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이름을 되뇌었다. 자퇴를 안 한 것만으로도 용하다면서, 어 제 머리를 쓰다듬고 가는 선생에게 서툴게 웃어 보였다. 책상, 교실. 운동장. 매일 보던 것인데, 그리도 낯설 수가 없었다. 책상 위 가만히 엎드려도 보았다가, 칠판을 쳐다도 보았다가. 세상 펼치기 전 방황했던 날의 위에서, 늘 내 시선의 끝은 너였다. 삼 분단, 뒤에서 네 번째. 수업 시간에도 아랑곳않고 멍하게 네 동그란 뒤통수만 보고 있으면, 부루퉁한 얼굴로 잠에서 깬 네가 뒤돌아 보고는 했다. 몇십 명 중 둘의 시선이 온전히 섞이고, 마침내 네 웃음. 세상 가장 불쌍한 놈이라는 별 시덥잖은 생각을 멎게 해, 어른에 한 발짝 다가가게끔 하였다. 어린 마음에 또 생각했던 것 같다. 예쁜아, 너는 햇살을 닮았다고. 자꾸만 밝혀서 잊질 못 하게 한다고. 내가 어두워지면 또 다가와 밝히고, 검게 변하면 또 다가와 밝힌다. 온갖 내 세상을 자꾸만 밝힌다. 교과서를 또 두고 왔냐며 친구 놈이 제 책상에 던지고 간 얇은 노트를 펼치니, 보란듯이 네가 적혀있다. 예쁜아, 내 모든 게 삐딱한데 너만 정갈하다. 핸드폰을 켜 봐도 몇 번이고 읽은 너와의 문자만 가득하다. 피씨방을 가도, 술집을 가도. 집 앞 벤치에만 나가도, 네가 있다. 예쁜아. 나는 너 하나하고만 인사하면 될 줄 알았다. 너랑만 안녕, 하면 모든 게 끝이 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내 세상이 너더라. 어디를 보아도 네가 있어서, 나는 꼭 죽겠다. 별의별 것들과 다 안녕을 나눈다. 코 끝으로 찬 바람이 분다.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교실을 나섰다. 교실 문을 잠그며 괜히 했던 생각. 이름 한 번 불렀으면 좋겠다고. 권순영, 하고.