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세상으로 12
w.기분이나쁠땐
방과후에 만났던 그 아이와는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딱히 할말이 없는 것인지 대화는 거의 내가 걸었고 그 아이는 자신의 정보는 잘 알려주지 않았다. 자신의 정보가 드러날 만한 질문이면 비밀이라고 말하며 신발끝으로 바닥을 툭툭 치곤했다. 뭐가 그리도 비밀인지.. 쉽게 알려줄 수 있는 이름 정도는 알려줄 수 있을 꺼라 생각했던 나의 생각은 큰 오산이자 나의 착각일뿐이였다.
그렇게 나는 그 아이에 대한 큰 수확도 없이 그 아이와 헤어졌다.
그리고 다음 날도 그 다음날도.. 그 아이는 오지 않았다. 학교엔 이미 내가 그 아이의 전화번호를 딴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있었고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믿고 싶은 대로 자신들이 기정사실화시켜 제멋대로 소문을 만들고 있었다. 솔직히 그 까짓 소문이야 금방 사라질 것이 분명하고 나에게 소문에대해서 물어오는 아이들이 있다면 해명하면 되는 거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마음에 걸리는 건 몇일째 나타나지 않는 그 아이였다. 어디가 아픈것인지.. 아니면 다른곳으로 간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알려준 번호로 연락하고 싶었지만 그건 내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생각일뿐 행동으로 실천되지는 않았다.
연락했다. 그 아이가 학교에 오지 않은 날이 일주일 즈음 됬을때.
내 주머니속에 너무 소중히 간직되어 있는 꾸깃꾸깃한 그 종이를 펴 그 아이가 적어준 한어를 따라 조심히 전화 다이얼을 눌렀다. 나에게 알려준 번호가 가짜 일줄 알았는 데 신호가 가자 내 심장도 따라 뛰었다.
-여보세요?-
"나..루한이야.."
-아......무슨일이야..?-
"학교...안와...?"
-학교... 학교... 루한.. 나는 다시 한국으로 가.. 하루 만났지만 만나서 좋았어. 니가 먼저 내 번호를 물어봐줘서 고마웠어.. 그리고 너한테 아무것도 알려줄 수 없어서 미안해. 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평범하게 학생으로 살 수 없는 애라서.. 그곳에 있는 니 친구들에게도 인사 해보고 싶었고 우리반 친구들한테도 인사해보고 싶었는데.. 아무것도 못하고 다시 돌아가서 왠지 씁쓸하다.. 아마 너희학교 친구들은 날 되게 웃긴애라고 생각하겠지..? 휴.. 내가 한국 이미지 망친건가..?-
"아..아니야! 그리고 괜찮아.. 그냥 대화할 수 있어서 좋았어.. 니가 번호 안 적어줄 것 같았는 데 적어줘서 기뻤어.. 솔직히 니가 적어준 번호가 진짜일까도 생각했는데.. 오늘 이렇게 니 목소리 들으니깐.. 좋다.. 니가 좋다.."
-루한.. 언젠가 한국으로오면 연락해.. 중국보다 한국은 훨씬 작아. 그래서 아마 한국으로 온다면 분명히 지나가다 우연히 만날 수 있을 꺼야...-
"응.. 그때는 .. 이름 알려줄꺼지..?"
-............응....-
"금방갈께.. 꼭 한국에서 만나.. 그리고 그곳에서는 지금보다 더 친해지자.."
-............-
그 아이는 내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더 친해지자는 나의 말은 그 아이와의 마지막말이자 마지막 통화였다.
그뒤로 학교에는 그 아이는 서류상의 문제로 다시 전학을 갔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퍼지고 나에대한 소문도 사그라 들었다. 그러나 그 아이에 대한 나의 마음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오히려 하루 본 그아이의 얼굴이 자주보는 내 친구의 얼굴보다 선명했고 아른거렸다.
한국으로 간다.. 한국으로 오라.. 아직 고등학생이였던 나에게는 너무 가혹한 말이였다. 우리집은 이곳에 날 보내기도 벅찬데.. 한국이라...
아마도 이 때부터 나는 학교생활이고 뭐고 미친듯이 그 아이만을 그리며 괴로워했다. 나를 보다못한 내 친구들은 나를 학교 내에 위치한 상담실로 밀어넣었고 그곳에서 나는 교환학생이라는 한줄기 빛을 봤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그래도 꽤나 명문학교였기에 교환학생 제도가 있다 했다. 그 아이를 좋아해 괴로워하는 심정을 털어놓자 상담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나에게 교환학생 모집 요강 팜플렛을 건네셨다.
이동수업인지 일찍끝난것 인지 모를 텅텅 빈 우리반 교실에 앉아서 나는 교환학생모집 요강을 읽었다. 특히 한국 교환학생란을 꼼꼼히 읽었다. 성적은 지금 내 성적으로는 조금 아슬아슬 했지만 조금만 더 올리면 충분히 갈 수 있는 성적이였고 내가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가 있는 기간 동안은 학비는 다 지원이 된다니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지 않아도 됬다. 다만 한국에서 교환학생신분으로 있는 동안은 해야되는 일이 너무 많았다. 과연 그 아이를 만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문득 내 주머니에 고이 모셔둔 그 아이의 번호가 적힌 종이가 떠올랐다.
한국으로 오면 연락하는 그 아이의 말. 내 귓가를 맴돌았다.
그 뒤로 나는 미친듯이 공부에만 전념했다. 친구들은 나를 괴로워하던 놈이 이젠 공부에 미쳤다며 혀를 찼다. 딱 죽기 직전까지. 쌍코피를 흘릴 때까지. 공부하다 쓰러질 때까지. 공부 때문에 5kg이상이 빠질 정도까지. 딱 그정도만 했다. 미친놈처럼. 정신나간 놈처럼. 그렇게 하니 내 눈앞에 들어온 건 여권과 한국행 티켓. 그리고 내가 교환학생에 선발됬다는 사실에 즉,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에 무료로 한국에 가서 학비를 지원받는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들어왔다.
부모님과 친구들의 배웅 속에 나는 머리속에 그 아이를 가득 채우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가슴이 막 뛰었다. 이제 드디어 내가 한국으로 가는 구나. 한국에서 그 아이를 만날 수 있구나. 그리고 이 때 나는 고2가 되었다. 기대를 가득 안은 비행기 속에서 나는 고2가 되어 교환학생으로 신분으로써, 그 아이를 만나러, 새로운 환경을 접하러 한국에 갔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한 일은 공항내에 있는 공중전화에 동전을 여러개 쌓아두고 그동안 고이 간직했던 종이를 펴는 일이였다. 그 동안 힘들때마다 위안을 삼던 이 종이에 씌여진 그 아이의 글씨는 조금은 뭉개져있지만 이미 내 머릿속에 외어진 그 아이의 번호를 누르는 손가락이 종이 따위는 필요없음을 증명했다.
천천히 신호가 가고 나의 마음도 초조해져만 갔다.
-여보세요..?-
"나.. 루한이야.."
-아... 루한.... 잘 지냈니..?-
"나 한국이야..."
반가움에 그 아이의 인사에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무작정 한국이라 했다. 보고 싶었다. 그리웠다. 빨리 다시 만나서 그 아이의 이름도 알고 싶었고 그 아이가 나에게 좀 더 한국어를 알려줬으면 좋겠고.. 그 아이와 많은 일을 하고 싶었다. 그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교환학생으로 가고 싶었다. 그 아이와. 모든 그 아이만 있었으면 좋았을 것 만 같았다. 제발 그 아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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