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Cascade
이번 스크랩드 프린스 14화는,
레몬티님, 메론바님, 콩이님, 기승전결님, 빵떡이님, 젖소님, 당근님, 전신거울님, 려현님, 달달님, 민트초코님, 삉삉님, 레어닉님. 레몬님, 밍숭맹숭님, 재채기님, 독서실님, 올백님, 미개루님, 콧물괴물님, 0408님, 큼님, 만두님, 슈밍님, 포포님, 으잉잉님, 쥬시쿨님, 룰루랄라님, 콩콩이님, 진소님, 쪼니님, 치즈볼님, 라븅님, 도시락님, 치즈마우스님, 오빠는안되여님, 튠튠님, 슬민님, 미루님, 어린누나님, 토순이님, 호떡님, 멍뭉님, 도도님, 꿈님, 가디건님, 패릿님, 콧물님, 콩쥐님, 봉봉님, 빠오즈님, 텐더님, 띵띵띵님, 뀨님, 챈님, 둉둉님, 나비소녀님, 콩떡님, 플라톤님, 물음표님, 쓔쓔님, 머신님, 코코아님, 빙빙님, 새우튀김님, 루님, 티엔님, 예그리나님, 퐁퐁님 이렇게 69명의 독자분과 함께합니다. (+익명의 독자님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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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에피소드, 형제의 복수(마지막)
민석은 어느덧 화중주에 도착했다. 계속 눈 앞에서 루한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칼을 맞고도 자신을 안으며 도리어 놀란 자기자신을 다독여줬다. 혹여나 걱정할까봐 아팠을텐데도 더욱 힘껏 자신을 안았다.
"아윽-"
갑자기 머리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였을까. 가끔씩 머리가 조여오는듯한 아픔이 있었다. 처음에는 참을만 했으나 그 고통이 점점 심해지더니, 최근에는 가끔 앓는 소리를 낼 정도로 아프다. 민석은 어서 잠을 청해야겠다 생각했다. 이대로 깨어있다간 약한 생각밖에 나지 않을 것 같았다. 머리에 올려놓았던 장신구를 하나, 둘 꺼내놓았다. 그리고는 딱딱한 바닥에 머리를 뉘인다. 창가 너머로 칠흑같은 어둠이 번진다. 오늘 밤은 달조차 뜨지 않은 모양이다. 굉장히 어둡고 어두웠다.
민석은 한동안 뒤척이다 벌떡 일어났다. 이대로 잠을 제대로 들 수 없을 것 같았다. 루한이 괜찮은지 너무나 궁금했다. 민석은 간소하게 옷을 갖춰 입고는 기방의 부엌으로 가서 절편을 몇 개 챙겼다. 저번 잔치 때 보니, 루한은 이 절편을 꽤나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한 손에는 절편 보따리를 들고, 민석은 오두막으로 향했다.
오두막은 적막했다. 혹시라도 루한이나 백현이 잠에서 깰까봐 민석은 조심히 문을 열었다. 그리고 아까 그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 안에는 적막만이 흐를 뿐이었다.
"루한? 백현?"
돌아오는 것은 밖에서 조용히 울고 있는 벌레 소리 뿐이다. 민석은 덜컥 겁이 났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찬열이 또 허튼 짓을 한 것은 아닐까. 민석은 급하게 오두막에서 나와 언덕을 달렸다. 루한의 본가가 있는 곳으로.
루한의 집은 조선 여러 관료들이 모여 살고 있는 동네 중심에 있다. 이곳에 오면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진다. 담의 높이는 높았으며, 지붕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있다.
"퍽-"
무엇인가가 민석을 향해 부딪혔다.
"아 이게 뭐야."
낮고 굵은 목소리다.
"박찬열."
민석이 찬열의 옷깃을 잡았다.
"어딜 그렇게 뛰어가. 루한이나 백현이는 어딨어."
민석은 자기도 모르게, 본래 자기의 목소리를 뱉었다. 곧이어 민석은 당황한 기색을 보였지만 지금은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찬열은 위 아래로 민석을 훑어보았다.
"너도 남자구나. 넌 도대체 왜 들어온거냐."
찬열은 짧게 내뱉고는 민석을 뒤로 내팽겨쳤다. 그리고는 다시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민석은 별안간 불안한 마음이 생겼다. 아까 백현이 세훈을 죽인 것에 대해 원한을 품고 복수하려 가는 것이 분명했다. 민석은 찬열에게 밀쳐져 휘청이다가 곧이어 찬열을 뒤쫓았다. 갑자기 민석은 머리가 또 아파왔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머리 속에는 온통 루한 생각 뿐이었다. 아까 칼을 맞으면서 자신에게 지어주었던 표정이 계속 아른거렸다. 조여오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민석은 오른손을 가슴팍에 갖다 대었다. 그 와중에도 그의 발은 무척이나 바삐 달리고 있었다. 가야했다. 루한이 있는 곳으로... 그래야만 했다.
**
"루한님, 아까 상처는 어쩌시고 이 곳에 오시면 어찌하십니까."
"너도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있지 않느냐. 백현 네가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텐데."
"하지만 몸이 이리 성치 않으신데 제대로 싸움이나 하실 수 있겠습니까."
"내가 누구냐. 조선 팔도를 벌벌 떨게 만든 월풍이다. 그 정도 칼 상처야 가뿐하다."
"아깐 어찌 그리 무모하셨습니까. 자칫 칼이 조금만 옆으로 빗겨갔어도 위험했습니다."
"민석이가 누구냐. 내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구나."
"오늘은 계속 제가 옆에 있어야겠습니다. 루한님, 아니 월풍, 임무만 수행하시고 돌아가는 걸로 약조해주십시오. 경수님의 일은 저도 무척이나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루한님께서 그것까지 신경쓰실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경수님 옆에는 종인이가 있으니 안전할 것입니다."
"알겠다. 마음 같아서는 이 곳을 한바탕 뒤집어 놓고 싶은 마음뿐이지만 네 부탁이 그리하니 참도록 하지. 오직 크리스에게만 이 죗값을 물을 것이야."
루한은 말을 끝내고는 검은 천을 꺼내들고 얼굴을 가렸다. 달빛 아래 비춰진 그의 얼굴은 무척이나 단호했고, 아름다웠다. 백현 또한 천으로 그의 코와 입을 가렸다. 백현은 이번 임무가 무척이나 걱정되었다. 루한이 이토록 성급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민석이 앞에서 칼부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무척이나 놀란 모양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피부로 와닿게 느낀 것 같았다. 백현은 푸욱- 한숨을 쉬었다. 아까 민석에게 끝까지 남아있어달라는 말은 했으나, 민석이 과연 알아들었을까. 민석은 기억 하고 있을까.
지붕 위로 떠오른 달은 유난히도 붉다.
[비변사 대장군 크리스는 보라. 지난 5년간 그대는 그대가 저지른 죄를 되새긴 적이 과연 있었는가. 일순간의 분노로 마을 일대를 불바다로 만들었을 때, 죄 없는 백성들의 울부짖음을 그대는 귀 기울인 적이 있는가. 백성의 안위를 위해 세워진 비변사의 대장군으로서 그대는 한번이라도 백성의 편에 서서 그들의 안전에 힘 쓴 적이 있는가. 오히려, 그 자리를 악용하여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진 않았는가. 이제, 그들의 고통을 느껴 그 자리의 무거움을 알아야 할 것이다.
월풍.]
"백현아 너는 이 곳에서 망을 보고 있어라. 금방 다녀올 것이다."
"혹시라도 위험에 빠지시면 휘파람을 불어주십시오."
"알겠다. 이따 뒷문으로 나올 것이니 시간이 지나면 그 곳으로 돌아오너라."
**
"헉...헉...." 숨이 찼다. 몇 분 동안을 쉬지 않고 달린지 모르겠다. 더욱이나, 지금 입고 있는 치마는 너무나도 뛰기에 불편했다. 그래도 찬열을 시야에서 놓치지 않고 끝까지 달려왔다. 이 곳은 또 누구의 저택인 것인가. 찬열이 재빠르게 어디로 들어갔다. 민석은 그런 찬열을 재빠르게 뒤쫓았으나, 찬열은 어디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민석은 급하게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며 애타게 그를 찾았다. 그 때였을까...
"김민석..."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이는 루한의 부드러운 목소리도, 백현의 차가운 목소리도 아니었다. 이는 분명....... 종대의 목소리였다. 민석은 부들거리며 떨리는 손을 꼬옥 주먹을 쥔 채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김종대. 내 친구 김종대였다.
"김종대... 너 맞지? 김종대 너 맞지? 경영학과 김종대. 새내기 여자애 밝히는 놈. 그 김종대 맞지?"
민석은 이 곳에서 자신의 친구를 만났다는 것이 너무나도 반가웠고, 그리고 그 동안 자신을 모른척 했던 김종대가 의심스러웠다. 이런 복합적인 감정들이 얽히고 섥혀 민석의 마음을 죄여왔다.
"너...근데 이 곳은 어떻게 온거야... 너도 알다시피 여긴 조선이잖아. 우리가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응 맞아. 여기 조선이야. 1500년대고."
"왜 이렇게 담담한거야 너? 평소 너 같았으면 온갖 욕을 해대며 집으로 보내달라고 징징댔을 놈이."
"김민석 넌 기억 안나?"
"무슨 기억? 또 무슨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야."
"여기서의 기억.. 안 나냐고.."
"여기서의 기억이라면 1달전 내가 이 곳에 온 후부터야 있겠지. 그 전엔 이 시대에 살지도 않았고,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었는데 무슨 기억... 기껏해야 국사 책에서 몇 자 훑어 본 정도지... "
"......"
"너 근데 크리스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야?"
"요즘 말로 비서 같은 거랄까. 문서 정리하고 보고하고 그런 사람이지. 크리스를 '모시는' 사람.."
"어떻게 만나게 된거야? 너도 갑자기 이 곳 조선으로 오게 된 거잖아... "
"정말..기억 안나?"
"계속 왜 그걸 묻는거야?!!!!!!!!!!"
민석은 이런 종대의 태도에 짜증이 났다. 무슨, 태연한 태도로 너는 이 곳에서의 기억이 없냐는듯이 묻는데 민석은 그런 종대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특유의 입꼬리를 싸악- 올리며 능글거리는 표정도 오늘만큼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 대 치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그러다가 민석은 갑자기 머리가 또 아파져옴을 느꼈다.
"아 씨..."
민석의 입에서 된소리가 나올정도의 아픔이었다. 민석은 두 손으로 그의 관자놀이를 지긋이 눌렀다. 이러면 통증이 좀 가라앉았다.
"김민석... 몸 조심해라. 어서 이 곳에서 나가. 좋은 말 할 때 나가는 게 좋을꺼야. 그 이후의 일은 정말.. 내가 책임 못진다. 조만간 또 보자."
종대는 쭈그려 얼굴을 싸매고 있는 민석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는 유유히 민석의 앞에서 멀어져갔다. 민석은 다시 일어났다. 이미 종대는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뭔가 일어나고 있다. 종대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 자신의 주위에서 계속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무언가 있다. 근데 그 '무언가'를 모르겠다...
**
"월풍..기다리고 있었다."
집무실에는 크리스가 곧은 자세로 앉아있었다. 마치, 월풍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 처럼.
"네가 방방곳곳에 붙인 벽보는 잘 읽었다. 이런 식으로 나한테 애정을 표하다니, 지금껏 받아본 연서 중에 가장 감동적이었다."
크리스는 배배 웃으며 월풍을 도발한다.
"너는 네가 아직도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르지."
"알아."
"그럼 더 답 없는 놈이고."
"너는 이 시대의 정의의 사도라도 되는 모양이지? 네 집이 불탄 것도 아닌데, 왜이리 열심인거지. 항상 널 만나면 직접 묻고 싶었다 월풍..."
"소중한 것을 지켜야 하거든."
"소중한 것?"
"그래.. 이 공간, 예전의 아름다웠던 나날들, 평화로웠던 바람결, 행복한 사람들... 다시 되돌려야 하거든."
"뭘 위해서?"
"날 위해서.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지금 니가 사랑한다는 사람은 잘 있고?"
크리스는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월풍에게 묻는다. 월풍은 대답이 없다.
"그래.. 그래서 니가 이 짓을 하면서 지키고자 하는 사랑하는 사람은 잘 있냐고 물었다."
"잘 있지 못하다.... 못 지킬 수도 있다 이대로라면.. 그래서 더 절실한것이다. 곁에 더 둘 수 없게 될까봐... 그 전에 이 곳을 다시 예전의 조선으로 되돌려야 한다."
"참 눈물겹군, 눈물겨워. 예전의 조선이면 그 사람이 돌아오기라도 하나보지? 아니면 네 곁에 평생 남아있거나.."
월풍은 주욱- 칼을 빼어들었다. 그리고 앉아 있는 크리스의 목을 향해 겨눴다.
"그러기 위해선, 너 부터 죽어야겠어."
그와 동시에 집무실 뒷편 병풍에서 군사들이 뛰쳐나왔다.
"타오야. 죽여라."
"네 알겠습니다 크리스님."
"레이, 가자."
월풍은 예상했다는 듯이, 병사들 하나하나 상대하기 시작했다. 이 쯤이야... 평생을 이를 갈며 무술을 연마해 온 자신과는 대적 자체가 안됬다. 좁은 방 안에서는 사내들의 거친 숨소리와 칼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만이 들렸다. 어느새, 월풍, 타오, 레이, 크리스 이렇게 넷 만이 방에 남게 되었다. 타오가 기다란 팔로 먼저 월풍의 목을 제압했다. 월풍은 컥- 소리와 함께 그의 팔에 매달렸다. 그와 동시에 타오의 복부를 팔꿈치로 세게 가격했다. 그러자, 월풍을 잡고 있던 팔이 느슨해졌고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건장한 병사들 3명과의 싸움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휘익-
소리와 함께 집무실의 문을 박차고 백현이 들어왔다.
"니 놈은 또 누구냐? 얼굴 가린 것을 보니 월풍과 한 패로구나. 오늘 너희 둘 다 제사를 치를 줄 알아라."
백현은 현란한 칼 솜씨로 레이와 타오를 겨눴다. 체구로는 열세였지만, 무술 실력이나 순발력에서는 절대 뒤지지 않았다. 이리 저리 이들을 피해가며 급소만을 가격했다. 월풍은 일대일로 크리스와 마주 섰다. 앉아 있던 크리스가 일어서니, 비변사의 대장군 답게 거대한 풍채를 갖고 있었다. 크리스는 갖고 있던 둔기를 휘익- 휘두른다. 갑작스런 공격에 월풍이 중심을 잃었다. 그와 동시에 크리스에게 제압당했다. 아까 칼에 맞아 생긴 상처가 곪은 모양인지, 칼을 휘두를 때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이 번졌다. 그 때문에 제대로 싸움에 집중할 수 없었다. 백현도 두 명을 상대로 싸우기 벅찬지, 연신 고함을 지르며 그들을 상대해나갔다. 그 때였다.
"너희들은 나도 상대해야 할 것이야."
종인이다. 종인은 양 손에 장검을 든 채 먼저, 백현이가 상대하고 있던 타오와 레이를 제압했다. 백현도 종인의 도움으로 손쉽게 그들의 급소를 찌를 수 있었다. 죽진 않았지만, 신경을 찔렀기에 제대로 움직일 수는 없을 것이다. 곧이어 종인은 크리스에게 다가갔다.
"정말 니놈에게 칼부림을 하고 싶었다. 무척이나."
"너는 도경수의 쥐새끼 아니더냐. 왜? 난 니놈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도영감이 모든 죄를 뒤집어 쓰는 바람에 내가 편해졌다고. 덕분에 내 자리가 더 공고해졌거든."
"이 새끼가!!!!!!!!!"
종인의 칼이 크리스의 허리를 스치웠다. 그 틈을 타 월풍이 크리스의 목을 잡았다.
"너도 니가 아끼는 것들이 없어지는 아픔을 겪어봐야 할 것이야."
그 때였을까. 문 밖에서 바스락 소리가 나더니 타는 냄새가 흘러들어왔다. 백현은 이상한 낌채를 알아차리고, 종인과 월풍의 손목을 잡고 밖으로 몸을 던졌다. 곧이어, 크리스가 있던 집무실은 폭발했다. 누군가가 불을 질러 집을 날려버린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찬열이다.
"이게 내 방식의 복수다. 나는 법 따위 믿지 않아. 내 손으로, 내가 당한 것과 똑같이 되갚아 줄 뿐이야. 감옥에 들여놔봤자 금방 나오겠지 크리스 같은 놈들은... 너희들에게는 미안하기도 하고 또 너희들이 밉기도 하다. 난 너희같은 도련님들은 딱 질색이거든. 그리고 너-" 찬열은 백현에게 칼을 들이댔다.
"세훈이를 내 눈앞에서 가차 없이 배어버리더군. 마음 같아선 이 곳에서 당장 니놈의 목을 따버리고 싶지만, 이번만큼은 그러지 않을 것이야. 피를 부르는 복수는 이것으로 끝내고 싶거든. 그저, 세훈이의 장례만 제대로 치뤄달라고 말하고 싶다. 나같은 형을 만나서 평생 동안 고생한 놈이거든. 맛있는 것도 제대로 못 먹고, 복수에 눈이 멀어 이 곳 저 곳 떠돌아다니는 형 뒷꽁무늬 졸졸 쫓아다니며 자기도 무술을 배우겠다며 나보다도 열심히 살았던 놈이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찾지 마라. 어차피 이런 곳, 치가 떨려 더 이상 남고 싶지도 않거든."
찬열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을 전했다. 그리고는 느릿느릿한 발걸음으로 뒤를 돌아 걸었다. 들썩이는 찬열이의 뒷모습 어깨가 그가 울고 있음을 알려줬다.
"나는 이만 가보겠다. 몸 조심해라, 백현. 루한."
"너 어떻게... "
백현이 깜짝 놀랐다. 어찌, 월풍이 루한님인 것을 안 것인가.
"남들은 다 속여도 나는 못 속이지. 함께 한 시간이 몇 년인데, 그 필체를 못 알아보겠는가. 벽보만 봐도 나는 루한입니다.가 써있던데. 그리고, 경수님 일.. 도와줘서 고맙다. 덕분에 5년 전 화재의 원인은 도영감이 아닌 크리스인 것이 밝혀졌으니..."
종인은 옅게 백현을 향해 웃더니 담을 넘어 어디론가 달려갔다. 분명, 어디선가 축 쳐져 있을 경수를 보러 가는 것일거다.
"루한님! 괜찮으십니까?"
루한은 한 쪽 어깨를 감싸안은채 떨고 있었다. 아까 백현이 루한과 종인을 밀쳐 나오면서 땅에 아까 상처가 부딪힌 모양이다. 루한이 감싸안은 손가락 사이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루한은 정신을 못 차리는 듯 했다.
"김민석..김민석.."
줄곧, 민석의 이름만을 부를 뿐이었다. 백현은 한숨을 내쉬더니, 자신이 쓰고 있던 천을 벗어 지혈을 시작했다.
"아플 것입니다."
상처 부위를 세게 옥죄자 루한은 비명을 질렀다. 아까 맞았던 칼이 꽤나 깊숙한 상처였던 모양이다.
"잠시만 여기 계십시오. 의원님을 불러 오겠습니다. 출혈이 심해 제가 엎고 갈 수가 없습니다. 밖의 병사들은 모두 정리되었으니 안전할 것입니다. 잠시만 참으십시오 루한님."
백현은 무거운 칼, 그리고 입고 있던 장비들을 급하게 떨구어 내고는 의원 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일까.. 이 곳 조선은... 그리고 우리 다섯은.... 언제까지 피비린내 나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달려야 하는가....
**
"김종대... 그 새끼.... "
민석은 아직도 종대가 남기고 간 여러 말들이 정리가 되지 않는 듯 했다. 다시 김종대한테 찾아가서 모든 걸 꼬치꼬치 캐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김종대는 대한민국에서나 조선에서나 의뭉스러운건 매한가지였다. 이 곳은 지난 번 갔던 경수네 집의 2배 정도는 되 보였다. 민석은 돌담을 따라 걸었다. 출구라도 나오길 바라며... 그 때 였을까. 어둠 속에서 어떤 물체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민석은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화중주에서 월풍을 발견했을 때의 느낌이랄까...
"월풍... 이 곳에서 다시 만나네요."
대답이 없다.
"이봐요? 정신차려요! 월풍!!!!!! 이 곳에는 또 왜 온 거에요? 여긴 어디에요?"
월풍, 아니 루한은 두 눈을 힘겹게 떴다. 민석이다... 또 민석이 왔다. 항상 자신이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민석이가 옆에 있어줬다. 루한은 갑자기 허탈한 웃음이 났다. 그렇게 기방에 박혀 있으라고 말을 했거늘.. 어디서 또 뽈뽈대며 이 곳 크리스 저택까지 온 것인가. 루한은 자꾸만 멀어져 가는 정신이 느껴졌다.
"저번에 정신이 없을 때 네가 불러줬던 노래가 뭐였지?"
"노래요? 아..애국가였나? 왜요? 또 막 정신을 잃을 것 같은거에요? 아니 도대체 저번에는 화살을 맞더니 이번에는 칼을 이렇게나 깊게 배었... "
월풍 어깨 밑 흙에는 어느덧 월풍의 피로 흥건했다. 저번에 있었던 출혈과는 차원이 다르다. 꽤나 깊숙한 상처였다.
"노래나 불러줘. 그럼 정신 차릴 것 같아."
"이 상황에서 퍽이나 노래가 나오겠네요. 자 내 눈을 잘 봐요. 절대로 초점 흐리지 말고, 내 동공이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되요. 알았죠?"
루한은 민석의 얼굴 위로 손을 올렸다. 민석의 얼굴에는 열 기운이 있었다. 어딜 또 그리 뛰어다녔던건지... 이 그리운 얼굴을 언제까지 볼 수 있을 것인지.... 과연, 계속 이 얼굴을 볼 수 있을까... 또 가슴 찢어질 듯한 아픔을 겪어야 하는 것인가... 몸에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소름이 돋는다. 바닥에 누워서 일어날 수도 없었다. 이 꼴을 김민석에게 보여주는게 한없이 초라해보였다. 항상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람이여야 하는데...
민석은 월풍의 눈을 바라본다. 기방에서의 첫날 밤, 그리고 경수 서재에서의 짧은 만남.. 강렬했던 두 번의 만남 속에서 은연 중에 그리워했던 두 눈이다. 어딘지 모를 슬픔이 담긴 두 눈... 자신을 바라보는 그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니 민석은 가슴 한켠의 아련함이 밀려온다. 그리고 지금도... 가슴이 미칠듯이 아프다. 잠잠했던 머리도 옥죌듯 아프다. 누군가가 민석의 머리를 두 집게로 집어 올리는듯한 아픔이다. 이 자가 뭐길래... 누구길래... 이런 감정을 만들어내는 것인가... 한 번도 얼굴을 제대로 본 적도 없다. 항상 볼 때마다 월풍은 한 없이 약해져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두 눈만은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고요함이 흐르는 가운데 월풍과 민석은 두 눈이 맞닿아 있는 채로 달밤의 바람을 맞는다. 민석은 그의 눈 속에서 무언가를 읽고 싶었다. 뭐를 생각하고 있는지.. 당신은 과연 누구인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건지.. 어딜가면 당신을 만날 수 있는지..
갑자기 월풍이 상처 부위를 더 억세게 쥐었다. 고통이 다시 몰려오는 모양이었다.
"윽-"
민석은 그 손을 치우고는 자신의 손을 갖다 대었다. 월풍의 팔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어깨 죽지 밑의 상처..... 번뜩, 민석은 루한이 떠올랐다. 아까 루한의 상처부위... 어깨 날개 죽지 바로 밑... 세훈이 깊숙하게 찔러넣은 그 곳... 우연의 일치치고는 그 위치가 너무 똑같다. 머리가 또 아파온다. 복잡했다.
민석은 조심스레 손을 월풍의 얼굴에 갖다댄다. 그러자 월풍이 민석의 손 위를 조심스레 올려놓는다. 눈으로 말하는 듯 했다.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듯 했다. 민석은 조심스레 코에서 부터 월풍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천을 스르르- 내린다. 어둠 속에서 월풍의 얼굴 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구름에 가리어졌던 달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달빛이 월풍의 얼굴을 그대로 비춘다.
"루한.........."
민석의 눈에서 갑자기 굵은 눈물이 쏟아진다. 주체할 수 없었다. 그리웠던 사람... 처음 만난 날 아련한 키스를 해주었던 사람... 기방에서의 외로웠던 첫날 밤, 함께해주었던 사람... 무심한 척, 자신을 위로해주던 사람... 그 상처를 입고도 자신을 보러 화중주에 들러 준 사람... 경수네 서재에서 마주쳤던 사람... 자신을 꼬옥 안아주던 사람... 그 같은 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나타나 자신을 업고 화중주까지 데려다 준 사람... 비변사 잔치에 와서 자신을 크리스로부터 지켜주던 사람... 늦은 밤까지 함께 있어주던 사람... 세훈의 칼을 대신 맞은 사람... 그리고 지금 자신 앞에 상처를 입은 채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 루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