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루민카디] Scrapped prince 19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3/b/b/3bb194543800f9bf9f1716c7d5c639e5.png)
마지막 에피소드, 납치된 왕자(3)
"전하, 기생 월화 인사드리옵니다."
"월화라... 너와 어울리는 이름이구나. 그래, 어디서 왔느냐?"
"화중주라는 기방에서 지냈사옵니다."
"화중주라.... 그렇다면 비변사 장군들을 잘 알겠구나. 그들과는 나도 친분이 매우 깊지. 그래, 너는 참 아름답구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민석은 함부로 그 왕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자신의 부모님을 죽인 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이성을 잃고 무슨 일을 저질를 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저, 공손히 모은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 볼 뿐이었다.
"고개를 들어보라."
민석은 손으로 치마를 움켜쥔다. 그리고는 서서히 고개를 들어 그 왕이라는 자의 얼굴을 보았다. 지옥같은 과거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불길 속에서 자신의 부모님을 칼로 베었던 자의 얼굴이었다. 세월로 인해 깊은 주름이 눈에 보였지만, 저 찢어진 눈매, 볼 밑의 흉터... 7년 전 그 자다. 민석은 갑자기 눈물이 넘쳐오름을 느꼈다. 이를 억누르기 위해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 민석의 그 표정이 왕에게는 그저 사랑스럽게 보일 뿐이었다. 오히려, 민석의 복잡미묘한 표정이 왕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정말... 아름답구나...."
"감사합니다."
"그래.... 언제까지 한양에 있을 것이냐?"
"한동안은 이 곳에서 머물러 지낼 것 같사옵니다."
"그렇다면, 궁에서 지내는 것이 어떠하냐. 편안하게 지내다 갈 수 있을 것이야."
그래. 이 말을 기다렸다.
"저에게는 엄청난 영광일 것입니다, 전하."
"조만간, 궐에서 보자구나. 월화...."
그 자는 신하들을 데리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경수는 민석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본다.
"민석아, 괜찮아?"
"저 자야... 그래... 기억났어. 저 얼굴..."
"너무 무리하지는마. 자, 한 잔 받아. 오랫만에 술이나 한 잔 하자. 김민석."
"그래... "
경수와 민석은 서로 술잔을 주고 받았다. 그 때였다.
"오랫만입니다."
가녀린 여인의 목소리에 경수와 민석은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화려한 옷을 입은 여자가 그 앞에 서 있었다.
"누구시오?" 경수가 묻는다.
"7년 전.... 도련님들을 처음 뵜던 무녀입니다."
그 무녀는 민석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왕자님, 그 동안 옥체 평안하셨습니까?"
"말을 조심해야 할 것이야." 경수는 무녀의 말을 가로챘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용서하세요. 잠시 월화님과 얘기하고자 하는데..."
경수는 민석의 어깨를 두 번 톡톡 치더니,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자리에 무녀가 앉았다. 7년 전, 자신을 대한민국으로 보내줬던 사람이다. 이 자는 또 다른 무언가를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
"500년 후의 세상에서의 삶은 어떠셨는지요?"
"그럭저럭 살 만은 하였다."
"다시 조선에 돌아오니... 어떠십니까?"
"아직은 많이 혼란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잘 모르겠다. 내가 꼭 이 '왕자'라는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옳은 것인지..."
무녀는 살짝 미소 짓는다.
"저도 왕자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시리라 예상하였습니다. 왕자님께 지금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요? 과거 부모님에 대한 복수입니까?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입니까? 아니면.... 왕자님 곁의 사람들입니까?"
민석은 무녀의 갑작스런 질문에 멀뚱히 그녀를 쳐다봤다. 과연, 지금 자신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혹,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들이.. 사실은 결국 자신을,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잠식하고 있지는 않은가...
민석이 대답하지 못하고 쭈뼛쭈뼛거리자 무녀는 민석의 귀에 속삭인다.
"부디, 옥체 보존하시고, 소중한 것들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왕자님. 7년전, 당신이 겪었던 피바람보다 진하고 지독한 피바람이 불어오고 있으니깐요.. 당신에게 행복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
**
"시간이 없으니까 서둘러."
루한의 움직임이 그 어느때보다 급하다. 검은 천으로 얼굴을 돌돌 두른 루한은 백현과 종인을 독촉했다. 루한, 백현, 그리고 종인은 지금 서재에 있다. 이 곳에서 7년 전, 숨겨진 기록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 왕을 든든하게 보좌하고 있는 자들의 기반을 무너뜨려야 한다.
"찾았다."
백현이 서재 한 구석에서 책을 꺼내든다.
"잘했어!"
종인이 백현의 등을 툭 친다.
"근데, 종인아, 경수는 루한님이 월풍인 사실을 언제까지 모를까..."
"글쎄... 언젠간 아시겠지..."
"알게 되면, 경수는 어찌 반응할까?"
"....."
종인은 상상해보았다. 자신의 아버지를 옥에 가둔 자는 루한이다. 경수님이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딱 4명 있다. 종인, 백현, 민석 그리고 루한... 표현이 서투르다 보니, 루한에게 질투도 하고, 월풍으로 지내면서 입궁을 포기한 후부터는 루한에 대한 투정이 심해졌지만 그래도 루한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사람에 좀처럼 정을 붙이지 않는 경수님이 10년 넘게 계속해서 찾는 사람이니까....
루한은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연다.
"어쩔 수 없잖아. 벗의 아버지라고 그 죄가 덜어지는 것도 아니고... 난 원칙에 있어서는 철저한 사람이야. 그 대상이 누구였더라도 나는 감옥에 보냈을거야... 그래도 곧 풀려나오시겠지... 직접적으로 관여를 하시진 않았으니... 잘 이겨내주겠지. 도경수니까."
"에휴..." 종인은 한숨을 쉰다.
"김종인 네가 옆에서 경수 좀 잘 챙겨줘. 그래도 네 말이라면 꿈벅 죽는게 도경수잖아."
"근데, 루한님 상처는 괜찮으십니까?" 백현이 묻는다. 지난번 상처가 심했던지라, 루한은 한동안 오른쪽 팔을 쓸 수 없었다. 또 무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냥 지금부터는 우리한테 맡기고 너는 좀 쉬어. 그리고 김민석 저렇게 혼자 밖에 놔둘거야? 아까부터 서두르고 표정도 불안해 보이는것이 꼭 어린 아이를 호숫가에 두고 온 사람같더라."
"김종인 너도 가봐. 도경수도 같이 있는 거 아니었어?"
백현이 책을 오른쪽 팔 밑에 끼어넣으며 말했다. 꼭 자기 말 하고 있네... 라는 말이 목까지 나왔지만, 참았다. 그런 농담을 던지기엔 지금 종인의 표정이 너무 심각했다. 종인과 루한은 서둘러 서재를 벗어났다. 백현은 서재에 홀로 남겨졌다. 괜시리 웃음이 나왔다. 모든 것이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였을까.
"김준면은 지금쯤 한양에 당도했으려나. 술이나 같이 한 잔 해야겠다.."
**
"김민석."
민석은 궐 밖에 마련한 임시 거처에서 쉬고 있었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루한이 어느새 와있었다.
"그 자는 만났어?"
"으..응..."
"뭐래?"
"입궐..하래.. "
"그렇구나. 수고 많았어."
루한은 민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민석은 아까 무녀의 말이 귀에 계속 맴돌았다. 꼭, 복수를 하여야만 하는가? 루한의 지쳐보이는 얼굴을 보니 그 미안함이 더 커졌다. 밝고 생기넘치던 소년의 얼굴은 온데간데 사라져있다.
"루한 미안해.. 그만할까? 이거.."
"무슨 소리야 왕자님?"
"꼭 그 자를 죽이고 내가 왕좌를 가져야지만 우리가 행복해질까?"
"그럼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그냥... 돌아가서 우리끼리 살면 안될까...?"
루한은 옅은 미소를 지어보인다.
"너 기억 안나?"
"뭐..?"
"네가 옛날에 조선 최고의 왕이 될거라며. 그래서 이 나라를 행복함이 넘쳐 흐르는 곳으로 만들거라며."
"내가 그랬었나..."
"미안해하지마. 그건 내 꿈이기도 하니까."
루한은 민석의 뺨에 가만히 손을 갖다 대었다. 민석은 루한의 두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화중주에서 첫 날 밤, 민석은 루한의 눈을 본 적이 있다. 그 때도, 이렇게 아련하며 애달픈 느낌이 들었다.
"김민석, 이것 하나만 약속하자."
"..뭐..?"
"혹시라도...아~주 만약에... 일이 잘못되면..."
"안 들을래."
"들어. 일이 잘못되면, 그 땐 무조건 이기적으로 생각해. 알았지? 너만 생각하라고."
"무슨 말이야?"
"자꾸 잊는 모양인데, 너는 이 나라의 왕족이야. 애초에 안고 있는 부담의 크기가 나와는 달라. 우리 모두가 정말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하겠지만, 모든 일에 만약이라는 것은 존재해. 그 때, 너는 무조건.... 나를 모르는 척 해. 넌 나를 모르는거야. 알았지?"
"모르겠어.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다시 말해줄까? 왕자님 너는... 애초에 우리를 만난 적도, 본 적도, 쌀 한톨 만큼의 인연도 없었다고..."
"그 말을 왜 하는데?"
"너는 분명 일이 잘못되면, 그것이 네 잘못인양 괴로워할 것 같으니깐. 그러면 잘 되려는 일도 그르친다고. 약속해줘."
"내가 너, 그리고 경수, 종인이를 모른척 하면 어떻게 되는건데?"
"우리 모두 행복해질 수 있어."
"그게 유일한 길이야?"
"아니. 성공하면 되지. 근데 실패하더라도 우리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이 딱 하나 있어. 그리고 그 길이 바로 내가 말한 것이야."
민석은 표정이 굳었다. 그러자 루한은 민석의 얼굴을 감싸안더니 또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에 민석이 약한 것을 아는 모양이다.
"왕자님! 뭐가 이렇게 심각해?"
"루한 네가 심각하게 만들었잖아. 괜히 이상한 말만 꺼내고."
"미안미안~ 너무 무거웠나? 그냥 노파심에 하는 말이었어. 천하의 월풍을 못 믿는건 아니지? 그리고 김민석 너는... 절대 꺾이지 않는 꽃이잖아. 물론, 달 바람에는 꺾이는 꽃이지만."
루한은 웃음지며 민석의 얼굴을 바싹 자신의 얼굴에 갖다대었다. 그러자 민석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천천히 루한의 입이 민석의 입과 포개졌다. 처음 조선에 돌아왔을 때 전해주었던 루한의 키스보다 더 강렬하고 안달난 듯한 키스였다. 루한은 민석을 조심히 뉘였다. 민석의 표정은 아직도 복잡미묘했다. 무녀의 말과 루한이 방금 한 말들이 뒤섞여 민석을 괴롭히고 있었다. 자신은 이렇게 심각한데, 농담이나 하며 키스해오는 루한이 얄미웠다. 루한은 기다란 손가락으로 민석의 얼굴을 어루어만졌다. 그리고는 다시 가볍게 민석의 이마, 귀, 볼, 그리고 입에 키스했다. 루한은 자신의 입술이 민석의 입술에 머무른채 말을 시작했다.
"왕자님!"
"....."
"이젠 대답도 안해주는거야?"
"왜."
"미안해."
"뭐가."
"그냥 다."
"뭐야..."
"왕자님!"
"또 왜"
"정말 사랑해"
루한은 민석을 껴안았다. 이 7년 동안의 복수가 끝이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자신의 끝, 민석과 자신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과연 우리 다섯은 어찌 되는 것일까... 너는 어찌 될까.... 그리고 나는 어떨까.....? 7년 전, 그 날 밤, 궁에서 널 납치해 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널 미래로 보내지 않고 계속 이 곳 조선에 두었다면 어땠을까....
"김민석."
"응..왜 루한.."
"나도 듣고 싶어"
"뭐를..?"
민석은 루한의 두 눈을 쳐다보았다. 평소와는 다른 루한의 모습에 민석은 긴장했고, 걱정도 되었다.
'루한 네 머릿 속에는 지금 어떤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니?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거니?'
왜 난 그대의 눈만 바라보면, 이리도 마음이 아려 오는 것일까. 내가 없는 7년 동안 당신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일까...
"나도 사랑해..."
그 날 밤, 달 바람은 달꽃에 머물러 그 꽃을 꼬옥- 감싸안았다.
그 꽃은 수줍은듯, 눈부시게 꽃을 피운다.
한 송이의 눈부신 꽃을 피어내기 위해 그렇게 바람은 밤새 슬피 울었나보다.
**
"종인아.. "
"네 경수님"
"내게는 사실만을 말해줘야 한다. 알았지?"
"말씀하세요."
"월풍 말이다..."
"...."
"루한이 월풍이... 맞느냐?"
종인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자신은 어찌 해야 할지 몰랐다.
"괜찮으니 말해라."
"네.. 맞습니다.. 허나.."
"변명하진 않아도 된다. 나도 짐작하고는 있었다. 잠깐 월풍을 마주친 적이 있다. 루한의 풍채와 비슷했지.."
"괜찮으십니까?"
"괜찮을리가... 내 아버지를 옥에 넣었는데.. 하지만, 루한 답다고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아버지였어도 분명 감옥에 집어 넣었을 놈이니까. 오늘 아버지를 뵈러 갔었다."
"잘 계십니까?"
"많은 얘기를 했던 것 같다... 다행히 이 이상의 형벌은 없을 듯 하니 안심이고..."
종인은 경수를 보더니 미소를 짓는다.
"왜 웃느냐?"
"그냥..경수님께서 많이 성장하신 것 같아 뿌듯합니다."
"성장이라니! 나는 원래 이렇게 생각이 깊었다!"
"예예, 그럼요.."
"믿지 않는 것이냐?"
종인은 가만히 경수를 쳐다보다 홱- 하고 경수를 품에 안았다. 분명, 말은 침착하게 하고 있었지만 흔들리는 경수의 눈동자는 말하고 있었다. 도와 달라고... 너무 힘들다고...
"창피하게 또 이게 무슨 짓이냐!"
"가만히 계십시오. 그런 눈으로 저를 쳐다보시니 어찌 이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잘 끝나겠지..?"
"그럼요. 꼭 그렇게 될겁니다."
"민석이는 알고 있을까?"
"무엇을 말입니까?"
"7년전... 납치된 자가 자신만이 아님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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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된 왕자(4) 예고
"월화님, 전하께서 안으로 들어오시라 하옵니다."
"전쟁이라 하오."
"때가 되었다. 김수민. 나와라. 밖으로."
항상 감사합니다. :D Casc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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