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일은 정말 아무도 모르는거였다.
세훈이 차창밖으로 손을 내밀자 찬열이 버럭 화를냈다. 오세훈! 창밖으로 손 내밀지 말라고했지! 뻐끔거리는 입에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잠깐 내뺐던 손을 거두고는 턱을 굈다. 불퉁한 세훈의 표정을 본건지 찬열이 무어라 더 말하려다 입을 꾹 닫았다. 어차피 그는 듣지도 않을 말이었다.
세훈은 도착해서도 쉽사리 차에서 내리지를 못했다. 찬열에게 그냥 혼자 가라는 말까지 했다. 마음먹고 온거라면서, 찬열이 입을 떼자 세훈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고개를 두어번 주억거렸다. 그렇지만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어. 그의 말소리가 표정으로 전해졌다. 찬열이 작게 숨을 내쉬고는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 니가 많이 슬프던 안슬프던, 결혼식 1시 시작이야. 알겠어? 달라지는거 없어. "
금새 눈물을 떨어뜨릴 것 같은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찬열을 따라나선 세훈이 넥타이를 정리했다. 꽤나 사람이 많은 식장에 찬열의 팔을 살짝 잡았다. 그가 가까워 질 때마다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가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나만 느낀것이 아니었다.
순 백색의 드레스를 입은 여자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왜 우는걸까. 세훈이 입을 달싹이다 옆에서 가만 박수를 치던 찬열을 툭툭 쳤다.
' 좋아서 우는거겠지? '
" 그렇겠지. "
' 그러면… '
" … "
' 나 지금 슬픈데 울어도 될까? '
찬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무슨소리야. 세훈이 고개를 휘휘 젓고는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신경쓰지 말라는 소리였다. 감은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넘쳤다. 일부러 티 내지 않으려 몸을 더 웅크렸다. 함께 보낸 시간이 8년이었다. 찬열이 떨리는 어깨를 보다 손으로 감싸내렸다. 세훈이 몸을 일으켜 식장을 빠져나갔다.
* * *
그는 나와 있으면서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내가 답답했을 것이다. 그는 나와 대화를 하겠다고 수화까지 배웠다. 그런사람이, 한순간 내 곁을 떠나갔다. 처음 보았던 그 눈빛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날 무작정 그의 얼굴을 그렸다. 그 얼굴 위에 곱게 색을 입히고, 밝은 미소를 띄웠다. 그림을 완성한 날은 그의 결혼날짜였다.
종이를 돌돌 말아 고무줄로 고정시킨 뒤, 그것을 현관문앞에 냅다 던져버렸다. 그래야만 내 속이 풀릴것만 같았다. 옷을 추스리고 내가 던졌던 그 그림을 다시 주워들어 그새 들러붙은 먼지를 털어냈다. 오늘은 정말로 그를 잊을 속셈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잊지 못했다.
' 찬열아, 내 그림은? '
" 김종인에게 전해줬어. "
눈이 번쩍 뜨였다. 전해줄까, 말까 한참 고민했다. 만약 그것을 그에게 전해준다면 무어라 둘러대며 줘야할까.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오늘도 사실 그 그림을 줄 생각으로 가져간건 아니였다.
그냥, ' 혹시나 ' 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 혹시나 ' 의 상황이 오늘 벌어졌다.
박찬열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그는 가만히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그가 미웠지만 한편으론 고맙기도 했다. 박찬열이 아니였다면 평생 주지못할 그림이었을지도 몰랐다. 뒷면에 조그만 편지를 써놨던것을 잠깐 잊었다. 그가 만약 그걸 본다면? 너무 부끄러웠다. 그는 이미 결혼을 했고, 나를 다 잊은 후였다. 바보같이 그것을 지우는것을 깜빡했다. 머리를 쥐어뜯자 박찬열이 다가와 제 손을 잡아내렸다.
" 이미 그가 봤을거야. "
" 그도 네 마음을 알야하 하지 않을까? "
박찬열이 쪼그려 앉은 나를 달랬다. 아쉬운 눈물밖에 나지 않았다.
* * *
갑자기 누군가 제게 다가와 돌돌 말린 종이를 건넸다. 그를 의아하게 쳐다보자 저를 등지고 가버린지 오래였다. 그 자리에서 고무줄을 풀어 내용을 확인했다. 종이 속의 주인공은 내가 분명했다. 그리고 이걸 그린 사람은 오세훈이 분명했다. 오세훈은 평소에도 나를 자주 그렸었다. 그와 내가 만난곳은 x전시회였다. 한참 한산할때라 그곳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를 만났다. 마음에 드는 그림을 보았을때, 그 앞에 서있던 그도 함께 보았다. 그림과 그의 조화가 대단했다. 이 그림을 그린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의 뜻을 알아들은건, 휴대폰의 메모장에서였다.
' 그림 예쁘죠? '
" 네. "
' 저 그림 제가 그렸어요. '
" 대단하시네요. 그런데… "
' 저는 말 못해요. 듣지도 못하구요. '
" … "
' 왜 말을 안하나 싶었죠? '
그는 그것이 일상인 듯 말했다. 쓰게 웃는 그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 그림이 마음에 드니 전화번호라도 남겨주세요. 막 그리신 그림이라도 살테니. ' 그렇게 그의 번호를 알아냈다.
그는 참 점잖은 사람이었다. 아니, 그렇게 보이는 걸지도 몰랐지만. 항상 차분했다. 물을 쏟아도 금방 걸레로 아무렇지 않게 바닥을 닦아냈고, 접시가 깨져도 그냥 그 유리조각을 조심히 주울 뿐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굉장히 불안해 보일때가 딱 한번 있었다.
그림을 그릴 때 였다.
그는 연필 끝을 물고 한참을 고민하곤했다. 길게는 스무시간까지도. 그것마저도 제가 졸려 잠에 들고 말았던 것이였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에 역시나 그는 연필을 잡고 있었다. 그렇게 그림을 그리는 그가 예뻐보였다. 창문너머 넘실대는 햇빛을 받으며 머리를 휘날리고 있던 그는 정말로 예뻤다. 나는 한동안 그와의 연애에 마약처럼 취했다.
그 마약의 효과는 꽤나 길었다. 무려 8년이라는 시간동안 취해있었다.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와 나누는 관계에 있어서도 소홀했다. 우리는 그렇게, 이별에 무너졌다.
고개를 돌리며 그 남자를 다시 찾았지만 그는 이미 없었다. 그림을 보니 심장이 마구 뛰었다. 그의 그림체. 그와 나에게 있어서 그림은 추억을 되새기는 매개체였다. 손에 약간 힘을 풀자 종이가 다시 도로록 말렸다. 내 눈에 띈 것은 떨어진 종이 뒷부분에 남겨진 작은 글씨였다.
' 너와의 마지막을 그림으로 간직할게. '
* * *
오세훈은 참 멍청했다. 종이 한 장을 전해주지 못해 안절부절이었다. 내가 악을쓰고 그의 결혼식에 가려는 이유도 그거였다. 매일밤 그 그림을 붙잡고 우는걸 알고있다. 하지만 오세훈은 몰랐다. 자신이 그 그림에 대해 슬퍼하는것을.
집을 나올 때 오세훈이 그림을 챙기는것을 보았다. 일부러 오세훈이 식장을 뛰쳐나갔을 때에 저도 따라나가 차에서 그림을 꺼내왔다. 손에 꽉 쥐고있다 그가 옷을 갈아입으러 갈때 쯤 그림을 건넸다. 그러곤 홱 돌아 와버렸다. 그가 나에게 오세훈에 대해 묻는다면 곤란해질게 뻔했다. 차로 가니 오세훈이 발갛게 부은 눈을 하고 훌쩍이며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세훈의 뒷통수를 잡아당겨 눈가에 입을 맞추니 금새 또 눈물이 한방울 투욱, 떨어졌다.
" 울지마. "
오세훈은 내가 하는말을 듣지못했다. 입모양으로 무슨말을 하는지는 잘 알아 맞췄다. 하지만 지금처럼 나를 보고있지 않을 때, 오세훈은 내가 하는말을 절대로 듣지 못한다.
" 사랑해, 오세훈. "
" … "
" 세훈아… 사랑해. "
" … "
" 사랑해… "
오세훈이 멍청하다고 생각했던 나 또한 멍청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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