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전 1월 5일
w.기분이나쁠땐
오랫만에 부모님 집에 다녀왔다. 1월 1일부터 1월 4일까지 편지같은 거 신경도 안쓰고 그냥 집에서 쭈욱 놀았다. 티비도 보고 컴퓨터도 하고 내가 살던 동네 구석구석도 돌아다녀보고..그냥 그랬다. 그렇게 추억만 돌이키다 왔다. 그냥..그냥..그랬다. 다시 다녀오라고 하면 딱히 가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내가 살던 집으로 돌아오니 우체통에는 4통의 편지가 쌓여있었다. 1월 1일. 1월 2일. 1월 3일. 1월 4일. 꼬박꼬박 잘도 보낸다. 오늘 건 아직오지않았다. 아직 너무 이른시간이기 때문이다.
집에 들어가면서 편지를 하나하나 뜯어서 보았다. 내용은 단조로웠고 영양가가 없었다. 떡국은 먹었느냐. 가족집에 내려간 것이냐. 가족은 어떤사람들이냐. 가족 구성원이 궁금하다. 친구들은 어떤사람들이냐. 학교는 좋느냐. 학교 휴학했느냐 등등... 어차피 답장도 못받을 편지인걸 알면서도 항상 이렇게 질문만 퍼부어 대는 탓에 편지들을 다 읽고 나면 질문들에 어지러웠다.
친구는 딱히 없었다. 연락을 자주하는 친구도. 자주 만나는 친구도. 그냥 그랬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 삶은 그냥 그랬다. 과거에도 현재에도....난 미래에도 내 삶이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 어렸을때부터 튀기 좋아하는 여느 아이들과는 달리 그냥 그런 삶을 지향했고 그 삶이 현실이 되고 지금까지 쭈욱 이어지면서 단 한순간도 그냥 그런 삶에 질리거나 지친 적이 없었다. 물론 그냥 그런 삶은 매년 업그레이드 되지만 내 나름대로 정의한 그냥 그런삶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사실 마냥 이렇게 살다보면 때로는 조금 두려워진다. 말이 좋아서 그렇지 나에게는 딱히 특별했던 것도. 이뤄놓은 일도 없다. 늘 겁이나서 그냥 피하기만 한다. 늘 겁이나서 그냥 피하기만 했기 때문에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그냥 그런 삶을 달성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군대도. 휴학도. 등록금도.취업도.
생각하면 막막하다. 어쩌면 조금은 쉽게 생각 할 수 있지만 한번 깊게 생각하게 되면 마냥 깊어지는 생각들인 것 같다.
나에겐 편지도 비슷한 맥락이다.
사실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냥 무시하면 된다. 그냥 어떤 게이같은 남자가 날 좋아하지?이러면서 무시하면 된다. 아니면 그남자가 편지를 넣을 때 그남자를 습격해서 욕을 시원하게 한바가지 하면서 꺼져버리라고 하면 된다.
편지도 겁이난다. 그래서 그냥 피하기만 한다.
그냥 애틋하다. 이 편지를 보내는 남자가. 그 남자의 언어 하나하나에는 절절함이 있고 무심함이 뚝뚝 뭍어나오는 말투에서는 내가 그냥 장난으로 여기고 넘어가길 바라고 있는 듯하다. 자신의 마음을 들키고 싶어하지 않는. 그렇기에 애틋하고 그래서 애틋하다. 그렇기에 내가 겁이나고 그래서 그냥 피하기만 한다.
내가 그 남자가 편지 보낸 뒤 정확히 8분 뒤에 나가는 것은 올해 나만의 암묵적인 약속이였다.
만약 내가 편지를 확인하려다가 우연히 그 남자를 보게 된다면 아마 나의 그냥 그런 삶은 깨질 것이다.
난 마음이 약하다. 분명히 그 남자를 보는 순간 애틋한 그 언어들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그 남자에게 포옹을 해줄지도 모른다.
그러면 분명히 그냥 그런 삶이 깨지겠지..그냥 내가 입다물고 내가 피하기만 하면 된다. 그래. 그게 내 삶을 지키는 일이고 다른 사람들의 삶도 지키는 일이다.
머릿속이 복작복작하다. 여러가지 감정과 생각이 뒤엉켜 캠프파이어를 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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