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의 의문
w.기분이 나쁠땐
눈을 번쩍뜨니 아침이였다. 참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아 아마도 아직 새벽에서 아침이되어가는 과정인 것 같다.
아침은 대충 시리얼과 우유로 배를 채웠다.
한참동안 할 일이 없어 빈둥빈둥 놀기만 했다. 아직 편지가 올려면 멀었고..할 일도 없었던 찰나에 순간적으로 그 동안 모아뒀던 편지들 중에 의문스러웠던 편지들의 내용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렇게 생각 난김에 오늘이 장날이다 싶어 내 방 세번째 서랍 속에 수북한 편지들을 다 꺼냈다.
작년 8월...9월.......이렇게 하나하나 보니 세삼 많았다. 그동안 나는 받기만 하는 입장이다보니 그렇게 많다는 걸 느끼지 못했는데 오늘 다 뒤엎고 나서야 보니 세삼 이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대단했다. 이렇게 하루하루 안빼먹고 편지를 보냈다니..
한참 그동안 받았던 편지들을 읽어보며 의문스러운 내용을 띈 편지들을 하나하나 골라냈다. 의문스러운 내용이 있었던 편지들은 총 4통이였다. 나머지는 그냥 일상의 소소함을 너무 소소하게 담아낸 편지들이여서 읽는내내 약간 졸렸다.
작년 7월 9일..7월 10일..12월 31일..그리고 어제 받았던 4월 1일의 편지까지..
사실 4월 1일의 편지는 세로문장을 만든 것 때문에 넣은 것이다. 왠지 이 사람은 이 세로문장 하나에도 의미를 넣었을 것 같다. 그리고 왜 굳이 다른 문장도 아닌 '안녕 김민석'으로 세로문장을 만들었는 지도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차례차례 의문스러운 편지들을 읽어보았다.
(7월 9일의 편지
-안녕?김민석. 갑자기 편지 보내서 놀랐지..? 아마 내가 궁금할껄..? 근데 안알려줄꺼야. 넌 내가 누군지 알면 아마 놀라서 까무러 칠걸!
넌 날 잘 모르지만 난 널 잘 알아. 아마도 지금쯤 중국어학원에 갔는 데 학원이 문을 안열어서 의기소침한 마음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껄?
이걸 어떻게 아냐고? 난 널 잘 아니깐.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 할께. 김민석 안녕.-)
7월 9일의 편지는 제일 처음 받았던 편지다. 아마도...이때가..중국어학원 때문에 한참 골머리를 앓고 있었을 때 일꺼다. 편지내용에도 기재되어있듯이.. 이 편지는 곰곰히 생각해보면 상당히 무서운 편지다. 내가 무얼하고 왔는지 알고 그에 따른 감정까지 파악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편지가 제일 의문스럽다. 나를 잘 안다고 했는 데 내 주변에 나를 잘 알만한 사람은...부모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들과도 그렇게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 편이기때문에 대게의 친구들은 나를 어려워했고 나를 어려워하는 친구들을 위해서 굳이 입을 열어서 친하게 지내는 것도 내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은 드물었다. 그리고 나를 잘 아는 친구가 이런 편지를 보냈을 리가 없다.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은 오래 전에 연락이 끊겨 어디서 무얼하는 지 알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분명히 내 소식을 듣거나 내 정보를 알게 된다면 당장 달려와서 반갑다고, 보고 싶었다고 할 친구들이였다. 그래도 아주 약간의 가능성을 포함시켜 내 친한친구가 보냈다고 가정해도 이렇게 장기간동안 보낼 친구들이 아니였다. 본인들 눈 앞에 흘러넘치는 기회와 이익을 줍고 다니기에도 바쁜 녀석들이 어떻게 1년 가까이 매일매일 편지를 보낸단 말인가...
(7월 10일의 편지
-안녕.김민석. 잘있었어? 아마도 밤새 고민했겠지.미안해. 고민하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미안.. 근데 내가누군지알려주고픈 마음은 없다. 이미 내가 남자라는 것 쯤은 알고 있겠지? 또 뭘 알고 있을까? 설마 내가 일개 스토커일꺼라 생각하지마.
아 맞다. 오늘도 중국어 학원 갔더라. 근데 오늘도 또 문 안연 모양이야....힘내. 그학원 정말 독특한 학원이다. 아무튼.. 그 학원때문에 너무 화내지마. 건강에 안좋아.
앞으로 뭐할거야? 언제까지 중국어 학원 열었나 안 열었나 확인해 볼꺼야? 궁금하다. 내가 언제까지 그 학원까지 같이가봐야되는지..
근데 그 학원 말이야..그냥 잊어버려. 어차피 열 것 같지도 않고..아..내가 알려줄까? 내가 맨날 지켜볼게. 그 학원 여는 지 안여는 지. 어때?
어차피 넌계속 이 편지를 받아야되. 그러니깐 내가 알려줄께. 힘들게 나가지마. 덥잖아. 그치..?
아...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 할게. 김민석.안녕.-)
두번째 의문스러운 편지였다. 사실 의뭉스럽기보다는 집요함과 무서움이 있었다. 솔직히 이 편지를 받았을 때는 이 사람이 진심으로 무서웠다. 그리고 이런 이상한 편지 신고해버릴까? 라는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신고해버릴까?라는 생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신고를 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이 사람의 자상함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왠지 내가 평론가 같고 이상해보이지만 계속 생각하면서 읽다보면 이사람은 꽤나 자상했다. 이 편지를 계속 받아야된다는 말과함께 자신이 알려주겠다고. 날이 더우니 밖에 나가지 말라는 말은 마치 엄마가 더운 여름날 나에게 심부름을 시키려다 혹여나 내가 더위 먹을까봐 팔팔한 나를 두고 지갑들고 나갔다 온다는 말과 함께 나가는 엄마의 뒷모습과 같은 느낌이였다. 나는 그당시 이편지를 읽으면서 무슨 느낌을 받았을까? 지금의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까..
(12월 31일의 편지
-안녕? 김민석. 잘지내지? 밥은 잘 먹지? 내일이 새해다.
집이라도 다녀와. 부모님이 걱정하실라.. 내일 새해라고 오늘 밤새 티비보면서 맥주 먹는 그런 한심한 짓은 하지 않겠지?
김민석. 조금 오글거리겠지만..미안해...그럼 이제 그만 쓸께. 김민석. 안녕.-)
왠지 이편지는 더이상 편지를 보내지 않을 것만 같은 극단적임이 담겨있다. 날짜와 편지의 내용이 상당히 우연스럽게도 맞아 떨어져 '새해가 됬으니 나도 이젠 편지를 그만쓰겠다 그동안 미안했다.'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때의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귀찮다고 생각을 했을까.. 분명 저 미안하다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 하고 고민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과연 지금의 나처럼 마지막 편지일 것 같다는 생각은 했을까? 아마도 저때는 별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문득 내일부터 더 이상 편지가 오지 않는 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다. 이미 내삶의 일부처럼 된 편지. 처음에는 혼자서 열심히 누가 보냈는지 파헤쳐보려고 생각도 했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그냥 나의 삶을 지키기 위해 하루하루 읽으면서 하루하루의 심심함을 벗어나게 해주던 편지. 대학을 입학하고 독립하고 나오면서 책상을 살 때 세번째 서랍에는 꼭 대학친구들과의 추억 쌓은 것들을 놓겠노라 생각했지만 친구들과의 추억대신 쌓여준 편지. 이젠 내 20대 초반의 추억이 될 것만 같은 편지. 더 이상 오지 않는 다면 왠지 심심할 것만 같은 편지. 누군지 알아내지 못한대도 계속 왔으면 좋겠는 편지. 편지..편지..
편지라는 단어는 어느 세 내게 가족만큼이나 중요한 단어가 되었다. 누가 보냈는지는 모르지만 이 편지를 받음으로써 나는 내가 존재함을 느끼고 그래도 내가 아직 사람임을 느끼는 것 같다.
어느 세 편지는 내 삶의 중요 일부로 자리매김했다.
(4월 1일의 편지
-안녕? 김민석. 오늘 만우절이야.
영 편지쓸 기분이 아니였는데 적어본다. 오늘만우절인데 뭐 좀 받았냐?
김빠지게 이런 질문 괜히했나..?
민족대명절같은 날도 아닌데..
夕食은 먹었고?-)
4월 1일에 받는 것은 딱히 도드라지게 의문스러운 부분은 없었다. 그러나 세로문장과 두통이나 온 편지가 거슬린다. 어쩌면 4월 1일이 그 사람의 한계였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4월 1일에 왜 두개의 편지를 줬을까.... 만우절이라서 두통을 보낸건가? 라고 생각하면 세로문장이 거슬리고.. 여러모로 복잡한 편지이다. 다시 읽어보니 영 편지쓸 기분이 아니라는 말도 왠지 모르게 거슬리는 것 같기도 하다..
얼마나 멍을 때렸을까... 문득 오늘 편지가 생각나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이미 편지가 왔을 시간은 훌쩍 지난 뒤 였다.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미스였다. 어제는 2분이였지만 오늘은 2시간 미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진짜 그 사람의 한계..아니 나의 한계인가?
나름 시간을 잘 지킨다 생각했는데 어제에 이어서 오늘까지 시간 미스가 나니 왠지 밖으로 나가서 확인하고 싶어지지가 않았다. 어쩌면 지금 내 생각이 맞을 지도 모르니.
초조했다. 내 생각이 맞을 수도 있지만 틀릴 수도 있다. 내 생각이 맞다면 나는 아마 좌절할 것 같다. 아마 끝이라고 생각 할지도 모른다. 만약 4월 1일에서 편지가 끝나버리면..난 이제 뭘하지? 사실 원래대로 다시 대학교를 다니면서 그럭저럭 생활할 자신이 없다. 왠지 두렵다. 왠지 2시 7분에 시계를 확인하고 정확히 8분뒤에 우체통을 확인하러가야 될 것만 같았다. 무섭다. 틀릴 수도 있지만 맞을 수도 있다. 차라리 이게 카드놀이였다면. 조커와 클로버 5를 남겨두고 고민하는 나였다면. 그랬다면 망설임 없이 골랐을 텐데.. 왜 편지일까.. 왜...
때마침 밖에서 누군가가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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