번엔 여름이라 좀 분위기가 살려나 모르겠네요 허허...
처음 본 분들은 1편부터 정주행해주시면 제 사랑을 드릴게요.
금손 작가님들 팬픽이 나도는 인티에서 제가 살아남을 지 모르겠네요... 또르르르....
여전히 신알신, 암호닉은 사랑입니다♡ 하트
11
"이제 4반이야."
"..."
"불안하지 않냐? 또 4야."
백현이 고개를 저었다.
지긋지긋하다. 나지막히 내뱉은 혼잣말이 고요한 정적을 뚫고 누군가에게 한 말처럼 대답을 기다리는 듯 했다.
백현이 모두를 한 번 돌아보고 한숨을 쉬며 신발 코로 바닥을 툭툭 쳤다. 여기 갇힌 이후로 한숨만 느는 것 같아 짜증이 올라왔다. 나가면 성격까지 바꿔놓겠네.
찬열이 킁 소리를 내더니 백현의 신발을 자신의 발로 꾹 눌렀다. 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백현이 홱 고개를 돌려 찬열을 노려봤다. 에이씨 신발 더러워졌잖아, 박찬열.
이거 어차피 내가 생일 때 사준거잖아. 그리고 니건 내거 내 것도 내거.
지랄한다. 백현이 발을 들어 찬열의 신발을 신나게 밟았다.
경수가 그런 둘을 보고 잠시 눈을 돌려 자신의 신발을 쳐다봤다.
하도 좋아했던터라 닳고 닳도록 신어서 안쓰럽게 느꼈었는지 작년 크리스마스 때 종인이 1년동안 안 울어서 주는 선물이라고 머리를 긁적거리며 준 것이였다.
기뻐하며 뜯어 봤는데 안에는 같은 디자인의 새 신발이 들어있었다. 고맙다고 종인을 끌어 안고 바보 같이 웃었었지.
그 때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이였는데, 김종인 또 혼자 엄청 부끄러워 했겠다.
'오, 김깜종 왠일이래? 마침 하나 사려했었는데. 고마워.'
종인이 사줬던 신발을 아직도 신고 있다.
기억을 떠올리다가 옆에 있던 종인을 보면서 슬쩍 웃어보였다.
고마워. 입 모양으로만 뻐끔대니까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들은 듯 응? 이라고 반문을 해왔지만 경수는 그냥 웃고만 있었다.
"종인아."
"응."
"우리, 꼭 여기서 나가면..."
"..."
"나랑 똑같은 신발 사자, 알았지?"
종인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종인도 경수를 따라 미소를 지었다.
종인아, 너 덕분에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
*
"...이게, 뭐야."
"미친 새끼..."
"뭐 어쩌자는 거야."
이전의 반들처럼 눈을 질끈 감고 긴장하며 4반의 문을 열었다.
준면이 어두워서 더듬더듬 문 옆에 있던 스위치를 눌러 형광등을 켰다.
머릿 속 가득히 지배하고 있던 피범벅의 교실이 아니였다. 그렇다고 평범한 교실도 아니였다.
세훈이 전에 없던 함박 웃음을 지으며 반 안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와- 먹을 거다!"
"세훈아 손 대지 마."
"형, 나 배고픈데."
"일단 자리에 앉자. 의자가 하나 남네."
"민석이가 살 줄 알았나봐."
준희는 또 한 번 모두의 심기를 건들이는 말을 했으나, 과민반응 해봤자 자신들의 손해라는 것을 알고 있는터라, 움찔할 뿐 자리에 앉았다.
경수는 민석이 살 수 있었다는 생각에 준희의 말이 삼켜지지 못하고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박혔다. 내려가지 않아. 답답해.
교실 안은 지금까지와 달리 괴리감이 너무도 컸다.
싹 깨끗이 비워진 교실에는 책걸상 대신, 긴 파티용 식탁과 그에 맞는 푹신한 의자 9개가 마치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그들을 반겼다.
경수의 한 쪽 의자가 비었다. 반대편에는 종인이 자연스럽게 앉았다.
하얀식탁과 대비 되는 알록달록하고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즐비하게 차려져있었다.
좀 식은 듯 했지만, 먹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 정도로 맛있어 보였다.
다들 아침부터 굶었던터라 충분히 허기질 만 했다.
그러나 먹을 것이 간절하지 않았던 것은 벌써 친구들의 시체를 세 구나 본 탓이였다. 식욕이 저하되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시계를 보니 벌써 시간은 다음 날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같은 학교 친구 셋을 잃었다.
당장 눈 앞에 있는 음식들을 보니 군침이 절로 넘어갔다. 속이 싸하고 쓰린 게 그제서야 배고픔이 몰려왔다.
하지만 누구 하나 컵에 담긴 물조차 들이키지 못했다.
이 상황에 겁이 나는 것은 당연지사. 아직은 배고픔보단 머릿 속에 이성이 더 크게 지배하고 있는 터라 의구심부터 들었다.
세훈은 그래도 먹고 싶은지 자꾸만 침을 꼴딱거렸다.
"아...먹고 싶어. 배고프다."
"우리 계속 한 끼도 못 먹었잖아. 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맞아."
"먹지마, 그래도. 그 싸이코 새끼가 여기에 뭘 탔는지 어떻게 알아."
"그럼 어떡해. 나 목도 엄청 마른데..."
다들 음식을 앞에 놓고 못 먹는 상황에 칭얼거렸다.
하지만 선뜻 먹는 사람은 없었다.
먹고 나서 피를 토하며 죽는 자신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졌다. 자꾸 음식과 싸늘한 자신의 시체가 오버랩 됐다.
유심히 음식을 바라보던 준면이 닭고기 샐러드에 작은 깃발처럼 꽂혀있던 쪽지를 발견했다. 준면은 모두를 집중시키고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4년만의 제대로 된 만찬. 안심하고 드셔도 됩니다.>
4년만의 제대로 된 만찬이라는 글씨 옆에는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음식 포장봉지에 '안심하고 드셔도 됩니다.' 라는 글귀를 잘라내서 붙인 듯한 쪼가리가 붙어 있었다.
"4년만의 제대로 된 만찬?"
"4년만이라니...."
*
"와 존나 더워."
찬열이 손으로 부채질을 하다가 문을 열었다. 실내에 들어오니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게 땀을 식혔다. 오 천국이다... 역시 우리 면느님이야!
찬열의 엄지 손가락이 굳게 치켜 세워졌다. 면느님? 준면이 형의 표정이 별로 탐탁지 않게 변했다. 모두 자리를 잡고 앉자 찬열이 신난 듯 발을 구르며 떠들어댔다.
아 쪽팔려 박찬열, 좀 닥치라고. 백현이 짜증을 냈지만 그걸 들을 찬열이 아니였다. 누나! 누나! 여기 메뉴판이요! 면느님하니까 파스타 먹고 싶다. 시켜도 됨 면느님?
"형 우리 이 새끼를 데려오는 게 아니였어."
"저 미친놈."
"면느님!! 형!! 나 스테이크도 시킬래."
"면느님이 뭐야 짜증나."
준면이 찬열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참다못한 준면은 알바생이 가지고 온 메뉴판으로 찬열의 머리를 갈겼다.
아 왜!! 찬열이 소리를 질렀지만 준면은 입은 웃고 있지만 죽일 듯이 노려보며 닥쳐. 한 번만 더 말하면 밥이고 뭐고 죽여버릴거야. 라고 속삭였다.
찬열은 히익!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갔고 조용히 메뉴판을 들어 고르기 시작했다. 어휴, 저 병신.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종인이 왜? 먹고 싶은 거 없어? 하고 물어왔다.
"아니, 나 아웃백은 처음인데..."
"스테이크 먹게?"
"응. 고기!"
"너 비계없는 퍽퍽한 살 좋아하지 않냐?"
"근데 그런 고기가 뭔지 모르겠어."
채... 채끝살? 이건 뭐지... 종인이 병신. 하고 웃었다. 나는 왜 쟤가 웃으면 이렇게 떨리냐. 나는 혼자 미묘한 기분을 느끼며 메뉴판을 보는 종인을 힐끔거렸다.
내가 니 것까지 시킬테니까 그냥 음료수나 마시고 있어. 어? 응... 신나게 떠들어대는 찬열과 백현을 아무렇지 않게 쳐다보다가 어느새 하나 둘 서빙되고 있는 음식을 보며 군침을 흘렸다. 와- 쩐다.
서로인 스테이크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종인이 내 앞으로 스테이크를 밀었다가 다시 제 앞에서 몇 번 썰더니 다시 내 앞에 가져다 놓았다.
나는 이럴 때마다 정말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여 식은땀이 날 지경이였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는게 꼭 어디 아픈 것 같았다.
부쉬맨 브래드를 따로 주문한 초콜렛 소스에 찍어 먹던 찬열이 뭔가 생각난듯 흐흐하고 웃다가 김종인! 이거 너 닮음 시커먼게. 야 그치 도경수?
"어? 어."
"멍을 때리니까 저렇게 어깨가 좁아지지 쯧쯧."
"너는 자꾸 나대니까 거기가 그렇게 작지."
"헐. 찬열이 작아? 헐. 키만 큰거였어? 헐."
백현이 헐을 쓰리콤보로 날리자 찬열이 흥분한 듯 얼굴이 시뻘게져서 파스타를 흡입하던 포크도 집어던지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니가 봤어? 봤냐고오- 나는 샐죽 웃으며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을 맞대고 알고말고, 요-만하지. 했다.
"아 좀 닥치고 쳐 앉아서 먹던거 입에 다시 넣지?"
"엡."
참다못한 준면이 형이 찬열의 다리를 차며 말했고, 찬열은 아웃백을 거하게 쏜 형을 보며 아무말도 못하고 앉아 입을 삐죽거렸다.
백현이 소근대며 진짜 작아 너? 하고 웃자 아니! 아니라고! 다시 소리를 질렀다가 형의 눈치를 보며 다시 고개를 숙이고 먹기 시작했다. 아, 통쾌해.
종인에게 브이를 보이며 웃자 종인이 따라 웃으며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형, 근데 왜 갑자기 아웃백을 쏘는거야?"
"나 전국 미술대회 입상했거든."
"아 맞다. 금상 받았다고 했지. 역시 면느님."
"아, 그 놈의 면느님. 어쨌든 기분 좋아서."
"역시 부자는 달라."
댄스학원 끊고 나서 미술한다고 하더니, 진짜 소질 있나보네. 종인이 칭찬하자 형은 멋쩍은 듯 웃었다. 뭐 그런가보지.
나도 종인이한테 칭찬받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으나, 내가 특출나게 잘하는게 뭔지 몰랐다. 춤? 연기? 노래? 아, 그래! 노래.
"종인아."
"어?"
"나 노래해볼까?"
"와! 도경수새끼 노래한대. 박수쳐줄게 빨리 불러봐."
"아, 여기서 말고 박찬열 병신아."
"뭐야, 그럼?"
"보컬. 해볼까하고. 학원도 다니고 진짜로 배워보게."
종인이 흥미로운 듯 쳐다봤다. 나는 흐흐 웃으며 스테이크를 하나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어때 김종인? 괜찮은 생각인데? 너 노래 잘하잖아.
나는 가끔 종인과 둘이 노래방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종인은 내 영어 발음이 듣기 좋다고 팝송을 미친듯이 예약하곤 했었다.
종인아, 우리 노래방 또 갈까? 그래. 문득 종인이에게 불러주고 싶은 노래가 생각났다. 이것도 팝송이니까 들으면 좋아하겠지?
"경수야. 잘 어울린다."
"고마워 형. 내가 잘 되면 형처럼 너네한테 쏠게."
"와! 존나 좋아. 빨리 빨리!!"
뭘 빨리야. 종인이 찬열을 보며 웃었다. 모두들 오랜만에 즐거워하는게 보기 좋았다.
우리가 고등학교를 가고 나서도 이렇게 지낼 수 있을까? 문득 백현이 중얼거리자 찬열이 백현의 등짝을 소리나게 때렸다. 야 똥백. 당연한 거 아니야? 같은 고등학교 쓰면 되잖아.
"그래도 다른 반 되면 자기 반 애들이랑 노느라고 뿔뿔히 흩어질 거 같아."
"기집애같은 소리하고 앉았네. 등신아 걱정마. 이 형이 있잖냐. 너는 내가 챙김."
"저기... 너는 필요없거든. 꺼져."
우리는 아웃백을 나와 2차를 가자며 준면이 형의 집으로 향했다.
형은 사촌인 세훈이와 같이 살고 있었다. 부모님이 모두 외국에 나가셔서 어린 세훈을 형편이 좋은 형네 집에 맡겼다고 한다.
세훈은 별 탈없이 공부도 착실히 하며 잘 지내고 있었다.
형네 누나 집에 없어? 응, 아무도 없으니까 들어와. 먼저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벗던 형이 뻘줌해 있는 우리를 보며 손짓했다.
역시 부자는 달라. 하얀 벽지와 고급스러운 대리석 바닥, 손님 수 별로 준비되어 있는 실내용 슬리퍼, 커다란 TV와 비싸보이는 가구들, 심지어 가정부까지 있었다.
"아주머니, 저희 간식 좀 준비해주세요."
"아 오늘 오신다는 친구분들이세요? 네, 금방 준비해갈게요. 놀고 있으세요."
찬열이 큰 집 안을 헤집고 다니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올 때마다 가구가 바뀌는 듯? 개쩔어. 형 나랑 사귈래? 개같은 소리하네.
형은 똥씹은 얼굴로 찬열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었다가 이내 가정부의 눈치를 보며 손가락을 접었다.
종인이 장식장을 보며 부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형, 건담 모아? 존나 비싸잖아."
"응 뭐, 취미로."
"부럽다... 나 하나만 줘."
"그럼 나중에 따로 만들어서 줄게."
"와- 진짜? 사랑해 형."
종인이 신난 듯 준면을 와락 안았다. 와, 김종인 나한테도 안해주는... 나는 잠시 피어난 질투가 창피해졌다. 내가 너한테 뭐라고...
안 좋아한다고 혼자 단정지으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피어나는 감정들은 나를 속일 수가 없었다.
종인에게 느끼는 것은 단지 우정뿐만이 아닌 것을 나는 알면서도 회피하고 싶었다. 나는 게이이고 싶지 않았다.
평범하게 여자를 사귀고, 결혼을 하고, 사랑을 나누고, 애를 낳고, 그렇게 아무 이상 없이 늙어 죽는 것이 소원이였는데 지금은 바뀌어버렸다.
나도 모르게 그 소원은, 김종인과 영원히 함께 있고 싶다. 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입을 꽉 다물고 굳게 결심한 듯 안돼, 안돼를 연신 중얼거리며 고개를 종인에게서 돌렸다.
잠시 소파에 앉아 TV를 보던 우리는 가정부가 가져온 코코아와 케이크를 받아들고 신이 났다. 옆에는 스위스산 초콜렛이 놓여있었다.
형은 부모님이 보내주신 것이라며 우리에게 하나씩 먹으라고 했다. 욕심 많은 찬열은 한 주먹 가져다가 자신의 옆에 놓고 한 개씩 껍질을 까먹었다.
짜증난 백현은 찬열이 까놓은 껍질을 모조리 구겨 오물거리고 있는 찬열의 입 속에 모두 쳐 넣고 입을 막았다.
웁웁거리는 찬열을 보며 모두가 인과응보라며 깔깔 대고 웃었다.
"우리 다음에도 이렇게 만나서 뭐 먹으면 재밌겠다, 그치?"
"맞아. 존나 좋아."
"오늘은 파티구만! 최후의 만찬!"
"병신아, 우리는 최후가 아니라 최초지."
"아 그런가? 최초의 만찬! 최후는 없다."
"아 왜 저래 박찬열."
*
우리는 그 후에 예고로 전학한 준면이 형을 빼놓고는 모두 같이 1지망에 쓴 학교에 배정되었다.
몇 번 만나서 맛집도 다니고, 누구 한 명의 집에 가서 뒹굴거리며 먹고, 좀 더 멀리도 놀러다녔지만 모두가 모인 적은 그 이후로 없었다.
다들 꿈이 생기고, 바빠지면서 누구 하나 멀어지는 사이에 투덜대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그래도 남들보단 가까웠으니까.
찬열이 꼬르륵거리는 배를 부여잡고 울상을 지었다. 다들 표정이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이거 우리 배고파 죽으라는 거지. 그것도 음식을 눈 앞에 두고.
찬열은 욕 섞인 한탄을 했으나 역시 아무도 음식에 쉽사리 손을 대지 못했다.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였다. 입도 너무 허전했고, 힘들어서 쓴 맛이 돌았다.
"4년 전에 형때문에 모였을 때인가 보네."
"그럼 우리 준면이가 범인이라는 거야!"
준희가 소리를 꽥 질렀다. 그냥 아무 뜻 없이 말한건데... 백현이 당황한 듯 준희를 쳐다봤다. 찬열의 표정이 급격히 바뀌고 준희를 향해 눈을 돌렸다.
준희도 찬열을 쏘아보았고 둘은 말 없이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둘의 눈에서 스파크라도 일어날 듯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다.
"아, 그만해 진짜 누나. 백현이 그런 뜻으로 한 거 아니라잖아. 오해야."
"박찬열. 왜? 니 애인이라도 되냐? 진짜 챙기네?"
"똥백이 누나보단 가까운 사이지. 웬만하면 건들지말지?"
준희는 또 다시 괴기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찬열을 쳐다봤으나 이번엔 찬열이 먼저 눈을 떼고 백현에게 돌렸다.
괜찮아? 어? 응... 괜찮은데... 누나가... 야, 똥백. 말하지마. 너 가만히 있어 그냥. 어? 알겠어...
찬열은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저건 예전의 준희와 완전히 달랐다. 세훈도 겁을 먹고 준희를 쳐다보고 있는 걸 보니 세훈 역시 그렇게 느끼는 것이 분명했다. 찬열과 세훈이 알고 있던 준희는 장난끼 많고 잘 웃는 사람이였다. 활달하고 누구나 어울리는 사교적인 성격 덕에 찬열과 죽이 잘 맞는 몇 안되는 사람이였다. 자주 만난 것은 아니였으나, 적어도 만날 때 만큼은 남매처럼 사이가 좋았다.
그런 준희가 바뀌었다? 왜? 무슨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다거나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밤에 보초를 서고 준희가 잠들었을 때 깨어있는 준면에게 물어봤으나 준면은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르겠어. 갑자기 어느 날부터 저래. 물어봐도 묵묵대답이야.
찬열은 자신의 앞자리에 놓인 스테이크를 보았다. 덜 익힌 듯 육즙과 핏기가 돌았다. 갑자기 시체가 떠올라 속이 울렁거려서 한 쪽으로 치워놓았다.
"내 생각에는 괜찮을 거 같아. 이렇게 한번에 금방 끝나면 저 쪽에서도 재미없을 거 아냐."
"그럼 우리 다수결로 하자. 우선 안먹는다쪽?"
"뭐야... 아무도 없어?"
다들 간절히 먹고 싶은 듯 자꾸만 포크를 들었다 놨다 했다. 다수결을 제안했던 종인은 한숨을 쉬고 먹자 그럼. 이라고 했고, 찬열은 와! 하며 눈 깜짝할 사이에 파스타를 포크에 돌돌 말아 입에 넣었다.
"야! 박찬열 미쳤어?"
"왜. 먹으라며."
찬열이 우물거리며 말하자 백현이 기겁했다. 뱉어, 뱉어! 죽으면 어떡해 새끼야! 백현이 눈물을 흘릴 듯이 눈이 그렁그렁해졌지만 찬열은 바보같이 웃으며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대. 라며 뱉지 않고 꿀꺽 삼켰다. 모두 먹자고는 했지만 경악한 표정으로 찬열을 봤다. 나쁜 마음이지만 다들 누군가가 먼저 먹고 아무 탈이 없어 보이면 자신도 먹을 생각이 머릿 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인간은 모두 똑같이 죽음 앞에서는 이기적이였다. 그 생각까지 미쳤을 때에는 자괴감에 휩싸였다. 이걸 노린거구나. 우리의 이기적인 모습.
그 때, 아무렇지 않게 삼킨 찬열이 외마디 비명을 낮게 지르더니 그대로 의자 밑으로 고꾸라졌다.
모두의 머리가 하얗게 변하고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딱딱해졌다.
찬열아! 백현의 목소리가 절망적이고 애처롭게 귓전을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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