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떠나는 날이 왔어.
김태형씨는 나를 대신해서 우리 집을 린이와 함께 잘 지켜주기로 했어.
이 집에서 내가 보낸 편지를 읽을거고, 답장을 부칠거라고 했어.
공항가는 날, 김태형씨는 회장님의 호출이 있어 같이 오지 못했고, 나는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하면서 비행기에 올라탔어.
한동안 돌아오지 못하겠지...
.
.
[To.김태형
나는 잘 도착했어. 혹시 나 때문에 울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럴리가 있나.ㅋㅋㅋ. 회장님께 대들지 말고, 맡은 바 일 착실히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
From.오스트리아 온 지 1일 째.]
〈/to.자기〈>
자기라는 애칭을 만들었는데 왜 딱딱하게 김태형이라고 써? 벌써 보고싶다. 나는 겉으로 티내지 않으면서 열심히 일하고 있어. 그러니까 걱정말고 너나 적응 잘해. 거기선 시차적응도 힘들고, 음식적응도 힘들고, 여러모로 힘들텐데. 내가 하루빨리 안정된 자리에 올라설게. 그리고 너 데리러 갈테니까 그 때까지 마음 변하면 안된다.
From.오스트리아 보낸 지 2주 째.>
[To.김태형
한동안 바쁘고 피곤해서 미처 편지를 쓸 겨를이 없었네. 나는 너가 걱정한 그대로 이 곳의 모든 생활에 적응하느라 힘들었어. 이제야 조금 적응이 되어가는 중이야. 연습스케줄도, 식사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는데 너 생각으로 버텨냈어. 그만큼 너가 너무 보고싶어.
From.오스트리아 온 지 2달 째.]
〈to.자기〈 p="">〈/to.자기〈>
〈to.자기
자기라고는 끝까지 안하네. 적응하느라 고생 많았어.내 생각 하면서 버틴 것도 기특해. 나는 요즘 린이랑 놀아주느라고 진땀을 빼고 있어. 어찌나 빨리 크고 있는지 몰라. 참, 네가 찍은 광고 나왔더라. 인터넷에 검색해봐. 아주 예쁘더라.〈/to.자기
From.오스트리아 보낸지 80일 째.>
[To.김태형
광고 잘 나온 거 보니까 기분이 좋다! 요즘은 전정국이랑 안 마주쳐? 회사 일 하다보면 많이 마주칠 것 같은데? 이 곳에서 지내다보니 그냥 한국에서 어울렸던 모두가 그립네. 나는 이번 공연에선 작은 역할을 맡았지만, 최선을 다할 생각이야. 이 발레단에서 내가 제일 못하는데도 연출가님이 특별히 기회를 주셨으니까.
From.오스트리아 온 지 110일 째]
〈/to.자기〈>
언제 공연해? 한 6개월쯤 뒤? 꼭 나한테 티켓 보내줘야된다. 나는 지금 너 생각하면서 진짜 하루에 3시간 자며 일한다. 서류를 하루에 50개씩 처리해. 빨리 승진하려면 이정도는 해야겠지 싶어서 오히려 일을 끌어오고 있어. 그런데 아버지는 내가 의심되는지 아직까지도 해외 관련 사업건은 절대 우리 부서에 주지 말라고 하신다. 참나. 그래도 외국 나갈 일 있으면 무조건 너 보러 가야지
From. 오스트리아 보낸지 125일 째>
[To.김태형
오늘 연습실에 새로운 연습용 컴퓨터가 설치되어 있길래 켰는데 딱 너희 회사 로고가 뜨더라.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몰라! 내가 막 다른 동료들한테 우리나라 기업에서 만든거라고 하니까 다들 놀라더라! 심지어 너희 회사에서 출시한 핸드폰 쓰는 동료도 있었어! 신기하지? 하...너희 회사 로고만 봐도 너가 보고싶다..여기에 꽤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아 지금이 새벽이라 감성에 젖은 것 같아 그럼 다음에 또 편지할게!
From.오스트리아 온 지 150일 째]
150일 째 되는 날 새벽에 편지를 쓰고 나서 잠이 안와 아침 해가 뜨는 것까지 보고 아침을 챙겨 먹은 다음에 아침운동 할 겸 우체통에 편지 넣으려고 숙소를 나왔는데...
"어이 거기 한국 아가씨"
순간 잘못들은 줄 알았어. 이 곳에서 한국말 쓰는 사람을 한명도 못봤거든. 잠을 못자서 환청이 들리는 줄 알았지.
뒤돌아봤을 때, 김태형씨가 있는 걸 발견해서 바로 달려가서 안겼이.
"어떻게 이렇게 일찍 왔어요???"
"비밀."
"흥....그래도 좋다!!!진짜 보고싶었어~"
김태형씨한테 안겨있으니까 그 특유의 향기가 딱 내 코로 들어오는데, 기분이 너무 좋은거야!
그러다가 손 꼭 잡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고 있는데....동료 무용수를 만났어.
"Guten Tag!"
서로 인사를 하고 쿨하게 지나가는게 역시 좋은 동료다 싶었어. 한국같았으면 벌써 무슨 사이냐고 물어보고 그 전에 이미 김태형씨 보고나서 놀라 사진 찍었겠지?
그들이 나를 이렇게 쿨하게 인정한 건 그 친구들도 다 남자친구가 있기 때문이지~ ㅋㅋㅋ
원래는 무용수들은 연애금지거든. 근데 다들 그냥 암암리에 다들 연애해! 무용단 내에서만 연애 안하면 된다고 알아서들 룰을 바꿔 생각하고 있더라구
어쨌든 난 아침을 먹겠다는 김태형씨를 데리고 아침부터 여는 카페에 갔어. 내가 좋아하는 메뉴들이 엄청 많고 무엇보다 사장님이 친절하셔서 자주 가는 곳이기도 했지.
"이게 너 노트야?"
"응 여기선 진짜 하루 일과의 사소한 것까지 다 적으라고 하더라...골치아파"
"어느 회사를 가든 이런 거 써야되는데? 난 우리 팀원들 것도 다 검사해."
"설마 우리처럼 식단 칼로리,체내 수분량까지 쓰라고 하진 않겠지."
"하지만 그것보다 더 복잡한 걸 많이 기입하지."
"그래 니 잘났다 흥"
김태형씨랑 말싸움 해서 이겨본 적이 한번도 없어. 진짜..이씨...
브런치 먹으면서 김태형씨한테 어떻게 오게됐다고 물어보니까 바이어와의 미팅 때문에 독일 출장이 정말 불가피해서 오게 됐다가 지금 새벽 열차타고 몰래 보러나온 거라고 했어. 지금쯤 가면 보디가드들이 난리칠거라고 걱정걱정을 하는데 아주 귀여워.
"이제 가야겠다."
"아쉽다~"
"공연 티켓 나오면 바로 보내 알겠지?"
"알겠어~ 너도 일 잘 마무리하고 돌아가서 편지 해"
"이제 우리 메일로 보내자. 우체국 가기 귀찮아"
우리 발레단에 딱 하나 불편한 점이 있다면 그건 무용수들에게 핸드폰과 컴퓨터 사용을 금지시키는 거야.
컴퓨터는 연습실에만 한대씩 놓여있는데 그것마저도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사무실에서 사유를 적고 허가를 받은 뒤 랜선을 받아와야 쓸 수 있어.
그 사정을 김태형한테 구구절절 말했지.
"그냥 편지로 보낼게."
"ㅋㅋㅋㅋ그게 좋겠지?"
"나 정말 가야겠다~ 다음엔 무대에서 봐야겠다~"
김태형씨가 가려고 하는데 약간 아쉬워서 내가 뒤돌아 가는 김태형씨 붙잡아서 귓속말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도망갔어.
아마도 깜짝 놀랐겠지? 큭큭
.
.
.
어느덧 내가 오스트리아에 온 지 약 1년 쯤 된 것 같아.
첫 공연 준비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러 다음달이면 첫 공연을 앞두고 있었고, 다들 더 혹독하게 몸관리를 하는 중이었지.
그러던 어느날 아침에
[다들 주목해. 오늘 우리 발레단의 최대 후원 기업인 HIA그룹에서 공연을 보러 오신다. 다들 쇼케이스라고 생각하고 실수없이 멋지게 마무리하길 바란다.]
가끔 우리발레단 후원해주시는 곳에서 방문을 해서 연습을 보고 가시는 경우가 있어서 그냥 평소와 같겠구나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무용수들의 반응이 조금 달랐어.
[Lita! 다들 왜 그러는거야?]
[HIA그룹에서 오는 사람은 너무 싫어.]
[왜??]
[그 사람은 우리의 건강상태를 확인한다는 이유로 몸을 만지고 더듬는다구.]
[캡틴(발레단장)이 말리지 않아?]
[절대. 말했잖아. HIA는 우리 발레단의 최대 후원 기업이라고. 너도 조심하는게 좋을거야. 처음 본 사람들에겐 더 짖궃게 굴거든.]
몸을 만진다고...? 동료 Lita의 말을 듣고 나니 무서워졌어.
.
.
.
HIA그룹에서 사람이 왔어. 두 명이 왔대. 관객석에 앉아있는데 무대에선 자세한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까 일단 열심히 했지. 다들 어떻게든 눈에 띄지 않으려고 평소에 자주 하던 실수도 거의 없이 완벽하게 끝냈어.
"Hey. Come on."
한 사람이 우리들을 불렀고, 우리는 단체로 무대에서 내려가 그분 앞에 2열로 섰지.
Lita의 배려로 나는 그 분에게서 제일 안보일 법한 자리에 설 수 있게 되었어.
[다들 너무 건강해보이는거 아니야? 튼실하네.]
그분이 일어나서 일일이 무용수들과 악수를 하면서 여자 무용수들의 허벅지, 허리를 은근슬쩍 만졌어. 다행히 앞줄하고만 악수를 하고 끝냈기에 망정이지, 뒷줄까지 왔다면 소름이 돋았을지도 몰라...
[나와의 인사는 여기까지 하고, 소개해 줄 사람이 있어. South Korea의 HIA Culture&Contents 담당인 JungKook Jeon.]
어두운 공연장이라 잘 보이지 않아서 몰랐지만, 그 분의 옆에 있던 젊은 남자분이 전정국이었어.
그 애와 우리들은 서로 맞인사를 나눴지. 그나마 다행인건 정국이는 내가 이 발레단에 있다는 걸 모른다는 정도..?
[이 발레단에 저와 같은 국적의 무용수가 있다는데 어디 계신지...?]
가 아니었네...어떻게 알았지..
"Here."
다들 나를 쳐다보길래 어쩔 수 없이 손들어 대답했지.
[이따 저 좀 봅시다.]
그리고는 또 지루한 인사를 하기 시작했어.
이번엔 그 분과 전정국까지 모두 뒷 줄로 와서 인사를 하는데, 내 앞에 온 그 분이.
[살이 제법 있네. 허벅지가 튼실하고, 이런! 뱃살도 있는 것 같은데?]
라며 내 허벅지를 손으로 쓸었어. 그리고 배를 만지려고 하는데,
[Sir, stop.]
전정국이 다행히 제지해줬어.
그 후엔 별다른 일 없이 미팅 아닌 미팅이 끝났고, 다들 짐정리를 한 후에 돌아갔어.
나도 동료들과 함께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아미씨"
".....네?"
"저 좀 보자고 했잖아요."
결국 나는 전정국이 앉아있는 곳으로 갔어.
"생각보다 내가 안반가운가봐요?"
"아니 뭐..."
"내가 CF대박나면 다시 부를테니까 어디 가지 말라고 했잖아요."
전정국이 나를 꼭 끌어안았어.
-------------------------------------------------------------------'
너무 오랜만에 돌아왔습니다 ㅠㅠㅠㅠㅠㅠㅠ제가 사실 고3이라 수능이다 뭐다 해서 11월에 못오고 수능끝나고는 예체능이라서 자주 못왔는데 그동안 글잡에는 불맠도 없어졌더군요 ㅠㅠㅠ 그래도 조금씩 써둔거 드디어 정리해서 하나 올립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병신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